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관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고, 내가 어떻게 생각했으며 어떻게 행동했는지 나는 말 하고 싶다.
나는 그 그룹을 깔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든 내용은 내 주관이며 내 생각이다. 나는 누군가를 지지할 생각이 전혀없으며, 단지 그때 내가 어떠한 생각으로 게임을 진행했는지 말하고 싶다
또한 인게임에 진짜 그런 사람이 있냐고 묻는 사람들이 없잖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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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글을 그룹편이라고 적고 글을 적고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룹편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좀 더 명확하게 말하면 2018년 2월 27일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있었던 내가 속해있었던 그룹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4부의 목적은 좀더 명확하게 이야기 하고싶다.
3월
2018년은 나에게 최악의 한해였다, 나는 나 스스로 늘 항상 생각했다. 나는 실패자라고.
나는 실패를 거듭했고, 정신적으로 불안한적이 있었다. 그래서 유투브 영상을 보던 도중, 외국친구들을 만날수있는 게임이 있다고 해서 선택한것이 브알챗이었다.
게임을 시작했지만 난 할 수 있는게 없었다. 내가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인가? 물론 고등학교까지 13년간 영어를 배워왔겟지, 하지만 말하는 방법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내가 할수있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알아서 월드를 돌아다니고, 대충 유투브에서 보던대로 사람을 만나는것일뿐이었다.
한국어도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인이라는 걸 들키는 걸 부끄러워하기 보다는, 주변에서 한국어가 들리지 않아 여기서 한국어를 말하게된다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고정관념처럼, 인종차별을 당하지 않을까? 그러한 의미에서 한국어는 말하지 않았다, 한국어를 내 스스로 부끄럽고 무서워한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멍청한일이 딱이없다, 언어를 가지고 인종차별을 하는건 말이 안되는데 말이다.
나는 케모노프렌즈 아바타에 꽂혔다. 그는 바텐더를 하고있었다, 그가 가는곳을 말없이 따라가면서 지켜만 보고잇었다. 브알챗에서 하는 것은 말없이
Quite Unknown 아바타를 사용하면서 바텐더의 주문을 받는 일이었다. 그렇게 내 첫 일주일은 가게된다.
나는 아침에 브알챗을 하고 점심에는 산책을 즐기고 사람을 관찰하는것을 즐겻다. 그 덕분인지, 시간대가 미국 친구들과 알맞게되었다.
미국인들은 친절했다. 내 머릿속에서 들어있는 그 악센트로, 말없이 따라다니는 나를 배려했다. 월드를 탐험하며, 질문도 쉬운걸로 해주고. 어떠한것인지 알려주며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은 나를 아이취급한것같았다. 하지만 그 아이취급이 기분나쁜 애새끼 취급이 아니라, 언어가 다른 사람을 위한 손짓을 통해 이야기하고.
때로는 클럽에 다니면서 이야기해줬다. 그렇게 만나는 친구들이 생기고, 그렇게 나는 말을 배워갔다. 그들이 나를 배려해준다면, 나도 그들을 배려해주는게 당연한 이치라고 느꼈기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영어를 배워서 행동했다. 말을 해야한다, 내 첫번째 목표였다.
어무렵 한달이 지낫다, 3월의 시계는 4월로 다가가고 있었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 미국친구들은 그룹을 만들어 활동하기 시작했다, 위스콘신에서 온 30살 아저씨의 인싸력때문이었을까? 3명이 같이다니던 사람들은 이제 15명이 넘었다. 그 중에는 한국인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불쌍히 퍼그에서 앉아서 노래부르는 영혼을 내가 찾았다. 유일한 고향의 언어였다. 퍼그에서 들리오는 영어와 스페인어 사이에, 한국인을 찾은것이다. 나는 그녀를 찾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술집을 전전하면서 노래나 불렀을테니까, 이제 한국인도 몇명 찾게되엇고 모이기 시작했다. 찾은곳은 재팬 타운이었다 나는 이제 이 고마운 미국친구들 곁에서
한국그룹에 소속되야한다고 느꼈다. 한국인은 한국인끼리 뭉쳐야하는 법. 그리 의심치 않았다.
한국인들끼리 모이기 시작했지만 막상 디스코드를 통해 모일 행동력을 가진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3월이 흘러가고 있었다. 우리는 브알챗에서 이야기 했다. 굳이 디스코드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브알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 하기도했고 재팬타운의 빌딩위에서 이야기하기도 했다, 일본어를 하던 사람들이 한국어를 하면서 대화했다. 한국어를 말하는데 두려움이 없어지기 시작한것이다. 한인끼리 모이자 마음이 편했다, 공감대를 이야기했다. 한국어로 마피아게임을 했다
한국인끼리 그림을 그리기도했다. 그렇게 시간은 별 일 없이 흘렀다. 사건사고도 없었다. 사람도 적었으니까, 당연한 이치 였다.
4월
이제 한국인들이 유입되기 시작한 그 4월이 되었다. 나는 우리 난민 끼리 라는 그룹에 초창기 맴버가 되었다. 친구 리스트에 있던 그 유투버도 떡상했다.
이 정도로 떡상하고 끝날줄 알았던 나는 경이로움을 느꼈다. 짧은 기간 만에 기하급수적으로 구독자가 늘어나고 조회수도 올라간 것이었다. 놀라웠다.
물론 이는 그의 이야기지 내 이야기는 아니니 생략하기로 한다, 우리 난민 끼리의 목적은 단순했다. 한국인을 위한 그룹을 만들고 한국인에게 아바타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치자, 물론 서로 같이 모여서 노가리도 까면서 놀면서 컨셉도하고 재미를 찾는 것이었다.
그게 우리 난민 끼리 였다, 이름은 매우 맘에 들었다, 북한의 사이트 우리민족끼리의 패러디 같았으나 그건 어찌되었던 상관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한국인들이 모이는 월드가 존재하지도 않아 일본인들 사이에 섞여서 난민들처럼 구석진데 앉아서 이야기하는 우리가 처량했다고 내 스스로 느꼈기 때문이다. 통칭 우난끼는 그렇게 만들어졌었다.
나는 신사에서 몇몇의 한국인을 찾아서 그룹을 형성했다. 그룹내부의 그룹, 설령 디스코드 방이 있어도 따로 노는애들끼리는 따로 놀았다. 디스코드는 그저 스크린샷을 공유하는 방이 되었다. 문제는 이 친목의 그룹이 활동이 전무한 것이었다.
그룹의 목적은 명확하지 않았다, 그저 길가다 한국인이 보이면 넣는 것이었다. 그래,, 무슨 느낌이었냐면, 납치와 같았다고 할 수 있겠다. 고속버스가 지나다니다가
한국어가 들리거나 한국어로 된 닉네임이 보이면 차를 세운디 처 넣어버린다음 가족으로 만드는 경향이 강했다.
문제는 여기서 야기된다.
사람을 가리지 않고 누구던지 넣어버려서, 흔히아는 네덕이 물갈이가 되지 않은 것이었다. 얼마나 심각했냐면, 말끝마다 냥을 붙이는 자. 자기가 말하고 괄호를 친 다음 자기 자신에게 뭐라고하는 자. 인게임에서 컨셉은 인게임에서 충분했을터인데, 디스코드에서 까지 그런 컨셉을 가진 사람들이 거름없이 들어 온 것이었다.
그렇게 우난끼 1기는 이러한 행태에 피곤함을 느낀 자와 함께 몇몇은 나가게 되었고, 다른 사람에게 인도된 것이었다.
나는 그런대로 괜찮았기에, 남는걸로 결정했다. 남아서 활동을 했다. 디스코드에서 가장많은 채팅을 친 사람이었다. 그렇게 4월은 별 사건이 없이 흘러가나 했다.
나는 아마 이때쯤 Sarma를 만났지만 개인적인 이야기보다 그룹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싶으니 패스하겠다.
5월
우리 난민 끼리는 별 문제 없는 그룹이었다. 나는 아이디어를 제공했고, 사람들은 만들었다. 능력이 있으면 섭외하려고 했다. 어디까지나 이는 내 관점이다.
내 관점으로 느끼기에, 크나큰 문제는 없었다. 여러 몇몇 이상한 말투를 쓰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디스코드에서 차단하면 그만이었으니까.
난 아바타를 만드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었다, 제공한것은 아이디어였고. 국제적인 게임에 한국을 남기고 싶었다. 한국을 알리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했었고.
유니티를 만지기 시작한것은 한참뒤에 이야기다.
5월달은 평화로웠다, 한국사람들이 더욱 더 늘어서 신사에서 포화상태를 이뤘지만, 난 이들이 부끄럽다고 느끼지 않았다. 물론 몇몇 몰상식한 한국인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쪽바리라고 말하며, 시비를 터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그렇게 신사는 일본인의 것에서
한국인의 것이 되었다. 나는 내 스스로 왜 한국인이 신사에 모여야하는가 좀 더 한국적인 월드에 모일수도 있었을텐데,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6월
나는 내 스스로 아직까지 우난끼 소속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내 주변에 크래셔를 가진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컨셉하면서 놀았다.
나는 6월 ~8월까지 브알챗을 많이 하진 않았다. 캐나다로 3개월동안 여행을 떠난시기였기때문이다. 때문에 이 시기동안 무슨 일이 생겼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정확한건 모른다.
8월
3개월간의 캐나다 생활은 끝이나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나는 캐나다에서 많은걸 느꼈다. 친척이 캐나다인이었기에 경비문제는 많이 나가진 않았지만,
사람들에게서 여유와 느긋함을 배웠고, 영어 실력은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어쩔수없었다, 일단 살기위해서는 말해야했고 혼자 여행할려면 어떻게든 말을 해야했다.
친구도 많이 사귀었다. 즐거웠었다.
자 8월달 사건사고는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없었다. 갤럼들이 듣길 원하는 KVCG이야기와 케모노 갱은 언제나오냐고?
9월-10월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vr&no=63966&exception_mode=recommend&s_type=search_all&s_keyword=%ED%98%B8%EC%A3%BC&page=1 외국그룹에서 만난친구에게 선물을 보냈다
내가 처음으로 KVCG와 접점이 생긴건 이때쯤이었다. 애초에 관심도 없었다. 평소에 이야기하는 친구에게 계속해서 졸라서, 한국군 아바타를 만들어달라고 설득했고, 그는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었다. 문제는 내가 미필이었기에 정보의 양이 부족했다. 군필인 사람에게 정보를 받는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바타를 만들수있고, 군필이 많으며, 정보제공을 받을수있는 곳을 만드는 생각도 했었다. 내가 그룹을 만들어 사람들을 초대해 아바타 정보를 만드는것.
하지만 난 그렇게 한국인과 인맥이 없었고, 알아바야 우리 난민 끼리 사람들 뿐이었다.
그렇게 해서 KVCG에 들어가 영어자문으로 활동했다. 짧은 기간 이었지만 나는 기억한다, 나는 비록 영어 자문으로 들어갔지만 그때의 내 기분을 형용할수 없었다.
하느님 맙소사... 차라리 한국어를 못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알 사람은 알것이다. 좆목의 좆목을 뛰어넘는 그룹이었다. 물론 난 외부인이기에 뭐라고 말 할수는 없었다. 서로를 물고빨고, 이게 어떠한 생각을 하면 가능한것이지, 내가 혐오스러운 것들이 넘쳐났다. 심지어 이상성욕은 이해할수가 없었다. 하느님 제발 그들을 구원하여 깨닫게 해줬으면...
채팅방의 역할은 몇개인지 셀수없이 많았다. 이해가 되지 않는게 넘쳐났다.
이게 역할이라고? 뭘하면 이런 역할을 가지는거지.
한 사람에게 역할태그가 몇개인거야
이 사람은 누구야
넌 누구야
하느님 제발 여기서 빠져나가게 해주세요
얜 또 뭐야?
아니 이건
되도록 빨리 끝내달라고 재촉했다, 더 이상 있고싶지 않았다. 명확한 비유를 하자면, 방에서 섹스하고있는데 거기에 내가 문열고 들어간 기분이었다.
난 1-2주동안 있었고, 한국군 아바타 - 예비군 해서 4개의 아바타가 완성되었고, 2개는 퍼블릭으로 돌렸다. 나머지 2개는 언젠가 퍼블릭으로 돌릴꺼라고 말하지만
그 날은 언제 오는지 난 확답하지 못하겠다.
KVCG에서 본 것들은 내 믿음을 확신하게 만들었다. 하느님 맙소사. 하지만 이들이 나쁘다고 비난하지 않는게 옳겠지, 겔에서 불탄건 시기 상조적 일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내부에서 마저도 저렇게 라인타고 물고 빨고 재끼는데 당연한게 아니겠는가?
마음에 안들지만 그들이 하는 일은 한국인으로써 지원해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다 개인만의 사정이 있는거겟지, 서로 외로운거겟지 생각하고 합리화하면서 넘겼다
11월-12월, 1월
내 친구가 해외 갱에 들어간 때를 난 이때쯤으로 상정한다, 명확한걸 모르기때문에, 이때라고 생각하고있다, 아바타를 만드는 실력이 늘었고
난 이때쯤 아바타를 만들기 시작했다, 물로 그 이전에도 아바타를 만들긴 했으나 그것은 매우 간단한 일이었다. 쉐이더를 변경하거나 애니메이션을 껐다키는 정도의 일이었고, 주 된일은 컨셉이었다. 해외 갱이야기하는데 번역가로 가서 일을 했다. 번역하는 일은 나의 즐거움이었다. 나는 이 일이 그렇게 커질 줄은 몰랐다.
그렇게 커질 줄은 몰랐다.
1월 공식적으로 케모노 갱이 창설되었다
지금부터 이야기는 매우 많다, 어디까지나 내 기준이며 내 관점이고 나는 이 일을 고백하고싶다.
나는 늘 항상 생각한다, 나 스스로도 위선자 같은 짓을 하고있는 것이며, 내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고싶지는 않다.
짜증나는 놈들을 크래셔로 잡는 힘이 생겼다고 착각했다. 여자한테 미쳐서 성희롱을 일 삼는자, 이케멘을 하는자, 명예황국신민, 시비를 먼저 거는자. 내 스스로 판단해 내 스스로 잡고다녔다.
12월부터 활동을 해왔지만 그리 유명하진 않았다. 말로만 갱이지, 해외 갱의 보호아래에서 활동하는 보잘것없는 갱이었다.
그 이전에도 Group gang, 이하 많은 갱들의 친구들이 있었지만, 직접적으로 갱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것은 처음이었다
한때는 살마가 나에게 조인을타다가, 갱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에게 크래쉬당해서 설명한 적도 있었다.
나는 할말이 없었다. 지금와서 나는 갱에서 활동했고, 심지어 내가 관리까지 했었다.
한국인들 사이에서 핵쟁이들이 넘쳐나고, 성희롱을 일삼고, 씹튜버를 보았고, 깨끗한 브알챗을 원했기에, 내가 하는 행동이 옳다고 생각했었다.
명예황국신민들이 없어지길 원했다. 이렇게 하나하나 없애고, 리스트를 만들고, 활동하면 없어지겠지.
쿨찐이가 브알챗에서 한창 장작을 넣어서 불태웠을때. 나는 분개했었다. 병신같은 커뮤니티는 맞는데, 굳이 거기에 적을 만드는 행위는 머리만 아픈일만 일어날꺼니까. 이미지를 좋게하려고 노력해 소통이 필요하다고 말한것은 내 의견이었다. 나는 생각이 짧았다. 내가 한 행위에, 크래쉬를 쓰면서 사람들에게 시비를 거는 갱이
좋은이미지를 아무리 가지려고 한들, 가질 수 없다고 깨달은건 그 다음의 일이었다.
규율과 규칙이없던 갱에, 규율과 규칙을 만들었다.
신사와 히로바 그리고 배럭에서 크래쉬를 쓰는 행위를 금했다.
말을 안듣는 사람들을 내보냈다
문제가 일어나면 중재할려고했다.
그렇게 사건은 잠잠해지고 넘어가는가 싶었다. 나는 케모노 갱이 유명해지지 않는걸 원했다. 지금와서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는 그때 나치와 같았다.
사람들을 판단하고 학살하고, 몇몇의 유저가 핵을쓰는 행위를 용인했다. 내가 무슨 권리로 사람을 판단하겠는가, 싶은생각이 지금 후회감과 든다.
덕분에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생겼다, 개의치 않았다. 나는 내가 옳은 일을 하고있다고 생각하고있었으니까.
여왕벌 놈들을 없애고, 이케멘들만 없애면 클린해질거라고 믿어, 이케멘 카페에서 일어난 크래쉬 남발을 용인했다. 물어보는 사람은 입을맞춰 묵인했다.
방향성없는 크래셔 가진 사람들 그룹에 나는 방향성을 명확히 제시했다.
씹튜버가 있다면 앞에서 알몸 아바타를 써라
그리고 마이크에 섹드립이 섞이도록 성적인 발언을 섞어서해라
그들이 유투브에 올릴때 편집을 존나 해야만 하도록
Marry77도 케모노 갱의 창설 맴버였다.
어찌보면 우린 그와 별 다를게 없는 사람들이었다.
단지 대상을 친구로 했다는 이유로 분노한것일뿐, 나는 손절을 많이 당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위험과 엮이지 않으려면 손절을 하는게 현명한 판단이니까. 그들을 비난하고싶지 않다.
갱이 질서를 찾고, 내부에서 문제가 없어지고 있을때. 나는 일련의 사건을 겪었다.
사칭들의 존재였다
나는 이 보잘것없는 갱을 사칭할거라고 상상도 못했다.
자기 자신이 케모노 갱임을 밝히고 사람들에게 크래쉬를 쏘고, 욕먹을거 같으면 난 케모노 갱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케모노 갱은 일기방패와 같은 역할을 했다, 전임정부와 같은 역할을 하게된거다. 뭐 문제가 생기면 "아 케모노 갱이구나"
가만히 아무일도 안해도 "저사람 케모노 갱이야 케모노갱이야!!! "라고 말하는 사람부터
한때는 프렌즈 플러스 방에서 잠수타 유투브를 보고있을때,
자기가 조인을 타놓고 패드립을 하고 도망치는 패드립 빌런부터 시작해
.
아바타 로딩하다가 무연의 이유로 팅겨놓고선, "아~ 여기 케모노 갱 있네~ " 하면서 선동을 하는 사람부터 시작해
나이대가 어린 중학생들이, 자기 자신들도 갱을 하겠다면서 갱을 만들고 되도않는 군대 놀이를 하고있는걸 보았고
갱 사칭 부터 시작해, 자기 자신이 케모노 갱과 알고있다며 사람을 협박하는 사람도 있었다
자기가 케모노 갱의 수장이라고 사람들에게 자랑하면서 다닌 사람도있었다.
내가 싫어하고 증오하는 여왕벌이, 갱 내부에서 생기고 난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했다
.
어차피 몇명안되는 그룹이었지만, 내가 원하는 방향에서 많이 틀어진것이었다.
브알챗에서 유명하면 사칭이 있을거라고 예상못한 내 실책이었고 내 잘못이었다
.
크래쉬를 가지고있으면 힘이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게다가 막상 권력을 갖고 있다보니 어디서 내 디스코드를 알아내서 와갖고
크래쉬있어요? 케모노 갱 들어가도되요?
핵 공유해주나요? 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거짓말 안하고 진짜 많았다.
다른 그룹과 마찰이 생겨서 알아보니까 나는 테러하고 케모노 갱의 이름을 댄 애들도 많았다
그냥 테러를 하고싶어서 테러한다음 욕하고 싶으니까 갱이름을 대는것이었다.
어린 애들이 갱을 따라하고, 내가 아무리 뭐라고 한들 사람들은 변하지 않았다. 이케멘인 사람은 계속해서 이케멘짓을했고, 여왕벌 짓을 한 사람은 계속해서 여왕벌짓을 했다.
사칭을 한 사람은 케모노 갱을 사칭하길관두고 다른 사람을 사칭하기 시작했다.
내 말을 듣지 않고 규칙을 준수하지 않은 사람들을 내쫓았지만, 그 사람들이 반성하고 변화하진 않았고, 다시 나가 자기들만의 갱을 만들고 거기서 활동을 계속했다.
즉 내보내도 사람은 변화지 않는다. 소속만 바뀔뿐.
이 글은 어디까지나 케모노 갱을 관리했던 내 시점에서 글을 쓰고있는 것이고
난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케모노 갱은 망했나 물어본다면 비교적 얌전한 사람들만 남았다.
상대적으로 남아서 아바타나 만들고 컨셉질이나 하면서 즐기고 싶은 사람만 남았다.
이 글을 읽고있는 케모노 갱 맴버에게 말하고 싶은게 있다면
너희들이 얼마나 조용히 갱에서 아바타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크래쉬를 안썼던간에.
우리가 누구였는지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
크래쉬도 갖고있지않고 조용히 아바타나 만들고 대화만 했던 사람은, 그래 억울할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넌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친구를 손절하던지, 블락하던지 간에, 그걸 갖고 친구에게 따지지 말아라.
그 친구는 현명하게 판단한 것이고, 다른 친구야 구할수있을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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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룹에 소속되어서 자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해 다른 사람들보고 뭐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게 있다면,
얼마나 자기가 보잘것없으면 브알챗에서 그룹속해있다고 그걸 자랑하나?
어디가서 말하지말라고 난 말하고싶다.
물론 말이야 할 수 있겠지. 그런데 자기가 인맥이 넓고 어디에 누구랑 친구고
사칭을 하면서까지, 관심을 받고싶은가.
또 문제는 사칭을 곧이 곧대로 믿어주는 순진한 사람에게 말하고싶은데
나는 사실 문대통령의 숨겨진 아들이고 그걸 미디어에서 꽁쏭숨기고 있는게 그 증거다 라고 말하면 그걸 믿을껀가
브알챗은 너무 순진한 사람이 많아서 피곤했다.
자기 입으로 난 케모노 갱이야 라고 하는 사람이 없어지면 좋겟다.
나는 겸허히 고백한다. 나는 거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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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로운 죽음을 당한 사람들(어차피 죽을 사람이엇는데 케모노갱때문에 죽엇다고 할수잇음)
X노
ㅇ경XX
파이어XX
puyas
AX
Revol이하략
JuniXX
EX트리
후X
2TEN
빅XX
SaXmoto
짭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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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분석글이길 기대하고 오신분들을 위해
1.친목 그룹
2.아바타 제작그룹
3. 갱스터
가 있는데
되도록이면 친목그룹이나 아바타 제작그룹에 들어가는 걸추천함
가장 성공한 브알챗인생은 브알챗에서 애인을 구한 사람이아니라
브알챗에서 사람들을 구해 다른 게임하러 간 사람들이다.
이 모든건 내 기준에서 내 시점에서 서술된 이야기다.
당연히 객관적일수가 없다. 주관적으로 내 이야기를 하는데 누가 객관적으로 분석을 할수있겠는가
다른 갱하고 외교적으로 놀면서 즐거운 적도 있었다. 영어를 배우면서 친구들과 노는게 좋았으니까.
시작은 영어 자문이었다.
어쩌다가 갱을 관리하게 된건진 모른다, 나대로 활동을 존나했으니까 그런거겠지.
욕할려면 욕먹어도 되는 갱이고 난 비난 받아 마땅한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그룹을 분석하겠다는 건 말이 안된다고 내 스스로 생각해 내 이야기를 적었다.
나는 더 이상 케모노 갱을 관리하지 않는다.
물론 KVCG가 "우린 케모노 갱보다 낫지" 라고 말할순 있겠는데
이탈리아가 먼저항복했다고 "우린 적어도 유대인은 안죽였어" 이러는 기분이 들어서 묘하다
난 그렇게 생각을 한다.
우애앵앵 브갤에몽 같은일이 없도록
애초에 이젠 브알챗을 잘 하지도 않는다
다른 게임이나 하지.
해도 컨셉만 할꺼야 나는.. 시발...
그럼 마지막 5편, VRchat 이라는 제목으로 마무리하겠다.
부정적 4편을 만들었으니 긍정적인 5편, 내가 브알챗에서 하면서 어떤게 행복한거고 어떤게 좋은건지, 내가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는것을 만들어 편을 올리겟다
브알챗 생태분석이 이렇게나 인기가 많을줄은 몰랐다.
이 글로 인해 브알챗 갤러리가 불타는걸 나는 원하지 않는다
물론 내가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불타는걸 막을수 있는건 아니지만, 만약 불타더라도 댓글에서만 불타는걸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