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이미 망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걸 알고 있다.
모른 척했을 뿐이다.
손이 떨린다.
처음에는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다.
카페인을 너무 많이 마셔서, 잠을 못 자서, 밥을 제대로 안 먹어서.
그런 핑계를 하나씩 갖다 붙였다.
그런데 아니다.
내 몸은 지금 나한테 말하고 있다.
그만하라고.
이런 식으로 더는 못 간다고.
입으로 말하지 못하니까 손끝으로, 기침으로, 피의 맛으로 말하고 있다.
나는 그걸 계속 씹어삼켰다.
괜찮다.
괜찮을 것이다.
조금만 지나면 나아질 것이다.
내일은 다를 것이다.
개소리다.
내일은 그냥 오늘의 연장이다.
오늘 무너지지 않은 척한 만큼, 내일은 더 낮은 곳에서 시작한다.
나는 그걸 수도 없이 겪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이미 지쳐 있는 기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미 다 끝난 것 같은 기분.
가만히 있어도 안쪽에서 무언가가 계속 긁히는 느낌.
망상은 멈추지 않는다.
나는 내 머릿속에서 나를 감시한다.
내가 한 말, 하지 않은 말, 상대의 표정, 답장이 늦은 시간, 사라진 기척, 닫힌 문, 꺼진 불.
전부 증거가 된다.
전부 나를 향해 돌아온다.
나는 피고인이고, 검사고, 판사다.
그리고 매번 유죄다.
불안은 끝나지 않는다.
끝난 척할 뿐이다.
잠깐 조용해졌다고 해서 사라진 게 아니다.
그건 방 안 어딘가에 앉아 있다.
내가 숨을 고르는 동안에도 나를 보고 있다.
기침이 난다.
목구멍 안쪽에서 뜨겁고 비린 것이 올라온다.
피의 맛이 섞인다.
그 순간에도 나는 생각한다.
이 정도는 괜찮은가.
아직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닌가.
아직 남에게 말할 정도는 아닌가.
아직 내가 엄살을 부리는 것은 아닌가.
병신 같은 기준이다.
피 맛이 나는데도 나는 나를 의심한다.
손이 떨리는데도 나는 나를 의심한다.
잠을 못 자는데도, 혼자 있는 시간이 나를 안쪽부터 파먹는데도, 나는 끝까지 나를 의심한다.
나는 나에게 너무 잔인했다.
남에게는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누가 내 앞에서 이렇게 떨고 있었다면, 이렇게 기침하고 있었다면, 이렇게 잠을 못 자고 있었다면, 나는 괜찮다고 우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한테는 했다.
버티라고 했다.
참으라고 했다.
별일 아니라고 했다.
남들도 다 그렇다고 했다.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
망가질 것 같다.
이 문장은 협박이 아니다.
엄살도 아니다.
시도 아니다.
멋있으려고 고른 말도 아니다.
상태 보고다.
나는 지금 나를 잃어가고 있다.
손끝에서부터, 목구멍에서부터, 잠들지 못하는 밤에서부터, 혼자 남겨진 방의 공기에서부터.
나는 조금씩 헐거워지고 있다.
나사가 빠진 것처럼.
아니, 애초에 나사 같은 건 없었던 것처럼.
이젠 편해지고 싶다.
그 말조차 나는 오래 참았다.
편해지고 싶다는 말이 너무 위험하게 들릴까 봐.
너무 약하게 들릴까 봐.
누군가에게 부담이 될까 봐.
내가 정말 끝장난 사람처럼 보일까 봐.
하지만 지금은 안다.
편해지고 싶다는 건 사라지고 싶다는 말 이전에,
제발 이 떨림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제발 머릿속이 조용해졌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제발 기침할 때마다 휴지를 확인하지 않아도 됐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제발 밤이 오면 무너지지 않고 잠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나는 나에게 선언한다.
나는 괜찮지 않다.
나는 멀쩡하지 않다.
나는 지금 망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더는 깎아내리지 않겠다.
내 고통을 남의 고통과 비교하지 않겠다.
내 상태를 농담으로 만들지 않겠다.
내가 버틴 시간을 성실함으로 포장하지 않겠다.
망가지는 것을 견디는 일과 살아 있는 일을 착각하지 않겠다.
망가질 것 같다.
그러니까 이제는,
최소한 나만큼은
내가 망가지고 있다는 말을 믿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