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치트키 브금)
내 과몰입 상대는
이기적으로 행복하기를 철저하게 실현하는 사람이었어.
돌이켜 보면 굉장히 불쾌한 경험이었고, 사실 지금도 그 사람에게 굉장한 악감정이 있어.
이 썰은 몇 번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들려줬던 이야기야.
VRC 격언 중에 ‘마음이
아픈 사람은 같은 말만 한다’라는 말이 있던데, 아마 나도
마음이 아픈 사람 중에 한 명이었던 것 같아.
내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준 많은 사람들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 뿐이야.
각설하고, 첫만남은
올해 6월이었어. 내가 VRC를
시작한지 한달이 채 안 됐을 무렵의 일이네.
친해지게 된 계기는 단순해. 아는
사람을 통해 월드 투어를 가게 됐고, 거기서 알게 된 사람들 중 한 명이었어.
시작한 시기도 비슷하고 말도 잘 통해서 첫인상은 그리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아.
관계가 과몰입까지 이어지는 데는 3주도
채 걸리지 않았어. 상대방 쪽에서 도킹을 걸었고, 한 이틀 박히니까 '까짓거 해보죠'를 외치게 되더라.
대가리 깨져도 과몰입 같은 건 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상태여서 좀 창피하긴 했지만, 사실 초반부는 그리 나쁘지 않았어.
좀 편안한 관계였거든. 시작하기 전에 '집착하지 말자'라고 못 박아두기도 했으니까.
과몰입 다운 일이라고 해봐야 둘이서만 월드 투어를 간다던가, 조용한 월드에 틀어박혀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는 정도였어.
나는 거기서 만족했는데, 상대방은 그렇지 못 했나봐.
파국의 시작은 좆같은 VR 야스였어.
어느 날 그 새끼가 야스 쉐이더를 넣고 왔더라고.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치는 듯한 기분이더라.
전에 상대방이 'VR 야스는 정신병이다' 라고 본인 입으로 이야기한 적이 있어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지금이야 나도 미친 암캐새끼니까 이해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정말로 그런 쪽으로는 거부감이 심했어.
상대방이 '기다리고 있겠다'고 하길래 고민하다가 차라리 다른 사람이랑 하라고 했지.
그러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친구들이랑 야스하고 다니더라.
이건 나중에 들은 건데, 내가 허락하기 전에 이미 다른 사람이랑 하고 있었다고 하더라고.
거기까진 이해했어. 어차피 가볍게 하기로 한 거고, 어차피 게임인데 누구랑 뭘 하든 무슨 상관이냐는 마인드였으니까.
근데 시간이 흐를 수록 그 친구와 야스 파트너의 관계가 깊어지는 게 눈에 보이더라고.
얼마 안 가 둘이서만 프빗에 틀어 박혀 있는 시간이 길어지더라.
나랑 있는 시간을 아까워하는 것 같은 느낌도 심하게 들었고.
그만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더라.
결정적인 계기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었어.
'니 과몰입이 너랑 과몰입하고 있는 건지 야스 파트너랑 과몰입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말을 듣는 순간 결심이 섰어.
그만 두는 건 정말 순식간이었어. 관계가 틀어질 게 무서워서 한참 동안 말을 고른 다음 따로 불러서 이별 통보를 했는데, 상대방이 너무 흔쾌하게 OK하더라고.
좀 섭섭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해했어. 내가 잘못한 부분도 어느 정도 있기도 했고.
근데 이 씹새끼가 당일 날 야스 파트너한테 도킹을 쳐 박았다고 친구한테 제보가 오더라. 거기서 일차적으로 멘탈이 터졌어.
전혀 배려 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니까 우울해 지더라.
그래도 계속 얼굴 볼 사이인데 어떻게 하겠어. 따로 대화해서 섭섭했던 점을 이야기하고 좋게 풀었어.
아이러니한 건, 그 때 중재해 준 게 야스 파트너였어. 그 사람이 계기가 되긴 했지만, 날 생각해서 과몰입도 거절했다고 하니까 좀 마음이 풀어지더라.
그 후로는 한동안 평화로웠어. 전 과몰입은 다른 사람이랑 새로 과몰입을 시작했고, 나도 나대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면서 놀았으니까.
하나 걱정되는 건 야스 파트너 쪽이 계속 우울해 보인다는 거였어. 이유를 물어봐도 제대로 대답을 안 해줘서 답답했거든.
몇 번 정도 찾아가서 물어보니까 그제야 본심을 이야기하더라.
'저... 그새끼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 이야기를 듣고 좀 벙쪘어. 동시에 이 친구가 전에 했던 말이 떠오르더라.
내 생각해서 과몰입 도킹을 거절했는데, 사실 그 때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고 했었거든.
멘탈이 좀 많이 흔들렸지만 어떻게든 부여잡고 끝까지 말을 들어줬어.
'네 생각 때문에 도킹을 거절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굉장히 후회가 된다.'
'그래도 기다릴 수 있다. 예전에도 짝 과몰입을 해본 적이 있어서 익숙하다.'
대충 그런 식의 대화가 오갔던 것 같아.
좀 불안하긴 했지만 내가 거기서 무슨 말을 하겠어. 그냥 응원한다고 했지.
그 이후로도 그 친구가 걱정돼서 몇 번 정도 안부를 물으러 갔어.
그런데 어느 날, 내 전 과몰입과 그 친구가 단 둘이 있는 걸 보게 된 거야.
월드도 똑똑히 기억해.
이런 곳에서 둘이 쫑알대고 있다가 내 전 과몰입이 당황해 하면서
'oo님. 요즘 조인도 잘 안 오시던데 왜 갑자기 오신 거에요?'
'다른 곳 가보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거야.
뭔가 본능적으로 이상한 게 느껴져서 삐진 척 다른 곳으로 가보겠다고 했는데, 만류하길래 억지로 자리에 남았어.
물론 얼마 안 가 둘이 슥 사라지더라.
좀 혼란스러웠어. 그래도 설마 싶어서 관음앱으로 경과를 봤는데 둘이 프빗에 딱 붙어서 2시 넘어서 까지 나오지 않더라고.
누가 봐도 의심스러운 상황이긴 하지만, 그래도 확신이 필요했는데 얼마 안 가서 전 과몰입한테서 '과몰입 깨졌어요.'라는 소식이 들려오더라.
그 당일부터 야스 파트너가 유달리 기분이 좋아 보여서 이유를 물어보니 '제가 나쁜 사람이어서 그런가 봐요' 이런 대답이 돌아오기도 했고...
그래도 마지막까지 친구를 믿고 싶어서
떠보는 식으로 '둘이 과몰입해요? 왜 숨겨요?' 하고 물어보니까 술술 대답이 나오는 거야.
요약하면 자기가 NTR한 거라 눈치 보여서 비밀로 하고 있다 정도였음.
거기서 좀... 정이 떨어지더라. 나랑 똑같은 사람이 똑같은 이유로 바람을 펴서 똑같이 NTR를 박았다는데 사람인가 싶더라고.
심지어 현실에서 만난 상황에서 카톡을 들켰다고 하더라.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소문은 내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블락 언프 박았어.
그런데 왜 이딴 글을 쓰냐고?
최근에 그 새끼가 내 다른 친구 앞에서 그 친구 과몰입이랑 대놓고 VR 야스를 박았거든.
대충 결론 내면 이렇네.
등장인물은 모두 성인이며 건장한 남성이야.
나는 이만 자살하러 갈게. 다들 과몰입은 신중하게 생각해서 받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