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목
- 일반 [문화제] 나이트메어 오브 니지가쿠 - 1
- 글쓴이
- Jud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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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본 글 주소
- https://gall.dcinside.com/sunshine/5985353
- 2024-12-23 15:03:06
그래. 이건 한 소녀가 생각해낸 꿈과 희망의 이야기. 그 이야기에서 시작된 작은 갈림길. 절대로 현실이어선 안되며, 소녀가 무심코 눈을 돌려버릴 이야기.
그렇기에, 악몽의 이야기이다.
공주무녀가 사라진 다음, 세상은 잿빛으로 물들었다. 비유적인 표현이 결단코 아닌, 단 하나의 색채또한 용서할 수 없는듯한 잿빛. 사람들은 색채를 유지하려 DP를 사용하기도 하였지만, 어찌 색채를 잃은곳에 사랑이 피어나리. 더이상 차오르지 않는 DP를 보며, 자신의 안위가 다른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걸 깨달은 사람들은 이 모든것이 한낱 발버둥임을 증명하듯, 어느새 방 안에 틀어박혀 한줌 채 남지 않은 "좋아함"을 끌어안고 있을 뿐이였다.
색채는 오직, 태양과 하늘이 공주 무녀에게 내린 총애이며 공주 무녀는 이를 널리 비추는 거울이었기에.
이게 단 1주일 만에, 이 오-다이-바 왕국 거리가 황폐해진 이유다.
단순히, 용이 공주를 데려갔기에. 그리고 근위단장 세츠나가, 한 신관의 "조언"을 듣고 최선의 준비를 다해서 공주를 구하러가자며 망설여버린 아주 자그마한 어긋남 때문에.
마수는 사람을 죽이며, 민심은 흉흉해지고 민중들은 충만한 DP를 잃은 기사들에게 쟁기를 들이밀었다. 분명히 마수를 향해 휘둘렀다면 훨씬 적은 피해로 소동이 끝났을 것 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죽은 사람들의 이름을 들먹여가며, 공주무녀의 정원을 향해.
"여기까지 온건가요?!"
한때 아유무를 지키던 호위기사 세츠나는 불과 몇 주전만 하더라도 거리에서 축복을 노래하던 사람들이 광기에 물든것을 보며, 안타까움과 동시에...약간의 분노를 느낀다.
""공주무녀를 되돌려라!! 더이상 신앙은 필요 없어!!!""
대체 왜 이 사람들은 이렇게나 멍청한거지? 아유무의 희생은 생각치도 않은건가? 그렇게 공주무녀, 공주무녀 소리쳐 찬양한 주제에 결국...
--'소중한 아유무'를 그저, 도구로만 봤을 뿐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도달한 순간, 이미 얼마 남지도 않은, 세츠나가 가진 한줌의 DP는 타오르기 시작했고.
"...어라?"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가속"한 세츠나의 부러진 검면이, 선두에 있던 한 농민의 복부를 가격한다. 농민의 인영은 실이 끊어진 마리오네트마냥 바닥에 쓰러져내린다.
"DP가...남아있어?! 뭐야! 기사단의 DP는 생명활동을 위한 최소한을 빼면... 없어졌다고....히이익?!"
그저 수 만을 내세운 민중들은, 앞선 한 명이 쓰러지자마자 발이 보이지 않도록 도망친다. 단 한 명이라도 자신의 DP를 쓰려는 생각을 했다면 최소한 동귀어진을 이루어냈을것이며, 모두의 DP를 한곳에 모았다면 너무나 쉽게 이겼을 만한 전투였음에도.
"...경위병."
"네...넵! 세츠나 선임 기사단장님!"
"저들을...보호해라."
얼어버린 경위병에게 세츠나는 직접 쓰러트린 한 남자와, 우스꽝 스럽게도 도망치는 사람들 사이에 넘어져 다리가 부러진 패잔병들을 향해 말한다. 나는 저들을 증오할 지라도, 공주무녀. 아니 '아유무'는 저들을 사랑할 것이기에.
부러진 검과 허울뿐인 성기사의 검, 그리고 50조차 남지 않은, 정말 작디 작은 DP만을 끌어안고 해결책을 찾아 힘과 지혜를 빌려준다고 하는 극동의 상아탑으로 향할 뿐이다.
몇날 몇밤이 지났는지, 세츠나 스스로는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DP의 이적을 단순히 '살아가는' 간단한 행위에 낭비할 수 없기에 세츠나는 나무껍질을 질겅이면서 걸어나간다. DP가 모자랄지언정 마음속 의지가 꺾이지는 않아 마음이 지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몸의 피로는 별개의 이야기다.
1주일 가량을 챙겨온 군량, 시냇물, 나무 열매나 껍질만을 질겅이며 걸어다닌 결과, 성기사의 갑주는 더이상 품위를 갖추지 못했고, 얼굴은 핼쑥하게 야위었다. 몸의 DP를 돌려서 컨디션을 챙겨야하나-라고 생각한 그 순간. 생각이 늦었다는듯 비웃으며 세상이 빙그르 돈다. 땅이 우아하게 춤을추듯 얼굴에 다가온다.
아아 분명 그런 전승이 있었던가. 더이상 눈 앞에 보이는게 없을때, 극한의 상황에서 지혜만을 갈구할때, 상아탑이 나타라리라고.
그래. 상아탑...
"상아탑?!"
세츠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검을 꼬나쥐려고 하지만, 허리춤엔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 그것 뿐만 아니라 몸통을 억지로 세워주던 가죽 벨트 또한 사라져있다. 그 대신 몸은 각종 문장이 그려져있는 부드러운 실크가 감싸고있다. 침대에서 일어나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려 할 때에
"움직이지 않는게 좋아."
하이톤의, 안정감있는 목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그쪽으로 돌리자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목소리, 체형, 가느다란 팔다리...진짜 여자아인가? 세츠나가 그렇게 생각할 때 쯔음, 화려한 금색 문양이 새겨진 흰 가면 너머로 다시한번 목소리가 들린다.
"...뭔가 엄청 실례되는 생각을 하고 있는것 같은데... 일단 DP는 채워졌지만 몸의 컨디션은 그거랑 별개니까. 푹 쉬어둬 "
그 말을 듣고 세츠나는 DP를 끌어올려본다. 심장에서 끓어오르는 열기, 분명히 내가 낼 수 있는 최대...치는 아니지만, 절대로 부족한 양은 아니다. 분명히, DP를 채울 수 있는 성수라던가가 있었지.
"감사합니다. 그러니까...현자님?"
특이한 생김새. 왕도에서도 보기 힘든 채도가 높은 머리의 색. 높은 혈통의 상징물이다. 분명 꽤나 높은사람일것이다.
"10OG- 리나- 텐오지던, 리나던, 마음껏 불러."
"특이한 이름이시네요."
"으응, 이건 이름...이라기보단 코드네임. 상아탑은 혼자서 관리하기 힘드니까, 마스터가 멋대로 우리들한테 붙인 이름. 리나쨩 보-드. 숫자 10."
리나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가면의 옆을 가볍게 쓸어내려 가면에 그려진 화려한 문양을 숫자 10 모양으로 바꾼다. 한번 더 가면을 쓸어내리자 다시 나선형의 화려한 문양으로 바뀐다.
"미안, 조금 신기하려나? 마스터가 표정은 구현을 안해놓는바람에, 이렇게 귀찮게 표시해야하거든. 뭐, 그렇다고 마스터도 표정을 썩 잘 나타내거나 그렇진 않지만."
잠시간의 침묵. 어떻게 반응하면 좋은걸까- 따위를 생각하고 있을때 쯔음, 어색한 공기를 깨듯 세츠나의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온다.
"아..."
조금 긴장된 분위기가 풀린 느낌이다. 리나는 약간 웃음소리를 내며 빵을 접시에 담아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먹어. 영양 섭취는 중요하니까"
'언제까지 이렇게 있어야할까. 더는 시간이 없는데. 벌써 무녀가 사라진지 2주일. 세상은 점점 어두워지고있다. 왕도에서도 꽤 걸어왔...어라?'
세츠나가 창 밖으로 본 풍경엔, 분명히 1주일 가까이 지나왔을 터 인데도, 이상하게도 오-다이-바 왕도거리가 눈 앞에 보일정도로 가깝다. 그리고 저기 산맥에서 날아다니는 드래곤...부아가 치민다. 마치 무녀를 지키지 못했던 세츠나를 비웃듯이 하늘에서 멈춰있는 흑룡. 그리고 정말 우습게도 그 용의 산 근처에만 내리쬐는 햇빛이 저 멀리서도 용의 비늘을 반짝이도록 비춘다.
"이건 대체...전 며칠을 땅에 버린거죠...? 대체 이 짧은 거리를 오기 위해서...!!!"
다시한번 세츠나에게 자괴감이 밀려온다. 세상의 멸망이 다가오고, 국민들은 혼란에 빠지며, 아유무가 언제 어떻게 불안에 떨고있을지 모르는데. 이런 생각이 세츠나를 감싼다.
"급격한 감정변화, 불안 상승... 상아탑 근처엔, 인식저하랑 시공간 왜곡이 있으니까. 걱정 안해도 돼. 왕도 정문에서 출발한진 아직, 5시간 정도밖에 안됐어. 그리고 탑 내부에선, 시간이 느려져. 그러니까. 안심해."
"...위로의 말씀은 감사하지만, 저한텐 해야할게 있어요. 리나씨... 상아탑이 저한테 힘을 빌려주실 수 있나요?"
세츠나는 숨을 잠시 고른다. 그 눈에는 강한 의지...라기보단, 무언가를 향한 강한 집착에 가까운 빛이 보인다. 그걸 본 리나는 어떤 생각을 할까. 아니 생각이라는걸 하기는 하는걸까? 가면 너머의 금빛 눈동자가 세츠나를 꿰뚫어보듯 훑어낸다.
"문장사의 힘은 위험해. 너같이 조급한 마음가짐이라면... 아쉽지만 마스터도 힘을 빌려주진 않을것같네."
"하지만 상아탑에 오면 도움을 구할 수 있다고 했잖아요!"
"으응, 그건 마스터가 멋대로 퍼트린 소문. 일단, 진정하고 한숨 자. 리나쨩 문장 - 피로."
분홍빛 머리의 소녀가 가면을 쓸어내리자, 가면에 붙은 금박이 떨어져나가 세츠나 에게로 향한다. 그렇게 세츠나의 눈이 감기고 침대에 쓰러지자, 리나는 가볍게 다가가 이불을 덮고선 작게 속삭인다.
"푹자고, 몸도 마음도 한숨 쉬어. 그리고 나서 생각해봐."
ㅇㅇ | 2024.12.23 15:34:27 | |
ㅇㅇ | 2024.12.23 16:24: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