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게임을 하기엔 아직 해야할 공부가 많고... 그렇다고 공부도 손에 잡히지 않아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그저 막연히 화본역에 들어갔다
분명 잠수타는 보딱 한둘과, 여왕벌을 지키는 일벌들이 대부분이겟지
이런다고 뭐가 나아지긴 하는건가. 이러고 있어도 되는 때인가.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할 게 그것밖에 없었다.
『대한민국 군대들 지금까지 뭐했어 마 뭐했노이기ㅡ』
로딩이 끝나자 마자 나지막이 익숙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 소리에 이끌려 달려갔다.
어째서 화본역 퍼블릭에서 '그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있는것이지?
역사 건물에 들어가 노랫소리의 근원지를 찾은 순간
노랫소리의 주인은 Scale 0.3정도의 소녀였다.
여린 소녀의 목소리로 응.디시티를 부르고 있는 건, 분명 스테레오 믹스로 켠거겟지.
『심심하면 사람불러다가 뺑뺑 뺑뺑이....』
내가 왔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녀는 노래하는 것을 계속했다.
어째서 이런 화본역 퍼블릭같은 곳에서 혼자서?
발견한 것이 내가 아니라 다른 일반인이었다면, 그 가녀린 몸으로 험한 욕을 들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곳이 아니라도, 딱히 그럴 곳이 있던가?
그래, 어차피 우리에게 있을곳은 없으니까...
『북 따닥 따닥따닥』
마이크를 켠 나는 곧잘 추임새를 넣기 시작했다.
화본역 퍼블릭에서 혼자 응.디시티를 부르는 소녀를 봤다면 할 일은 정해져 있지.
너를 혼자서 노래하게 만들지 않아... 왜냐하면 외톨이는 너무 쓸쓸하니까...
『제가 언제 경제 살리겟다고 말이나 했습니까?』
내가 숨을 들이쉬었던 그 순간
『했으면 됬지 그지요?!』
어? 추임새를 넣은 것은 내가 아니었다.
옆에서 구경하던 사람은 이윽고 우리 대열에 합류해같이 응.디시티를 부르기 시작했다.
『북 따ㅡ닥 따닥 따닥』
혼자 응.디시티를 부르면 분탕이지만,
같이 응.디시티를 부르면 친구이고
그것이 세 명이 되면, 더이상 소수가 아닌 하나의 흐름이었다.
『야 여기 니가 좋아하는거 한다』
『와ㅡ! 세상에 와 ㅋㅋ』
이제 혼자도 아니고, 둘뿐도 아니었다.
우리는 우리들 만으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하나의 사회가 되었다.
흐름은 바람이 되고, 바람은 태풍이 되어 거세게 휘몰아쳤고
우리들은 모두 내가 만든 4방향 아바타로 합심한 뒤
화본역을 통째로 얻은 듯이 기고만장하게 흔들었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그래왔듯이 북딱거리며 서로 웃고 있었다.
열기가 식고 작별인사의 시간이 다가왔을때
우리는 모두가 서로에게 미련을 가지고 있었지만 다음을 기약하지 않은 채로,
우리가 서로 만날 때 그러했듯이, 헤어질때도 자연스럽게 다시 각자의 길을 갔다.
왜냐하면 오늘 우리를 만나게 한 이 영혼은, 분명히 우리를 가장 멋진 형태로 모이게 해 줄 것이니까.
그래, 이것이 VRChat이고. 이것이 「만남」일 것이다.
죽지 말자고. 서로간에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