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암호화폐의 시대
그런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나는 리얼돌을 렌트했다.
리얼돌의 사실적인 신체 묘사 속에서 가장 꼴렸던 부분이 어디였는지 아는가?
그건 바로... "손"이었다.
솔직히 아무리 성기가, 유방이, 입술이 리얼하다 해도
내가 그것을 경험해보지 않은 이상 무용지물이었다.
하지만 손은 달랐다, 작은 손가락 골격을 감싼 연약한 실리콘은
아직 남녀가 짝을 이뤄 학예회를 하던 시절, 마지못해 쑥스럽게 손을 잡았던
난폭한 짝궁의 생각보다 연약했던 그런 손바닥을, 다시금 연상케 했다.
나는 영혼도 없는 인형을 마치 제압이라도 하듯 손목을 난폭하게 붙잡고, 손가락 사이로 그 연약한 손바닥을 몇 번이고 더럽혔다.
서로가 짝궁의 손을 잡지 못할 때, 제 때 손을 잡으며 리드해 주었던 나를 보고 수줍게 웃어 주었던 초등학교 시절의 그 손만이이게 내가 리얼돌에서 리얼하다고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여자였으니까
생각해 보면 고등학교 때도 있었다
군대간 아는 형의 여친이었던 누나는, 어째선지 나를 챙겨주고 밥을 사러 불러 주었다.
그 봄날의 저녁은 뭐랄까 살짝 돌아버려서, 나는 나란히 걷는 누나에게 "손 잡아봐도 돼?" 라고 묻자
그 누나는 "남자가 그런거 물어보는거 아니야 ><" 라며, 손을 잡을 줄도 모르는 나에게 깍지끼고 걷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날은 그렇게 경직된 채로, 그저 육군훈련소 제식마냥 발걸음을 맞추며, 헤어지는 지하철 역의 계단까지 내려갔던 기억밖에 없다.
그렇게 기가 쌔고 무섭던 누나의 손도, 리얼돌에서 묘사된 여자의 손처럼 작고 부드러웠다.
이제 우리에게 VR공간에서의 사랑은 예삿일이 되었고
전화 한통에 리얼돌 대여 배달이 올 정도로, "가짜" 는 그 입지를 키워가고 있다.
하지만 내가 가짜 손에 만족할 수 있었던 건, 단 한 방울 "진짜"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현실 여자친구 같은건 구닥다리라고, 씹덕같은 정신을 표방했던 나날이 조금은 후회스럽다
만약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좀 더 오래 손을 놓지 않았을 텐데...
몽둥이 컨트롤러로는 충족되지 않는, 그녀의 손이 그리워 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