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말해야 할까.
일단 그녀의 지칭을 D로 할게.
지금으로부터 한 1년 전 쯤, Vrchat이 막 한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을 때였어.
유튜브 영상만 보고 헤딩하듯 시작한 나는 잔뜩 신나있었지.
외국인들과 허물없는 친구가 되는 상상을 하면서 말이야.
하지만 하다보니 생각보다 별로더라.
외국인들하고 대화하기엔 내 외국어가 부족했고
다른 한국인들은 외국인들이랑 놀거나, 나랑 코드가 안 맞거나.
조금 대화가 이어지더라도 그 날 이후론 볼 수도 없었거나 하더라고.
그러다보니 조금이라도 짧은 만남을 즐기려고 오버하고 나대고 하는게 일상이 되어있었어.
하지만 그렇게 친추를 걸어도 그냥 이름 모으는 느낌뿐이었고.
하루 종일 켜놔도 정작 제대로 쓰는 시간은 얼마 안 되더라고.
무의미하게 접속하고 신사만을 들어가서 의자에 앉아있길 반복 할 뿐인 게임.
지치기 시작하더라.
그래서 이제 슬슬 접자고 생각했어.
즐길만큼 즐겼고, 할 것도 없으니 말이야.
그러려는데 D가 눈에 밟히더라고.
제자리에서 깡총깡총 뛰거나, 신사내부를 뛰어다니다가
대화하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는 유저.
누가봐도 뉴비였지.
그리고 왠지는 모르겠지만 D한테 말 걸고 싶더라고
어차피 이제 떠날 거 뉴비나 좀 도와줄까 싶었나봐.
그렇게 말 걸어서, 이모지도 이모트도 알려주고 실없는 이야기 하다가.
마이크 키는 법 장난으로 알려줬는데.
여자 목소리가 나오더라고.
나는 당황했어.
그 시절에는 남성 유저비가 더 높아서 당연히 남자인 줄 알았거든.
게다가 여자랑 대화하는 법도 까먹은 남고생이었으니.
그나마 다행인건 D가 굉장히 밝은 사람이었다는 거야.
더 다행인건 웃음포인트 같은 것도 같아서 빵빵 터졌지.
덕분에 대화가 끊기는 일없이 몇시간을 떠들었어.
그걸 계기로 인연이 되서, 서로 조인을 타기도 하는 친구가 됐어.
예쁜 맵도 구경하러다니고, 노래방에서 서로 듀엣도 하고, 서로의 고민상담도 해주고.
그러다보니 어느 새 브얄챗 접속하는 게 기대되는 내가 있더라고.
그렇게, 하나 둘 나와 D를 구심으로 사람이 모이기 시작하고
전보다 한층 더 시끌벅적해졌어.
나는 D와 있는 시간이 줄어들어서 아쉽긴 했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
근데 사람이 많이 모이니까 문제가 생기더라고.
불화는 A라는 여성 유저가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됐어.
귀여운 목소리로 순식간에 인기를 끌더라.
여동생이 생긴 기분이었지.
하지만 그 이후로 조금씩 그룹 분위기가 이상해지더라.
서로 친했던 녀석이 블락하고 아는 체도 안 하거나,
거친 말이 오고가는 상황이 나오기도 하고.
무엇보다 D가 은근히 소외되기 시작하더라.
말 거는 빈도가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D가 대화를 해도 단문으로 답하더라고.
점차 D는 말이 없어졌어.
어느 날, 디코로 갠멧이 왔어.
D랑 A가 말다툼을 하고 있다는 내용의 메시지가.
말리려고 급하게 접속하고보니 언성을 높여가며 싸우고 있더라
대충 얘기를 들어보니 A가 D한테 뭐라하고 있는 게 주고
D는 가만히 듣고 있거나 간간히 이야기하거나 하는게 전부였어.
그만 싸우라고 중재하는데 A가 그러더라, 오빠는 언제까지 거짓말쟁이 D년을 감쌀거냐고
당황했어.
그런 말이 나올거라곤 생각도 못했거든.
무엇보다 기억나는건,
A 말에 암묵적으로 동의한다는 그 분위기였어.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는데 여론은 모두 D가 나쁘다는 상황이 되어있더라.
A가 얘기할 땐 조용히 하고 D가 얘기하면 한 마디, 혹은 욕까지 하는 애도 있었어.
D와 꽤 오래 전부터 놀았던 애들은 침묵하고 있고.
그러니까 D가 거짓말쟁이 년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하나는 알겠더라.
내가 알던 친구들은 이제 없다는 거.
그래서 싸웠어.
난생 처음 여자한테 욕도 해봤어.
디코방도 나가고 프렌드도 삭제했어.
그러고 2일 쯤 후인가. D한테서 디코 메세지가 왔어.
할 말이 있다 하더라고.
2일만에 브얄챗에 접속해서, 인바이트를 받아서 타고 갔어.
학교 옥상맵이더라.
D가 너무 이쁘다고 맘에 들어하던 기억이 났어.
D에게 어색하게 인사를 했고, 우리 처음 만난 때부터 이야기를 쭉하다가 침묵했어.
그리고 D가 말을 꺼냈어.
이제 Vr챗을 접을 거라고.
사실 D는 약한 대인 공포증이 있었다고 했어.
그걸 이겨내기 위해서 이 게임을 시작했다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룹이 자기도 감당할 수 없이 커졌더라 하더라.
그러다보니 밝은 척 연기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그게 지쳤대.
나는 혼란스러웠어.
사실 그러지 않을까 생각은 했지만, 말로 듣는 건 다르더라.
말려야 할까? 몇 번을 생각했어. 그런거 잊어버리라고 농담할까도 했어.
고민 끝에 나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그렇게 다시 D를 볼 순 없었어.
나도 대학 생활때문에 바빠서 vrc는 건들지도 못했고.
계정도 삭제했거든.
마지막에 한 말을 후회하지는 않아.
과거에 붙잡혀있을 생각도 없어.
지금 내 옆에 소중한 친구들에게 집중하는 것도 벅차거든 ㅋㅋ
그래도 가끔은 마음이 허전하면 옛날이 떠오를 때가 있어.
D와 둘이서 돌아다니던 날들.
그 때는 가만히 서로의 곁에만 있어도 가슴이 꽉 찬 기분이었는데.
정말 아무것도 필요없이 행복한 사이였는데.
정말,
행복한 사이...
도 체스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