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누구한테도 안 했는데
VRChat 오래 한 사람은 알 텐데
사람이랑 친해지는 데는 몇 시간도 안 걸린다.
근데 잊는 데는 몇 년이 걸린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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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건 퍼블릭이었다.
평범한 잡담 월드.
나는 구석에서 친구랑 떠들고 있었고.
걔는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검은 머리에 흰 셔츠 아바타.
그냥 흔한 아바타였는데 이상하게 기억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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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말을 건 건 걔였다.
"마이크 괜찮아요?"
진짜 별거 아닌 말.
근데 그걸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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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매일 같이 놀았다.
사진도 찍고.
공포맵도 가고.
새벽까지 디코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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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접속하면 제일 먼저 걔를 찾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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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은 말했다.
"너네 과몰입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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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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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데."
"미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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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진짜 아니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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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어느 날.
걔가 한 사람을 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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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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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아바타.
목소리도 예뻤다.
성격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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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이 같이 다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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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상하게.
기분이 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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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단둘이 있으면 신경 쓰였고.
둘이 사진 찍으면 괜히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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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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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걔 좋아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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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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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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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친구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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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왜 질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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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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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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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더 혼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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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여자한테 별 관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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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걔가 그 여자랑 웃고 있으면
이상하게 가슴이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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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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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계속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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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걔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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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할 말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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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 듣고 이상하게 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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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웃으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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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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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웃으며 축하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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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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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축하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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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그날 밤.
혼자 Home 월드에 앉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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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안 쉬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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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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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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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너무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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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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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잃은 건
그 여자와의 가능성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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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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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
몇 달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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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여자를 질투한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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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바라보는 방향이
내가 아니라는 걸 질투한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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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미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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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과몰입을 시작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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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점점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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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처럼 셋이 놀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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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부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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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목록을 보면
둘은 항상 같은 인스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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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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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1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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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느 날.
초대장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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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Chat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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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 같은 이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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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걔는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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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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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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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가면 후회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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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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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예식장 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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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잔뜩 모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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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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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맨 뒤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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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례가 말하고.
사람들이 웃고.
박수치고.
사진 찍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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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평화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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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나는 단 한 마디도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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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걔만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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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웃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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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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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잡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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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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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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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바라던 장면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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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그 옆자리는
내 자리가 아니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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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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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축하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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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축하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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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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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행복하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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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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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행복 속에 내가 없다는 사실이
조금 아플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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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촬영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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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서 있고.
사람들이 차례대로 옆에 가서 사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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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차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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걔가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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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웃었다.
"행복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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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만 남기고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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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마지막이었다.
지금도 가끔 그 사진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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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말한다.
좋은 추억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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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좋은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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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사진 속 나는 웃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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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나는
한 사람을 보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끝까지 몰랐다.
내가 축하해 준 결혼식이 아니라.
포기한 사랑의 장례식이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