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다.
나는 아픈정신을 면죄부처럼 내거는 태도가 싫다.
몹시도 싫다.
제 상흔을 증표 삼아
타인의 살결과 정신을 함부로 헤집는 버릇이 싫고
사랑을 감당할 역량은 끝내 갖추지 못한 채
사랑의 형식과 열광과 구원만을 탐하는 모양이 싫다.
스스로의 균열을 돌보지 않은 채
그 금 간 손으로
기어이 누군가의 일상과 수면과 양심을 붙잡아 뜯어내는 광경이 보기 싫다.
몸을 해칠 듯 구는 위태로움으로
상대의 연민을 호출하며
죽음을 암시하는 말 몇 마디로
사람의 충정과 책임감을 결박하는
그 같잖은 방식이
눈물과 침묵과 발작적인 애정으로
한 사람의 하루를 오래오래
소진시키는 방식이 나는 싫다.
세상에는 저마다의 결핍이 있다.
권력의 정상에 선 자에게도
학식과 자격을 지닌 자에게도
법을 말하는 자에게도
마천루를 거느린 자에게도
끝내 남에게 말하지 못한
흉터 하나쯤은 있을 법하다.
그러나 상처가 곧 성역은 아니다.
고통은 이해의 대상일 수 있으되
무례와 파괴의 면허가 될 수는 없다.
무너졌다는 사실이
타인을 같이 무너뜨릴 권리가 되지는 않으며,
외롭다는 사정이
남의 애정을 인질로 붙들 자격이 되지는 않는다.
나는 유독 그 대목이 싫다.
자신이 아프다는 이유로
타인의 선의를 끝없이 시험하고자 하는 것
떠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떠남을 입에 올려 사람을 겁주고자 하는 것
제 불안을 다스리지 못해
상대의 세계를 감옥으로 만드는 것.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정교한 소모이며,
연민이라는 연료를 태워
타인의 생기를 조금씩 말려 죽이는 습관에 가깝다.
사랑은
내가 부서졌으니
너도 함께 부서지자는 서약이 아니다.
내 밤이 어두우니
네 낮까지 꺼뜨리겠다는 협박은 더더욱 아니다.
사랑은 본디
한 사람을 소유하려는 욕망 이전에
한 사람을 보존하려는 마음이다.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약속이다.
정말로 사랑한다면
적어도 사랑하는 사람의 식사는 망치지 말아야 하고,
그 사람의 노동과 잠과 내일을
제 감정의 제물로 바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애정이 아니라 통제를 원하고,
이해가 아니라 굴복을 원하며,
포용이 아니라 포획을 노래한다.
그리하여 제 상처를 돌보는 대신
그 상처를 칼집에서 반쯤 뽑아
늘 가장 가까운 사람의 목덜미에 들이민다.
나는 그런 태도가 싫다.
아픈 사람을 혐오하는 것이 아니다.
아픔을 교묘한 윤리적 우위로 바꾸어
남의 등을 타고 서려는 비겁함을 혐오하는 것이다.
고통은 숭고하지 않다.
고통은 그저 고통일 뿐이다.
그러므로 치료와 거리와 절제가 필요한 것이지,
찬미와 방임과 면죄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끝내
자기 연민을 사랑으로 오인하고
집착을 순정으로 분장하며
파괴를 진심이라 우겨대는 얼굴들을 보면
나는 문득 인간의 비애가 아니라
인간의 천박함을 본다.
자신은 늘 상처받은 주인공이어야 하고,
곁의 사람은 늘 이해해야 하는 조연이어야 하며,
관계의 파국조차 끝내
제 서사의 한 장면으로 소비해버리는
그 끔찍한 오만.
나는 그것이 싫다.
몹시도, 오래도록, 진저리나게 싫다.
상처는 변명이 아니다.
불안은 면허가 아니다.
외로움은 협박의 문법이 아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내 고통의 쓰레기장으로 끌고 들어가는
일이 아니라
적어도 내 어둠이 그 사람의 폐까지 검게 물들이지
않도록
이를 악물고 물러서는 일에 가깝다.
그 최소한도 하지 못하면서
사랑을 말하고 진심을 말하고 운명을 말하는 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더 이상 비극을 본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저,
염병할 자기연민으로 남의 인생까지 처먹는
추한 짐승새끼들을 보는 기분이 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