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털이 인상적인 소녀여, 어디를 바라보고 있소 본질을 본다는 것은 가림이 너무도 많으매 끝없이 오해하고 또다시 오해하기 십상일 뿐이라오 붉은 노을 가운데 향하는 시선은 너무도 뜨거웠다 미래를 보는 깊은 통찰에 나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겠쇠다 눈을 감고 앉은 그대여, 무엇을 듣고 있소 진심을 가리는 소음이 너무 많아 헤매는 것만으로도 긴 세월을 지내는 것을 마음과 마음을 공명시키는 이야기의 흐름, 시간의 흐름 전해지는 따뜻함이 아련할 뿐이외다
높은 곳에 선 그대여, 어디를 향하고 있소 명예와 추함은 종이, 단 한 장의 차이 걷기 위해서는 미련 한 점 없이 떨어져야 하오 친구를 위하여 기꺼이 물속으로 떨어진 그대 그 아름다운 몸짓에 눈물이 흘러 떨어질 뿐이외다
나는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소 나는 무엇을 듣고 있는가, 더 이상 들을 수 없소 나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멈춰선 지 오래요. 빛 어둠을 함께한 나는 그저 혼란스러울 뿐이오
부와 가문으로 둘러진 그대여, 무엇을 고민하시오 현실과 싸우기에는 차고 넘치는 자원이거늘 모두가 그대처럼 살기를 갈망하오 돈보단 사람을, 냉정보단 온정을, 나보단 함께, 따르기보단 자유롭게 겨울바람에 취하는 모습이 가슴 저릴 뿐이외다
바닷속 깊이 가라앉은 그대여, 무엇을 후회하시오 추억은 더 이상 돌아오지 않고 용서없이 흐르는 시간 과거의 자신을 덧그리는 것은 덧없는 일일 뿐이라오 수많은 스케치들 중 완성한 우리라는 그림 수면으로 향하는 발놀림은 눈부실 뿐이외다
옛 시간과 함께하고 있는 그대여, 무엇을 슬퍼하시오 자신을 깎을 방향은 너무도 많아 아득해지는 내일 마음을 갈고 닦는 데에는 한없는 고통이 기다리고 있소 의무와 책임을 이겨내고 자신과 친구를 다잡은 그대 편안한 모습으로 하는 명상이 경이로울 뿐이외다
나는 무엇을 고민하는가, 내 감성의 순수성에 대하여 고민 중이오 나는 무엇을 후회하는가, 선을 넘은 호기심에 찌든 과거의 나를 후회하고 있소 나는 무엇을 슬퍼하는가, 고귀한 인간으로서 내가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존재라는 것을 슬퍼하고 있소 내 마음과 생각은 더럽혀진지 오래요 결코 떨어지지 않는 오염을 어쩌면 좋겠소
방 안에서 자신을 뽐내고 있는 그대여, 무엇을 입고 있소 자신을 보호하는 방어막이자 표현하는 1차적인 창구 취향, 습관, 성격이 옷으로부터 모두 드러남이라 남들과는 다른, 하지만 함께 누릴 수 있는 자유로움 활짝 펼친 날개옷이 그저 부러울 뿐이외다
소심하지만 강단 있는 그대여, 무엇을 말하고 있소 소리를 낸다는 것은, 원초적이고 효과적인 의사소통 마음과 생각은 파동에 실려 사랑하는 사람에게 울린다 집으로 향하다가 아침이 떠올라 이야기하는 당신 초승달처럼 빛나는 당신의 입이 부러울 뿐이외다
수많은 세상을 접하는 그대여, 무엇을 하고 있소 가장 훌륭한 기구이자 묘사 장치인 우리의 몸짓 따라하면서 감정을 나누고 힘듦에 이입되기 마련이라오 오늘도 연습에 매진하고 있는 중인 그대 순수한 의지가 들어있는 어께가 부러울 뿐이외다
나는 무엇을 입을 수 있소, 아무것도 입을 수 없소 나는 무엇을 말할 수 있소, 아무것도 말하면 안 되오 나는 무엇을 하고 있소, 그저 고통에 신음하고 있소
아담이 선악과를 취한 것처럼 나는 금단의 과실에 손을 대었소 본다는 것은 생각한다는 것, 생각한다는 것은 표현한다는 것 선악과를 표현한다는 것은 끔찍한 재앙 재앙이 나의 모든 것을 지배했소 어둠이 나의 모든 것을 지배했소 해서는 안 될 것이 나의 모든 것을 지배했소...
나느ㄴ...................................
“끝이군요, 쿠로사와 감시관.” “....”
감시관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빨리 여기 조사를 마쳐야 할 텐데, 그래야 어서 돌아가서 밀린 TV 프로그램을 볼 수 있을 텐데. 아직 동료 집행관과 포커도 쳐보지 못했는데, 소문으로만 듣던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보고 싶은데. 아직 하고 싶은 것이 많은데, 여기서 위험부담을 높이기는 싫은걸.
다시 한 번 재촉하려는 순간 옆에 있는 동료 집행관이 감시관에게 말을 건다.
“감시관님, 다음 지시는...”
“쿠로사와 집행관은 조용히 해.”
“네... 알겠습니다.”
한 마디로 일축해버린다. 언제까지 시체를 감상하라는 말인가? 이상한 시를 유언이랍시고 써 놓은 종이 앞에 쓰러진 남성. 유명 소설가라고는 하지만 이게 그렇게까지 생각할만한 일이야? 그냥 자살이잖아?
“감시관, 그냥 빨리 끝내죠...”
“이 남성이 먹는 약 조사했어?”
“진작 마쳤다고요. 고혈압 약에다가 약간의 영양제 몇 알, 그리고 약한 정신병을 가지고 있어서 리튬제제를 먹었다고 해요.”
“리튬...이라면 타살은 아닐 것 같네. 리튬 과다복용으로 자살했다고 보는 게 맞겠다. 그럼 돌아가서 보고했다가 너는 다시 와서 보사 진행하자.”
“네...?”
“윽, 왜 또 쿠로사와만 안 보내시는 거죠? 저는 동네북입니까?”
“넌 아직 할 것 많아. 어서 따라와.”
“말도 안 돼요! 설마 집행관이 당신의 언니라는...!”
철컥 <범죄계수 189, 임의집행 대상입니다.>
“더 해봐.” “아, 아뇨... 감시관에게 따라야지요. 아무리 개같은 명령이라도...”
검은색에 푸른빛으로 장식된 권총. ‘임의집행 대상’, 이것이 그녀와 우리 둘 사이의 거리이다. 항상 언니라는 것만 편하게 해 준다. 그 놈의 가족 때문에 나를 이렇게 굴려먹어? 이런 빌어먹을 공안국을 봤나!
“컴퓨터 조사는 어느 정도 되었나?”
“1급 금지 파일이 삭제된 흔적을 발견했어요. 아마 그거 보고나서 현자타임이라도 온 거겠죠.”
“삭제되었다면... 그럼 자살하거나, 아니면 배제되거나 똑같은 결과였겠고.”
“내가 스스로 죽는 게 낫다? 그럴 만하네요.”
“라이터 있어?”
“여기.”
평소에는 담배도 피우지 않는 아가씨가 라이터는 왜 찾나 했더니만 불을 켠 후에 종이에 갖다 댔다. 짧은 시간동안 종이는 자기 자신을 발산해댔다. 유명 소설가의 두 장짜리 최후의 작품은 의미 없이 사라졌다.
“컴퓨터 자기장 포맷해버리고 마무리하자. 시체는 중앙 처리 시설에 넣으면 알아서 해 주겠지. 철수하자.”
감시관은 앞에 멈춰선 승용차에 탑승하고 두 집행관은 자동 운전 기능이 딸린 트럭으로 들어간다. 시체는 그 뒤에 딸린 초라한 수레에 실려 트럭을 쫓아오고 있었다.
과연 오염된 소설가의 영혼은 불로써 정화된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고통 속에서 사라졌을 것일까. 그것은 누구도 알 수 없다.
이 답답한 도시의 하늘 속에서 보기 힘든 초신성이 일어났지만, 관심을 가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부제 : PASS’ive characteristics -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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