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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창작 잘 대주는 옆집 누나
글쓴이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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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글 주소
https://gall.dcinside.com/vr/4967355
  • 2025-08-27 09:3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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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막차가 끊기기 직전의 동네 술집은 언제나 같은 냄새가 난다. 조리대에서 튀어나온 기름, 식초에 절인 양파, 젖은 우산에서 떨어진 빗물.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23:47. 벽시계의 초침이 바닥을 긁는 소리를 나는 처음으로 들었다. 분명 예전에도 있었을 텐데 그날 따라 귀에 붙었다.


지연 누나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었다. 옆집이었다. 같은 복도, 한 칸 건너. 이웃이라고 부르기엔 서로 아는 게 너무 없었고, 모른다고 하기엔 초인종 소리와 낮게 흘러나오던 라디오 취향만큼은 익숙했다. 누나는 매번 같은 맥주를 시켰고, 난 주머니 사정에 따라 소주와 맥주 사이를 왔다갔다 했다.


우린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았다. 방충망 고치는 법, 계단참에 버려진 녹슨 자전거 얘기, 새벽마다 돌아다니는 검은 고양이 얘기. 그 정도. 술이 한 병 반쯤 들어가자 누나는 종이컵을 손가락으로 굴리며 말했다.


“대현, 나는 네가 줄곧 성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성실은 재능이거든.”


“그럼 누나는요?”


“나는 잘 떠다니는 쪽.”


누나는 그렇게 말하고 웃었다. 둥근 어깨가 가볍게 들썩였다. 어떤 밤들은 가벼운 대화가 계단처럼 이어진다. 가만히 발을 올려보면 그게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다. 그날 밤이 그랬다.


술자리가 끝났을 때 우리는 같은 방향으로 걸었다. 복도의 센서등이 하나씩 켜졌다가 꺼졌다. 내 문 앞에서 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누나는 아무 말 없이 손을 내밀었다. 그 동작이 신호라는 것도, 누군가의 방으로 들어가는 걸 그렇게 간단하게 결정할 수 있다는 것도 그날 처음 알았다.


무엇을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겠다. 서로가 한 번씩 멈추어 서서 상대의 숨을 확인했고, 창문 밖 도로 위의 택시 두 대가 서로 비켜가는 동안 우리는 서로에게 기울었다. 불빛은 침대 위까지 닿지 않았다. 우리가 한 일보다, 하지는 않은 말들이 더 오래 남았다. 기본적인 것들, ‘괜찮아?’, ‘이제 잘까?’ 같은 말들이 그 밤의 거의 전부였다.


잠은 깊지 않았다. 새벽 네 시쯤, 누나가 부엌에서 물을 마시는 소리가 났다. 돌아누우려다 나는 그냥 눈을 감았다. 누나가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왔을 때, 차갑던 발끝이 내 종아리를 스쳤다. 나는 그 온도를 오래 기억하게 될 거라고, 그때는 몰랐다.


2


우리는 특별히 약속하지 않았지만 며칠에 한 번씩 같은 방에서 밤을 보냈다. 낮에는 각자의 생활이 있었다. 나는 오후 강의를 듣고,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누나는 어디 다니는지 뚜렷하게 말한 적이 없다. 때로 집에서 일을 하는 것 같았고, 때로 오후 늦게까지 나갔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택배 상자가 간간이 복도에 쌓이는 것을 빼고는 생활의 흔적이 적었다.


만남의 방식은 대체로 비슷했다. 저녁 무렵 누나가 “라면 있어?” 하고 문자를 보내면, 나는 냄비에 물을 올렸다. 대파를 어슷하게 썰고, 계란을 하나 풀어넣었다. 누나는 올 때마다 자기 집에서 그릇을 하나 가져왔다. 이유는 묻지 않았다. 설거지할 때 그릇의 바닥을 보면 작은 흠이 있었다. 흠집은 일정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걸 ‘달의 바닥’이라고 혼자 부르기로 했다.


밥을 먹고 TV를 켰다. 드라마는 대개 중간부터 보기 시작해도 따라가기 쉬웠다. 사람들은 결국 비슷한 위로를 반복했다. 광고가 나오는 동안 누나는 볼륨을 낮추고 창문을 조금 열어 환기를 했다. 나는 그 사이 식탁에 손목을 올리고, 손등을 ‘달의 바닥’ 옆에 뉘어놓았다. 누나는 그걸 알아채지 못했다.


밤이 깊으면 나는 가끔 깬다. 부엌에 가서 물을 마신다. 그때 누나의 발끝이 내 종아리를 스치던 첫날 밤을 생각한다. 온도는 기억보다 오래 남는다. 물을 마시고 돌아오면, 누나는 잠결에 내 쪽으로 몸을 모은다. 그 움직임은 설명할 수 없지만, 반복된다. 반복은 안정을 만든다. 우리는 그 안정 위에 새로워질 준비를 한다.


12


눈이 왔다. 아침에 커튼을 젖히자, 건너편 주택의 지붕이 하얗게 덮여 있었다. 우리는 장갑을 끼고 밖으로 나갔다. 발자국이 쌓였다. 누나는 손바닥으로 눈을 떠서 나의 어깨에 올렸다. 나는 웃으며 그 눈을 털어냈다. 드물게, 나는 목소리를 조금 높여 노래를 불렀다. 누나는 따라했다. 가사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었고, 그래서 그 노래는 우리에게만 맞는 노래가 됐다.


돌아오는 길에 길냥이가 우리를 따라왔다. 누나는 허리를 굽혀 고양이의 등줄기를 한 번 쓸었다. 고양이는 잠깐 몸을 굽혔다가, 금방 다른 골목으로 사라졌다. 우리는 고양이에게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사라지는 것들에게 함부로 이름을 붙이면, 그 이름은 오래 남고 우리가 고통받는다. 대신 우리는 고양이의 꼬리 흔들림을 기억하기로 했다.


집에 돌아오자, 라디오에서 누군가 사연을 읽었다. ‘잠이 오지 않는다’는 말 대신, ‘오늘은 잠을 자고 싶다’는 말이었다. 말의 방향이 바뀌면, 같은 밤도 달라진다. 우리는 서로를 보았고, 따뜻한 차를 마셨다. 나는 묻지 않았다. 누나는 설명하지 않았다. 그걸로 충분했다.


13


사람들은 우리가 어떻게 만났냐고 묻는다. 우리는 대체로 대답을 아낀다. 술집, 복도, 센서등, 라면, ‘달의 바닥’ 같은 단어들을 말해도, 이야기의 중심은 잘 전달되지 않는다. 중심은 언제나 말해지지 않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줄곧 붙들고 있는 중심은 단순하다. 서로를 알아보는 일. 서로를 오해하지 않으려는 일. 오해했을 때 돌아오는 일.


어느 밤, 누나는 나에게 작은 노트를 건넸다. 표지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안쪽 첫 장에 누나는 짧게 썼다. ‘우리는 여기를 지나가는 중’. 나는 그 문장을 손가락으로 따라 읽었다. 그 문장은 우리에게 잘 맞았다. 지나간다는 건, 가만히 서 있지 않는다는 뜻이고, 서두르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는 서둘지 않았다. 대신 손을 맞잡았다.


문턱은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발바닥이 그 얇은 경계를 확실히 밟았다. 안과 밖 사이, 아직과 이미 사이. 그 문턱 위에서 우리는 잠깐씩 멈췄다가, 같은 방향으로 발을 내디뎠다.


끝이라고 말하지 않겠다. 우리에게는 내일이 있고, 그다음 날이 있다. 그리고 어떤 밤에는, 또다시 라면을 끓일 것이다. 국물이 조금 넘칠 것이고, ‘달의 바닥’ 흠집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을 것이다. 그릇의 흠집에 맴돌던 탄 냄새 대신, 이제는 귤 껍질 향이 얕게 고일 것이다. 그 흠집의 방향을 우리는 가끔 바꿀 것이다. 이유는 묻지 않을 것이다. 이유를 묻지 않는 밤이야말로, 오래 지속되는 밤이라는 걸 이제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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