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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아침
글쓴이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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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글 주소
https://gall.dcinside.com/vr/5005408
  • 2025-09-09 22:2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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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을 뜬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밤이 끝났는지, 아니면 아직 남아 있는지 가늠하려는 습관 같은 것이다. 천장의 모서리는 어제와 같은 각도를 유지하고, 커튼은 창틀에 걸린 바람의 무게만큼만 흔들린다. 이불은 얇은 바다처럼 내 몸을 붙잡고, 나는 그 바다를 헤엄쳐 나가기 귀찮아한다. 아침의 무력감은 대체로 그렇게 시작된다. 누군가가 미리 깔아 둔 투명한 담요에 조용히 덮이는 방식으로.

몸을 일으키면 시계가 숫자를 보여준다. 그 숫자는 정확하다. 문제는 내 쪽이다. 나는 그 정확함을 믿고 싶지 않을 때가 많다. 어제 쌓아 둔 할 일 목록이 칠판의 분필가루처럼 희미하게 떠오른다.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 하지만 낭만이 필요한 건 보통 밤이지, 아침이 아니다. 아침엔 단단한 것, 예컨대 뜨거운 물이나 구워진 빵, 그리고 기계적으로 눌리는 스위치 같은 것이 필요하다. 나는 그 사실을 알지만, 손가락은 스위치를 향해 움직이지 않는다. 손가락도 나름의 사정이 있는 모양이다.

주방으로 가는 동안 바닥은 천천히 차가워지고, 냉장고의 낮은 윙— 소리가 집의 심장처럼 들린다. 전기포트를 채우고 버튼을 누른다. 물이 끓는 동안, 나는 싱크대에 기대 선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세로 서 있는 건 의외로 에너지가 든다. 무력감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능력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다. 이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체감은 다르다. 전자는 선택이고, 후자는 조건이다. 선택은 때때로 우리를 가볍게 만들고, 조건은 변함없이 우리를 무겁게 한다.

드립 필터를 접어 홀더에 끼운다. 종이의 얇은 주름들이 아침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첫 물줄기를 가늘게 떨어뜨리면 커피 가루가 숨을 쉰다. 작고 검은 입자들이 부풀었다가 가라앉는다. 나는 그 장면을 볼 때마다 마음 한쪽이 복구되는 것을 느낀다. 복구는 완치가 아니다. 그저 작동 가능 상태로 되돌린다는 뜻이다. 아침엔 그 정도면 충분하다.

창밖에서 쓰레기 수거차의 후진 경고음이 들린다. 길 건너 편의점이 문을 열고, 골목의 고양이가 늘 하던 길로 움직인다. 세상은 내가 뒤처졌다는 사실을 모른 채, 제시간에 도착한다. 가끔은 그게 위로가 된다. 세상이 나를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나는 세상을 기다릴 필요도 없다. 그냥 합류하면 된다. 다만 합류까지 가는 그 몇 걸음이, 오늘은 유난히 가파르다.

커피가 준비되면 머그컵의 열이 손바닥으로 전해진다. 그 온도는 교섭 가능하다. “조금만 더 버텨봐,” 하고 말하면 진짜로 조금 더 버틴다. 온도는 마음보다 솔직하고, 솔직한 것들은 종종 우리를 구한다. 나는 한 모금 마시고 눈을 감는다. 거의 아무 맛도 나지 않는다. 입안에 남는 것은 ‘어제의 흔적’과 ‘오늘의 시작’ 사이 어딘가의 미지근함이다. 그 미지근함이 싫지만, 전혀 못 마실 정도는 아니다. 세상에는 그런 것들이 많다. 싫지만 가능한 것들. 아침의 무력감도 그 분류에 든다.

책상 앞에 앉아 노트를 연다. 왼쪽 페이지에는 어젯밤에 적어 둔 문장이 있다.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보다 가볍기를.” 별 무게도 없는 문장이다. 그러나 그 가벼움이 필요할 때가 있다. 아침은 그런 문장을 허리춤에 차고 출근하는 시간대다. 나는 볼펜을 잡고 오른쪽 페이지에 날짜를 적는다. 숫자는 잘 써진다. 숫자는 늘 착하다. 감정의 영향권 밖에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나는 숫자를 조금 더 적어 본다. 물의 온도, 커피의 양, 수면 시간, 창문 틈으로 들어온 바람의 방향. 무력감은 때때로 작은 데이터로 느슨해진다. 아주 잠깐이지만.

운동화를 꺼내다 말고 멈춘다. 달리기는, 몸이 마음을 끌고 가는 드문 장르다. 하지만 오늘은 신발끈까지 손이 닿지 않는다. 괜찮다. 달리지 않는 날이 달리는 날을 망치는 건 아니다. 다만 어떤 날은 달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조금 길게 기억할 뿐이다. 기억이 길어진다고 해서 반드시 나쁜 건 아니다. 길어진 기억은 흐릿해지는 법을 늦춘다. 그렇다고 선명해지는 것도 아니지만.

샤워실로 가는 길에 우편함에서 광고 전단 몇 장을 꺼낸다. ‘할인’, ‘신규’, ‘지금 전화’. 그 단어들은 아침의 무력감 앞에서 효력이 없다. 물을 틀면 헤드에서 일정한 리듬으로 소리가 떨어진다. 물줄기는 생각보다 훌륭한 음악가다. 변주가 없다는 점에서. 변주가 없는 반복은 우리를 지치게도, 안정시키기도 한다. 오늘은 다행히 후자다. 물소리를 들으며 어제의 잔여감을 조금씩 씻어낸다. 다 씻겨 내려가는 건 아니다. 다 내려가야 할 필요도 없다. 인간은 잔여물로 살아간다. 잔여물이 없는 하루는 오히려 낯설고, 때로 위험하다.

거울 속의 나는 밤 사이에 별로 변하지 않았다. 눈 밑 그늘이 약간 더 넓어졌고, 머리카락 몇 올이 제멋대로다. 괜찮다. 대개 용납 가능한 범위다. 용납 가능한 범위를 조금씩 넓히는 게 어른이 된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아침의 무력감은 일종의 측정 도구다. 오늘의 내가 어디까지 용납할 수 있는지를 재는 간이 자. 숫자는 없지만, 대략의 눈금은 있다.

옷을 입고, 지갑과 열쇠를 주머니에 넣는다. 문 앞에서 한 번 더 멈춘다. 멈추는 데도 절차가 있다. 하품을 하고, 창문을 확인하고, 커피잔을 싱크대에 옮긴다. 그 작은 절차들 속에서, 아침의 무력감은 아주 조금씩 묽어진다.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사라지지 않아도 괜찮다. 어떤 무게는 들고 나가야만 바깥 공기와 섞이며 가벼워진다. 집 안에서는 영원히 무거운 것들도, 거리로 나오면 보행 속도에 맞춰 질량을 조절한다. 과학적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삶은 그런 식으로 설명을 피한다.

문을 열면 냄새가 바뀐다. 복도의 먼 냄새, 계단참의 고무 매트, 누군가의 아침식사에서 흘러나온 토스트의 가장자리 냄새. 도시의 오전은 대체로 타협의 냄새다. 나는 계단을 내려가며 한 계단씩 발을 맞춘다. 그 리듬이 오늘 첫 번째 음악이 된다. 문득, 오늘 해야 할 일 목록이 머릿속에 다시 떠오른다. 오래된 영화의 자막처럼, 한 줄씩 올라온다. 나는 자막을 다 읽지 않기로 한다. 필요한 장면이 오면 그때 읽어도 늦지 않다.

현관을 나서면 빛이 있다. 대단한 빛은 아니다. 구름 사이를 뚫고 나오는 종류도 아니고, 누군가의 삶을 통째로 바꾸는 종류는 더더욱 아니다. 그저 내 얼굴을 알아볼 만큼의 빛. 그 정도면 충분하다. 나는 숨을 들이마시고, 내쉰다. 공기는 아직 차갑고, 그 차가움은 진실하다. 진실한 것은 대개 단순하다. 단순함은 때로 무력감을 밀어낸다. 아주 조금씩.

아침의 무력감은 없어지지 않는다. 다만 이름을 바꾸며 이동한다. 어떤 날은 피곤이라고 불리고, 어떤 날은 공백, 어떤 날은 휴식, 드물게는 평화. 나는 그 이동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받아들임은 포기가 아니다. 그냥 그늘에 의자를 놓고 앉는 일과 비슷하다. 앉아 있으면, 일어설 때가 온다. 그게 언제인지 정해져 있진 않지만, 대체로 온다. 나는 그 ‘대체로’를 믿는다.

그래서 나는 걸어간다. 아주 느리게라도. 첫 모퉁이를 돌 때쯤이면, 집에 두고 온 무력감의 일부가 뒤에서 손을 흔든다. 남겨 둔 것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다 남기면 돌아오고 싶어질 테고, 다 들고 나오면 금세 지칠 것이다. 아침은 그 사이를 찾는 기술이다. 오늘의 나는 그 기술을 60점쯤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 같다. 60점이면 나쁘지 않다. 합격선은 늘 고정되어 있지 않으니까.

그리고 나는 스스로에게 짧게 중얼거린다. “괜찮아.” 그 한 마디가 커다란 변화를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변화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아침엔 요구하지 않는 말이 좋다. 요구하지 않는 말은 오래 간다. 오래 가는 것들은 대체로 우리를 살아 있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나는 살아 있다. 무력감과 함께, 혹은 무력감 덕분에.
ㅇㅇ 모닝 - dc App 2025.09.09 22:27:15
ㅇㅇ :) 2025.09.09 22:27:26
ㅇㅇ 2025.09.09 22:27:50
백약지장 안녕~ 2025.09.09 22:3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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