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안에 남자가 없었다.
아버지건 할아버지건 내가 철이 들었을 무렵에는 다 과거의 인물들이었다.
학교가 파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나를 기다리는건 으레 어머니였으며, 속옷을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다리 한쪽을 벅벅 긁으며 TV를 보는 큰누나와 방에서 나오지 않는(간간히 엘 프사이 콩그루-하는 이상한 말을 늘어놓는) 작은누나를 볼 수 있었다.
가족이 아니라 집안이라고 쓴데에서 눈치챌 수도 있겠지만, 친척으로 가서도 남자는 거의 없었다.
과거의 영광만 남은 늙고 병든 작은 아버지가 하나 있었고, 그와 대비되게 사촌 누나들은 잔뜩 있었다.
당연히도 내가 물려받을 수 있는 것들은 로보트 장난감이나 팽이같은 것 보다는 알록달록한 인형과 프릴이 잔뜩 달린 옷가지 등이었다.
집안의 그 누구도 '남자다움'이 무엇인지 몰랐고, 자연스럽게 나 또한 남자다움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았다.
학생 때 까지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옷은 모두 교복이었고, 모두 같은 생활을 하니 적당히 맞춰가면 그만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속에서 '여성적인' 축에 속했다.
하지만 그것은 약간의 개성일 뿐이었으며 남들과 조금 다른 나를 말해주는 단어일 뿐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즈음 가서는 이야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여성적인' 내가 아니라 '남자답지 못한' 녀석이었다.
정점을 찍게 되는것이, 군대라는 좁은 우리에서 수많은 '남성'과 생활하게 되는 시기이다.
선임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남자가 그래서 쓰겠냐? 마. 나한테 시집올래?"
엄연히 농이며 조롱이었다.
하지만 왜일까, 그 성희롱이나 다름없는 말에 모두가 비웃음 섞인 시선을 보낼때, 나 혼자만 가슴속의 무언가를 느꼈던 것은 왜일까.
시간은 어느덧 지금에 이른다. 나는 어느새 남자다움을 이해해가고 있었다. 정말 슬프게도, '나에게 없는 것'이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은 곧 남자다움이었고, 나는 어느새 그런 놈이 되어있더라.
그 즈음 친구에게서 가상현실을 소개받았을 때 나의 눈은 적지않게 반짝였을 것이다. 거울에 비친 풍경은 남성적인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여자인 것도 아닌 애매한 표류자가 아니라,
햇빛만큼 반짝이게 빛나는 금발의 이상적인 여자아이였기에.
나는 금방 그 생활에 빠져들었다.
거기에는 자기에게 시집오라며 조롱하는 선임도, 남자다움을 훈계하는 선생도 없었을뿐더러 둘러보면 나와 비슷한 인간도 드문드문 보였다.
몸에 밴 여성성은 더이상 이질적인 것이 아니어서ㅡ
어느덧 자기자신에게 눈을 돌리면 잘록한 허리가 있고, 만지면 흔들리는 유방이 있으며, 머리카락은 찰랑이고(시기에 따라 다소 다이나믹하기도 했지만)
틀림없는 여자아이. 평생을 통틀어 그렇게 마음 편한 시기가 있었을까? 이제는 마음까지 여자아이가 되는 듯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남자다움을 깨닫게 된것은 이런 여자아이의 삶을 살아가던 시기중이다.
아직 이 현실과 가상의 괴리 사이에서 고민하던 시기에 이런 이중적인 생활의 선배라고 할 수 있는 친구가 가볍게 이야기를 던진 것이다.
"나두님 이 월드에 한번씩 오는 근육갱 알아요?"
"네?"
그 때 그 게슴츠레하게 뜬 눈과 야릇한 표정의 의미를 깨달았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아니, 아마 사실을 알았다고 해도 나는 움직이지 않았으리라.
새벽이 되면 그 일본풍의 (지금은 없다) 월드에 나타난다는 근육 투성이의 아바타.
그런게 무어란 말인가? 거울 앞에서 어기적거리며 귀여운 여자아이들을 가로막는?
말하자면 불한당이 아닌가?
그런데 이 작자는 어째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가?
의문은 커져만 갔고, 결국 나는 새벽에 혼자 그 일본풍의 월드에 걸음을 옮기게 된다. 그리고 ㅡ
'자러감 오야스미'하고 가상 세계를 떴던 그 친구는 마루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이 조용히 앉아있었다.
당혹스러웠다. 친구가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 조금은 화가 났기에 나는 씩씩거리며 그(혹은 그녀)에게 다가갔다. 공손이 무릎 앞에 모여있는 손을 휘어잡고,
"님, 자러 간다고ㅡ"
나는 그 이상 말문을 잇지 못했다.
어느샌가 나는 아마 '근육갱'이라고 불렸던 작자들일터인 그 남성 아바타들에게 사냥개에게 몰린 짐승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엹은 구릿빛의 피부. 양 팔을 벌려도 안을 수 없는 우람한 어깨. 의식하지 않아도 보이는 턱선. 금방이라도 덮쳐올 것 같은 가슴팍.
그리고 고간의,
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나를 집어 삼킬듯한 기세로 나를 똑똑히 노려보고 있는 그 길고 올곧은 것이,
'진짜 남자다움'이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누가 무어라 말을 한것도 아니고, 그저 나는 자연스럽게.마치 그러기 위해 이 자리에 온 것 처럼.
'그것'의 앞에 무릎꿇고 두 손으로 감싸며,
투명한 액이 맺힌 그 끝에 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