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로서 행복글 싸기 이벤트에 감히 참여해보고자 합니다.
*과거 “VRChat은 내게 무엇인가?”라는 글에 갤을 안 하던 시기 지나가다가 글을 남겼던 적이 있기 때문에,
오래 갤러리에 상주한 사람은 언젠가 읽어본 적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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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가는 나이, 부족해지는 시간과 여유.
그럼에도 나는 요즘도 종종 VR에서 이따금씩 시간을 보내곤 한다.
“친구도 없고, 할 거도 없다.”라며 탄식하면서도,
나의 소중한 취미 생활 중 하나인 VR은 결코 놓지 않았다.
가상 세계 속에서, 나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자 한다.
먼지가 쌓인 VR을 통한 만남은 나에게 큰 의미를 부여해주었고, 현실 속에서는 찾을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해주었다.
이 게임은 나에게는 단순한 게임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내게 이 게임을 그렇게 특별하게 만들어줬던 것일까.
여기엔 긴 설명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우선, 나는 이 게임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가?
(사진은 내 현재 방 사진)
나는 실은 VR을 가지고 있기 전부터 테크 장비 수집에 관심이 많았다.
컴퓨터나 VR과 같은 최신 기술들을 쌓아올리는 것이 나의 취미였다.
중학생 시절, 첫 번째 세대 VR이 세상에 나왔을 때, 나에게는 꿈만 같은 일이었다.
새로운 기술을 가장 먼저 경험해보고 싶은 그 열정으로, 내가 모아둔 돈으로 VR을 구입햇다.
그러던 어느 날, 스팀에서 친구들이 VRChat이라는 게임을 엄청 많이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 그 당시 한국에선 VRChat이 크게 떠오르는 시기였을 것이다.
나는 그때 그냥 VR을 소지하고 있었고, VRChat은 무료로 즐길 수 있는 VR 게임이었기에,
그냥 한번 해볼까? 하고 시작하게 되었다.
그때는 친구를 만드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게임 이름과는 달리, VR을 가진 사람들은 극히 드물었기 때문에, VR을 착용하고 다니기만 해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대화를 나누기가 쉬웠다.
외국인들과의 대화는 재미있었고,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과의 이야기는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심심풀이로 시작한 VRChat은 나에게는 단순히 ‘재밌는 게임’ 그 이상의 존재로 여겨지진 않았다.
게임을 하는 사람들에는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게임은 어차피 게임일 뿐. 즐기기 위해 플레이하는건데 복잡한 현실 속 이야기를 끌어다 와서 뭐하겠냐."
나는 그런 부류에 속했다.
나는 게임 속과 현실 속의 차이를 잘 알고 있었다.
게임 속에서 친구들과 친해지더라도, 현실의 어려움이나 사정은 결코 말하지 않는 것이 내 원칙이었다.
게임은 그저 즐기기 위한 것, 스트레스 받지 않은 마음으로 하는 것.
굳이 복잡하고 우울한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는 장소이다.
그러던 와중 내 인생에 변곡점이 찾아왔다.
갑작스럽게 몸이 좋지 않게 되었다.
한 달 전까지도 정말 건강하게 재미있게 놀았던 몸이었는데,
어느 날, 하루 사이에 간과 위를 전부 몸에서 도려내야 했다.
자고 일어나니 장기 두 개가 몸에서 사라져 있었다.
하루 종일 고통으로 소리만 지르고, 잠을 1분 이상 잘 수가 없었다.
고통으로 말하기가 힘들어서 종이에다가 펜으로 적으면서 부모님과 소통해야 했다.
이때 사용했던 숨 쉬는 연습을 하는 도구가 집에는 아직도 장식작 한 켠에 장식되어 있다.
당시 나는 상태가 좋지 않아서 다른 환자와 병실을 같이 쓸 상황이 되지 못 하였는데,
하루 병원비가 기억하기로 40만원이 넘었던 것 같다. 그것보다 더 많이 썼을지도 모른다.
일주일 동안 병원에서 가만히 누워있는데 300만원 가까이가 그냥 사라져버렸다니, 정말 웃긴 일이다.
통증이 심해서 죽을 것 같이 아픈 와중 퇴원을 할 수는 없었다.
이미 수술비로 엄청나게 돈을 써버린 와중에도 돈은 그저 소멸되어 갔다.
(물론 병원은 지금도 계속 다니고, 죽을 때까지 가야한다...
사진은 당장 23년도 2학기*09.01~부터 대학 병원 들락날락 걸린 영수증, 학교에 제출해야 해서 서류 정리한 김에 찍었다.)
병원은 당연히 계속해서 입원해야 한다고 했지만,
버틸 수 있을 정도의 통증이 되자 빠르게 퇴원 수속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수술 후 몇 달 동안,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일주일 넘게는 물조차도 마실 수 없었다.
15일이 지난 후에야 처음으로 물을 한 모금씩 마실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로도 무언가를 목에 넘길 수 있는 상황이 안 되어서, 몇 달 동안 내가 섭취한 음식은 물 150ml에 단백질 30g~45g 정도였다.
조금이라도 공기가 섞인 걸 마시면 바로 토할 것 같은 구토감이 들었기 때문에
정수기 물조차 마실 수 없어서 생수만 사다 마셨다. 목으로 무언가를 넘기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먹는 것을 극도로 거부했다.
(당시 찍어둔 사진, 혐짤이라 자체 모자이크...)
수술 후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때에도 수술한 부위는 아물지 않았고
한달이 지나도 칼자국 그대로 열리고, 피가 터지고, 늘 복부는 피범벅이었다.
그래서 수술 부위를 다시 밀봉 해보기도 했지만, 철심을 제거하면 수술한 부위가 더 썩어 문들어지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의사는 피부가 제대로 붙지 않을 정도로 영양분이 부족한 것 같다고 결론 내렸다.
그래서 힘들더라도 강제로 뭘 먹게끔 시키기 시작했다.
매일 링거만 맞고, 물에 단백질 가루 섞어서 먹던 일이 청산되었지만,
여전히 그렇게 피를 흘리면서 몇 달 동안 누워서 지내야 했다.
나는 여행을 다니는 것이 취미였고, 낚시도 즐기고, 스쿠버 다이빙도 즐겼다.
활동적인 취미를 좋아하던 나의 그런 삶은 갑자기 끊어져 버렸다.
하루 아침에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가만히 누워 있을 수밖에 없는 병신이 되었다.
움직이기만 해도 피를 뿜는 몸과, 웃기만 해도 수술 부위가 아파와서 신음할 수밖에 없는 병신이 되었다.
의지하던 현실은 더 이상 의지할 곳이 아니었다.
그렇게 3년 넘게 사귄 여자친구와도 결국 헤어지게 되었다.
그냥 누구에게나 하는 것처럼 주저리주저리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실친한테 급발진해서,
나보다 더 힘드냐고 쌍욕을 퍼붓기도 했다. 이 일로 소문이 퍼져 현실의 주변 사람들에게 단체로 손절당했다.
평소였으면 술 한 잔 하고 대화하면 풀릴 문제가, 가만히 누워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
내 상태가 얼마나 나쁜지를 평소에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는 내 상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요즘 이상하더라’는 감정의 골만 기어졌다.
그러나 웃음으로 포장하던 고통은 이제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오해가 풀리기보다는 더 서먹서먹해지고,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 고립되어 현실 세계와의 연결이 끊어졌다.
수술 한 번이면 모든게 해결될 거라 생각했지만, 몸은 낫지 않고 오히려 더 악화되었다.
약 때문에 이제는 팔과 다리에 감각이 없어져서 심지어 키보드와 마우스로 게임을 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발을 딛었는지 안 딛었는지조차도 알 수 없어 다리 하나하나를 손으로 붙잡아야 하는 지경이 되었다.
마우스를 잡은 손에 감각이 있을리가 없으니, 즐겨하던 FPS 게임들도 이 때문에 모두 접게 되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생각나던 것은, VRChat이었다!
심심풀이로 시작한 바로 그 게임, 사람들과 단순한 농담 따먹기, 하루 보고 헤어지고, 의미없는 말들만 나열하는 게임.
하루 하루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져만 갔다.
사람들과 길게 노는게 재밌었다.
VR에서는 내가 여전히 건강하고 유쾌하며, 의지할 만한 사람이었다.
현실에서의 삶이 변화했더라도, VR 안에서는 예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있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혼자 보내는 것을 어려워한다.
외향적인 삶을 살았던 나는 더더욱 그랬었고, 그런 목마른 관계를 VR에서 대체해갔다.
물론 게임에 과도하게 몰입하지 않았다. 여기서 만난 사람들은 인터넷 친구에 불과했다.
깊은 관계를 기대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게임은 단순한 탈출이었으며, 이들과의 관계는 언제나 가벼웠다.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놀이의 장면에 머물렀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운 수술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도 게임 세계에서 한 달 이상 사라지게 될 미래를 알고, 나는 어떻게든 내 상태를 숨기려 했다.
병적으로 나를 숨기는 습관은 아픈 이후부터 내 버릇이 되었다.
그러나 무슨 변덕이었을까.
“그래도 큰 수술인데, 혹시 일이 잘못되면 누군가는 알고 있어야겠지”라는 핑계를 구실 삼아 어떤 친구에게는 그 비밀을 드러내기로 했다.
함께 즐거웠던 단 한명의 친구가 희생양이 되었다.
같이 놀던 모두가 게임을 끄고, 우리 역시 게임을 끄기 전이었다.
무겁지 않은, 가벼운 분위기에서 웃으면서 말했다.
몸이 안 좋아서 버티고 있었는데, 수술을 받게 되어서 당분간 못 들어올 것 같아요.
나는 최대한 티를 안 내려고 했었고, 아픈걸 유머로 넘기고, 웃음으로 감추었다.
‘이 정도면 아프다고 광고하는 우울싸개로는 보이지 않겠지…’
하지만 내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 친구의 반응은 에상치 못한 것이었다.
그는 침묵 속에서 나를 바라보며 말없이 1분을 보냈다.
그 순간, 내 마음속에는 깊은 불안이 자리했다.
역시, 고작 게임 관계일 뿐인 사람한테 내가 너무 많은걸 이야기 해버렸구나!
게임 친구한테 이렇게까지 많은 어려움을 털어놓은 것을 그가 지나치게 귀찮게 느끼지 않았을까,
친구와의 관계가 손상될까봐 걱정되었다.
나 또한 가장 싫어하는 것들 중에 하나가 ‘나 힘들다’하고 광고하면서 우울증이라고 도배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나의 걱정은 곧 돌아온 빛나는 한 마디로 간접적으로 해소되었다.
그때까지 친구는 말없이 울먹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많은걸 묻지 않았다. 그저 울먹이고 있었다.
그 감정을 감추기 위해서 1분 정도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었던 것이라 하더라.
"많이 힘드실텐데, 고생 많으실텐데, 지금까지 몰라서 죄송했습니다."
"어느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야기를 하실 정도라면 크게 힘드신 상황이라고 생각됩니다. 꿋꿋히 버티면 좋겠습니다."
그 친구가 하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상투적인 위로의 말이었다.
하지만 다음에 이어지는 그 말들로 하여금 내게 특별한 의미를 주었다.
"고작 인터넷 관계라고, 가볍게 여길 수 있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어려운 주제를 제게 꺼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비록 나이도 많지만, 당신에게 하나 배웠습니다. 제게 어려운 이야기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고생 많으셨습니다."
게임 속에서의 나는 언제나 강하고 유머러스했다.
나는 그때까지 아프다고, 힘들다고, 몸이 좋지 않다고 제대로 표현해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누군가에게 입 밖으로 진지하게 꺼내본건 그 날이 아마 처음이었을 것이다.
현실서는 누군가에게 나도 ‘힘들다’, ‘죽고 싶을 정도로 아프다’고 내 마음을 털어놓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용기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의 우울에 대해 위로하는 것은 쉬웠지만, 나 자신에게는 그럴 용기가 없었다.
내게 우울하다고 상담하는 많은 사람들한테, "저 정말 힘들어요"라고 하는 사람들한테,
"정말 힘드시겠어요, 많이 힘드시죠." 라고 위로해주면서,
속으로는 ‘나 조차 힘들다고 내색하지 않는데, 네까짓게 뭐가 힘들다고 그런 말을 해’라고 욕을 하던게 한 두번이 아니었던 만큼,
내 안에는 힘들고 아픈 감정들이 넘쳤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숨겼다.
내가 남들을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이들이 나를 어떻게 대할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않고, 항상 웃음과 재미에 집중했다.
게임 속에서는 모두가 함께 노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모두가 퇴장하고 난 뒤 내게는 고통스러운 현실이 다가왔다.
고독 속에 나는 외로움과 고통에 시달렸으며 수술이 다가올 때면 특히나 심하게 우울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라면 견뎌냈을 우울함이 너무나 커져 한 사람에게 이야기를 털어놓게 된 것이었다.
‘그래도 수술하는건데 한 명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핑계를 대며 내 친구를 우울의 희생양으로 삼았다.
그러나 손절당할까 걱정하던 나는 반대로 따뜻한 마음을 받게 되었다.
들은 사람은 내게 고마워하며 용기를 내며 이야기해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에게서 나온 상투적인, 누구나 해줄 수 있는 말들은 평범한 위로의 말이 아니라, 진심 어린 공감과 따뜻한 위로의 말들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이 게임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게임 속에서도 누군가와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작 게임이라는 공간에서 정말로 누군가와 공감하고, 위로받고, 스스로를 드러내고 대화하며 알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작 "정말 많이 힘드셨죠"라는 문장이 뭐가 그렇게 다르게 다가왔는가?
이야기를 듣던 그 친구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자신의 현실을 털어놓았다.
그는 죽을 때까지 수술을 반복해야 하는 불치병 환자임을 고백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당장은 불안하고 힘들고, 미래가 어두워보이겠지만, 견뎌내고 이겨내면 모든게 괜찮아지고, 다시 밝아질 수 있을겁니다.”
앞을 모르는 내게, 이미 겪어본 사람은 진지하게 조언을 해주었다.
그의 말 덕분에 나는 앞으로의 불안과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고작 게임 관계라고 생각했던 내가, 더 이상 가까워 질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던 내게, 무심코 던진 한 마디에, 많은걸 털어놓아주었다.
나를 위해서 자신도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것까지 고백해줬다.
수술은 예상대로 잘 마무리되었고, 시간이 흘러서 나는 다시 VR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웃으면서 돌아왔고, 전과 마찬가지로 누구에게도 잘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게,
VR 속 사람들을 NPC처럼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은 ‘실재’로서 인정하고 게임을 하게 되었다.
이들 모두 나와 같은 사람들이고, 공감할 수 있고 친해질 수 있고, 깊어질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생각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의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었다.
‘즐기고 싶을 때’만 보고, ‘만나고 싶을 때’만 만나는 그저 그런 게임 친구,
스트레스 해소가 목적이 아닌 보탬이 되어주고, 도와주고, 인간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단계가 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처럼 사람들을 향한 시선을 바꿔보니, 주변에 나를 진심으로 대해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의 도움 덕분에 나는 어려움을 이겨내고 버텨낼 수 있었다. 또한, 이곳 사람들도 현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종종 게임에 과도하게 몰두한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수년 동안 수술만 받고 몸에 감각이 없는 상태로 살아가야 했던 상태를 생각하면, 게임 속에서 존재할 수 있었던 시간이 현실보다 더 소중하고 즐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를 진심으로 이해해주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즐거웠다.
스스로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고, 이런 생각을 하니 나 자신도 놀랐다.
당시 환자들 사이 입소문이 퍼져
한국에서는 구하기 어려워진 약을 수소문해준 친구들 덕분에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올 수 있었던 일도 있었다.
그저 그런 게임이라고 생각했다면, 의사 말대로 나는 수술까지도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전처럼 친구도 못 사귀고,
퍼블릭을 돌아다닐 때는 사람들 떠드는 걸 구경만 하다가 게임을 끄고
예전처럼 놀 수 있는 친구들도 적어져서 게임을 하는 빈도는 줄었지만
VRChat은 내게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시켜준 게임이고,
앞으로도 없을 게임인 것 같다.
이게 내가 현생이 아무리 힘들어도 VR 하나는 챙기고 있는 이유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나 처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한테
어디 도와줄 수 없을까 해서 심리학 공부도 해보고 대화법 강의 듣기도 하고
내 성격도 여러모로 고쳐보고 누군가한테 도움이 되고 싶다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한 1년 정도 저소득층 대상으로 생필품 나눠주는 봉사활동도 해봤었는데
더 나은 인간이 되고자 노력하게 된 것 같아
(사진은 어르신들, 한부모 가정, 국가유공자 등에게 먹을 것들 나눠주는 활동 중에 힘들어서 정리하고 찍었던거)
그런데 힘든 사람들 돕는건 좋은데
브얄챗친구 너무 힘들다고 해서 나도 없는 돈 끌어모아서 도와줬던 적이 있는데
카드값 연체돼서 자살할뻔햇던적도잇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