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이 깊어지면 부엌 시계가 제법 큰 소리를 낸다. 전기주전자가 끓기 직전 내는 얕은 숨, 냉장고 안쪽에서 얼음이 부스러지는 소리, 창틀에 기대어 있던 공기가 방향을 바꾸는 감각. 이런 사소한 것들을 듣고, 듣는 자신을 알아차릴 때 나는 종종 생각한다. 인간을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조건이 뭐였더라. 주민등록증이나 지문 같은 건 어쩐지 증명이라기보다 표식에 가깝다. 표식을 쉽게 복제되지만, 조건은 매일 갱신된다.
첫째로, 인간은 쓸모없는 것을 기르는 존재다. 지난여름 해변에서 주운 작은 조개껍데기, 버스표 뒤에 적어 둔 이름 모를 카페의 전화번호, 쓸 일 없는 여분의 열쇠. 대부분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고, 종종 사라져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들을 서랍 맨 뒤에 넣어두고, 이사 갈 때마다 함께 옮긴다. 물건을 옮긴다기보다 시간의 질감을 옮기는 일. 무용한 것을 기르는 사람은 대개 타인의 무용함도 견딘다. 효율만으로는 사람을 사람이라 부르기 어렵다.
둘째로, 인간은 멈출 수 있다. 더 빠른 길이 있는데도 굳이 골목을 돈다든가, 계단 앞에서 잠깐 서서 주머니를 뒤적인다든가. 이유가 뚜렷하지 않은 정지의 순간들. 그 정지 속에서 우리는 자신과 타인을 분리해서 본다. 나와 너의 템포가 다름을 인정하는 일. 멈추지 못하는 존재는 결국 흘러가는 것에 휩쓸려 형태를 잃는다. 멈춤은 인간의 최소한의 브레이크고, 그 브레이크는 타인에게도 걸 수 있다. “오늘은 여기까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대체로 내일을 남겨둔다.
셋째로, 이름을 붙인다. 길고양이를 “고양이”라고만 부르다가도 어느 날 “코코”라고 불러본다. 그 순간 세계에는 미세한 주름이 생긴다. 부르는 것만으로도 존재의 윤곽이 선명해진다. 이름은 소유가 아니라 초대에 가깝다. “여기에 있어도 좋아.” 인간은 자신이 부른 이름들로 자신을 둘러싼다. 그리고 그 이름들에 책임을 조금씩 진다. 이름을 지우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그래서 인간이다.
넷째로, 실패의 자리를 비워둔다. 식탁에 늘 빈 의자를 하나 둔다든지, 계획표 한 칸을 일부러 비워둔다든지. 들어올 실수를 위한 공간, 예상치 못한 타인을 위한 여백. 꽉 채운 삶은 보기에는 단단하지만, 충격에 취약하다. 여백이 있는 삶은 휘어지고 복구된다. 우리는 그 여백에서 서로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들어오려는 사람이 있으면 의자를 당겨준다. 들어오지 않으려는 사람에겐 문턱을 낮춰둔다.
다섯째로, 작은 장례를 치른다. 마트에서 산 화분이 겨울을 넘기지 못했을 때, 잘 쓰던 만년필이 끝내 잉크를 먹지 않을 때, 우리는 잠깐의 침묵을 두고, 어디에 둘지 정한다. 버린다기보다 보내는 일이다. 보내는 일에는 예의가 필요하다. 예의를 가진 존재는 시간이 흐를 방향을 안다. 인간은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견디기 위해 장례를 치른다.
여섯째로, 외로움을 설명서처럼 다룬다. 한밤중 라디오의 희미한 잡음, 눈금 없는 온도계, 혼자 먹는 국수 한 그릇. 외로움은 감정이라기보다 환경에 가깝다. 날씨처럼 오고 가고, 다루는 법을 배우면 덜 다친다. 외로움을 타인에게 던져 해소하려 하지 않고, 잠시 등을 기대는 정도로 조절할 때, 우리는 서로를 덜 해친다. 외로움을 견디는 법을 아는 사람은 관계를 끌어당기는 대신 붙잡아 두지 않는다. 붙잡지 않으면 흩어질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관계가 오래 간다.
일곱째로, 패배하는 방식을 안다. 크게 이기려다 크게 무너지는 대신, 깨끗하게 한 발 물러난다. 어제의 자존심을 오늘의 평온과 바꿔치기하는 기술. 패배를 인정하는 사람만이 다음 장면을 준비한다. 승리만이 목적이라면 방법은 거칠어지고, 거칠어진 방법은 결국 자신을 갈아 넣는다. 인간은 스스로를 소모품 취급하지 않을 때 인간다워진다.
여덟째로, 약속을 미루되 잊지 않는다. 내일 뛰겠다는 말을 오늘 못 지키면, 내일 아침 열 발자국이라도 뛴다. 미루는 건 인간의 습성이고, 잊지 않는 건 인간의 윤리다. 두 가지를 동시에 붙들고 가는 사람은 자신을 서서히 믿게 된다. 믿음은 대단한 신념이 아니라, 약간의 반복에서 시작된다.
여기까지 적고 나니, 이것들이 조건이라기보다 징후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을 인간이라 부르게 하는 건 명확한 자격요건이 아니라, 하루를 통과하는 작은 태도들의 합. 주전자가 끓기 직전의 미세한 떨림을 듣고, 이름 없는 것에 이름을 한 번 붙여보고, 오늘의 장례를 짧게 치르고, 내일을 위해 한 칸을 비워두는 버릇. 그런 것들.
어쩌면 인간을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지는 타인이 아니라 스스로가 먼저 안다. 밤의 부엌에서, 끓는 물을 컵에 붓고, 김이 올라가 사라질 때, 우리는 문득 자신을 확인한다. 오늘 조금 멈출 줄 알았고, 조금 비워둘 줄 알았고, 조금 보내줄 줄 알았다면, 충분히 인간이었다. 조건은 엄격하지 않다. 대신 자주 갱신된다. 매일의 작은 증명을 통해.
문을 닫고 방으로 돌아오며 나는 언제나처럼 불을 하나만 켠다. 방은 반쯤 어두워지고, 어둠은 반쯤 방이 된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나는 내 이름을 작게 불러본다. 대답이 들리면, 오늘도 조건은 충족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