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돼!!!!!!!!! "
어느날처럼 난 악몽을 꾼 채 잠에서 힘겹게 깨어났다.
" 아.. 또 과몰입하는 꿈이야.. "
속으로는 내심 기뻤지만, 난 이 꿈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 요즘 너무 외로운 탓인가.. "
상쾌한 아침햇살에 내 눈이 살짝 따가워진다.
고요한 적막감과 새 우는 소리만이 넓게 퍼질 그 무렵,
' 띠링! '
" 뭐지? 이시간에 디1코를 보낼사람은 없는데.. 아, 아침인사인가? 보나마나 쫀아 라고 왔겠지 뭐 "
나는 그래도 기대하며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하지만 그게 내 실책이었다.
" 뭐야..? "
내게 과몰입이라니, 하! 웃기지도 않는다.
난 아직 VRC를 시작한지 한달도 채 되지않은 뉴비이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최종 컨텐츠인 과몰입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 아.. 이런건 브갤에다 물어봐야겠다.. "
" 음.. 역시 갤러리에선 하지말라는 의견이 대부분이구나.. "
그때, 문득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한 사람이 있었다.
" 아.. 맞아..! 그분이 있었지..! "
내가 왜 이 생각을 못했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 띠리리링.. 띠리리링.. 덜컥 '
" 여보세요? "
" 어 베테랑유저님! 안녕하세요 저 저번에 도와주신 뉴비 178호인데요.. "
내가 전화를 건 것은 다름아닌 유니티와 블렌더 모두에 정통한 베테랑 유저였다.
" 그.. 제가 이번에 과몰입을 하자는 사람이 있어서, 갤러리에다가도 물어보고 했는데 다들 하지 말라는 의견이 많아서요.. "
베테랑 유저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3분정도 지났을 무렵, 베테랑 유저가 먼저 입을 열었다.
" 그 과몰입, 거절하세요. "
나는 조금 당황했다, 아무리 이사람이 날 도와준 고인물 유저긴 해도, 남의 과몰입을 딱 잘라 하지말라고 단언하다니..
" 네..? 아무리 그래도 이분은 진심으로 하는 말 같은데.. 단칼에 거절하긴 너무 어려울 거 같아요.. "
" 아니요, 거절하세요. "
" 지금 자기 일 아니라고 그렇게 막 얘기하는거에요?
이사람도 저 말 꺼내기 전까지 엄청 많은 생각을 했을거 아니에요!!! 어떻게 그렇게 사람 마음을 딱 잘라 거절하라고 말해요? "
" ..... "
베테랑 유저는 또 한동안 말이 없었다.
"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당신이 뉴비이기 때문입니다. "
하, 이게 또 무슨 헛소리람?
" 그게 무슨 소리죠? "
" 아닙니다, 당신의 결정을 존중하겠습니다. 다만, 과몰입을 수락한다면, 그 후 위험한 일이 생긴다면 절 불러주세요. "
과몰입을 하는 데 위험한 일이 생긴다니, 생각할 수록 어이가 없다. 이 사람, 이게임을 오래하다보니 정말 머리가 어떻게 된 것 같다.
" 하, 저번에 도와주신 건 정말 감사한데요, 그렇게 사람 마음 막대하는거 아닙니다. 전 그럼 가볼게요. "
" 행운을 빕니다. "
그의 인사를 들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였다. 난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나는 과몰입 제안을 승낙했다.
이제.. 나도 과몰입을 하게 되는 것이다..
드디어.. 나도 다른 친구들처럼 꽁냥꽁냥 댈 수 있는것이다!
아, 그전에 과몰입을 먼저 만나보는게 좋겠다.
띠링!
" 그.. 자기야, 우리 언제 만날까? "
자기야라니! 자기야! 저절로 웃음이 나오기 시작한다.
먼저 만나자고 얘기하다니, 스타트가 좋다.
" 우리 지금 만날까? ㅎㅎ "
" 응..♡ 좋아.. "
하트까지 붙인 걸 보아하니 스타트가 좋아도 너무나 좋다.
" 흐흐흐... "
나는 한껏 부푼 기대와 희망을 안고서 VRC에 접속했다.....
.......
........
..........
...........
................
내가 본 것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내 과몰입이, 내 첫 과몰입이..
퍼블릭 한국 튜토리얼 맵에서 엉덩이를 흔들고 있었다.
천박하게, 대담하게, 추잡스럽게..
저 어여쁜 아바타 안에는, 가슴털과 다리털 수북히 나있는..
건장한 남성이 들어있다는 게, 난 도저히,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내 머릿속에선 지금 그의 대한 상상도가 펼쳐지고 말았다.
난 충격에 말을 잇지 못하고, 그를 조용히 쳐다보기만 했다.
그렇게 한참 천박하게 엉덩이를 흔들어 댄 뒤,
그가 뒤에있던 나를 거울로 보고서 발견했다.
나는 힘겹게 입을 뗐다.
" 아.. 안녕 자기야.. "
" (걸걸한 아저씨 목소리) 안녕 자기야! 언제부터 거기있었어?↗ "
난 정말 충격을 금치 못했다.
내가 생각했던 그 걸걸한 아저씨의 이미지와,
지금 내 눈앞에 서있는 아름다운 미소녀와의 매치가 전혀 성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어머 우리 자기 왜그래? 완전히 얼어붙었네~ 잠깐 기다려봐 "
갑자기 내 과몰입이 나를 등지고서 옆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하나의 이세계로 통하는 포탈 이 열렸다.
나는 미심쩍긴 하지만,
이곳이 퍼블릭이기도 하고 사람도 많아서 다른 포탈을 연 거라고 생각하고 아무런 의심없이 포탈로 발을 들였다.
이동이 끝난 후 난 정신을 차렸다..
" 어라...? "
어디선가 많이 본 익숙한 풍경..
그리고 내 뒤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살기가 내 온몬을 소름돋게 만들었다.
" 우리 자기.. 그동안 혼자 있어서 어떻게 처리했을까~ "
이곳에서 도망쳐야 했다. 난 도망가야 했다.
도망을 가야만 했다.
애초에 포탈을 타지 않았더라면.. 포탈을.. 의심했다면.. 도망갔다면..
이런 애매한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 후훗, 우리 자기 또 얼었네~ 어디한번 내 엉덩이를 때리며
' 암캐년아! ' 라고 소리쳐봐! "
"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
난 소리를 질러댔다.
가여운 어린아이처럼, 나라잃은 위인처럼, 맹수앞에 놓인 먹이처럼, 나는, 소리를 질렀다.
머릿속에 베테랑 유저의 말이 시체위의 까마귀 처럼 맴돌았다.
행운을 빕...
과몰입은.. 거절..
당신이 뉴비...기..
위험한..일이생..긴다면.. 절.. 불러주세..
어..?
" 전능하신 베테랑이시여 영원한 보살핌으로 절 구원하소서 전능하신 베테랑이시여 영원한보살핌으로 절구원하소서 전능하신 베테랑이시여 영원한보살핌으로 절 구원하소서 전능하신베테랑이시여영원한보살핌으로절구원하소서전능하신베테랑이시여영원한보살핌으로절구원하소서전능하신.. "
쾅!
갑자기, H방의 문이 굉음을 내며 부서졌다.
" 크으윽!! 누가 내 H를 방해하는거야!! 난 분명 프랜드 온리로 방을 만들었는데!! "
그 연기 속에서, 베테랑 유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베테랑.. 유저님..? 여긴 어떻게...? "
" 그야, 뉴비님이 저와의 통화를 종료하지 않았으니까요. "
!!!!!!!!!!!!
그만, 잊고있었다.
난 베테랑 유저와의 통화를, 종료하지 않았다.
" 확실히, 과몰입을 시작하자마자 H방에 데려오다니, 참 몹쓸 과몰입이군요. 여기, 이 뉴비는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
" 미래의 새싹을, 이런곳에서 썩힐 수는 없죠. "
나는 눈에 눈물이 맺히는 걸 간신히 참아내고 얘기했다.
" 베테랑 유저님...! 이 사람.. 위험해요.. 퍼블릭에서까지.. 헐벗은 아바타로 엉덩이를 흔든다구요..!! "
그러자, 잔뜩 열받은 목소리의 내 과몰입이 입을 열었다.
" 넌 뭐야!!! 누군데 내 야1스를 방해하는거야!!! "
갑자기, 베테랑 유저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 베테랑 유저님..? "
문을 부셔서 생긴 연기와 먼지가 사라지고서, 서로의 모습이 이제 확실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화가 잔뜩 나있던 내 과몰입의 목소리가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 어라..? 주인님..? "
" .....? 무슨..? "
베테랑 유저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암..캐.. 년아... "
난 그자리에서 혼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