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유우코 씨의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인다.
아무래도 브갤에서 흉흉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은 탓이겠지.
'유우코 개쌍년 꼬리 뽑아서 목도리로 쓰고 싶다!'
'유우코 귀 뽑아서 나비탕 끓이고 싶네 아 ㅋㅋ'
'유우코 뇌 요리 보고 가라 ㅋㅋㅋ'
뭐, 이 정도는 예전부터 간간히 보이던 뻘글이었다.
허나 유우코 씨의 인내심이 더 이상 버텨주지 못한 탓일까,
브붕이들의 계속되는 질타에 결국 지쳐버린 모양이다.
'까톡!'
응? 누구지?
나 같은 방구석 폐인에게 연락할 사람이라곤...
'혼자 술 마시니까 외로워.'
유우코 씨의 문자였다.
'입맛도 없어서 술이 잘 넘어가지도 않아.
나와바...'
미친 소리.
이 시간에 이런 소리를 씨부릴 정도면
이미 단단히 가버렸다는 소리다.
후...
그만큼 마음이 많이 어지럽다는 이야기겠지.
뭐, 잠깐 어울려 줄까나.
나는 적당한 답장을 보낸 뒤 곧바로 동네 술집으로 향했다.
'어서와~ 우헹헹...'
역시나 단단히 취해버리신 유우코 씨였다.
'늦은 시간에 이게 뭐에요...'
일부러 약간 퉁명스런 말투로 물었다.
'우헹... 아무 일도 아니야...'
유우코 씨는 잔에 남아있던 술을 깨끗이 비워낸 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냥... 요즘 좀 힘들다고 해야하나... 마음에 심란해져서...
아는 동생에게 어리광 좀 부리고 싶었을 뿐이야... 우헹...'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유우코 씨는 한 잔을 더 들이키곤
얼굴을 붉혔다.
'누나가 힘든 건 저도 잘 알죠.
뭐, 브갤럼들도 진심에서 하는 말은 아닐테구요.
그냥 컨셉질 같은 거니까요.'
나는 유우코 씨의 눈치를 살핀 뒤 말을 이었다.
'병신 누나도 브갤럼들한테 퍼지라고 신명 나게 까이잖아요.
입으로는 퍼지 퍼지 해도 나름대로의 애정이 있으니까
그렇게 깔 수 있는 거고,
또 유우코 누나는 병신 누나에 비하면 좀 나은 편이잖아요?'
'몰라 몰라아...'
유우코 씨는 볼을 부풀리며 말했다.
'이게 다 브붕쿤 때문이잖아. 책임져!'
뭐, 따지고 보면 나도 브갤럼 중에 한명이긴 하니까.
이럴 땐 무작정 부정하기보단 수긍하면서
말을 돌리는 게 상책이다.
'네... 뭐 저도 브갤럼이긴 하지만,
그래도 저는 누나를 꽤나 많이 아끼고 있다구요?'
유우코 씨는 귀를 치켜세우며 나를 바라보았다.
'정말?'
'네... 뭐 그렇죠?'
유우코 씨의 눈동자가 초롱초롱하게 빗나더니,
'그럼, 내 어디가 마음에 드는데?'
곧바로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글쎄요... 일단, 눈빛?'
'눈빛이라니?'
'유우코 누나의 눈빛은... 얌전하고 상냥하면서...
매력적이에요.'
남사스럽게 이게 뭐야.
'...진짜?'
유우코 씨는 무표정을 지으려 노력했지만,
난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눈치챘다.
'제가 누나한테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난 어깨를 으쓱하고는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그러면 누나는 제 장점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어?'
유우코 씨의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브, 브붕쿤은... 일단 착하고, 배려심이 깊은 거...?'
'이유가 뭔데요?'
'나, 나 같은 글러먹은 누나가,
이렇게 한밤중에 불러내도 한 걸음에 달려와준 거...?'
알긴 아네.
유우코 씨는 얼굴을 잠시 붉히더니,
'나, 나만 마시고 있기도 미안하네! 여기, 너도 한잔 해!'
맥주 한 잔을 들이밀었다.
'뭐, 그러면 잘 마실게요!'
나는 거리낌 없이 술잔을 비워냈다.
'키야...'
알코올이 핏 속에서 흐르는 느낌에 전율이 밀려온다.
'어때...?'
유우코 씨가 조심스레 물었다.
'음, 뭐, 맛있는데요?'
'기분은 어떤데?'
'네... 뭐, 한 잔 정도로는 안취하...'
...어라?
머릿속이 갑자기 몽롱하다. 벌써 취한 건가?
아무리 술을 잘 안한다지만
겨우 한 잔 가지고 취할 내가 아닌데...
그건 그렇고 왜 이렇게 졸린 거지...?
눈꺼풀이 무겁다.
'브붕쿤? 브붕쿤~'
누군가 나를 흔들어 깨우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드디어 깨어났구나아... 약이 확실히 잘 듣긴 하네!'
이건 유우코 씨의 목소리인데...
'어... 누나?'
'그래 브붕쿤, 나야 나. 유우코 누나.'
'여긴... 어디에요?'
나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려 시도했지만,
손목과 발목엔 무언가 채워져 있었다.
'이, 이건... 뭐에요?'
'미안해 브붕쿤. 조금 놀랐다면 사과할게.'
유우코 씨는 몸을 굽혀 나를 바라보았다.
'누나가 브붕쿤이랑 술 한 잔 마셨더니 기분이 좀 좋아져서,
브붕쿤이랑 단 둘이서 놀고 싶어졌거든.'
'그, 그게 무슨...?'
이게 무슨 일이지. 착하고 얌전한 유우코 씨가...
'어째서 이런 일을...?'
'브붕쿤이 나쁜 거야.'
유우코 씨가 다가왔다.
'브붕쿤이 그렇게 상냥한 말 해버리면,
누나는 참을 수 없게 되버린다구...?'
제정신이 아니야. 제발 이성적인 대화가 가능하길...
'누나... 일단 이것 좀 풀어봐요...'
'착하고 성실한 브붕쿤은 이런 거 처음 보겠지?
걱정하지마. 누나가 정말 좋은 거 알려줄게...'
이윽고 누나는 등 뒤에서 안대 같은 무언가를 꺼내 보였다.
'이제 이거만 머리에 쓰면 준비는 끝이야 브붕쿤...
브붕쿤이 여태껏 느끼지 못한 기분 좋은 거 알려줄 테니까,
누나랑 단 둘이서 신나게 놀아보자구...'
'아...!'
물론 난 저항할 수 없었다.
곧 이어 시꺼먼 안대 같은 게 내 시야를 차단했고,
누나가 다음으로 무엇을 할 지 기다리며
두려움에 떨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별안간, 갑자기 눈앞이 밝아졌다.
'엣?'
익숙한 음악과 함께... 내 눈앞에는 야본역이 보였다.
'이, 이건 설마...?'
'맞아 브붕쿤!'
유우코 씨가 등 뒤에서 나타났다.
'이건 무려 풀트래커라구?
차렷인 우리 브붕쿤은 상상도 못할 신세계지!'
'그렇다면...'
내 손을 펴보였다. 맙소사.
내 아바타가, 손을 펴고 움직이고 있었다.
'대단하지 않아 브붕쿤? 이게 바로 풀트래커라는 거야!'
'유우코 누나...'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 순진한 브붕쿤. 이런 거로 울면 안돼.
이제 누나랑 재밌게 놀아야지!'
맞아. 어서 이 신세계를 즐기러 가야지.
난 눈물을 그치고는 VR 세계로 떠났다.
혹시 불건전한 생각을 한 갤럼은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