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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일반 (재업)[SS번역] 검은 고양이는 유유히 우리들의 눈앞을 가로질렀습니다
글쓴이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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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글 주소
https://gall.dcinside.com/sunshine/1201458
  • 2017-05-04 07:50:33
  • 14.37.*.*

검은 고양이는 유유히 우리들의 눈앞을 가로질러 갔습니다
黒猫は悠々と私たちの目の前を横切りました


http://www.pixiv.net/novel/show.php?id=7188176



 밤하늘의 별들은, 그저 우리들만을 비추고 있었다.

 살짝 물기를 띤 채, 올려다 보는 벌꿀색 눈동자.

 바람에 나부끼며 흔들리는 밤색 머리카락.

 뺨을 간질이는 달콤한 한숨.

 돌연 부드러운 입술이 희미하게 움직였다.


――요시코쨩이라면, 좋아.


 그녀의……하나마루의 말이 계기가 되었다. 이성이 어딘가로 멀어져 가는 것 같았다. 잡은 손의 울렁이는 맥박과 호응하듯이, 나의 심장 고동은 거세져만 갔다.

 비어 있는 왼손으로 빨갛게 물든 뺨을 살짝 어루만지자, 하나마루는 부끄러운 듯이 수줍어 했다.

 천천히, 그녀의 입술로 얼굴을 접근했다.

 입술과 입술이 닿을 때까지, 앞으로 수미리--




――라는 꿈을 꿨다.


「욕구 불만인가 나는……」

익숙할터인 흰 천장이 왠지 멀게 느껴졌다. 분명 자다 일어나서 꿈과 현실이 애매해진 탓이다.

몸을 일으켜 이마에 달라 붙은 앞머리를 가볍게 쓸었다. 식은 땀으로 파자마가 피부에 달라붙는 감각에 불쾌함을 느끼고 한숨을 쉬었다.

한여름, 데쳐질 것 같은 더위가 계속되는 7월 하순. 전기세를 고려해 에어컨을 켜지 않았던 것은 좋았지만, 적어도 창문 정도는 열고 자야 했다고, 커텐 사이로 비치는 햇빛에 눈을 돌리며 그런 일을 생각했다. 뭐, 이제와서 후회해도 어쩔 수 없지만. 머리맡의 디지털 시계는 벌써 11시를 지나고 있었다. 즉, 나는 귀중한 토요일의 반을 어리석게도 수면 따위에 써버렸다는 것이지만, 그것 역시 이제와서 후회해도 어쩔 수 없는 일로. 지금, 내가 후회해야 하는 일은

「정말, 무슨 꿈을 꾸는거야」


 하나마루. 쿠니키다 하나마루. 유치원 이래의 소꿉친구. 나의, 소중한 친구.

 그 친구와 키스하는 꿈을 꿨다.


「으~~~~~~~~!」

말로 할 수 없는 소리를 내며, 베개에 얼굴을 묻고 발버둥 쳤다. 물론, 먼지가 흩날리는 것 이외의 효과는 얻을 수 없었다.

진정해 요하네. 아니, 츠시마 요시코. 꿈에 즈라마루가 나왔다. 단지 그것 뿐이야. 왜 거기까지 동요하는 거야? 이래선 마치 내가 즈라마루를……즈라마루, 를.

발버둥 치던 다리를 멈추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일어나고 나서 그다지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닌데, 아까부터 한숨만 쉬고 있다. 「요시코쨩. 너무 한숨만 쉬고 있으면 행복이 도망쳐 버려서 좋지 않아유」라고. 내가 하고 싶지도 않은 한숨을 쉬게 만든 원흉인 그녀가 이 장소에 있었다면, 놋포빵이라도 볼이 미어지게 먹으면서, 행복 그 자체를 구현한 듯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하아……」

세번째 한숨. 내가 생각해도 소심하다. 아니, 별로 지나칠 정도의 씩씩함을 원하는건 아니었지만, 이 정도로 질퍽질퍽하게 있으면 방의 습도마저 올라가는 것 같다. 고온다습, 생각할 수 있는 한 여름철에 있어서 가장 최악의 환경이다.

우선 샤워라도 한 뒤 갈아입자. 계속 이렇게 있으면서, 즈라마루만 떠올려봐야 기분이 가라앉을 뿐이고, 거기에 무엇보다 하루내내 방에 틀어박혀 있다니 비리얼충에도 정도가 있다. 리얼충의 길도 방에서 나오는 한 걸음부터. 오후의 예정을 세우는 것은 씻고난 후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목욕 후에 곧바로 시원해지도록, 침대 속에 파묻혀 있던 에어컨의 리모콘을 발굴해, 스위치를 눌렀다. 하지만, 아무리 눌러도 반응이 없었다.


「…………」


전지가 떨어졌다.


◇ ◇ ◇


예언이라는건 피하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예언대로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 것 같다.

그리스 비극, 오이디푸스왕의 이야기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자기 자식에게 살해된다는 예언을 받고, 태어난지 얼마 안된 아들을 죽이도록 명령한 테베의 왕 라이오스는, 예언을 피하려고 했지만 그것 때문에 자기 자식……오이디푸스에게 살해당해 버린다.

마찬가지로, 친아버지를 살해한다는 예언을 받은 오이디푸스는, 버려진 자신을 주워준 양친을 친아버지라고 오해해서, 그들을 죽이지 않기 위해 나라를 떠난 결과, 친아버지인 라이오스를 죽여 버리게 된다.

만약 라이오스가 예언을 믿지 않았으면, 친자식에게 살해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오이디푸스가 예언을 웃어 넘기고 나라에 남아 있었다면, 친아버지를 죽일 일은 없었을 것이다.

픽션에서 「만약」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자체가 넌센스라고 한다면 그걸로 끝이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생각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운명이란건, 거역할 수 없듯이, 피할 수 없는 걸까. 피하려고 하는 것으로 오히려 정해진 길로 나아가 버리는 것을 운명이라고 부르는 걸까……스케일은 상당히 줄어들지만, 이 경우는 어떤 걸까.

오늘 아침 그녀의 꿈을 꾼 나, 꿈을 생각하지 않기 위해 기분 전환으로 역까지 나온 결과, 거기서 그녀를 발견해 버렸다고 한다면, 이것도 또 「피하려 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 길로 나아가 버렸다」라는 것일까.

나와 그녀는, 오늘 여기서 만날 운명이었던 걸까.


「……………………」


누마즈역 남쪽 출입구에 있는 나카미세 상점가에 가게를 차린 모서점.

최근 화제작에서부터 여행 가이드에 비즈니스서, 끝에는 스쿨 아이돌 관련 잡지나 서적까지 뭐든지 있다. 시즈오카 현내에서도 손꼽을 정도의 넓이를 자랑하는 대형 서점--거기에, 그녀가 있었다.

중학생이나, 자칫하면 초등학생으로조차 착각해버릴 것 같은 앳된 체구. 네이비 롱 스커트에 흰색 가디건과, 차분한 색의 조합이 서점 분위기와 매치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붕뜬 인상을 주는 밤색 머리카락. 벌꿀색의 커다란 눈동자는, 손에 든 책 페이지로 향해 있었다.

보는 이쪽이 무심코 숨을 삼켜 버릴 듯한, 그런 반듯한 외모를 지닌 그녀는……쿠니키다 하나마루는 문예지 플로어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아니, 왜 누마즈까지 와서 서서 읽고 있는거야」


무심코 나와버린 말에 즈라마루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독서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인지, 그저 조금 떨어진 여기에서는 목소리가 닿지 않아서인지, 적어도 그녀는 아직 나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럼, 어떻게 할까. 모르는 척하고 서점을 나올 수도 있겠지만, 아는 사람을 발견했는데 말도 걸지 않고 떠나는 것도 뒷맛이 나쁘다. 발길을 돌리려고 힘을 준 발끝을 쳐다보면서 멍하니 생각했다.


애초에 「그런」꿈을 꿨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즈라마루를 피할 이유는 없었다.

우리는 단순한 소꿉친구다. 교제가 긴 것도 아니고, 서로의 과거를 약간 정도 알고 있을 뿐. 「그런」 관계가 아니다. 「그런」 관계로는 될 수 없다. 그녀에게 「그런」감정을 향해서는 안된다. 단순한 소꿉친구, 그러니까……그러니까, 이상하게 의식할 필요는 전혀 없어.

얼마 안되는 망설임을 떨쳐내고, 책을 읽는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어머 우연이네, 즈라마루. 이런 곳에서 뭐하고 있어?」


 대답이 없다. 팔락, 페이지가 한 장 넘어가는 소리.


「……………………」

「……………………」


잠깐, 왜 눈물이 고이는거야, 츠시마 요시코! 틀려, 별로 무시되고 있다던가 그런게 아니야. 즈라마루가 그렇게 음습한 성격일리가 없잖아. 즈라마루는 조금 독서에 집중하고 있을 뿐이고, 좀 더 가까이에서 이름을 부르면 알아차리는게 당연해! 봐봐, 벌써 근처까지 왔어. 여기까지 접근하면 역시 알아차리겠지……알아차려 줄거지?

헛기침을 하고 리테이크.


「어, 어머 우연이네, 즈라마루. 이, 이런 곳에서 뭐하고 있, 어?」


 대답이 없다. 팔락, 페이지가 한 장 넘어가는 소리.


「……………………」

「……………………」

「……………………」

「……………………」


 점내를 둘러봤다. 눈에 띄는 사람은 없었다.

 즈라마루의 귓가에 입을 가까이 대고--입김을 불었다.


「후와아아앗!?」


효과는 발군이다―.

움찔 몸을 떨더니, 시간이 멈춘 것처럼 굳어져, 몇 초후에야 겨우 긴장한 것처럼 뻣뻣하게 이쪽을 돌아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그녀의 시선은 발끝까지 내려갔다가, 몸을 더듬는 것처럼 천천히 올라왔다. 시선은 재차 내 눈동자를 인식한 뒤, 그제서야 겨우 정지했다.


「요, 요시코쨩? 갑자기 입김을 불면 놀라버려유」

「그, 러, 니, 까, 요하네라니까! 아까부터 불러도 대답이 없었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정말이지, 바로 반응해달라구」

조금만 더 있었으면 울 뻔했다. 아니, 별로 정말로 무시당하고 있다고 생각되서 슬퍼졌다던가 그런 일은 전혀 조금도 아니지만.


「그래서, 요시코쨩이 어째서 여기에?」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와, 즈라마루가 이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어째서고 뭐고, 심심풀이로 들러본 것 뿐. 즈라마루야말로 왜 여기에 있어, 너 우치우라잖아」

우치우라에서 누마즈까지 버스로 500엔이 든다. 주행시간 약 50분. 그렇게 부담없이 올 수 있는 금액도 거리도 아니다. 그러니까 뭔가 특별한 용무라도 있는건가 생각하자 「마루는 책을 사러 온거야」라고, 덮은 책을 원래 있던 책장으로 아쉬운 듯이 되돌리면서, 그녀는 태연하게 말했다.


「책을 사러라니……일부러 누마즈까지 오지 않아도, 인터넷 주문 쪽이 훨씬 편하지 않아?」

「인터넷 주-문?」

「……미안, 아무것도 아니야」

그랬다. 이 아가씨, 기계에는 완전히 어두웠다. 통신 판매에 인연이 없는 이상, 직접 서점에 오는 것이 자연스러웠지만……


「인터넷 주-문은 잘 모르겠지만, 여기는 마루들이 알고 있는 것 중에서 제일 큰 서점이잖아? 그러니까 여기에 있으면 책의 바다에 빠진 것 같아서 엄청 진정돼」

요시코쨩이 흑마술 샵에 가면 즐거워지는거랑 같아, 라고 진열된 책의 표지를 집게손가락으로 쓸면서 즈라마루는 미소지었다. 그 표정은 행복 그 자체로, 무심코 여기까지 누그러져 버릴 것 같았다. 그런데도, 나의 가슴 속은 연못에 돌을 던진 것 처럼 파문이 퍼지고 있었다. 이래서는 마치

「그래. 뭐 즈라마루가 좋다면 별로 그걸로 좋지만……」

마치 책에 질투하는 것 같다, 라고 내심 머리를 싸맸다. 하필이면 질투의 대상이 무기물인 자신의 작은 그릇에 질렸다.

나와 하나마루는 단순한 소꿉친구다. 그러니까 「언제라도 그 표정은 자신에게만 향해줬으면 좋겠다」라니,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이기주의에 지나지 않아서--


「――무극」


갑자기 뺨을 손가락으로 찔린 것 같은 감촉이 들었다.

「후라마후. 머하느거야」

그렇다고 할지 즈라마루가 내 뺨을 손가락으로 찌르고 있었다. 손톱의 손질은 되어있는 것 같아서 그다지 아프지 않았다.

「에헤헤. 요시코쨩이 왠지 부어 있었으니까」

저기 요시코쨩. 흔들리는 머리카락의 향기에 의식을 빼앗긴 사이, 뺨에서 손가락을 뗀 즈라마루는 성큼 눈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마음속까지 들여다보듯이 치켜뜬 눈에, 심장이 고동치는 것을 스스로도 알 수 있었다. 이것을 천연스럽게 해버리니까 그녀는 치사하다.


「요시코쨩은 이후 예정 같은거 있어?」

「? 이렇다 할일은 없는데」

굳이 말하자면 에어컨 리모콘용의 전지를 사러가는 일 정도지만, 뭐 별로 지금 바로 사지 않아도 상관없고.

그 말을 들은 즈라마루는 휴우 한숨을 돌리고, 온화한 미소를 띄웠다.


「다행이다. 그러면 마루, 요시코쨩이랑 같이 어딘가로 놀러 가고 싶어」

「에, 나랑?」

갑작스런 권유에 무심코 얼빠진 목소리가 나와 버렸다.

평범하게 생각해보면 거절할 이유가 없는 권유인데 망설이는 것은 왜일까. 인도어파인 내가 누마즈에서 놀만한 장소를 모르기 때문, 이라는 것도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이상으로 즈라마루과 함께 보내는 시츄에이션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가슴을 뜨겁게 태우는 이 느낌……

「안되, 유?」

들려온 것은 당장이라도 스러질 듯한 소꿉친구의 목소리. 내가 망설이는 동안 순식간에, 그렇지 않아도 자그마한 하나마루의 신체가 움츠러들었다.

조명의 영향일까. 물기를 띤 것처럼 보이는 그녀의 벌꿀색 눈동자는, 오늘 아침의 꿈을 연상시키기에는 넘칠 정도로 충분해서--


「어, 어쩔 수 없네! 가끔은 리틀데몬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도 타천사의 의무고, 오늘 정도는, 그, 어, 어울려 줘도 괜찮아」

친구에게 권유됐을 뿐, 그래. 이상하게 의식할 필요는 없어……자신에게 타이르면서, 심호흡을 반복했다.

바로 전까지 축 쳐져 있었으면서, 즈라마루는 내 대답을 들은 순간 화악 눈을 빛냈다. 타산적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즈라마루가 기뻐보인다면 그걸로 좋은가, 라고 생각하며 안도하는 나도 너무 단순한 걸까.

「그럼 마루, 계산하고 올테니까 잠깐 기다려유」

들뜬 목소리로, 즈라마루는 구석에 놓여져 있던, 20권 정도의 책을 실은 대차를 끌고 계산대로 갔다.……그 대차 너가 쓰는거였구나. 아니, 얼마나 살 생각이야.



「꿈, 이유?」

「그래. 아는 사람이 꿈에 나온거야.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아? 즈라마루, 꿈진단의 책 같은거 읽은적 없어?」

나온 사람이 즈라마루라는 것과, 키스를 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숨기고 오늘 아침에 본 꿈의 원인을 물어보자 「그다지, 점계 관련 책은 읽지 않았어유」라고 하며, 그녀는 난처한 듯이 눈썹을 내렸다.

「그보다 『아는 사람이 나오는 꿈을 꾸었는데』라고 들어도 너무 막연해서, 읽었어도 진단할 방법이 없어」

「뭐, 그건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설마 본인 앞에서 키스하는 꿈을 꾼 것을 커밍아웃 할 수는 없고, 나온지 얼마 안된 아이스 밀크티에 입을 대는 그녀를,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서점에서 조금 멀어진 장소에 위치하는 찻집.

여름의 누마즈를 끝없이 걸어다니는 취미가 있을 리도 없고, 우리는 거기서 일단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휴식이라고 해도 지금까지 특별히 뭔가를 했던 것은 아니고, 몇 분간 걸었을 뿐이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즈라마루가 문득 떠오른 것처럼 고개를 갸웃했다.

「누마즈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마루라면 몰라도, 어째서 요시코쨩이 누마즈에서 놀만한 장소를 모르는거야?」

「으극」

아픈 곳을 찔려,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그래. 본래라면 누마즈에 사는 내가 앞장서서 즈라마루를 안내해야 했지만, 그녀를 어디에 데려가야 하는지 알 수 없어서, 이렇게 찻집에서 일단 작전 회의를 하게 된 것이다.

「그, 그게. 나는 타천사니까 인간계의 놀이 같은거에는 흥미가 없어. 라, 라운드 원? 같은 인간 따위의 오락실도 천계에는 없었으니까……」

「요시코쨩……」

「불쌍하게 여기는 듯한 눈으로 나를 보지마! 바로 얼마전만 해도……아, 실례합니다. 감사합니다」


바로 얼마전만 해도 선배랑 놀러 갔으니까! 그렇게 말하기 직전, 겨우 내가 주문한 음료가 나왔다. 인사를 하면서 받은 그것을, 즈라마루는 「요시코쨩, 마실 수 있어유?」라고 말하며 반쯤 뜬 눈으로 응시했다.

「다, 당연하잖아.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는거야? 요하네니까 블랙 커피 정도는 마실 수 있는게 당연하다구」

진흙보다 깊고 탁한 수면에는 마시기 전부터 불쾌한듯이 얼굴을 일그러뜨린 내가 비치고 있었다.

즈라마루의 앞이라서 폼 잡으려고 주문한건 좋았지만, 벌써 후회가 됐다. 얼마전, 똑같이 블랙 커피를 마셨을 때도 한입만에 좌절했었고.

그렇다고 해도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커피 한 잔도 마실 수 없어서는 언제까지고 비리얼충인 그대로다.

우유 같은걸 넣지 않아도 괜찮아?, 라고 걱정스러운 듯이 묻는 즈라마루를 무시하고 한입 마셨다.


「……………………」

쓰다. 오로지 쓰다. 거기에 뜨겁다. 어째서 나는, 하필이면 핫을 주문한 거지. 지금 여름인데.

후회막급의 사용법을 혀끝으로 이해하면서, 즈라마루 앞에 있는 마시다 만 밀크티를 응시했다.

「저기, 즈라마루」

「싫어유」

「……아직 아무말도 안했는데」

「어차피 마루의 밀크티랑 바꿔달라는 거지?」

자신이 주문한 것은 제대로 자신이 마시지 않으면 가게 사람들에게 실례에유, 라고 잔소리를 하면서 즈라마루는 빨대를 물고, 또 한입.


「즈라마루 차갑지 않아? 요우상은 그냥 바꿔줬는데」

「요우상?」

책망하듯이 혼잣말하자, 컵안을 향해 있던 시선을 느릿하게 이쪽으로 돌리면서, 즈라마루는 멍하니 고개를 갸웃했다. 어째서 요우상의 이름이 나오는거야……그런 말을 하는 것처럼.

「귀갓길이 같아서, 저번에 돌아가는 길에 권유 받았어. 그래서 지금처럼 찻집에 가거나 했다는 이야기」

그렇다 치더라도 그 사람의 리얼충 오라는 정말로 엄청났지, 현재의 내 목표야.

눈부실 정도로 밝은 미소를 띄우면서 나를 이끌고 돌아다니던 요우상를 떠올리고 있자, 즈라마루는 「내는, 권유받지 않았어유」라고 말하며, 지루한듯이 눈을 내리깔고 빨대로 컵에 떠있는 얼음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언제나 온화한 즈라마루로서는 꽤 드문 표정이다, 그렇게 요우상이랑 놀았던 내가 부러운 걸까.


「요우상이랑 자주 놀러다녀?」

「뭐, 뭐 그럭저럭. 집 방향도 같고」

사실은 한번뿐이었는데, 습관적으로 그만 허세를 부려 버렸다. 평상시처럼 「요시코쨩, 거짓말은 좋지 않아유」라고 반쯤 뜬 눈으로 말할거라고 생각했지만, 즈라마루는 내 발언에 리액션을 보이지 않고, 신기한 표정으로 불필요한 수분을 쓸어내듯이 자신의 입술을 집게손가락으로 더듬고 있었다. 몇초후, 입술에서 떨어진 손가락이 앞에 있는 컵을 가리켰다.


「요시코쨩. 그 커피, 마루가 마셔줄게」

「에, 정말로?」

과연 즈라마루. 역시 가져야 할 것은 소꿉친구네! 라는 뻔한 아첨을 말하려고 하자, 즈라마루는 그것을 막고 「대신, 한가지 조건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입술에 한번 더 손을 대고

「다음주 토요일에도 마루를 만나 준다면, 마셔줘도 괜찮아」

평소처럼 온화한 미소를 띄웠다.

「그런 걸로 괜찮다면 별로 상관은 없지만, 꽤나 먼 이야기네……그보다, 나로 괜찮아? 요우상이 아니라?」

「즈라? 어째서 요우상?」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즈라마루도 똑같이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나, 뭔가 착각하고 있나?


거의 마시지 않은 커피를 즈라마루 앞까지 옮겼다. 할 수 있다면 입가심으로 밀크티를 마시고 싶었지만, 공교롭게도 유리잔에는 녹아가는 얼음이 몇 개 남아 있을 뿐.

내민 커피를,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단번에 마셔버렸다……어라, 이거 가만히 생각해보면 간접 키스 아니야?

「하나, 마, 루……」

그렇다고 할지 가만히 생각해보지 않아도 간접 키스였다. 체온이 끓어오를 정도로 상승하는 것을 느꼈다.

「응, 역시 쓰네. 마루도 아직 어린애 입맛이네유……요시코쨩 무슨일이야?」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것보다 이 다음 어떻게 할지 정하자. 어딘가 가고 싶은 곳 없어?」

상당한 동요가 얼굴에 나와버렸을 것이다. 이상하다는 듯이 이쪽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을 마주보지 못하고, 허둥지둥 화제를 돌렸다.

간접 키스는 리얼충 입장에서 보면 평범한 일이야. 분명, 아마……그런 식으로 자신에게 타이르자 자연히 달아오른 신체도 가라앉았다.


「응―. 마루는 요시코쨩이랑 함께라면 어디라도 좋아유」

「요시코라고 하지마-……즈라마루는 선택지가 두개일 때 『어느 쪽이라도 좋아』라고 말해버리는 타입이네」

뭐, 나도 그렇지만. 아마, 이러니 저러니 해도 우리는 비슷한 타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유치원 시절 계속 함께 있었던거겠지.

그건 그렇고. 서로 주문한 음료를 다 마셔 버린 이상(마신 사람은 거의 즈라마루지만) 오래 있는 것도 실례다. 초조해할 필요는 없지만, 이제 슬슬 갈 곳 정도는 정하자. 보통 여자 아이가 갈 것 같은 장소, 예를 들면

「양복점은. 어때?」

「옷가게라」

나랑 함께라면 어디라도 좋아, 라고 말한 것에 비해 바로 찬성하지도 않고, 의자에 기대면서 복잡한 듯한 미소를 띄웠다.

「싫지는 않지만, 옷을 살꺼라면 그 만큼의 돈으로 책을 사는 쪽이 좋을까, 해서」

그렇게 말하며 즈라마루는 바로 옆 의자에 놓인, 방금 구입한 20권 이상에 이르는 책을 담은 보자기를 사랑스러운 듯이 바라보았다.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지만, 상상 이상의 책벌레다.


「아깝네. 너, 귀여우니까 좀더 멋 부리는 것에도 관심을 가지면 좋을텐데」

뭐, 지금 이대로도 충분할 정도로 귀여우니까, 일부러 신경쓸 필요는 없다고 말하면 그걸로 끝이지만.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보자기에서 즈라마루 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요시, 코쨩」

어째서인지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물드는 것이 보였다.

어라, 나 또 뭔가 해버렸나? 내심 식은땀을 흘리는 것과 동시에 즈라마루가 작게 입을 열었다.

「저기, 기쁘지만, 정면에서 들으면 곤란해, 유……」

간신히 알아들을 수 있었던 그녀의 말을 되새기며, 조금 전 자신이 말한 대사를 다시 생각했다.


 ――너, 귀여우니까


「……!」

 즈라마루의 부끄러움이 전염된 것처럼, 내 얼굴도 확 뜨거워졌다.

「잠, 다르……아니, 다르지는 않지만, 그……」

횡설수설 변명을 해도, 전혀 상황을 타파하기 위한 말을 찾을 수 없었다.

즈라마루의 뺨이 한층 더 붉어졌다. 나도 냉방이 있는데도 뜨거움을 억누르지 못했다.

어색한 침묵. 가게에 흐르는 경쾌한 BGM도, 다른 손님의 이야기 소리도 어딘가 멀게 느껴졌다.


「스, 슬슬 나갈까. 어디에 갈지는 계산 후에 정하자」

「으, 응. 길게 있는 것도 나쁘니까」

서로 눈을 마주보지 못한 채, 얼굴이 붉어진 채로, 점원이 보면 수상함 만점의 2인조를 연기하며 계산대로 향했다.

계산을 끝마치고 출구로 나가려고 했지만 즈라마루가 따라오는 기색이 없었다. 뒤를 돌아보자 나의 소꿉친구는 살짝 귓가를 빨갛게 물들인 채로, 계산대 옆에 우두커니 멈춰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점내에 붙여진 한 장의 포스터에 박혀 있었다.

영화 광고인 것 같다. 포스터에 그려진 것은, 각자 연미복과 드레스를 입은 젊은 일본인 남녀.

「전에 루비쨩이 추천해줬어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다가, 하나마루는 포스터를 가리키며 이쪽을 돌아 보았다.

「요시코쨩. 마루, 이 영화가 보고 싶어」


◇ ◇ ◇


「――――의 3시 반으로, 고등학생 2장 부탁합니다. 에, 아, 학생증인가요……잠깐 즈라마루. 너도 보여줘」

접수처에서 즈라마루에게 아무리 학생증을 보이라고 재촉해도 전혀 반응이 없었다. 그녀의 의식은 오로지, 상영중인 영화의 예고가 흐르는 TV나, 근처에 있는 매점으로 향하고 있었다.

영화관에 오는 것이 처음이라고 한 이상, 호기심이 왕성한 즈라마루가 하이 텐션이 되는 것은 손쉽게 상상할 수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라고는……

「저기, 요시코쨩. 마루는 그 『츄러스』라는 과자를 먹어보고 싶어유」

알았다니까! 츄러스 정도는 얼마든지 사줄게! 부탁이니까 빨리 학생증을 내밀어 주세요 즈라마루씨!


한바탕 말썽은 있었지만 무사히 학생 요금으로 티켓을 살 수 있었다. 줄지어 있는 사람들에게 사과를 하면서, 예고 영상에 열중해 움직일 기색이 없는 하나마루의 팔을 잡아끌어 줄을 떠났다.

「요시코쨩, 아직 시간은 있으니까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

「요시코라고 하지마-. 즈라마루가 너무 느긋한거라구--」


――어머, 귀여운 커플이네.


 갑자기 인파 속에서 들려온 소리에, 무심코 잡고 있던 하나마루의 팔을 놓아 버렸다.

「요시코쨩, 무슨 일 있어유?」

이상하다는 듯이 이쪽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아하니, 다행히 그녀에게는 들리지 않았던 것 같아 내심 안도했다.

――괜찮아. 우리는 「그런」관계가 아니야. 그러니까, 이상하게 의식할 필요는 전혀 없어.

「아무것도 아니야. 자, 츄러스 살거지」

이 장소에 커플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니까 방금 전 목소리도 이쪽을 가리키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었는데도, 우리에게 말했던 것처럼 느껴져서……

한 사람분의 거리를 벌리고, 인파를 우회해서 매점으로 향했다. 뒤돌아보자, 즈라마루가 불만스레 뺨을 부풀린 것처럼 보인 것은, 분명 기분탓이다.


◇ ◇ ◇


흔히 있는 연애 영화였다.

무도회에서 만난 한 쌍의 남녀가 서로에게 끌려, 사랑에 애태우고, 무수한 어려움을 넘어서 이어지는 것을 그린……그런 러브 스토리.

재미없다고 딱 잘라 말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눈물을 흘리면서 절찬할 정도의 내용도 아니어서(아니, 클라이막스에서 통곡하던 관객은 몇명 있었지만). 나의, 그리고 아마 즈라마루 안에서도 특히 인상에 남은 일은

「커플 손님이 엄청 많았네」

오히려 혼자 온 사람이나 가족끼리 온 쪽이 적은 것처럼 느껴질 정도의, 심상치 않은 커플률. 이 영화를 본 커플은 오래간다, 라는 그런 징크스라도 있는 걸까……라니.

접수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몇인용의 의자에 걸터앉으면서, 즈라마루는 조용히 끄덕였다.

「포카리 한 개 더 사올까?」

「으-응. 이제 괜찮아, 고마워 요시코쨩」

인생 첫 영화관이라 커다란 스크린의 박력에 도취된 것처럼 보이던 즈라마루도, 수십분 정도의 휴식을 취하자 끄덕일 수 있을 정도까지는 회복한 것 같았다. 이 상태라면 우치우라행의 막차에도 아슬아슬하게 늦지 않을 것 같다.

침착해진 것을 증명하듯이 한숨 돌리며, 즈라마루는 「커플 손님이 엄청 많았네」라고 방금전 내가 한 말과 완전히 똑같은 발언을 했다.

몇초 간격을 두고, 그녀의 시선이 이쪽으로 느릿하게 움직였다.


「마루들도 커플로 생각되었을까?」

「뭣」

평소와 같은 미소를 띄우면서 그런 식으로 물어보면 아무 대답도 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눈앞에 다가오는 것은, 보는 것이 주저될 정도의 맑은 벌꿀색 눈동자--


「그, 그런 일은 없지 않을까? 봐, 요우상이랑도 몇번이나 영화관에 온적 있었고, 별로 친구끼리 오는건 평범한 일이고, 그……커, 커플이라고 생각될리는 없지」

아아, 나는 겁쟁이다. 겁쟁이에, 비겁자다.

인정해버리면 되돌아올 수 없는 「그것」과 마주보는 것이 두려워, 빤히 보이는 거짓말로 몇번이나 몇번이나 도망치려고 한다.

하지만, 그걸로 좋아……나는 최면을 걸듯이 나에게 타일렀다.

왜냐하면 우리는 단순한 소꿉친구니까. 여자 아이는, 여자 아이를 좋아해선 안되니까--


「……요우상의 이야기를 할 때의 요시코쨩은, 마루하고 있을 때 보다 훨씬 즐거워 보이네」

「하나마, 루?」

내가 말문이 막히게 된 원인은 그녀의 그 대사 때문이 아니라, 그것보다는 오히려


「하나마루. 왜 우는거야」


「에……어라?」

뚝뚝, 그 벌꿀색 눈동자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그녀는 그저 망연히 자그마한 손바닥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다른데, 이런걸 말하려던게 아니었는데……그렇게 말하며 손 끝으로 눈가를 닦아도, 그녀에게서 흘러넘치는 마음은 멈추지 않아서

「요시코쨩. 마루, 잠깐 화장실에 갔다올게」

떨리는 음성으로 그렇게 말하고, 하나마루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휘청거리는 발걸음으로 인파 속에 자취를 감추었다.

「……………………」

뭔가 말을 걸었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손을 잡아 줬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 눈물을 그녀 대신 닦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겁자인 나에게는, 하나마루를 대신해 의자에 놓여진, 그녀가 산 몇 개의 소설이 담긴 보자기를 바라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 ◇ ◇


20분 이상이 지났는데도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인내심에 한계를 느껴 영화관 내의 화장실을 살펴 보았지만, 모두 비어 있었다.

「……어디 간거야, 바보마루」

돌아오지 않는 그녀 대신 보자기를 들면서, 영화관 출구로 향했다.


껴안은 짐은, 상상하던 것보다도 훨씬 더 무거웠다.




『있지 있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랑 보러가면 사랑이 이루어진대!』


갑자기 떠오른 것은, 어느 날 돌아가는 길에 루비쨩이 가르쳐 준, 흔한 사랑의 주술.


『그러니까 다음에, 만약 기회가 되면 요시코쨩이랑 가보면 좋지 않을까, 루비는 생각해』

『즈랏!?, 어째서 요시코쨩의 이름이 나오는거에유?』

마루의 동요가 상당히 얼굴에 나왔을 것이다. 『하나마루쨩을 언제나 보고 있으면 그 정도는 알 수 있어』라며 루비쨩이 킥킥 웃었다.

『하지만, 마루 따위가 권해도 요시코쨩 분명 곤란해할테니까……』

『그렇지 않아! 」

맑은 비취색 눈빛을 똑바로 향하며, 루비쨩은 힘차게 말했다.

『하나마루쨩은 엄청 상냥하고, 엄청 귀여운, 루비의 자랑스러운 친구란 말이야. 그러니까 분명 괜찮아……하나마루쨩. 간바루비, 야』

떠올린 것은, 마루의 등을 밀어준 소중한 친구의 웃는 얼굴.


「……………………」

무심코 움켜쥔 오른손 주먹을, 여름 바람이 소리없이 쓰다듬었다.

지금 몇시일까. 버스 정류장의 시계가 4시를 가리킨 채 멈춰 있는 탓에,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었다.

그러니까, 영화가 시작된 시간이 3시 반이고, 2시간짜리 영화였으니까 끝난 것은 5시 반쯤. 그리고 영화관 내에서 쉬거나 여기까지 걷거나 해서 1시간 정도 썼다고 하면……적어도 우치우라로 가는 마지막 버스는 벌써 발차한 뒤인 것이 확실했다. 그래서 이렇게 버스 정류장의 벤치에서 멍하니 있는 것으로 아무것도 오지 않겠지만, 움직일 기분은 들지 않았다. 혼자서 앉은 벤치는, 왠지 넓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모두가 맺어지는 것은 아니라니, 주술은 거짓말쟁이다.

「……요시코쨩에게 잔뜩 폐를 끼쳐 버렸어」

요시코쨩, 마루를 걱정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으면 역시 화내고 있을까……화내고 있겠지.

요시코쨩은 싫어했었는데 마루의 마음대로 하루종일 돌아다니고, 그런데도 요시코쨩이 즐거운 듯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자 토라지고

「마루는 싫은 애네」



「정말이야. 연락도 하지 않고 멋대로 사라진다니, 있을 수 없네」


애타는건 이쪽이니까 좀 봐줘――마루의 귀에 닿은 것은, 거기에 있을리 없는 좋아하는 사람의 목소리.

윤기가 흐르는, 칠흑의 머리카락. 우측 머리에 갖추어진 경단 머리. 이쪽을 확인하고 상냥하게 누그러지는, 자수정빛 눈동자.

「요시코, 쨩?」

「전에 루비한테 들었어. 즈라마루, 너 동아리 중에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고 마음대로 돌아간 적도 있다고」

끝없이 흐르는 땀이 그녀의 하얀 피부를 타고 내려갔다. 숨이 거칠어졌는데도 요시코쨩은 이쪽으로 한걸음 한걸음 거리를 좁혔다. 뒤에는 마루가 잊고간 책이 담긴 보자기를 짊어지고 있었다……마루를 위해 가져와 준거야?

「요시코쨩, 왜……」

「왜, 라니 걱정되서 찾으러 온게 당연하잖아. 즈라마루, 너는 좀 더 자신의 외모를 자각하라구. 너처럼 귀여운 여자애가 밤에 혼자 돌아 다니면 위험하니까」

「그게, 미안합니다」

반사적으로 꾸벅 고개를 숙이자 「뭐, 별로 사과할 필요는 없지만」하고, 살짝 주춤대며 어깨를 움츠리는 모습은 틀림없는 요시코쨩 그 자체로.

「자, 여기에 있어봤자 소용없으니까 돌아가자」

그렇게 말하며 마루에게 뻗어준 손의 따스함은 어쩔 수 없는 요시코쨩으로, 마루가 정말 좋아하는 요시코쨩 그 자체로……그래도, 그렇기 때문에, 마루는 요시코쨩의 상냥함을 받아서는 안 돼.

「……하나마루?」


그도 그럴게, 요시코쨩은 마루의 「정말 좋아」는 싫지?


「요시코쨩은, 마루가 있어서 귀찮았어?」

시간이 멈춘 것처럼, 맑은 보라색 눈동자가 굳어졌다.

닿은지 얼마 안된 그 따스함을 살짝 손에서 놓자, 마루의 손 끝은 조용히 차가워져 갔다.

「기뻤어. 요시코쨩이랑 함께 있을 수 있어서, 요시코쨩이랑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행복했어」

하지만, 그런 식으로 생각했었던건 역시 마루 뿐이였던걸까.

이런 말을 해도, 그거야말로 귀찮게 하는 짓이란 것을 알고 있는데도, 그런데도, 흘러넘치는 마음을 멈출 수 없어서.

「귀찮았, 구나. 처음에 마루가 권했을 때도 싫어하는 듯한 얼굴이었는걸. 요우상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훨씬 더 즐거워 보였고」

요시코쨩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마루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루를 지켜보고 있었다.

「마루는, 요우상처럼 근사한 것도 사랑스러운 것도 아니고, 그리고 남보다 배는 굼뜨지만……, 지금 요시코쨩이랑 있는 사람은 마루야?」

당신의 눈앞에 있는 사람은, 당신에게 사랑을 하는 쿠니키다 하나마루야.

그러니까, 부탁이야--


「――지금은, 지금만큼은, 마루만을 보아주세요」

 

살랑. 갑자기 느껴진, 샴푸와 땀냄새가 섞인 듯한 향기. 어딘가 그리움이 느껴지는 그 향기가 요시코쨩의 것이라는고 알기까지, 아주 조금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눈치채면 요시코쨩이, 허리에 팔을 감아 마루의 몸을 끌어안고 있었다. 아플 정도로 강하게 강하게, 끌어안고 있었다.

「요, 요시코쨔……」

「귀찮다고 생각했다면, 내가 먼저 말을 걸었을리가 없잖아」

즈라마루를 그런 식으로 생각할리 없잖아……요시코쨩의 한숨이 귓가를 간질였다. 조금 간지러웠지만, 신기하게도 마음이 놓였다.

 

「꿈을 꿨어」

「꿈?」

단념하듯이 심호흡을 하며, 요시코쨩은 작게 끄덕였다.

찻집에서 요시코쨩이 「아는 사람이 나오는 꿈을 꿨는데」라고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그렇게 말을 꺼냈던 것을 떠올렸다.

「그 꿈이라는게 하나마루랑, 키, 키스하는 꿈이었어」

뭐 키스라고는 해도 하기 직전에 깨어 버렸지만……변명하듯이 덧붙이는 요시코쨩의 얼굴을 올려다보자, 보석처럼 맑은 눈이 여기저기 헤매고 있었다.

「……요시코쨩, 왜 그런 꿈을 꾼거에유」

「그, 그래서 일부러 꿈의 이유를 물어본거잖아! 나도 이상한 꿈을 꿨다는 자각은 있으니까!」

뺨이 붉어지는 것을 숨기려 하지 않고 그렇게 외친 뒤, 한번 더 심호흡을 하고 귓가에 「미안」이라고, 단 한마디를 중얼거렸다. 허리에 둘러진 팔에 힘이 담겼다.


「싫어하는 듯이 보였다고 즈라마루가 말한 일도, 그런 꿈을 꾼 탓에 긴장하고 있어서라고 생각해. 요우상의 이야기만 해버린 것도 부끄러움을 감추려고 한거고……그러니까, 그, 미안」

이상한 오해시켜 버려서 미안, 이라고 몇번이나 요시코쨩이 사죄의 말을 반복했다.

감긴 팔이 천천히 떨어지자, 버팀목을 잃은 신체가 한 걸음 후퇴해 벤치 위로 착지했다.

올려다보자,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별들이 비춰주는 자수정빛 눈동자.


「요시코쨩 바보」

「뭣」

「바보, 바보바보바보바보바보, 바보」

별로 완력도 없는 주제에, 그렇게 말하며 옆에 앉은 요시코쨩의 어깨를 몇번이나 투닥투닥 두드리는 마루도, 분명 똑같은 바보다.

제멋대로 착각하고, 제멋대로 싫은 기분이 되고, 제멋대로 어딘가에 가버리고

「요시코쨩한테 미움 받은거라고 생각했어」

제멋대로, 안심해버려서.

「그러니까, 미안하니까」

쓴웃음을 지으며 요시코쨩은, 아이처럼 흐느껴 우는 마루를 한번 더 끌어안아주고. 울음을 그칠 때까지 마루를 쭉 쭉 껴안아줬다.

아, 마루는 정말로 바보네.
이렇게 요시코쨩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 행복을 느끼는 자신에 대해, 그런 것을 생각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마루가 울음을 그쳤을 무렵에는, 아까보다 훨씬 주변이 어둡고 조용해져 있었다.

마루가 진정한 것을 확인하고, 요시코쨩은 작게 숨을 내쉬며 감고 있던 손을 떼어 놓았다……벌써 가는 거야? 내는 좀 더 요시코쨩이랑 같이 있고 싶은데.

「요시코쨩. 있잖아, 꿈은 그 사람의 소망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대」

요시코쨩의 팔이 풀리는 쓸쓸함에, 머리에서 떠오른 말을 그대로 말하자, 그녀의 몸이 우뚝 멈추었다.

「꿈의 계속……안 할거야?」


 그녀가 침을 삼키는 소리마저 들려올 것 같은, 정적에 쌓인 여름밤.

 밤하늘의 별들은, 마루와 요시코쨩만을 비추고 있었다.

 동그랗게 뜨인 채, 이쪽을 응시하는 자수정빛 눈동자.

 바람에 나부끼며 흔들리는 칠흑색 머리카락.

 뺨을 간질이는 달콤한 한숨.

 돌연 요염한 입술이 희미하게 움직였다.


――하나마루, 정말로 괜찮아?


요시코쨩이라면 좋아……고개를 끄덕이자 이성이 어딘가로 멀어져 가는 것 같았다. 손목을 잡혀, 심장 고동이 거세져 가는 것을 스스로도 알 수 있었다.

왼손으로 빨갛게 물든 뺨을 살짝 어루만져져서, 나도 모르게 수줍어해버렸다.

천천히, 요시코쨩의 입술이 마루의 입술로 다가왔다.

입술과 입술이 닿을 때까지, 앞으로 수미리--


냐아, 하고 뜻밖의 소리가 밤의 세계에 울려퍼졌다.


「……………………」

「……………………」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천천히 울음 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았다.

「검은 고양이에유」

「검은 고양이네」

검은 고양이였다. 보름달처럼 동그스름한 황색 눈동자는 가만히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움직임을 멈춘 채 요시코쨩이랑 둘이서 똑같이 입다물고 응시하자, 냐아 하고 한 번 더 울고, 유유한 발걸음으로 우리들의 눈앞을 가로질러 갔다.

그 후에 남겨진 것은, 마루와 요시코쨩 둘뿐. 분위기나 무드 같은건 전부 검은 고양이가 가져가 버렸다.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갑자기 부끄러워져서, 둘 다 한 걸음 후퇴했다.

서로의 한숨 소리만 들리는, 길고 긴 침묵.

「저기, 있지, 하나마루」

그것을 깬 것은 마루의 이름을 부르는 요시코쨩의 목소리였다.

「그, 이제 막차는 가버렸고, 이래선 하나마루가 돌아갈 수 없잖아, 그래서 내일은 일요일이고, 그러니까……우리 집에서 자고 가지 않을래?」

띄엄띄엄 말을 잇는 요시코쨩의 얼굴은, 어두운 밤이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귀까지 새빨개져 있었다. 마루도 같은 정도로 새빨개져 있을까.

내밀어진 손에 마루의 손을 겹치자, 요시코쨩의 두근거림이 이쪽까지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보이는 것은 밤보다 깊은 칠흑의 머리카락.

 들리는 것은 둘만의 발소리.

 느껴지는 것은 연결된 당신 손의 따스함.

 세상에 있는 것은 오직 그것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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