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목
- 번역/창작 [ss]코스즈의 지구는 평평하다
- 글쓴이
- ほのり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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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gall.dcinside.com/sunshine/5836569
- 2024-08-03 16:16:19
이 움짤에서 영감을 얻어 쓴 글입니다. 코스즈의 자학 기질이 어디에서 기인했을지 쭉 생각해왔어요.
*주의사항. 제정신인 내용이 아닙니다. 지구는 평평하고 우주에는 말하는 공룡이 있습니다.
줄거리 요약. 어릴 때부터 생명의 가치에 의문을 가진 코스즈는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걸 자신만 이상하게 생각하는 게 잘못됐다고 여겨 타인과 같아지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코스즈의 노력은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지 못하고, 설상가상으로 인생 최악의 사건이 찾아온다. 그 충격으로 인해 코스즈는 세상을 거부하고 우주에 떠돌게 되는데….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 사람이 얼마나 멍청해야 그런 걸 믿냐? 말도 안 돼."
"나도 처음엔 지금이 2024년인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신경도 쓰지 않았지. 하지만 그들은 실재해."
어느 순간 코스즈의 귀에 들어오기 시작한 반 친구들의 이야기. 처음 말을 꺼낸 아이는 마치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이라도 하듯 진지한 톤으로 이야기를 이었다. 지구 평평론자는 실재하며 그들은 우리의 친구, 가족, 이웃일 수 있다. 심지어는 학력조차 그들이 아니라는 보장을 주지는 않는다. 그들은 예전만큼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진 않지만, 아마도 사회에 숨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고 마침내 본인들이 옳다는 걸 증명할 때를…….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아무것도 모른체하며 친구들의 이야기를 새겨듣던 코스즈는, 정말로 그렇다고 생각했다.
지구 평평론자는 실재한다. 지구 평평론자는 우리의 친구, 가족, 이웃이다. 코스즈가 바로 그 지구 평평론자다. 코스즈의 지구는 평평하다. 코스즈의 지구는 어쩌다가 평평하게 됐을까. 그 이유를 알아보려면 꽤 많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코스즈는 주어진 권력을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권력에 의미를 두지 않기 때문은 아니다.
코스즈에게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책임감 있는 사람들을 향한 동경은 있다. 하지만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는다. 코스즈가 가진 태생적 지위로 걷는 세금은 돈이나 곡식 따위가 아닌 생명이기 때문이다. 숫자로 따지자면 자신과 같은 1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절대로 같은 1이라고 말하지 않는, 그런 생명 말이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 초등학교에서 선생님이 말씀해 주신 내용이다. 코스즈는 이 말의 진위가 궁금해 가족들에게 정말로 그렇냐고 물어봤다. 돌아온 답은 당연하다는 긍정이었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 그러니 남을 배려하는 법을 익히거라. 코스즈는 고개를 끄덕이며 젓가락질을 했다. 맛있게 조리된 멸치볶음이 코스즈의 손아귀에 있다. 열 마리? 스무 마리? 워낙에 작아서 세는 것도 힘들다. 곧장 입으로 넣었다. 우물우물, 질근질근 씹어 삼켰다. 수십의 생명이 코스즈의 뱃속으로. 냠.
코스즈는 세상을 이해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며 멸치는 제외인 걸까? 한 번 따라갔다가 그물을 끊어먹는 사고를 치는 바람에 두 번째는 없었지만 코스즈는 분명 기억하고 있다. 가족들이 배 위로 건져올린 물고기들이 얼마나 생동하게 펄떡거리는지를. 작든 크든 상관없이 하나하나가 다 살아있는 생명이었다.
코스즈는 생존을 위해 다른 생명을 죽여야만 하는 세상의 구조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코스즈는 자기가 갑자기 커다란 그물에 잡혀 물속으로 처박히는 상상을 했다. 숨을 쉬지 못하는 고통은 상상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졌다. 물고기들에게도 고통이란 게 있을 텐데. 살기 위해 반드시 죽여야만 한다면 최소한 어떤 고통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에선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코스즈는 자신이 다른 생명에게 고통을 줄 자격이 있는 존재라는 걸 납득해야만 했다. 무고한 생명에게 고통을 주는 것만으로 충분히 잔인한데, 고통을 주는 이유라며 그럴듯한 변명이라도 대지 못한다면 자신이 순수한 악과 다름없어질 거라고 느꼈으니까.
생명은 다른 무언가를 해치지 않고선 살아갈 수 없는 걸까? 가족들에게 물어보자 '코스즈쨩은 상냥하구나.'라는 답이 돌아왔다. 코스즈가 남들보다 민감한 공감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신경이 쓰이는 거라고 했다. 그 말 자체는 옳았지만 가족들은 한 가지를 간과했다. 코스즈는 남들보다 순수한 악에 가까웠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했다. 순수한 악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해하고 싶지 않아서, 분명하게 그어 둘 선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평범한 가족들은 코스즈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코스즈는 남에게 답을 물어 풀 수 없는 문제를 안고 계속해서 살아갔다. 자라면서 어렴풋이 문제의 답을 깨닫기도 했다. 어떤 생명이든 자신의 생명을 최우선의 가치로 두는 건 당연하고 자연스럽다고 말이다. 그래도 코스즈는 그 답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걸 인정하면 사람들이 저지르는 온갖 범죄도 이해하게 될 것 같아서.
그러나 모순을 품고 살아가는 삶은 여간 고된 것이 아니었다. 사람은 살기 위해 매일 식사를 한다. 사람의 주된 식사 거리는 다른 생명이다. 코스즈는 아직 자신이 다른 생명에게 고통을 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할 근거를 찾지 못했다. 매일 마주하는 모순이란 익숙하고 당연한 일상이 될 법도 한데, 코스즈의 상냥한 마음이 차마 당연해지지는 않게 막아섰다. 코스즈의 상냥한 마음은 세상에서 오직 코스즈 한 명에게만은 상냥하지 못했다.
자신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지 못하는 생명체로서의 근본적인 모순은 코스즈를 세상과 동떨어지게 했다. 그렇다고 코스즈가 친구를 사귀기 어려워하거나, 가족들을 대하는 게 어색해지거나 하진 않았다. 대신 코스즈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는 누구도 발 들일 수 없었다. 사람뿐 아니라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들도 그랬다. 코스즈가 공룡에 빠져들게 된 것은 그래서인지도 몰랐다. 공룡은 사람에 의해 처우가 결정되지 않았다. 공룡에겐 사람의 때가 묻지 않았다.
동질감은 코스즈의 마음을 이루는 성분 중의 하나가 아니었다. 가족들에게 사랑받으며 자랐고 친구들과 살갑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데도 그랬다.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걸 혼자서 불편하게 여긴다고 말을 꺼내봤자 자신에게도 남들에게도 좋은 결과는 돌아오지 않았다.
외로워선 안 되는 환경이라는 생각이 자신만을 탓하게 만들었다. 남들과는 다른 부분이 있다는 인식이 자신이 틀렸다는 생각으로 바뀌는 데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코스즈는 또래 중에서 체구가 작고 덤벙대는 기질이 있어 확실하게 해내는 일이 없었다. 자신감을 가질 수 없었다.
코스즈는 자신이 남들처럼 되지 못한 게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들처럼 되려고 했다. 남들이 하는 일을 똑같이 해내서, 가족들 앞에서도 당당히 웃어 보이고 싶었다. 코스즈는 코스즈만의 일이 아닌, 카치마치의 일을 해내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코스즈의 챌린지는 그리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생선 손질을 익혀 대가족의 식사를 차리는 어머니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다짐은 애꿎은 손가락만 벤 뒤 부엌에 출입이 금지당하며 끝이 났고, 생선 잡는 일을 돕겠다는 시도는 진작에 실패한지 오래였다. 가족들과 가까워진다는 챌린지의 주목적이 시작부터 틀어졌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최종 목표를 완수할 수 없다면 다른 것부터. 작게 뻗은 가지라도 찾아 언젠가는 카치마치家라고 하는 거목과 하나되길 바라며 다른 챌린지를 시작했다.
하지만 챌린지는 잘되지 못했다. 애당초 코스즈가 챌린지를 시작한 원인은 세상과 자신 어느 쪽도 이해하지 못한 자신에게 있는데, 이해를 끝마치지 않은 채로 가족들과, 평범한 사람들과 같지 않은 자신이 잘못됐다는 성급한 결론으로 시작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코스즈는 남들과 같아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불가능한 일을 바랐으니 비틀린 결과가 나오는 건 당연한 순서였다.
그래도 아무 소득도 없는 건 아니었다. 코스즈는 남들과 같아지고 싶어 남들이 하는 일들을 열심히 조사하며 따라 하는 챌린지를 했다. 그 과정에서 코스즈는 생에 처음으로 이 지구에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찾았다. 지구 평평론자들의 존재를 알게 된 날이었다.
지구 평평론자. 지구가 둥글다는 상식을 거부하는 사람들. 코스즈는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가족들을 따라 탄 배에서 본 수평선도, 해외여행을 갈 때 탄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풍경도 모두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그럼 지구 평평론자들은 배도 비행기도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어서 지구가 평평하단 주장을 펼치는 걸까? 그렇지는 않았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논리로 지구가 평평할 수는 없다고 말하는 증거를 하나하나 반박했다. 그들도 코스즈, 그리고 코스즈의 가족들과 같은 경험을 했으면서도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고 있는 거다.
코스즈는 아직 지구가 둥글다고 믿으면서도 그들의 주장을 주의 깊게 살폈다. 세간에서 그들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를 적나라하게 느꼈다. 학력과 지능을 들먹이는 인신공격과 차라리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편이 나을 인간들이라는 모욕까지. 코스즈는 그 대목에서 자신과 지구 평평론자들 사이의 공통점을 찾았다. 그들에겐 세상을 이해할 의지나 능력이 없는 게 아니었다. 단지 운이 안 좋았을 뿐이다.
코스즈가 본 세상엔 모순이 가득했다. 사람들은 생명의 존엄을 말하면서 비좁은 우리에 가축을 가둬 기른다. 범죄를 저지르고 전쟁을 일으킨다. 코스즈는 죽음이 무서웠다. 핵으로 인한 참상을 다룬 소설을 읽은 날엔 밤까지도 무서움이 가시질 않아 가족의 품에서 잠을 청했었다. 죽으면 모든 게 다 끝난다. 하나하나의 생명이 다 제각각의 세상을 인식하고 있으니 하나의 생명이 죽는다는 건 곧 하나의 세상이 사라진다는 의미였다. 하물며 수만, 수억의 생명이 죽는 건 얼마나 무서운 일일까. 죽음은 누구에게나 무서운 일일 텐데. 그래도 세상엔 싸움이 끊이질 않았다. 생명의 가치는 한없이 높으면서도 낮은 듯했다.
코스즈는 가치를 찾을 수 없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 만큼 강인하지 않았다. 그래서 의심하지 않아도 될 불변하고 절대적인 가치를 찾고 싶었다. 그런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미 그런 가치를 가지고 있는 듯했다. 사람의 가치가 다른 모든 생명의 가치보다 높다고 믿었다. 코스즈는 어떻게 그렇게 굳은 믿음을 가질 수 있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입 밖으로 꺼내봤자 이상하게 여기는 시선만 돌아올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코스즈는 세상이, 사람들이 틀린 게 아니라 자기 하나만 틀린 거라고 생각하며 온갖 일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코스즈는 모든 챌린지에 실패했다. 세상을 이해하려다 어긋나는 바람에 도움 하나 되지 않는 쓸데없는 일이나 하는 사람이 됐다. 코스즈는 어쩐지 그게 자신과 지구 평평론자들 사이의 닮은 점이라고 느꼈다. 지구 평평론자들은 모순을 이해하기 위해 내면에 더 큰 모순을 품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코스즈는 그들을 믿어주고 싶었다. 지구가 둥근 게 사실이냐 평평한 게 사실이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도 믿어주고 싶은 것뿐, 그들처럼 완전한 믿음을 가지진 못했다. 코스즈의 지구는 아직 둥글었다. 하지만 곧 코스즈의 지구를 평평하게 만들어 놓은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코스즈의 집에서 개 한 마리를 기르기 시작한 일이었다.
코스즈네 집에 이웃집에서 기르는 개가 새끼를 여럿 낳아 고민이라는 소식이 들려온 건 딱 좋은 때였다. 이웃집은 많은 개를 다 키울 수 없었고, 코스즈의 가족들은 바빠지는 일에 앞으로 혼자 있을 시간이 늘어날 코스즈를 걱정했고, 코스즈는 자신을 의지하는 작고 약한 생명체 하나만을 바라보며 세상의 모순에서 눈 돌릴 수 있었다.
작고 따뜻하며 전적으로 자신을 의지하는 생명체의 존재는 코스즈가 느끼는 자신의 가치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가족들이 전보다 바빠져 코스즈에게 신경을 못 써줄 게 걱정돼 들여온 작은 강아지는 코스즈의 완벽한 짝이 되어줬다.
밥을 챙겨주는 건 자신의 몫. 변을 치우는 것도 산책을 시키는 것도 다 자신의 몫. 그래도 코스즈는 싫은 소리 하나 하지 않았다. 책임에 따라오는 사랑이 좋기 때문이었다. 학교를 다녀와서 현관문을 열면 기다렸다는 듯 활기차게 맞이해주는 매일매일이 좋았다. 어느덧 삶에서 코스즈의 곁에 있은 기간이 그렇지 않은 기간보다 길어진 아이니만큼 누구보다 코스즈를 잘 따랐다.
코스즈는 행복했다. 아이는 작고 따뜻하고 활기차서 누군가 지켜줘야 할 것만 같았다. 아이를 위해 먹이는 음식들에서는 생명의 가치라는 모순이 떠오르지 않았다. 자신을 잘 따르는 사랑스러운 아이가 뭐든 가리지 않고 잘 먹어서 건강하길 바랄 뿐이었다. 낮잠을 자고 있는 아이를 품고 있는 코스즈에게 어떤 생명의 가치가 더 높냐고 물어본다면, 아이의 가치가 다른 생명의 위에 있다고 분명하게 대답할 만한 일이었다.
그래서 코스즈는 세상의 모순을 서서히 잊을 수 있었다.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가족들의 말은 잘 와닿지 않았었는데, 자신에게 그런 존재가 생기고 나서야 가족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 다른 모든 것들을 다 둘째 문제로 만드는 절대적인 가치였다. 아이가 사랑스러워서, 그래서 가족들에겐 코스즈도 같은 존재라는 걸 믿을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만 지나면 코스즈도 자신의 가치에 의문을 품는 일을 완전히 멈추고 평범한 사람이 되어 가족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코스즈는 그러지 못했다. 아이는 죽었다. 다름 아닌 코스즈가 죽였다.
종례가 끝나고 언제나처럼 힘찬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연 코스즈는 이상하다고 느꼈다. 자신을 맞이해주는 가족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어쩐지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풍기는 가족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쓰러진 아이의 모습도 보였다. 낮잠을 자는 모습은 아니라고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그제야 가족들이 무슨 말을 나누는지가 귀에 들어왔다. 코스즈에게 어떻게 말을 전해야 하고,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염려하는 내용이었다. 가족들은 인기척에 뒤를 돌아보고, 코스즈임을 확인하고, 코스즈의 눈을 가렸다.
코스즈의 엄마는 아이의 상태를 묻는 코스즈를 붙잡고 방으로 데려왔다. 문이 굳게 닫혀 아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코스즈는 당장 문을 열고 튀어나가서 아이가 어떤 상태인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가족들이 코스즈를 상대로 고압적인 태도를 취하는 건 언제나 코스즈가 자신의 안전과 관련된 문제를 일으켰을 때뿐이었으니까. 이번에도 같았다. 전과의 차이점은 코스즈의 몸이 아닌 마음이 다칠 걸 걱정했다는 것뿐.
코스즈의 엄마가 설명하길, 아이는 코스즈가 준 어떤 음식 때문에 죽게 됐다고 했다. 사람은 먹어도 되지만 강아지가 먹으면 안 되는 음식. 코스즈는 당연히 몰라서 줬고, 가족들도 위험성을 가볍게 인지해 제때 치워놓지 못했다. 몸집이 작은 아이라 소량의 독성으로도 치명적인 결과가 나왔다. 모두의 실수였지만 코스즈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고, 가족들도 코스즈의 생각을 미리 읽고 아이가 죽은 모습을 코스즈에게 똑바로 보여주지 않으려고 했다. 밥을 차리기 위해 생선을 손질하는 일 따위와는 죽음의 무게가 달랐으니까. 가족들은 코스즈가 죽음의 무게를 혼자서만 지지 않길 바랐다.
하지만 완전히 역효과였다. '어린 코스즈가 충격을 받을까 봐.' 코스즈는 아이를 묻어주는 일조차 하지 못했다. 어떤 모습으로 죽었는지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온전한 책임을 질 수도 없었다. 그게 너무나도 끔찍했다. 코스즈는 약해빠진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슬픈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다 몸을 웅크려 고개를 파묻은 모습이었다. 그런 나약한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코스즈의 권력이 됐다. 가족들은 코스즈의 슬픔을 덜어주기 위해 죽은 개를 직접 묻는 책임도 대신하고, 허전한 마음을 달래주려고 평소보다 더 신경 쓰며 살갑게 대해줬다. 코스즈의 책임을 묻는 존재는 코스즈 이외에는 어디에도 없었다.
약해빠졌다. 나약하다. 그와 동시에 다른 생명의 위에 서는 권력을 누린다. 모순적이다. 코스즈는 자신이 강해짐으로써 모순을 해결하려고 했다. 하지만 모든 챌린지의 끝에 찾아온 건 여태까지와 똑같은, 그러나 훨씬 생생한 체감이었다. 코스즈는 나약한 자신이 견딜 수 없이 혐오스러웠다. 실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도 다 혐오스러웠지만 코스즈의 유약한 성정이 타인에게 향하는 혐오를 막아섰다. 그리고 자신만을 혐오하는 게 훨씬 쉽고 간편한 길이기도 했다. 세상을 혐오한다면 세상을 바꿔야 할 텐데, 자신을 혐오한다면 자신만 바꾸면 되었다.
코스즈는 언젠가 완전무결한 존재가 되기 전까지는 자신을 용서하지 않기로 했다.
코스즈는 어딘가로 도망쳤다. 가족들과 친구들이 자신의 민낯을 볼 수 없는 곳으로. 멀리멀리 떠났다.
코스즈는 숨이 쉬어지지 않는 걸 느끼며 잠에서 깼다. 아이를 제 손으로 죽였다는 죄책감이 숨이 막히는 꿈으로 발현…된 건 아니었다. 코스즈는 우주에 있었다.
코스즈는 우주에 있었다. 그러니 숨이 쉬어지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면 코스즈의 앞길에 놓인 건 죽음뿐이었을까? 안타깝게도 코스즈는 자신의 죽음에 미련을 갖지도 못 할 정도로 상태가 나빴다. 숨이 쉬어지지 않아 찾아온 공황 상태도 곧 죽음의 안식을 상상하며 평온해졌다. 그러길 몇 분이 지났다. 숨을 쉬지 못해도 코스즈는 죽지 않았다.
코스즈는 그제야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봤다. 드넓고 공허한 우주의 풍경이 코스즈의 눈에 담겼다.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숨을 쉬지 못해도 죽지 않는 곳에서 존재가 한없이 작아져 먼지가 되는 기분이라도 느끼라는 걸까? 생명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자신에게 내려지는 형벌로 딱 맞다. …라는 허망한 생각에 빠진 코스즈는 한동안 제정신을 찾지 못했다.
코스즈의 정신을 차리게 한 건 번쩍이는 빛 한 줄기, 별똥별이었다. 코스즈는 눈을 떴다. 별에 빌 소원을 떠올릴 새도 없이 코스즈의 눈엔 한 명의 공룡이 비쳤다.
"어라? 너는 뭐지? 지구에 또 운석이 떨어지기라도 한 건가?"
"고, 공룡?"
말하는 공룡은 곁눈질로 지구를 살펴보았다. 지구는 평소대로의 지구였다. 하긴 정말로 운석이 떨어졌다면 온통 불바다가 됐을 텐데, 그 광경을 놓쳤을 리는 없지. 그런데 그러면 눈앞에 있는 작은 생명체는 뭘까? 공룡은 호기심이 일었다.
"그래. 나는 공룡이다. 너는 뭐냐?"
"저, 저는… 카치마치, 카치마치 코스즈입니다…!"
"카치마치 코스즈. 그래, 코스즈. 너는 어쩌다가 여기까지 온 거냐."
"여기…라면…?"
"자기가 어디까지 왔는지도 모르는가 보구나. 여기는 우주다."
숨이 안 쉬어지고 몸이 알아서 떠다니긴 해도 설마 했는데 진짜 우주라니, 코스즈는 공룡의 말을 믿을 도리밖에 없단 걸 알면서도 도리질을 치며 정말로 우주가 맞느냐며 되물었다.
"저… 아까부터 숨을 안 쉬고 있는데도 안 죽어요… 여기가 진짜 우주인가요? 카치마치, 큰 잘못을 저질러서… 사후 세계에 온 게 아니었나요?"
"이상한 소리를 하는구나. 저길 봐라. 지구가 빤히 내려다보이지 않으냐?"
공룡의 손짓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진짜 지구가 보였다. 하지만, 그… 상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데. 저건 창백한 푸른 점이라기보다는―
"평평해……? 저게 지구가 맞는 건가요?"
"직접 보고도 믿지 못하는 거냐. 그럼 넌 지구가 어떤 모습이라고 생각했지?"
"어… 공처럼 둥근 모습?"
"그랬으면 내가 우주로 튕겨 나올 일도 없었겠지. 공룡이 멸종한 후 지구의 주인이 된 생물이 어떤 생물인지 궁금했건만, 과학엔 별 관심이 없나 보군."
"어…… 지구에서 튕겨 나오셨다는 말인가요? 운석? 과학? 펴…평평해? 어라? 어라라라?"
짧은 시간 동안 지나치게 많은 정보가 들어온 탓인지 코스즈의 머리는 고장을 일으켰다. 머리만 고장 난 게 아닐지도. 눈앞엔 말하는 공룡이, 뒤에는 평평한 지구가 있었다. 코스즈는 혼란스러웠다. 그래도 다행히 공룡은 차분히 대화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공룡은 코스즈가 갑작스레 정보를 받아들이기 힘든 상태임을 배려해 상대가 이해할 수 있도록 순서대로 하나하나씩 이야기를 풀었다.
공룡의 설명은 이랬다.
하나. 여기는 사후 세계가 아닌 실제 우주다.
둘. 지구는 평평하다.
셋. 먼 옛날 평평한 지구에 운석이 떨어진 충격으로 공룡들은 모두 지구 바깥으로 튕겨 나왔다.
넷. 공룡은 뛰어난 지능과 신체를 지닌 강인한 종으로서 뛰어난 문명을 발전시켰다. 말을 하는 것 정도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섯. 지구가 둥근 줄 알고 있었으면서 호흡 없이도 우주에서 생존 가능한 게 왜 문제냐? 지구가 둥글다느니 하는 엉뚱한 세상의 상식을 여기에 가져오지 말아라.
공룡은 진심으로 어이없다는 태도로 열변을 토했다. 덕분에 코스즈의 혼란은 가중되기만 했다. 이런 고약한 꿈이 다 있나. 코스즈는 자신의 뺨을 꼬집었다. 아팠다.
"뭐야?"
"아, 아뇨… 꿈이 아니구나, 해서…."
"네 심정도 이해는 한다. 살던 곳에서 벗어나 갑자기 우주라니 충격이 클 테지."
"그럼 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지구로는 못 돌아가나요? 아직 가족들한테 인사도 못 했고 친구랑 놀자고 한 약속도 있고 내야 될 숙제도 있고, 또……."
"울지 마라. 돌아갈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그전에 우선, 네가 여기 오게 된 과정부터 이야기해 줘야 한다."
공룡은 기다란 손톱으로 코스즈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코스즈는 공룡의 이 날카로운 손톱이 사냥에만 쓰였을 거라고 멋대로 지레짐작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지성을 가진 눈앞의 거대한 생명체가 상냥한 마음을 갖고 있는 걸 알게 되자 코스즈의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러니까요, 카치마치가 강아지를 키우게 됐었는데…."
그리하여 코스즈와 공룡의 기나긴 이야기가 시작됐다. 코스즈는 가족으로 생각한 아이가 자신 때문에 죽었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공룡은 그 정도로는 우주까지 튕겨 나올 만한 충격이 아니었을 거라고 말했다. 기나긴 역사에서 그 정도의 비극을 겪은 사람들이 모두 우주에 왔다면 우주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떠돌고 있어야 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코스즈는 납득했다.
공룡은 계속해서 코스즈가 어떤 부분에서 커다란 충격을 받은 건지 파고드는 질문을 했다. 떠올리기 힘들 걸 알지만 돌아가는 방법을 알려주려면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고 했다. 코스즈는 개의치 않고 성실하게 대답했다. 그러다 보니 코스즈가 느낀 세상의 모순, 생명의 가치에 대한 생각까지도 딸려 나오게 되었다.
자신의 가치를 의심하는 코스즈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공룡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답을 냈다.
"코스즈, 너는 이곳에 도망쳐 온 게 아니다."
"네? 그럼 저는 어쩌다가 이곳에…?"
"작용과 반작용이 뭔지 알고 있나?"
"아니요…."
"간단하게 설명해 주지. 네가 손으로 무언가를 밀어낸다고 해보자, 그럼 넌 네가 무언가를 앞으로 밀어낸 만큼 뒤로 밀려나는 힘을 받게 된다."
"뭔지 알 것 같아요! 손바닥 씨름 같은 거죠?"
"그래. 네가 무언갈 밀어냈는데도 아무런 반작용도 받지 않고 제자리에서 멀쩡히 서있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코스즈는 긴장했다. 자신이 이 머나먼 우주까지 오게 된 이유는 코스즈에게 어떤 반작용이 있었기 때문. 그 말인즉슨….
"너는 세상의 모든 걸 밀어냈다. 수십억의 인간, 그보다 많을 가축, 야생동물… 모두를 밀어냈다."
"그래서 네가 여기에 온 거야. 세상을 밀어낸 만큼 거대한 반작용이 있어서."
그랬다. 코스즈에겐 도망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도 우주에 와 있다. 세상에서 벗어난 게 결과라고 해서 코스즈에게 도망치는 성질만이 있는 게 아니었다. 코스즈는 우주의 별처럼 많을 어마어마한 숫자의 생명을 내면에서 바깥으로 밀어냈다. 엄청난 규모로 밀어내기만 해도 코스즈는 우주에 올 수 있었다.
코스즈는 그러한 사실을 깨닫고는 자신에게 남들을 거부할 자격이 있냐며 침울해졌다가, 곧 자신보다 자신의 심리를 잘 파악한 공룡이 존경스러워졌다. 공룡은 현명하고 자애로웠다.
"그럼… 그래도 카치마치는 돌아가고 싶어요. 처음부터 모든 게 완벽할 수는 없어도 카치마치가 노력한다면 좋아질 거라고 믿어요."
"어떻게 해야 지구로 돌아갈 수 있나요?"
공룡은 대답했다. 그저 지금 자신의 마음이 어디에 서있는지를 인지하기만 하면 된다고. 그러나 자신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인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공룡은 코스즈가 지닌 마음의 상처를 후벼팔 필요가 있었다. 상처만큼 존재를 강하고 명확하게 드러내는 수단은 없기 때문에.
"코스즈. 난 네 상처를 드러내며 상처의 기원을 떠올리게 했다."
"네 상처는 지구에서 받은 것이다. 그러니 네 상처로 되살린 지구의 기억을 강하게 떠올린다면 넌 지구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괜찮겠느냐. 여기에 쭉 머문다면 상처 따윈 잊고 살아도 된다."
"네가 돌아갈 곳에 네가 입은 상처보다 중요한 게 있느냐?"
코스즈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카치마치는 카치마치가 상처 입어선 안 되는 사람이라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지금의 카치마치는 별거 아닌 사람이라서 카치마치가 아픈 것도 별일이 아니지만, 언젠간 꼭 대단한 사람이 되어서 상처조차 가치 있는 과정이었다 말하겠다고.
공룡은 코스즈의 대답에 만족한 듯했다. 세상을 밀어낼 힘을 가진 아이라면 분명 세상을 끌어안을 힘도 지녔을 테다. 같은 크기의 힘이 어떤 방향으로 작용하냐의 문제일 뿐. 코스즈는 눈을 깜빡였다. 평소대로의 방 천장이 보였다.
"돌아왔구나… 어라? 아!"
"으아! 성함도 여쭤보지 못했어! 카치마치는 바보인가!"
…코스즈는 다시 눈을 깜빡였다.
"어라, 왜 또 온 거냐."
"저, 인사도 제대로 드리지 못했고, 많은 걸 가르쳐 주신 스승님의 존함도 여쭙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왔습니다!"
"…내가 언제 네 스승이 되었지? 확실히 이 고요한 우주에서도 이만큼이나 떠들썩하게 굴 수 있는 건 네 재주인 것 같구나. 좋아. 인사 정도는 나눠야지. 내 이름은…."
코스즈는 한평생 아무에게도 속 편히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를 모두 들어주고, 깊이 생각해서 대답을 돌려주고, 많은 걸 알려준 스승의 이름을 가슴에 새겨 넣었다. 곧바로 헤어지기가 아쉬워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공룡은 아는 게 정말 많았고, 가지고 있는 이야깃거리도 많았다. 그중 하나는 이런 것이었다.
때는 우주 진출을 코앞에 둔 시대. 세상은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역사적인 첫 로켓을 발사하기 전 지구에 운석이 충돌한다는 관측 결과가 알려지고 세상엔 혼란이 찾아왔다. 종말을 앞둔 공룡들의 행동은 과연 어땠을까?
코스즈는 공룡의 이야기를 흥미 있게 들었다. 어딜 가서도 쉽게 듣지 못할 내용들이었다. 그러나 아직 어린 코스즈에겐 받아들인 정보량의 포화 상태가 빠르게 찾아오기도 했다. 그럴 때, 코스즈의 머릿속이 복잡해지다 못해 그만 생각이 멈춰버릴 것 같을 때에는 공룡이 이렇게 말했다.
"생명의 가치가 어떻다든가, 공룡이 말을 한다든가, 알고 보니 공룡이 고도의 지능으로 문명을 발전시켰다던가 하는 것들이 실은 지구가 평평했다는 하나의 사실보다 중요할 게 있나?"
듣고 보니 과연 그랬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었다. 아무렴 지구가 평평한데 다른 사소한 것들이 코스즈의 상상과 어떤 차이가 있든지 무슨 상관일까. 중요한 건 공룡이 코스즈가 살면서 만난 존재 중 가장 현명하다는 사실이었다.
코스즈는 공룡의 개인적인 일을 묻기도 했다. 공룡의 친구 공룡, 가족 공룡도 다 우주 어딘가에 흩어져 있느냐고. 공룡은 고개를 저었다. 마음의 문제로 마음만이 우주로 오게 된 코스즈의 경우와는 달리 공룡들은 운석 충돌의 충격으로 돌아갈 도리가 없이 우주에 버려졌다. 우주에서 생존하는 건 문제가 아니었지만 누구와 만나 대화할 수도, 이전과 같은 활동을 할 수도 없는 우주에서 정신만이 살아있는 건 고문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공룡은 쓸쓸한 표정으로 아마 모두들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을 거라고 말했다. 아직까지 정신적 활동을 이어 가는 공룡은 별종인 나 하나뿐이리라고.
"그래서 말이다, 내가 즐겨 보던 잡지에 5억 년 버튼이라는 만화가 있었는데 그 만화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냐면…."
"…그래서 내가 그 만화의 주인공 같은 경험을 할 수 있게 됐다는 거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처음의 몇 백 년간은 공허함을 달랠 수 없어 서서히 미쳐 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괜찮아졌어."
우주에 홀로 버려져 할 수 있는 건 생각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공룡은 깨달음을 얻었다. 해탈 비슷한 걸 했다. 그래도 모든 감정이 닳아 없어진 건 아니었다. 수천만 년 만에 만난 타인과의 대화는 즐거웠다. 코스즈는 공룡을 존경하게 됐고 공룡은 코스즈에게 정이 들었다.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대화가 끝나고 헤어질 걸 생각하면 아쉬운 마음이 있었다. 특히 코스즈는 지구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온전히 섞이는 게 미래의 목표였다. 자신의 목표가 이루어지면 다시는 우주에 오지 못하고 공룡과 작별할 걸 걱정했다.
"언젠간 카치마치가 변해서 이곳을 떠올리지 못하게 되면 어떡하죠…?"
"그게 바로 네가 원한 변화 아니었냐? 네 곁의 사람들과 동등해지는 것."
"그렇지만… 스승님과 만나지 못하게 되는 건…."
코스즈의 걱정에 공룡은 마음을 정했다. 자신의 마음이 있을 장소를 이 공허한 우주가 아닌 코스즈의 곁으로 옮기기로. 단지 수천만 년 만에 만난 타인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공룡의 마음을 끌어당긴 건 순전히 코스즈의 힘이었다.
"코스즈. 걱정하지 마라."
"네 마음이 지구와 우주를 오갈 수 있는 것처럼 나도 네 마음이 있는 곳에 갈 수 있어. 네 마음이 어떤 형태를 갖고 있는지 나에게 이야기해 준 덕이다."
"스승님도… 지구에 올 수 있어요?"
"그래. 몸이 아닌 마음뿐이지만 지금처럼 대화할 수는 있을 거다."
코스즈는 크게 기뻐했다. 누구보다 훌륭한 스승을 곁에 두고 시작할 챌린지의 결말이 실패뿐일 리가 없다는 자신감이 붙기도 했다.
"먼저 지구에 가 조금 기다리고 있어라. 곧 찾아가마."
"네!"
코스즈는 다시 눈을 깜빡였다. 평소대로의 방 천장이 보였다. 날은 밝았다. 평범한 하루가 시작됐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자, 가족들은 상실감을 겪고 있을 코스즈를 위해 인형 하나를 선물해 주었다. 코스즈가 정말 좋아하는 공룡 모양의 인형이었다.
『반갑다, 코스즈. 눈높이가 꽤 달라졌구나.』
"곤잘레스!"
"어머, 벌써 이름을 붙여준 거니?"
"보고 싶었어요, 곤잘레스…!"
코스즈는 이후로도 여러 가지 챌린지에 도전했다. 전과 다른 건 곤잘레스 스승이 곁에서 조언을 준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역시 실패뿐이었지만 코스즈는 실패가 두렵지 않았다. 자신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을 주는 존재가 곁에 있었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코스즈는 다음에 설 무대에 쓸 소도구 제작을 위한 실과 바늘을 정리하며 귀에 흘러들어오는 반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친구들은 지구 평평론자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지구 평평론자들은 마음껏 조롱해도 되는 대상이라는 듯 거침없는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코스즈는 안다. 지구는 평평하다. 그런 동시에 둥글기도 하다. 친구들의 지구는 둥글지만 코스즈가 본 지구는 평평했다. 그래서 코스즈는 귀에 들려오는 이야기에도 기분이 나빠지지 않았다. 반드시 어느 한 쪽이 틀린 게 아니다. 세상은 원래 모순 투성이다.
코스즈는 최근의 챌린지에서 대성공을 거뒀다. 코스즈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대단한 사람이 되어 세상의 가치를 꿰뚫어 볼 날이 멀지 않다. 그러나 그럼에도 변하지 않을 한가지 사실이 있다. 코스즈가 세상을 이해하고, 완전무결한 사람이 되어 마침내 자신을 용서하게 된다고 해도 변하지 않을 사실.
코스즈의 지구는 평평하다.
끝! 살면서 쓴 글 중에서 이게 가장 이상한 글인 듯. 본문 내용이 혼란스러워서 후기에서 어느 정도 정리하는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감당이 안 되네. 그냥… 잘 알아먹어 주셈.
윗미츠에서 곤잘레스 스승의 존재를 처음으로 안 날의 충격을 잊을 수 없음. 그러지 않아도 코스즈는 자학 기질이 있는 데다가 자기를 카치마치라고 불러서 코스즈 쪽의 자아보다 카치마치 쪽의 자아가 강한 게 아니냐는 걱정이 있었는데, 얘가 인형이랑 소통을 하는 거야. 심지어 그냥 인형도 아니고 스승이래. 스승이면 뭐겠어? 조언을 주는 존재, 그리고 일반적으로 '자신보다는 대단한' 존재지. 여기서 상황이 심각해지는 가능성이 하나 생김. 코스즈가 생각하기에 스승이 자신에게 주는 조언은 언제나 옳다는 가능성임. 스승이 옳으면 반대는 뭐야? 코스즈가 언제나 틀리다는 거임. 옳은 자아와 틀린 자아를 분리해 놓고 사는 거야. 무시무시한 가능성이지.
그런데 난 곤잘레스의 스승의 존재를 단순히 코스즈의 유아적인 면을 드러내는 장치로 취급하기는 싫었음. 스승이 진짜 믿음직한 스승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이런 글을 쓰게 된 듯. 코스즈에게 절대적으로 신뢰받는 조언자인 곤잘레스 스승은 아주 현명해야 한다는 이유로 공룡들이 문명을 발전시키고 로켓을 발사하려 했다는 이상한 설정들이 추가됨. 그렇지만 그렇잖아. 야생의 삶에서 문명사회의 깨달음을 얻는 건 이상하니까.
나는 웹툰 쿠베라의 태초 인류 설정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임. 나도 태초 인류 같은 종족이 되고 싶음. 그리고 분명 코스즈한테도 잘 어울릴 거임. 흰 마음을 가진 존재들이 좋아. 하지만 희다는 건 악하고 더러운 것에 더 잘 물든다는 뜻이기도 함. 코스즈가 순수한 악에 가깝다는 얘기는 그런 의미로 썼음.
별 이상한 글을 읽어줘서 고맙다는 말로 글을 마치겠음…. 코스즈 많이 사랑해 주셈. 진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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