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한 구석에서 또 고개를 든다.
꾀죄죄하고 뚱뚱하고 더러운 모습의, 온 몸이 홀딱 젖은 채로 냄새나는 물을 똑똑 떨구고 있는 한 아이가.
요 몇 달 째, 나는 이 아이와 마주하고 있다.
아이가 고개를 든다. 열린 입에서는 끔찍한 악취가 뿜어져 나오지만, 고개를 돌릴 순 없다.
항상 아이를 마주할때면, 서로 속삭이게 된다.
"그니까, 이번에는 성공하지 않을까?"
"난 아직 버틸 수 있어."
"넌 줜나게 병신같은 호구새끼야."
"난 괜찮아."
"당하면서 아무 말도 안하는 병신."
"내가 잘못한거야. 내가 고쳐야해."
"그래. 니가 문제야. 왜 사냐?"
"난 뭐가 문제지?"
"평생 들어왔잖아. 왜 살아?"
"난 왜 안되지?"
"고개 돌리면 다 까먹는 병신이라서."
"내가 틀려. 항상 틀렸으니까."
"회사사람들 말이 틀린게 하나도 없다니까? 정신병자 새끼."
"내 스스로가 이해가 안돼."
"그니까,"
"그러니까,"
"이번에는 성공하지 않을까?"
라고 속삭이곤 날 바라본다. 허리가 부러지고 엉덩이와 허벅지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 눈빛에 난 꿀먹은 벙어리가 되고 만다. 조금만 힘을 줘도 쏟아질 것 같은 슬픔과 우울함, 그리고 20살의 나에 대한 죄책감을 가까스로 삼켜낸다.
입으로는 차마 말하지 못하는 "미안해"를 글에다가 비겁하게 적어내며, 지금의 내가 20살의 나에게 무릎을 꿇는다.
요즘의 내 삶은 이 것의 반복이다.
책임자는 다 도망가고 말단직원 하나한테 다 떠넘기는 회사의 압박에 너무 슬퍼하고,
나와 동생을 제3자라며 머리가 깨진 어머니를 내놓으라던 내 가족을 생각만해도 찢어질 듯이 고통스럽고,
고개만 돌렸다 하면 자꾸 잊어버리고, 메모도 체크리스트도 모두 잊어버리는 나를 보며 한탄하고,
기계돌아가는 소리가 계속 들려오며 끼익 소리가 날 때마다 미쳐버릴 것 같고,
결국 터지는 일들로 인해 나와 남에게 질타를 맞으며 내가 싫어질 때마다,
아이는 계속 속삭인다.
마치 요람 속에 잠든 연약한 아이가 죽어갈 때 내뱉을 마지막 단말마처럼 모든 소음을 뚫고 들려온다.
"이번에는 성공하지 않을까?"
라고...
난... 이미 미쳐있는거 아닐까?
이미 마음을 굳게 다짐한 것 아닐까?
이 시간까지 일하다가 이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난 이미 제정신이 아닌거 아닐까?
난 시발 무슨 목적으로 이런 글을 쓴거지? 토해내면 괜찮아질거라 생각했던 걸까?
난 정말..... 시발이다.
이런 글을 써서 정말 미안하다는 말 밖에 못하겠다.
SNS에다가 쓰자니 난리가 날 것 같고, 일기장은 이미 한가득이라서 더 쓸 자리도 없다.
그럼에도 너무나... 너무나 답답해서... 어디든 좋으니 안쓰고는 못베겼다.
읽고 그냥 차단해도 좋고, 병신이라고 욕해도 좋다. 진짜 병신 맞으니까...
그냥.. 미안하다 다들. 내 삶은 항상 미안한 것 밖에 없구나..
아..... 오늘 하루가 너무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