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도 아시듯이... 아드님이 너무 책만 읽고 이어폰이나 꼽고 있으니까 선임들도 좀 그래서 그랬나봐요 허허]
아버지는 사건 발생 당일, 아무 말 없이 교장과의 통화 녹취록을 내게 건네줬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을 떠올린다 축구관람 겸 과자파티로 오타쿠들 끼리 모여있던 곳에,
반의 양아치 새끼가 "씹덕 새끼들 다 뒤져라" 하며 과자를 흩뿌리고 갔다
소심한 다른 오타쿠들은 금방 털어냈지만, 나는 다른 과자를 쥐고 그의 자리로 가서 똑같이 뒤통수에 과자를 짓이겨 비볐고
그러자 소란스럽게 싸움이 일어나서, 금방 진압되었지만 학폭위에서는 내가 가해자가 되어 있었다.
다른 오타쿠 친구들의 변호로 내 누명은 풀렸지만, 담임 선생님은 어머니를 부른 자리에서, 여전히 나를 나무랐다.
"너가 그렇게 오타쿠처럼 행동하니까 오타쿠라고 욕먹는거 아니야!"
"어디가서 맞을 일이 없어야 하는건 제 당연한 권리입니다."
담임은 불만족스러운 듯 대화를 끝냈고, 며칠 후 내 휴대폰을 압수했다.
"이건 당연한 학급의 규칙이다. 따르지 않을거면 학급을 나가라!"
"예 나갈게요. 지금 돌려줘요"
부모님과 교장이 와서 설득했지만 나는 더이상 학교를 다니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인력소나 상하차를 다니며, 인생의 밑바닥에서 알아서 썩어갔다.
그런 나를, 병역의 의무라는 것이 방구석에서 다시 끄집어 냈다.
군대라는 조직에서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힘썼더니, 대인기피랜다.
그러면 내 인생의 재밌는 점들을 얘기하니, 미친놈이랜다. 정신병원 가랜다.
어쩌라는거야. 니네들이 끄집어 냈잖아. 나도 너네 싫어, 너네는 날 싫어해, 그걸 나보고 뭐 어쩌라고 적당히 딴데 보고 살아
오라고 한거 니들이잖아. 내가 이력서 내고 내가 면접봤어? 내가 뽑아달래?!
다 포기했잖아!! 밑바닥 찍었잖아!! 끌고오든 쫒아내든 죽이든 맘대로 해!
"뭐 이새끼야? 뭐라그랬어 너 방금"
노인복지관 지하의 창고 겸 상담실, 테이블에서 마주앉은 사회복무 담당자가 상반신을 내민다.
"그럼 짜르면 되겟다고 했습니다."
그는 허탈한 듯 숨을 뱉으며, 다시 자리에 앉는다
"아니요 ㅇㅇㅇ씨, 당신 이건 국가가 준 의무야 알아? 해야 되는거라고ㅡ!"
"그래서 아침부터 이렇게 와있지 않습니까?"
"와있기만 하면 다야?! 지금 노인분들이 너때문에 민원 매일 넣잖아. 최소한의 예의라는게 있잖아!"
"제가 예의 없는걸 어떡합니까"
"여기서 일할거면 예의를 갖춰야 된다고 몇번을 말해!"
"그럼 면접봐서 월급 주고 예의 있는 직원 뽑으시고, 당신네가 예의 없는 놈 끌고 온걸 제가 어쩝니까"
"끌고 와?! 내가 너 강제로 끌고 왔어?! 공익월급 받고 일하는거잖아!"
"하!ㅋㅋ 그럼 이번달 안 주고 짜르면 되겟네"
"야이 씨발새끼야 나랑 장난해?! 장난하러 왔어 지금?!"
"담당자님, 여기서 욕만 먹을거면 그만 올라가 보겟습니다"
"가! 가 이 씹새끼야 가! 어휴..."
생각해 보면 여름의 첫 날부터 순탄치 않았다.
"저는 노인한테 손 대는 일은 못합니다. 학대로 고소당할 뻔해서"
내가 배치된 진료부 아주머니는 뒤집어졌다. "너 그럴거면 여기 왜 왔어?"
"제가 왔습니까?"
결국 내 부서는 도시락 포장 부서로 옮겨 갔지만, 얼마 가지 못했다.
첫 날 출근부터 어떤 뚱녀가 군기를 잡으려는데, 나는 출근하면서 다 못 본 매드가 있었다.
"뭐해요 출근했으면 빨리 일해요" 아직 시간은 8시 57분이었으니, 나는 매드에 집중하기 위해 다른 쪽 이어폰도 꼽자
"대답 안해요?! 이 공익 뭐야?!" 하면서 그 뚱녀는 내 옆까지 다가와 눈을 마주치려 하며 말 그대로 쿵쾅대기 시작했다.
매드가 다 끝났을 때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곧 남직원이 와서 " 너 방금 그사람 누군지 알아?! 여기 팀장이야 팀장!!" 이라며 나무라는데
"모르는데요" 솔직하게 말하자. "너 그러면 여기서 안 받아준다?!" 라며 이상한 협박을 했다.
"그러세요" 라고 말하자. 나는 도시락 포장을 안 해도 되게 되었다.
그래서 일단 로비에 가만히 앉아 폰질이나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멍청해 보이는 할배가 와선 "너! 휴대폰 꺼!" 랜다
이 또한 당황스러워 할 말을 잃었더니, 옆에 있던 할머니까지 거들며 "그래 꺼.. 여기 일하러 온거잖아"라며 재촉한다
"휴대폰 끄는 일 하러 온 게 아니라서요." 라고 하고 계속 폰질을 하자. "뭬이야!" 하면서 날 격하게 노려보길래
"어우 치겟다" 하고 눈은 계속 폰을 응시했다. 그 할배는 할 짓도 없는지 나를 10분 가까이 노려보다가
결국은 자리를 떠나면서 근처 직원한테 화풀이를 하더라. 저렇게 할 일이 없으면 수명을 기부하면 좋을텐데
이 때 쯤 방금 말한 면담이 있었다. 나보고 예의를 갖추라고 했지만, 나는 이력서에 예의바르다고 쓴 적도 없었다.
-가을-
아무래도 노인이 많은곳에선 안정을 찾기 힘드니, 복지관을 탐사한 결과 비상계단 옥상 쪽에 버려진 소파가 있었다.
먼지를 좀 털어내자 그곳은 정말 고요하고 노을이 지는 힙한 장소였다. 그곳에서 며칠을 자고 있자니...
어느 날, 힙스터 노인이 올라왔다.
"거긴 내 자리야!" 어..... 하며 또한 할말을 잃자, "너 같은 사람이 아무나 앉을수 있는데가 아니라고! 비켜!!" 하며 발악하기 시작했다.
"손은 대지 마세요. 경찰 부릅니다." 라고 하자,
"뭬! 겨엉찰! 불러 새끼야!!!" 하면서 고함을 치는데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끼고 "조ㅡ탠다" 하면서 눈을 감자, 노랫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노래가 한 곡 끝나고 눈을 뜨자, 눈 앞에는 아무도 없었고
다만 중앙 로비 쪽에서 그 노인이 직원에게 고함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담당자가 올라와선 "너 그럴거면 집에 가! 가라고 이새끼야! 짐싸서 나가!" 라며 고함을 치길래
가도 되냐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빨리 꺼져!" 라길래, 된다고 알고 집에 갔더니 부재중 5통 왔다.
12시퇴근 개이득
날이 더울 땐 복지관 뒤뜰의 정자나 숲 속, 선선할 땐 옥상의 그늘진 곳에서 잠을 청했는데
모쪼록 알아낸 옥상 구석의 개꿀 명당에는, 절대 통상업무로는 드나들 일이 없는데 담당자가 와서 잠을 깨웠다.
가끔 담배를 피러 이상한데 오는 또다른 힙스터 노인이 공익이 자고 있다고 민원을 넣었다고...
어이가 없었다. 담당자는 나를 나무랐지만, 나는 그 노인 데려오면 사과하겟다고 했다.
"아니 나때문에 피해를 입었다매, 사과하게 얼굴이나 함 보자고요" 하니까 말렸다. 지옥에나 떨어져라
-겨울-
그렇게 꿀을 빨며 겨울이 왔다.
밖이 추우니 더이상 옥상이나 뒤뜰의 명소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고, 난방이 드는 휴게실에서 숙면을 취했는데
어느 날 백종원 아메리카노를 든 여직원 두명이 "우리 회의할거니까 나가주세요~" 하며 수다를 떨었다.
나는 "안 들을테니 걱정마요" 하고 계속 잠을 청했는데, "아니 우리가 기분 나쁘니까 나가달라고요" 라며 얼척없는 소리를 하기에
"그럼 집에 보내 주던지" 하고 계속 수면을 시도하자, 그 여직원들이 기분 나빠하며 나갔다.
그들은 그날부터 직원회의 등에 "험악한 공익이 휴게실에 있으니 기분나쁘다. 출입금지시켜달라" 라는 언플을 시도한 결과.
담당자가 나한테 "여직원들이 기분나빠하잖아" 라고 하길래,
"그럼 기분나쁨으로 5급 주던지" 라고 했다. 나보고 어쩌라고
그러자 담당자 미친놈이 아버지한테 전화해서 "여직원들이 아드님이 기분나쁘댑니다" 라고 전화를 때렸고. 아빠도 어이없어했다.
"뻘소리 하라고 아빠번호 줬습니까? 우리아빠가 니 친구야? 당신네 아버지 번호도 주쇼" 라고 하니까, 아버지 돌아가셨댄다.
그럼 내가 기분나빠서 업무에 지장이 있을 정도면 성추행이건 공무집행방해죄건 잡아가라고, 자수하겟다고 경찰에 전화했고
경찰이 와서 사정을 청취했지만, 피해를 호소하는 여직원이 나타나지 않아서 사건은 성립되지 않았다.
이후 직원들은 휴게실을 쓰는 일이 없었지만
다만 일부 심술궂은 직원이, 내가 자고 있는 휴게실 난방을 끄고 튀는 일이 많아졌다.
추워서 깨 봣는데 몇 번이고 난방이 꺼져 있는 기분은 참으로 좆같앴고. 담당자의 대답은 "어쩌라고ㅋㅋ" 뿐
그렇게 12월의 어느 날, 똑같이 추워서 잠에서 깬 나는 난방이 누군가에 의해 꺼진 걸 확인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앞으로 주말을 뺀 내 출근일수는 정확히 100일
그렇다면 이새끼들을 엿먹이는 100가지 일기를 쓰겟다고.
잠에서 깬 나는 복지관을 지하부터 최상층까지 돌며, 식당, 기사실, 진료실, 입원실, 요양실, 강의실, 직원실, 원장실과 로비
모든 난방을 한바퀴 다 끄고 휴게실로 돌아와 내 난방을 켰다.
당돌하게 미친짓을 하는 나를 많은 직원들이 담당자에게 신고했고.
담당자는 나를 뒤뜰로 불러서는
"아니 왜 건물 난방을 다 꺼요?"
"꺼도 되는줄 알았죠. 꺼도 되는거에요 안되는거에요?"
"지금 ㅇㅇ씨 난방 껐다고 다 끈거에요?"
"꺼도 되면 꺼도 되는거고 아니면 아닌거죠. 꺼도 되는거에요 안되는거에요?"
이런 언쟁은 오래 가지 않았다. 담당자와, 내가 좆될 줄 알고 구경 온 공익들은
그저 이를 꽉 물고 난방을 끄면 안된다고 결론지어 주었다.
그렇게 100가지 방법의 첫 줄을 쓴 직후, 놀랍게도 이 일기는 두번째 줄에서 멈추게 되었는데
그 다음 날, 내 복지관 공익 복무는 노인과 직원과 공익을 상대로 최후의 결전을 벌이고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