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나쁠 정도로 따스한 밤,
그의 방에는 인공적인 찬 바람이
방의 공기를 더욱 외롭게 감싸고 있었다.
소스라칠듯한 외로움에 그는 문득 자신이 오랜시간 존재해왔던 가상의 세계의 문을 연다.
쌓아온 시간만큼이나 쌓아온 인연들.
어릴적 놀이공원 안의 사탕가게에 무지개빛으로 빛나던 그 추억들과 같이
친구목록이라는 두꺼운 전자 전화번호부 안에는 마치 보석함 속의 찬란한 보석들 처럼 가상의 존재들이 빛을 내뿜고 있었다.
허나 곧이어 그는 이 중 진정 자신을 이해하는 인연이 몇이나 되는지를 마음으로 읊어보고는
이윽고 그 손은 갈 곳을 잃는다.
'너는 그들을 이해했니?'
자신이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
'......노력했어.' '하지만 끝내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
그러고는 이내 고개를 위로 고꾸라트린다.
분명 그의 눈은 수 초 마다 빛을 바꿔대는 플라스틱 렌즈에 가려져있지만,
어째서인가 그의 눈은 먼 하늘이 비춰보였다.
'어째서 빛나는 곳으로 가지 않아?'
'.......나도 빛나는 것으로 치장해봤지만 안에서부터 빛나는 사람과는 달라.'
'더이상 눈부신건 버티기 힘든 것 같아'
그가 엄지손가락을 몇번 튕기며 조작하자
이내 그의 눈앞의 렌즈는
그를 감싸고 있는 방의 색깔마냥 검게 변하며 빛을 잃었다.
눈앞의 물건을 벗어도, 벗지않아도
그의 눈앞에 비치는 색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을것을 그는 알았기에
머리에 무겁고 검은 왕관을 쓴 채로
눈을 꽉 감으며 중얼거렸다.
'.......이 색이 내 시간이야.'
차갑고 어두운 밤이 내려 앉은 누군가의 방 속에서
시간이 그를 두고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