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앨런 튜링 (Alan Mathison Turing)
출생: 1912년 6월 23일 (영국 런던 마이다 베일)
사망: 1954년 6월 7일 (영국 체셔 윌름슬로, 향년 41세)
국적: 영국
직업: 수학자, 컴퓨터 과학자, 논리학자, 암호 해독가, 생물학자
주요 일대기
1. 천재적인 유년기
어릴 때부터 수학과 과학에서 압도적인 재능을 보였어. 10대 때 이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완벽하게 이해했을 정도였지. 하지만 당시 영국의 보수적인 교육 시스템체계에서는 정해진 인문학 과목보다 수학에만 몰두하는 튜링을 그리 좋게 보지는 않았다고 해.
2. 컴퓨터의 개념을 만들다 (20대)
케임브리지 대학교 킹스 칼리지에 입학한 후, 1936년에 **'튜링 머신'**이라는 개념을 담은 논문을 발표해. 이건 "기계적 절차에 따라 계산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기계가 처리할 수 있다"는 현대 컴퓨터의 논리적인 기초가 됐어. 사실상 이때 현대 소프트웨어와 알고리즘의 원형이 탄생한 거야.
3.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 (30대)
전쟁이 터지자 영국 정부의 암호 해독 본부인 **블레츨리 파크(Bletchley Park)**에서 일하게 돼. 여기서 독일군이 절대 못 푼다던 암호기 '엔니그마'를 깨기 위해 **'봄브(Bombe)'**라는 거대한 기계를 만들어. 이 덕분에 연합군은 독일의 작전을 미리 읽을 수 있었고, 전쟁을 최소 2년이나 단축시켰다는 평가를 받아.
4. 인공지능과 비극적인 말년
전쟁이 끝난 후에는 초기 컴퓨터 개발에 참여하고, 기계가 지능을 가졌는지 판단하는 **'튜링 테스트'**를 제안하며 인공지능(AI)의 선구자가 됐어. 하지만 1952년, 당시 영국에서 범죄로 취급받던 동성애 혐의로 기소되면서 인생이 꼬이기 시작해.
감옥에 가는 대신 **'화학적 거세'**를 선택한 그는 호르몬 주입 부작용으로 몸과 마음이 망가졌고, 결국 1954년에 청산가리를 넣은 사과를 먹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돼.
5. 뒤늦은 사과와 복권
그의 업적은 국가 보안이라는 이유로 수십 년간 비밀에 부쳐졌다가 뒤늦게 세상에 알려졌어. 2013년이 되어서야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그를 사후 사면했고, 현재는 영국의 50파운드 지폐 모델이 될 정도로 국가적인 영웅으로 대접받고 있어.
1. 조안 클라크랑 약혼함 (ㄹㅇ임)
이 형님, 암호 해독하던 시절에 같이 일하던 조안 클라크라는 눈나한테 직접 청혼해서 약혼까지 했음. 단순히 위장 결혼 하려고 한 게 아니라, 둘이 지적으로 존나 잘 맞아서 튜링이 진심으로 좋아했다고 함.
2. "나 사실 남자도 좋아함" 고백
약혼하고 나서 튜링이 양심 가책 느꼈는지 조안한테 "나 사실 남성적인 성향(homosexual tendencies)이 있다"라고 커밍아웃함. 근데 여기서 조안 눈나가 "ㅇㅇ 상관없음" 시전함. 쿨내 진동 실화냐?
3. 결국 파혼, 그리고 비극
근데 튜링 본인이 생각하기에 이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결국 본인이 파혼 선언함. 그 뒤로는 남자들을 주로 만나긴 했는데, 학계에서는 튜링이 성별보다는 **'지적으로 통하는 사람'**한테 끌리는 양성애자 혹은 사피오섹슈얼에 가까웠다고 보는 시각도 많음.
4. 엔딩은 화학적 거세...
그러다 나중에 아놀드 머레이라는 남자랑 엮였다가 그 당시 영국의 미개한 법 때문에 '중죄 취급' 받고 화학적 거세 당함. 나라 구한 천재 영웅인데 국가가 앞장서서 호르몬제로 몸 망쳐놓은 거임. 결국 우리가 아는 그 '독사과' 엔딩으로 끝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