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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바보 좋아했던 사람의 노래를 찾았습니다.
글쓴이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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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글 주소
https://gall.dcinside.com/vr/5763763
  • 2026-06-19 12:11:01
  • 125.179
														

오래된 파일을 뒤지다가, 저는 그 사람의 노래를 발견했습니다.


정확히는 발견했다기보다, 거기 있었습니다.

제가 전에 믹싱해주었던 노래들의 목록 사이에요. 분류번호가 먼저 붙어 있었고, 그 뒤에 노래 제목이 있었고, 끝에는 그 사람의 이름이 붙어 있었습니다. 별 의미는 없겠지요. 파일은 원래 그렇게 정리되는 것이니까요. 번호가 붙고, 제목이 붙고, 이름이 붙습니다. 사람도 그렇게 정리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딱히 무언가를 찾고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오래된 폴더를 열고 있었고, 오래된 시간들이 이름순인지 날짜순인지 모를 방식으로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다 그 이름을 봤습니다.


바로 알아봤습니다.


한동안 마우스를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재생 버튼은 작고 평평했습니다. 누르면 소리가 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누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오래 망설였던 것 같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쪽을 고를 수 있었는데, 저는 결국 그러지 못했습니다.


입 안에서 짧게, 아,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놀람도 아니고 반가움도 아니고 후회도 아닌, 여러 감정이 한꺼번에 목구멍에 걸렸다가 제대로 된 문장이 되지 못한 소리였습니다.


처음 들린 것은 기타가 아니었습니다.


숨소리였습니다.


그 사람의 첫 숨이었습니다.

노래를 시작하기 전에 아주 짧게 들이마시는 숨. 방 안에서 녹음된 것 같은, 가까운 숨. 이어폰을 끼고 있어서 그런지 그 숨은 귀로 들어온다기보다 목 안쪽에 닿았습니다. 그리고 가슴 깊은 곳, 이름 붙이기 어려운 곳을 천천히 눌렀습니다.


저는 어두운 방에 앉아 있었습니다.

따뜻한 조명을 하나 켜두었고, 책상 위에는 럼과 콜라를 섞은 잔이 있었습니다. 얼음은 조금 녹아 있었습니다. 여름인데도 에어컨을 틀어두어서 방 안 공기는 찼습니다. 화면에는 에이블톤이 떠 있었습니다. 파형이 보였고, 트랙이 보였고, 제가 만졌던 흔적들이 보였습니다. 제가 그 사람의 목소리를 만졌던 흔적들이요.


노래는 시작되었습니다.


기타는 잘 치면서도 서툴렀습니다.

틀렸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박자가 크게 무너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줄을 누르는 손끝의 망설임 같은 것이 들렸습니다. 피크가 현을 긁는 소리, 손이 아주 조금 움직이는 소리, 방의 작은 공기까지요. 이상하게 그런 것들이 더 선명했습니다. 잘 만든 노래였다면 이렇게까지 아프지는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더 세련되고, 더 깨끗하고, 더 멀리 있는 노래였다면 저는 그냥 들을 수 있었겠지요.


그런데 그 소리는 너무 그 사람 같았습니다.


담담하게 저를 거절하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모질지는 않았고, 다정하다고 말하기에도 이상했던 얼굴.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사람의 목소리. 그래서 결국 더 깊이 찌르고 마는 태도. 그때도 그 사람은 아마 이런 식이었겠지요. 잘하면서도 서툴고,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고, 말하면서도 한 발 물러나 있는 사람.


저는 그 사람이 기타를 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손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손가락이 줄 위에 놓이고, 방 안에서 고개를 조금 숙이고, 숨을 고르고, 노래를 시작하는 모습. 실제로 본 적 없는 장면이 기억처럼 떠오르는 건 이상한 일입니다. 사람은 가끔 겪지 않은 일까지 그리워하나 봅니다.


그 사람의 목소리는 기억과 같았습니다.


낮고, 숨이 섞여 있었습니다.

자신 있게 부르는 사람의 목소리는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는 사람의 목소리였습니다. 가사 하나하나를 크게 밀어붙이지 않고, 자기 앞에 조용히 내려놓는 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도망갈 수 없었습니다. 과장된 감정은 외면할 수 있는데, 조심스러운 목소리는 외면하기 어렵습니다.


“가까운 듯 먼 그대여.”


거기서 무너졌습니다.


그 문장은 저를 향한 것이 아니었겠지요.

그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겠지요. 그 사람이 밤마다 떠올리던 누군가가 있었겠지요. 저는 그 사실을 압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주 짧은 순간, 그게 저였으면 했습니다. 그 문장이 저를 향해 놓였기를 바랐습니다. 그 바람이 너무 오래전 사람의 것이라서, 저는 부끄러워할 틈도 없이 그대로 맞았습니다.


저는 그 사람을 오래전에 좋아했습니다.


그때의 저는 미숙하고, 망가지고, 너덜너덜하고, 사랑을 고파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 앞에서는 말이 많아졌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늘어놓고, 별것 아닌 소식에도 오래 반응하고, 그 사람이 제게 작은 것을 공유해주면 그것을 하루 종일 손 안에 쥐고 있었습니다. 같이 놀던 장면은 아직도 이상하게 선명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저를 보며 웃어주던 얼굴은 이제 가물가물합니다. 남는 것은 늘 이런 식인가 봅니다. 붙잡고 싶은 것은 흐려지고, 놓아야 할 것은 선명해집니다.


저는 고백했고, 거절당했습니다.

그 마음은 끝난 것이 아니라 생활에 밀려 흐려졌습니다. 아침을 먹고, 일을 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고, 계절이 지나가고, 저는 그 이름을 부르지 않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렇게 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파일 하나가 남아 있었습니다.


분류번호와 노래 제목과 그 사람의 이름.

그 정도로 사람은 다시 돌아오나 봅니다. 대단한 사건도 필요 없었습니다. 오래된 폴더 하나, 재생 버튼 하나, 노래가 시작되기 전의 숨소리 하나면 충분했습니다.


지금 제 곁에는 다른 사랑이 있습니다.

그 사랑이 부족해서 이러는 것은 아닙니다. 이상하게도 그 사람은 이 방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사랑은 다른 방에 있었습니다. 닫힌 문 너머에, 조용한 그림자처럼요. 그래서 더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문을 열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는 이 방에 계속 앉아 있었습니다.


노래가 끝났습니다.


저는 다시 재생했습니다.


그리고 담배를 피웠습니다.

창문을 조금 열었는지, 열지 않았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에어컨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고, 술잔의 얼음은 더 작아져 있었습니다. 화면 속 파형은 처음으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이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을 다시 기다렸습니다. 기다린다는 사실이 싫었고,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아마 저는 아직도 그이를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아니, 이렇게 말하면 너무 단순해지겠지요.

저는 그 사람을 사랑했고, 그 사람을 사랑하던 저를 아직 버리지 못했고, 그 사람의 노래 속에 남아 있는 가능성을 아직 장례 치르지 못했습니다. 그 모든 것을 사랑이라고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파일을 지우지 못했고, 노래를 끄지 못했고, 첫 숨소리가 들릴 때마다 목 속이 조용히 무너졌습니다.


저는 머저리입니다.


그 말을 오래전에 저에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 사람 앞에서 말을 많이 하던 저에게. 작은 소식 하나를 사랑의 증거처럼 들고 있던 저에게. 거절당하고도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던 저에게. 그런데 오늘 밤 그 말을 들어야 하는 사람은 과거의 저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노래는 다시 끝났습니다.


저는 잠시 아무것도 누르지 않았습니다.

에이블톤 화면은 그대로 켜져 있었고, 그 사람의 이름은 파일명 끝에 붙어 있었습니다. 별 의미는 없겠지요. 번호와 제목과 이름. 그저 오래된 정리 방식일 뿐이겠지요.


그런데 저는 그 이름을 한참 동안 닫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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