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붕이에게 당해 원치 않은 임신을 한 파딱은 입술을 꾹 깨물고 오늘도 출근을 한다.
덜컹거리는 만원 지하철에 탑승해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지만, 핑크색 임신부 뱃지에도 불구하고 똥씹은 표정으로 임신부석을 차지한 할줌마는 못본 척 휴대전화로 국뽕유튜브를 시청 중이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건장했을 파딱은 이제 무거운 배를 부여잡고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문다. 혹시라도 넘어질까, 아이가 잘못되지는 않을까, 연신 걱정을 하다 갑자기 자신에게 의문이 들었다.
혐오스러운 성희롱 유동 브붕이 따위의 아이를 내가 왜 신경써야 하지? 왜 나는 그런 유동의 씨를 품고 이 고생을 해야 하지? 왜 내 삶을 바쳐야 하지? 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파딱은 원망스럽게 불러온 자신의 배를 바라보았다.
하얗게 질릴 정도로 깨문 아랫입술에서 비릿한 피맛이 느껴졌다.
"저기요"
누군가가 부르는 목소리 덕에 파딱은 비관적인 생각의 늪에서 퍼뜩 깨어났다.
회색 후드티, 딱 봐도 책가방 같아보이는 가방을 품에 안은 채 아이패드로 메가스터디를 틀어둔 평범한 학생이었다.
"앉으세요"
그 많은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선뜻 학생이 일어섰다.
자신의 배보다 무거워보이는 책가방을 보며 파딱이 쭈뼛쭈뼛 망설이자, 학생은 별 거 아니라는 듯 멋쩍어하며
"저 어차피 금방 내려서요"
라고 중얼거리고는 스르륵 문 쪽으로 걸어가 엉거주춤 난간에 기대었다.
그렇게 파딱은 고맙다는 말도 못한 채 자리에 앉아 갤을 키고 멍하니 휠체어를 지워나갔다.
-- 이번 역은 역삼, 역삼 역입니다. --
빙빙 돌아가는 2호선이 결국 파딱의 목적지에 다달았다.
미적미적 갤질을 하며 곧 열릴 문으로 가던 파딱이 고개를 들었다.
아까 전의 학생이 책가방을 끌어안은 채 기대어 아이패드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스크린도어가 열렸지만, 파딱은 학생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시선을 느낀 것인가, 학생도 파딱을 쳐다보았다.
학생은 그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꾸벅 목례를 하고 아이패드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파딱은 파도처럼 밀려나오는 직장인들에 휩쓸려 나왔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여전히 무거운 자신의 배에 손을 지그시 올려보았다.
"아이야, 너는 내가 꼭 훌륭한 사람으로 키워줄게.
너만큼은 절대 11점퀘프로인덱컨팬박스라이트36개가 되지 않도록,
꼭 저 착한 학생처럼 자랄 수 있게 해줄게. "
파딱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아침 햇살이 역의 출구로 쏟아져 들어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제각각의 이유로 삶의 챗바퀴를 돌리고 있었다.
파딱은 한걸음 한걸음, 계단을 전부 올라왔다.
선선한 가을 바람이 파딱의 머리카락을 쓸어내고 지나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