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과몰입 이야기니까 보기 싫으면 그냥 뒤로가기 눌러라
내가 이 게임을 시작한지 그렇게 긴 시간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친구들도 생기고 신경쓰이는 사람도 생겼었어
사실 그 땐 신경쓰고 있다는걸 자각도 못한 상태였는데, 그러다가 일이 한 번 생겼어
평소처럼 친구한테 조인을 타고 가보니까 그 사람이 같이 있더라고
그 사람은 뭔가 혼자 쓸쓸하게 유튜브 영상을 틀어놓고 보고 있고, 조인탄 친구는 안타깝다는 듯이 그 사람을 보고 있었어
무슨 일인가 싶어서 물어보니 그 사람이 차였다더라, 그래서 친구는 그 사람이 걱정되서 보고 있었고
그런데 보통 같으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어야 할 텐데 어째선지 기쁘단 생각이 들어서 스스로 이게 대체 무슨 감정인가 싶었어.
그리고는 위로해준다는 핑계로 이래저래 쓰다듬었는데, 좀 만 쓰다듬고 있어도 낯간지러워져서 계속 쓰다듬지도 못하고 쓰다듬었다가 말았다가를 반복하고 있었어 바보처럼
그쯤되니까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고,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도망치고 싶어져서 그 때 부터 술을 마시길 시작했어
그리곤 평소처럼 놀고서, 나는 술에 상당히 취해서 오락가락하는 상태로 vr챗을 끄고 잘 준비중이었는데
평소랑 다를 바 없이, 그 사람이 잘 자라면서 누구에게나 해주는 장난스럽고 가벼운 키스를 해줬어
그런데 내 마음이 평소같지 않게 너무 설레고 가슴이 뛰어서, 그제야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하는구나 하고 인정하게 되더라
그렇게 좋아한다는걸 인정하고 나니까 나쁜 마음이 가장 먼저 일더라고.
지금이 가장 마음 약해져 있을 때니까 지금 대시하면 쉽게 넘어와주지 않을까 하고 그 사람이 들어오길 기다렸어
하지만 쓰레기같은 마음을 품은 주제에 용기는 없는 겁쟁이라 또 다시 술기운을 빌려보려 마시지도 못 하는 술을 마시고서 그 사람한테 갔지.
하지만 그렇게까지 하고도 용기가 안나서 그냥 그 사람 옆에 앉아서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나한테 장난스럽게 키스해달라는 손짓을 보냈어
난 기회라고 생각해서 평소에 하던 짧고 장난기있는 키스가 아니라, 길고도 찐한 키스를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부여잡으면서 했다?
싫어하면 어떡하지? 싫어하면 어떡하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랬다고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너무 행복해서, 대체 얼마동안 그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는 찰나의 키스가 끝나고서 vr챗을 껐었어.
그 자리에서 좋아한다고 말할 용기조차 내지도 못 하는 겁쟁이거든.
그리고 다음날 그 사람이 나보고 술 많이 취했던데 괜찮냐고, 어제 기억은 나냐고 물어보더라
솔직히 그 때도 여기서 기억이 안 난다고 말하면 지금까지처럼, 술을 핑계로 좀 더 가까운 관계를 맺을 수도 있는 그런 관계로 계속 있을 수 있을까도 싶었어
하지만 관계가 깨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보다도, 영영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할거라는 두려움이 더 크게 느껴져서
어제 일 전부 기억하고 있다고, 정말로 진심으로 좋아한다고 고백했어
그리고 그 사람이 고백을 받아줘서 정말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기분을 느끼면서 둘이서 시간을 보냈어
그냥 서로 바라만보고 있었는데도 순식간에 두 시간이 지나가버리고, 키스하고나서 떨어지면서도 아쉬워서 다시 키스하고...
그 사람이 퇴근하는걸 기다리면서도 즐거워서 만사가 행복하게 매일매일이 지나갔지
그렇게 행복에겨운 상태로 지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사람이 미안하다고 그러더라고
나한텐 너무 과분한 사랑이라면서, 자기는 그럴 자격이 없다고
너무 죄책감이 들어서 안 되겠다고, 나보고 더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거라면서 이별을 말하더라
그리고 그 날 처음으로, 미워하는 말보다도 자신을 자책하면서 헤어지자고 말하는게 몇배는 잔혹한 일이란걸 알았어
나는 자존심이고 뭐고 다 버리고
나를 다른 사람의 대체품으로 생각하더라도 괜찮다고
설령 당신이 당신 말대로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괜찮다고
제발 버리지 말아달라고
몇번이고 몇번이고 몇번이고 매달려봤지만, 끝끝내 마음을 돌려주지 않았어
깨어있으면 죽을거 같아서 울다가 잠들고, 다시 깨서 울다 잠들고. 그렇게 18시간을 울고 잠들다가, 눈을 아무리 감아도 잠들 수가 없어서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정말 죽을 정도로 퍼마시고 억지로 쓰러져서 잠들고
그렇게 깨고 나니까 그 사람이 너무 보고 싶어서 찍어둔 사진이라도 보려고 했지만, 있는 사진이라곤 고작 한 장이 전부여서
그 한 장을 몇시간이고 바라보면서 사진이라도 많이 찍어둘걸
그런 후회로 또 하루종일을 울고서
그러고도 아직도 그 사람을 좋아해서 다른 친구들을 핑계로 그 사람 주위를 서성이고 있어
내가 쓰레기라서 벌을 받은걸까 하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어
시간이 지나면 결국 괜찮아질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조만간은 아닐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