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6시 퇴근 시간.
하지만 남은 일이 너무 많다.
이 사람과 너무나 놀고 싶지만, 집에 가면 11시를 넘길 거 같다.
뭔가 늦는다고 말해줘야 할 거만 같았다.
화장실로 가 휴대폰으로 디코를 키고 메시지를 보내려고 하는데,
`내가 뭔데 보내는 거지?`
`하지만 어제도 늦게까지 놀았는걸..`
`이 사람이 날 기다리지도 않았는데 날 기다리지 말라고 하면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어제 고장 나서 부르지 못한 노래방, 고치는 법을 알아왔는걸..`
`이 사람에겐 내가 귀찮은 건 아닐까?`
`..`
지금껏 쓴 문자를 전부 지웠다.
화장실 거울에 비치는 아랫입술을 깨문 모호한 표정을 짓던 날 보면서,
더러운 휴대폰을 만진 손을 깨끗이 씻었다.
하지만 무슨 감정이 앞선 것인지는 몰라도 손에 묻은 물기가 사라지기도 전에 다급히 문자를 보냈다.
그런데도 잡생각은 계속되어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못 한 채 시간은 바쁘게 지나갔다.
오후 8시 저녁 시간.
간단히 먹었다.
일 그만하고 집에 가고 싶었다.
마침, 내 앞에 거울이 있어서 거울 속 나와 대화하며 즐겁게 식사했다.
이유를 모르겠으나 거울 속 나는 꽤 재밌는 사람이다.
오후 9시 근무 중.
저녁을 잘못 먹었나 보다.
체했다.
약이라도 있으면 좋겠으나, 날 반기는 건 커피뿐이었다.
오늘은 믹스커피 8포를 마셨다.
그런데도 졸음이 가시지 않는다.
카페인이 몸에 들어오니 잡생각이 미치기 시작했다.
`아 그만하고 싶다`
`돈 많이 벌어서 VR 사야지!`
`ㅎㅎㅋㅎ`
`거울 앞에만 쓰면 왜 자꾸 웃음이 나올까?`
`쟝소=130`
`사람을 만나는 것만큼 어려운 건 없는 거 같다.`
`대인관계는 너무 어려워.`
`내 감정도 너무 어려워.`
`감정? 오늘 먹은 감자 맛있었는데.`
`손이 많이 가는 스타일은 별론데….- 새우깡`
`저녁엔 외국인들이 많이 보이네`
`중국인, 러시아인 이러는 것이 제일 많이 보이는 듯`
`려차`
`나도 돈 많이 벌고 싶다.`
`돈이 많아도 행복하지 않다는 사람은 배부른 아싸다.`
`아싸도 모이면 인싸인가? 아니면 그냥 아싸집단인가?`
`나는 혼자가 편해`
`아 이 사람 보고 싶다.`
`물론 VRChat에서`
`너무 야해!`
`ㅎㅎㅎㅋ 나랑 생각이 똑같네 ㅎㅋㅋㅎㅎ`
`어벤져스 엔드게임 그거 최창식이 범인임`
`ㅁㅊ 반전의 반전`
`¼전`
`어제 수학 공부하던 동생의 문제를 봤는데 모르겠더라`
`분명 배운 거 같은데`
`이래 봬도 전교 1등 있는 반에서 2등 했던 걸?`
`전교 1등은 너무 넘사벽이야`
`사벽사벽`
`쿵쿵쾅`
`꾸륵꾸륵`
`아 배 아파`
`왜 사람들은 아픈 소리를 좋아하는 거지?`
`아파 죽으려고 하니깐 좋아 죽으려고 하네`
`어째서?`
"아. 커피 그만 마셔야지." ㅎ
오후 9시 반.
아직 일은 남았지만, 그냥 나왔다.
비가 오고 있었다.
우산을 잊고 안 들고 와 그냥 맞으며 갔다.
집에 가기 전 편의점에 들렸다.
여기 편의점 사장님과는 술사려 자주 와서 친해졌다.
"KGB 왜 없어요? ㅠㅠ"
"저기 있는데?"
"저기 저거 캔으로 있어 4개에 만원"
"오"
"저번에 병은 3개에 만원이었잖아."
"저게 더 이득이야 ㅋㅋ"
"아하"
편의점 사장님과의 대화는 VRChat을 하는 거 같아 편하다.
서로 목표와 목적이 있어 대화가 수월하고,
돈만 주고 물건만 사면 그냥 나가면 되기 때문이다.
술을 사고 집에 왔다.
머리부터 신발 끝까지 다 졌었다. 편의점에서 우산이라도 살걸.
시계를 보니 아직 10시도 안 됐다.
아직 이 사람과 VRChat 할 시간이 있다.
빨리 씻고 의자에 앉아, 디코를 키고, 그 사람의 프로필을 눌려 대화 창을 열고...
...
...
...
의자에 앉은 지 30분째,
채팅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다.
`뭐라고 써야 하지?`
행여나 『 채팅 중…. 』 이라는 디스코드 특유의 시스템이라도 봐줬으면 하여,
채팅을 지웠어도 『 . 』 하나 찍어두고 생각하고 있었다.
도저히 어떻게 보내야 할지 1도 모르겠다.
그 많은 잡생각은 시도 때도 없이 나불거리면서 이런 중요한 순간엔 전부 죽은 듯 너무 조용하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이제 일이 끝났다는 듯 채팅을 보냈다.
`나쁜 말`
`나쁜 말`
`난 왜 이렇게 멍청할까`
이 사람은 답장으로 웃었다.
그게 전부다.
`나쁜 말 난 나쁜 말 왜 나쁜 말 이렇게 나쁜 말 멍청할까.`
VRChat을 켜고 그냥 시간만 보낸다.
소셜창 한두 번 껐다 켰다 반복하다가, 디코 확인 한번 하고, 혹시나 초대장 왔는지 확인하고, 다시 소셜창 확인하고….
오늘은 이 사람이 오지 않나 보다.
내가 못 온다고 해놓고 이 사람이 안 들어 오니깐 왜 이렇게 슬픈 감정이 들지.
모르겠다. 이 사람과 놀았던 영상을 되돌아보며 사온 술을 마시고 있다.
오늘 지각에 일도 제대로 안 끝내고 왔으니,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
그래도 살면서 처음으로 같은 사람과 4일 연속으로 놀았다.
오늘을 기점으로 다신 못 보더라도 영상은 남으니 돌려봐야겠다.
취미가 유튜브라 참 다행이다.
참고로 우리 노는 거 유튜브에 편집해서 올려도 되느냐고 물었을 때,
" 흠 "
이 한마디 답장 왔을 때 뭔가 무너지는 감정이었으나
가능하다고 자기도 좋다고 했을 땐 입꼬리가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