사람의 몸이란 서로 비슷해 보이나 자세히 살펴본다면 얼굴이 그러하듯 신체의 다른 부위들도 생긴 모양새가 모두 다르다. 손 하나만을 놓고 보더라도 그러하다. 손목뼈가 튀어나온 형태며, 엄지에 근육이 붙은 모양새, 그 끝에 있는 손톱의 모양새나 닳은 흔적, 무늬 마저도. 소좌가 그 사실을 앎은 역시나 관찰 기회가 풍부한 덕분이었다. 얇고 길쭉한 손톱은 가위를 깊게 꽂아서 단번에, 거칠하고 큰 손톱은 한 번에는 뽑기 힘드니 두 번에 나눠서, 뭉툭하고 작아 보잘 것 없는 손톱은 망치로 때려서 한 번에. 맞춤형 케어로 손톱을 살점과 함께 잡아뜯긴 동료가 내지르는 비명에 벌벌 떨던 테러범은 손톱아래에 바늘을 찔러넣자마자 그들의 소굴과 비밀을 기도하듯 토해내곤 했다.허나 이 작고 사랑스러운 손은 어떠한가. 손에 물 한번 묻혀본 적이 없는 듯 맨질하고, 또 조선인의 간장보다도 보드랍고, 맥박이 뛰고, 따스하며 터럭 하나 없이 깨끗한…
즉 소좌에게 있어서는 처음으로 만져보는 손이었으며, 잘라본 적이 없는 손톱이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조선인 여학생의 손톱정도는 뽑지 않고 다듬어도 줘 볼 걸 후회도 하는 소좌였으나 어쩔 수 없었다. 처음을 경험하는 두려움과 약간의 황홀감 속에서 소좌는 사랑스러운 약혼녀를 뒤에서부터 끌어안고 그녀의 작은 손을 잡아들었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혹여 내가 잘못하여 가위가 그녀의 고운 살갗을 파고들어 찢어버린다면 어찌할까? 피를 흘릴 때에 그녀는 얼마나 고운 목소리로 울어줄까?척수를 짜릿하게 찌르는 묘한 쾌감과 함께 소좌는 조심스레 가위질을 시작했다. 이곳은 차갑고 어두운 (잘 보이지 않아 가위질을 너무 깊게 들어갔을 때는 손가락 째로 깔끔히 날려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에 조명이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지하실이 아니라 따뜻한 온실이었던 덕분일까, 소좌가 다정한 손놀림으로 그녀의 손톱을 깎는 동안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이어서 소녀도 소좌의 손톱을 깎아주고 싶다고 제안해왔다. 애석하게도 소좌는 충용한 황군의 장교 된 자로써 늘 두발과 손톱을(이쪽은 그녀와의 혹시 모를 진전을 위해서라도) 단정히 다듬기에 안타깝게도 깎아줄 손톱이 없노라 거절하였으나, 울상이 된 그녀의 표정에 끄트머리가 살짝 남은 엄지를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얼마 있지도 아니한 손톱을 자르는 고난도의 작업에 그녀가 자신의 살까지 잘라버리지 않을까 상상하며 다시금 짜릿해진 소좌였으나, 소녀 또한 다행히도 불상사를 일으키지 아니하였다.고마움의 뜻으로 손에 입을 맞추자 얼굴을 붉히고서 비틀거리듯 홀로 방에 들어가버리는 소녀의 모습에 아쉬운 듯 입맛을 다지며 궐련을 뽑아든 소좌는, 방금 다듬어준 그녀의 손톱이 오늘 밤 요긴하게 쓰일지도 모르겠거니 하는 망상을 연기와 함께 날려보내며 달을 바라본다. 잘려나간 손톱처럼 뭉툭이 부푼 상현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