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하게 손을 움직였다. 그리고 다시 손을 내려놓았다. 아무래도 희끄무레하게 보이는 화면이 제대로 초점이 맞지 않은 듯 했다. 컨트롤러를 내려놓기 위해서 허공을 더듬었다. 책상, 단단한 책상에 충돌하지 않게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러고 나서야 무거운 VR을 바로 잡았다. 그래도 여전히 초점이 맞지 않는 듯이 흐리게 보인다. 아무리 조절해도 흐리다. 불안감이 몰려왔다. 비싸게 주고 산 VR 기계 분명히 아무것도 알아보지 않고 할부로 충동구매를 했었다. 하지만 막상 써보면 신세계를 맛볼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남아 있었다. 보이는건 흐린 화면, 어쩐지 눈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고 속도 울렁인다. 편히 쉬어야 하는 방에서 엉거주춤 서있는 내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불편하기가 짝이 없다.
'VRC 그거 해보지 그래?'
VR에 대한 불만을 아무 곳에나 토로하던 중에 친구가 대답했다. 막상 기기를 샀지만 할 만한 게임이 없었고, 중고거래로 되파는 건 너무 귀찮다. 방을 전선으로 어지럽히는 것도 정신 사납고 싫다. 이대로 장농에 처박아 버리려던 참이다.
소문은 들어 본 적 있으나…. 그건 단순히 채팅을 할 뿐인 프로그램 아닌가. 어떻게 해야 채팅 뒤에 게임이 붙을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고 인정도 하기 싫다. 목적도 없이 모르는 사람이랑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떠들 수 있는 건 바보들이나 할 수 있는 거다.
하지만 정말로 대안이 없었다. 아무리 스팀을 뒤져봐도 만들다 만 것으로 보이는 게임 뿐. 그런 게임을 굳이 브이알을 끼고 할 가치가 없었다. 안 봐도 뻔하다. 잠깐 건들다가 아 이거 신기하네 하고 두 번 다시 켜보지 않을 그런 게임이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VRC를 해보기로 했다.
그 결과 이 낯선 방안에 서있게 된 것이다.
방금 전의 신비한 음악은 어디로 가고, 여긴 너무 고요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나는 또 하릴없이 내 손을 쳐다본다. 내 손인데 내 손이 아니다. 움직인다. 무언가 클릭 할 수 있어 방아쇠를 누르자 거울이 뜬다. 내 모습이 보인다. 어색하고 당황스럽고 이상한 감각이 몰려온다. 거울 앞에서 움직여본다. 확실히 나다. 이건 내 모습이다. 거울 실험을 하는 동물 마냥 거울 앞에서 자신을 시험했다. 조금은 신기했지만 아직 멀었다. 무작정 아무거나 메뉴를 열어 눌러보고, 월드 목록을 본다. 사람이 가장 많은 곳으로 가보기로 했다.
그렇게 한 참을 헤매였지만 사람을 만날 수가 없었다. 분명 300명 이상이나 있는 곳인데 어째서 한 명, 두 명 그것도 금방 사라지거나 잠수타거나 반응하지 않았다. 한참을 낯선 공간을 오가면서 고독하게 돌아다니기만 했다. 낯선 곳에 혼자 버려져 있는 기분이 속을 울렁이게 만들었다. 신비한 풍경을 따라서 움직이고 혼자서 또 걷는다. 여전히 조작이 불편해서 답답하다. 어떤 곳엔 사람이 많이 있기도 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같은 방향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두려움을 느끼고 다른 곳으로 가기도 했다…….
이것이 게임일까? 모르겠다. 난 이질적이고 기괴한 공간만을 이유 없이 돌아다니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