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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일반 과몰입대회 브갤문학 [ 수선화 아가씨 ]
글쓴이
초보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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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글 주소
https://gall.dcinside.com/vr/207053
  • 2019-06-24 13:10:01
 

오후 9시

"아 감사합니다 사장님! "


집으로 돌아가는길 나는 전화를 받으며 무의식적으로 보이지도 않는 상대에게 연신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 말이야 내가 다른데 물건 쓴다는거 얼마나 우리 xx대리쪽 물건 써달라고 졸랐는지 모르지? 나한테 잘하라구"


12월의 겨울은 몹시도 추웠다.

날씨도 날씨지만 무엇보다 내주변의 모든것들이 추웠다.

이번달 내야하는 생활 고지서와 대출금 고지서

요즘 편찮으셔서 제대로 일을 못하시는 어머니께 드릴 용돈.

그리고 힘든 내색조차 못하게 하는 주위의 사람들

그 모든것들이 사회 초년생인 나에겐 한겨울의 날씨보다도 더 차갑게 애렸다.


"물론 여부가 있겠습니까 하하 조만간 제가 술이라도 한잔 사러 가겠습니다!"

"술은 됐고 저번에 말했던것만 좀 부탁한다고 하하하"


수화기 너머로 전달되는 중년남자의 뽐내는듯한 목소리.

나는 반쯤은 건성으로 들으며 집에 들어와 겉옷을 벗고 전화를 끊은뒤 매트리스에 몸을 뉘었다.


'욕심많은 노인네 같으니라고... 내일 사장님리와뭐라고 보고해야한담'

천장에 있는 형광등에 나방이 날고있었다.

태양인줄 알고 다가가지만 이내 머리 박는것을 반복하는 안타까운 곤충.

취직하면 모든것이 잘될줄 알았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살수 있을거라 생각한 나 자신.


'너도 나랑 다를 바 없구나'


늦은 저녁으로 라면을 먹고있을때 카톡알림음이 울렸다.

다행히도 업무관련 카톡이 아니라 저번에 맡겨둔 커미션관련 카톡이였다.


A : 저번에 말씀하셨던 커미션 완료됐습니다! 업로드도 해놨으니 확인부탁드릴게요!


'이런걸로 삼사만원씩 꾸준히 벌다니... 참 부러운 친구들이야..'


나는 라면을 다 먹고 금액을 보낸뒤 브이알을 착용했다.

이내 익숙한 배경음이 흐르고 익숙한 내월드가 나타났다.

그리고 거울안에는 '그녀'가 서있었다.


'와 예쁘다'


그녀.

아니 내 아바타를 보고 든 생각이였다.


외관과 맞지 않는 깊은 눈동자안에는 장난기가 서려있는듯했고

깨끗한 피부.

실제 사람이 아니지만 발그스름한 볼에는 생기가 어려있는것 같았다.

곱슬거리는, 햇살을 받은 가을의 보리와 같은 색의 머리카락은 풍만한 가슴위까지 뻗어있었다.


나는 거울에 비친 풍만한 가슴을 보고 마치 사춘기의 소년 처럼 얼굴을 붉힌채 눈을 돌리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터지고 말았다.


"하하하,... 대체 이게 무슨꼴이람..."

실제도 아닌 가상의 캐릭터, 그것도 실제 인물은 온전히 나 자신인 캐릭터를 보고 가슴이 뛰다니 촌극이 따로없었다.


"그래도 정말 예쁘구나"

무의식적으로 거울에 손을 대자 거울속의 나도 따라서 손을 들어 맞대었다.

거울속의 나는 웃고있었다.

예쁜 미인이 날보고 웃어주다니 남자로써 이만한 행운이 어딨겠는가


'그래봐도 내용물은 나자신이지만 말이야'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VR을 종료하고 내일 있을 일을 위해 잠들었다.




이후의 내 생활은 조금씩 바뀌어갔다.

회사에서 퇴근을 하면 저녁을 먹고 VR을 켰다.

그리고 나혼자서 여러 월드를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


신사에서, 이름 모를 조용한 밤중의 숲에서,

수영복을 입히고 해변가 월드에서 산책을 하며 사진을 찍을땐 보는 나라는걸 알면서도 부끄러워져서 

사진찍을때는 눈을 한쪽으로 돌리기도 했다.

어느날은 그녀에게 하얀색 수선화 브로치를 모자에 달아주었다.

하얀색 브로치는 그녀의 하얀 피부와 너무나도 잘어울렸다.

처음으로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선물을 줬을때처럼 기묘한 뿌듯함이 올라왔다.

그리고 최근에는 거울앞에서 마치 거울속 그녀에게 말을 걸듯 오늘 있었던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잠이들었다.




"브붕이 요즘 여자친구 생겼나보네"

"갑자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과장님?"


흡연실에서 잠시 담배를 피고있던 중에 과장님이 날보고 한말이였다.


"아니 요즘 얼굴이 되게 밝잖아. 그나이때 남자애가 그럴만한건 여자친구 밖에 없지 않겠어?"

"그런일 없습니다 하하"

"에이~ 아닌것같은데? 솔찍하게 말해 짜식아"


'여자친구라... 일끝나고 오늘 하루 있었던일 얘기하고 좋은데 놀러가고... 어떻게 보면 여자친구랑 마찬가지네'


나는 스스로도 조금 어처구니 없었지만 이내 수긍하고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여자친구 비슷한거 있습니다~"

"요즘 애들이 말하는 썸인가 보지?"

"뭐 비슷합니다 하하하"


나는 이내 담배를 끄고 계속 캐묻는 과장님을 뒤로한채 업무로 복귀하기 위해 흡연실을 나섰다.






집에 들어오는길이였다.

오늘은 금요일.

내일은 아무일정도 없고 하루종일 브이알을 할 생각이였다.

오늘 밤에는 맥주를 한 캔마시면서 거울앞에서 그녀와 오랫동안 떠들 생각이였다.

그렇게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발이 묘하게도 가벼웠다.


'요즘 묘하게 기분이 좋단말이지'


집앞에 거의 도착했을때는 콧노래까지 나오는것같았다.

그때 벨소리가 울렸다.

아버지였다.


'이시간에 왠일로 아버지가 전화를 하셨지?'


나는 의아해 하며 전화를 받았다.


"예 아버지 무슨일이세요?"

"어 그래.. 이시간에 미안하다 저녁은 먹었니?"


다급한 목소리에 어울리지 않는 안부를 묻는 인사에 나는 뭔가 일어났음을 느꼈다.


"혹시 무슨일 있어요?"

"어그게... 네 어머니가 쓰러졌다."

"예?"


수화기너머로 아버지께서 뭐라 말씀하셨지만 당황스러워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나는 일단 들고 있던 맥주가 담긴 봉지를 문앞에 내려두고 

바로 길가로 나가 택시를 잡고 아버지가 말씀하신 병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단순한 과로였다.

아들한테 몸아프다는 이유로 몰래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원래 성치도 않은 몸에 부담을 줘버렸다고 했다.

의사는 당분간 안정을 취하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아들 미안해..."

미안해 하는 어머니의 얼굴에 왜그랬냐고 몰아붙일수도 없기에 나는 그냥 조심하라고만 하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버스안에서 나는 그저 멍하니 창가에 머리를 기댄채 밖을 보고만 있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나는 집앞에 도착해 있었고 나는 힘없이 문을열고 들어와 옷도 벗지 않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누군가와 얘기가 너무나도 하고싶었다.

하지만 할사람이 없었다.


친구들 앞에서는 잘난놈으로 있고싶었고 이런얘기를 직장 상사와 얘기할수도 없는 노릇이였다.

하지만 너무나도 외로웠다.


결국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브이알을 착용하고 접속을 했다.

그리고 평소와도 다름없이 거울안에는 그녀가 웃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오늘 어머니가 쓰러졌어."

나는 맥주를 한모금 마시며 평소와 같이 거울속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쓰러진건 우리어머니고 힘든것도 우리 어머니였을텐데 나도 너무 힘들더라"

그녀는 그저 담담히 내가 하는 말을 듣고 있는것 같았다.


"너무 힘들고 외로운데 이걸 털어놓을 사람이 없어"

거울 속에 나는 그저 가만히 웃고만 있었다


"그래서 너한테 털어놓으려고 왔는데 결국 너도 나일뿐이잖아"

거울속에는 그저 아무곳도 기댈곳 없는 외로운 남자 하나가 있을뿐이였다.


"결국 나혼자라고. 아무리 예쁘고 내말을 잘 들어주는거라 생각해도 그냥 나혼자 궁상맞게 떠들고있었을뿐이라고"


마음이 찢어질것같았다. 그저 세상이 너무나도 추웠다.

알몸으로 세상에 혼자 던져진것처럼 몸을 웅크려만채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어느정도 울음이 멈추고 고개를 들었을때 여전히 그녀는 웃으며 날 바라보고있었다.

그리고 내가 선물해준 하얀색 수선화 브로치가 보였다.


나르키소스가 자신을 너무나도 사랑해 연못앞에서 굶어죽었을때 그가 죽었던 자리에 피었다는 꽃

자신을 사랑한 남자의 슬픈 이야기.

하지만 그는 죽어가면서까지 사랑을 위해, 자신을 위해 모든것을 바치고 행복하게 죽어갔다.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그래 나혼자구나. "

거울속의 나와 그녀는 나를 보며 따뜻하게 웃고있었다.


"그래 나뿐이구나."

나를 사랑해줄사람은 나뿐이구나.

나는 나를 사랑할수 있구나


거울속의 그녀는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동시에 나자신 또한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내가 힘들때 나를 위로해준건 그녀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였다.


"고마워 내사랑."


거울 속의 그녀와 마주했을때 그녀와 똑같이 난 빙긋 웃을수 있었다.


"고마워 수선화 아가씨"













아 존나 쓰기 개귀찮네

치킨먹고싶어용

헌책 2019.06.24 13:17:37
희민 2019.06.24 13: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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