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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번역/창작 [코즈대회] 쌉쌀한 말차에 우유를 곁들여
글쓴이
니코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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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글 주소
https://gall.dcinside.com/sunshine/5791621
  • 2024-06-16 02:31:48
														

1

저물어 가는 태양의 마멀레이드 색 빛이, 책상에 앉아 창가를 바라보던 코즈에의 얼굴을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다.

보통 여름의 태양이라 하면 푹푹 찌는 이미지를 연상케 하지만, 산 꼭대기에 위치한 하스노소라에서는 그 더위마저도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이 적당히 따스한 정도로 바꾸어 주는 것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열어둔 창문 사이로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와 코즈에의 귓가를 간질인다.

가만히 창가를 바라보던 코즈에가 살며시 미소지으며, 오늘은 홍차에 마멀레이드 잼을 곁들여 볼까 생각하던 찰나...


"코~즈~에~! 아직 쉬는시간 안 됐어?"


코즈에의 평화는 그 찰나에 깨져 버렸다.

책상을 바라본 코즈에의 눈에 들어온 것은, 말 그대로 책상 위에 엎어져 있는 밤색 털뭉치였다.


"그리고 너무 더워~! 창문 닫고 에어컨이나 켜자고~!"


그 털뭉치는 말을 할 때마다 어지러이 움직여, 마치 책상 위의 문제집을 청소라도 하는 듯이 쓸어내렸다.

여름의 정취라고는 모르는 듯 시끄럽기 그지없는 것이, 마치 쓰르라미의 노랫소리 가운데 끼어든 말매미와 다를 바가 없었다.

마침 색깔도 거무스름하겠다, 저 규칙성 없이 움직이는 모습이 벌레의 그것처럼 보이기 시작할 찰나.


"코~즈~에~! 지금 나 무시하는 거야?!"

"...방금까지 말매미 생각을 하고 있었단다."

"누구는 방금까지 공부하고 있었는데! 속편해서 좋겠네!"

"그 공부를 왜 하고 있었는지 찬찬히 생각해 보련?"

"으그극..."


그 말매미가 후지시마 메구미의 모습을 하고 말을 걸어왔다.

아니, 후지시마 메구미가 아까까지 말매미가 되어 있었던 것일까.

이것이야말로 호접지몽... 아니, 여기서는 매미 선 자를 써서...


"또 이상한 생각 하고 있지!"

"메구미. 호접지몽의 뜻은?"

"...호랑이가 접지르면 몽롱하다!"

"이번 국어 출제 범위였는데. 나도 슬슬 내가 왜 너의 공부를 봐 주겠다고 했는지 후회되기 시작하는구나."

"워, 원래는 알고 있는 단어야! 지금은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몽롱할 뿐이라구!"

"어라. 공부를 많이 한 것 치고는, 문제집 진도는 한 장이나 넘길까 말까 한 거 같은데..."

"시간으로 따지면 50분이거든? 고등학교에서는 45분 공부하고 10분 쉬거든? 벌써 5분 넘겼거든?"

"한 시간 동안 10개의 문제를 푸는 것과, 다섯 시간 동안 10개의 문제를 푸는 데에 차이는 없단다."

"코즈에는 오니! 악마!"


코즈에를 매도하는 메구미의 눈가에 슬슬 물기가 맺히기 시작하는 걸 보니, 진짜로 한계에 다다르기는 한 모양이었다.

너무 채찍만 휘두르면 역효과가 날 수도 있으니, 여기에서는 적당히 당근을 써 볼까.

코즈에는 그렇게 생각하며 살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찻주전자 쪽으로 향했다.


"알았어. 대신 오늘 저 페이지까지는 다 끝내고 가야 해?"

"얏호! 그럼 바로 에어컨 on!"

"기껏 여름 산바람을 느끼고 있던 참이었는데..."

"현대 문명이 만들어낸 도구를 활용하는 게 인간이라구~"

"지금은 메구미의 쉬는 시간이니까, 알아서 하렴. 나는 그 동안 홍차를..."

"아, 그리고 하나 더. 맘대로 하라니까 생각난 게 있는데."

"뭐니?"

"홍차 말고 딴 거. 홍차 이제 질렸어."


코즈에의 미간이, 깊은 골이 생길 정도로 찌푸려졌다.



2

"...그건 내가 타 주는 홍차가 맛이 없다는 뜻일까."


메구미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그 말을 듣고는, 속으로 '아차' 하고 생각했다.

살다 보면 그런 날이 있다.

평소에는 엄격한 사람이, 유독 풀어져 있는 날이.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사치 선배가 살짝 짖궂은 장난을 쳐도, 츠즈리가 어디선가 송충이를 주워 와도, 오늘의 코즈에는 그저 가볍게 한숨을 쉬고 다시 웃어 보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메구미는 그런 코즈에를 보며 생각했던 것이다.

이 사람, 어디까지 봐 주려나... 하고.

불꽃을 향해 날아드는 나방처럼, 그 앞에 파멸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면서도 메구미는 그 길을 향해 달려나갔다.

왜 그랬냐 하고 물어본다면, 그것은 필시 메구미의 천성이라고 답할 수 있으리라.

시작한 일은 끝을 봐야만 하는, 그 천성.


"아,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신에게 감사해야 할까?

마치 능력치를 몰아서 찍은 것처럼, 공부를 제외한 부분에서 메구미는 재능이 넘치는 아이였다.

메구미는 자신이 50분 동안 공부하는 수준의 두뇌 회전을, 이 짧은 순간 안에 압축해서 돌릴 수 있는 아이였다.

임기응변과 달변이라는 스킬을 사용해서, 메구미는 자기 신변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떡만 먹고 살 수는 없다 그러잖아?

가끔은 홍차 말고 보리차나 둥굴레차 같은 것도 마셔 줘야 한다는 거지.

코즈에라면 분명 그런 차에도 조예가 깊을 거라 생각하는데..."


어디선가 들어본 속담(속담인지는 모르겠지만)에, 적당히 차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탈출구를 만들어 준다.

거기에 코즈에에 대한 칭찬 한 스푼을 가미.

인터넷 방송의 여왕다운 순간 대처 능력이었다.

그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코즈에는 턱에 손을 가져간 채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했다.


"보리차에 둥굴레차... 확실히, 시원한 보리차는 여름의 정취가 느껴지는 음료이긴 하지만..."

"그치? 아까까지 여름 바람 기분 좋다 했잖아~ 창문에 풍경이라도 매달아 놓고 마시면 더 기분 좋을걸?"

"공교롭게도 이 부실에는 티백 같은 건 없단다."

"엑."

"찻잎이라면 이것저것 있지만. 아삼, 다즐링, 실론..."

"다 홍차잖아!"

"미안하게 됐구나, 메구미. 오늘은 홍차로 참아줄 수 있을까?"



사실, 이 시점에서 메구미는 '위기 회피'라는 소정의 목표를 달성했다.

어디 그뿐인가. 코즈에와의 대화에서 오히려 주도권을 잡고 있다.

그 코즈에에게서 미안하다는 말을 뽑아낸 것은 굉장한 성과였다.

여기에서 후퇴한다면... 어쩌면 오늘은 공부 시간이 좀 줄어들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까 말하지 않았던가.

메구미는, 시작한 것은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였다.

이미 위기 회피라는 목표는 사라지고, 홍차 말고 다른 것을 먹겠다는 목표만이 남아 있게 된 것이다.


"시~~~잃~~~어~~~어!!!"

"메구미! 고등학생씩이나 되어서는..."

"싫은 건 싫어! 그리고 나 고등학생 된 지 3달도 안 됐고!"

"자꾸 그러면 프로틴 쉐이크를 먹이는 수가 있어."

"메구쨩은 근육 필요 없거든요~ 말랑말랑한 편이 더 인기도 끌 수 있고~"

"그래서 러브라이브 우승이나 하겠니?"

"메구쨩같이 귀여운 애가 우승을 못 할리가 없잖아?"

"그 자신감만큼은 정말 부럽네."


코즈에는 어느 새 세모입을 하고는, 팔짱을 낀 채로 메구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메구미는 그 모습을 보고, 아직은 더 기어올라 봐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진짜 화가 났다면 벌써 레슬링 기술을 걸고는 입에 프로틴 가루를 털어넣고 있었을 테니까.

프로틴같이 맛없는 가루를 왜 먹는 걸까?

먹어봐야 고릴라가 될 뿐인데...

잠깐. 가루? 그러고 보니 가루로 만드는 차가 있었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메구미의 두뇌는 다시금 오버클럭을 시작했다.

1060ti로 사이버펑크 풀옵션을 돌렸던 때처럼 뇌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덕분에 정답을 얻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이거라면 오늘, 아니, 어쩌면 내일까지도 땡땡이를 칠 수 있을지도.

메구미는 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코즈에에게 말을 걸었다.


"코즈에, 그러고 보니 말차는 만들 줄 알던가?"


3

"말차? 업으로 삼는 분들에게는 한참 못 미치지만, 어느 정도의 다도라면..."

"말차가 마시고 싶어졌어. 그거만 마시면 심신이 안정되고 혈액순환이 잘 되어서 공부에도 집중할 수 있을 텐데~"

"말차가루라면 다행히도 조금 남아 있네. 이거면 괜찮을까?"

"어. 많이 마실 것도 아니고, 두 잔이면 되겠지."


메구미의 눈웃음이 신경쓰였지만, 코즈에는 조용히 말차를 만들기로 했다.

메구미와 함께한 지 아직 반 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코즈에는 메구미라는 사람을 잘 알고 있었다.

메구미는 원하는 게 손에 들어오기까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계속 입씨름을 할 바에는,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원하는 바를 이루어주는 편이 서로에게 좋을 것이다.

코즈에는 나지막히 한숨을 쉬며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메구미. 찻잔을 조금 데워 주지 않겠니?"

"난 다도 같은 건 모르는데."

"어차피 여기 있는 다기로 다도는 무리야. 그래도 이왕 먹는 거, 조금이라도 맛있게 먹어야지."

"음... 전자렌지에 넣으면 되나?"

"그, 그러면 펑 하고 터지지 않니?"

"...코즈에, 이게 뭐 알루미늄인 줄 알아? 도자기는 괜찮아."

"그...렇구나. 그럼 그 부분은 메구미에게 맡기는 걸로..."


코즈에는 '기계 씨'와 별로 친하지 않았기에, 그런 시도를 하는 것이 조금 두려웠다.

'전자레인지 씨'와 마지막으로 싸웠던 것은...

아마 계란을 삶기 위해 '전자레인지 씨'에 넣고 돌렸던 때가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화가 많은 성격인지, 안에 들어간 계란은 형채도 알아볼 수 없게 되어버렸었지.

그래도 지금 쓰는 '커피 포트 씨'와는 친해질 수 있어서 다행이다.

코즈에는 그렇게 생각하며, 커피 포트로 끓인 물을 메구미가 데워 놓은 찻잔에 따라내었다.


"자, 말차 완성."

"이게 끝이야? 뭐 붓 같은 걸로 휘적휘적 같은 거 안 해?"

"여기가 다도부인 줄 아니. 그런 도구가 있어야 하지."

"그렇겠지~ 여기서 본격적인 말차를 기대하기는 무리지~"


메구미는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찻잔을 들어 말차를 후루룩 하고 마셨다.

입 안에서 머금기를 3초, 목으로 넘기기까지 5초.

그리고 골똘히 생각하기를 다시 5초.

그리고 메구미는 다시금 찻잔을 들었다.

이번에는 목으로 넘기기까지 3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메구미는 활짝 웃는 얼굴로 코즈에를 향해 말했다.


"응, 별로네 이거! 내가 아는 데가 더 맛있겠다."


4

메구미는 사실 이 말차가 그렇게까지 별로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평범하게 커피 포트에 끓인 물과 동네 마트에서 팔 법한 녹차 가루로 만든 말차였지만, 코즈에가 만든 것은 적어도 자신이 만든 것보다는 훨씬 맛있었다.

컵을 데우는 것만으로도 이렇게나 맛이 달라진다면, 언젠가는 코즈에의 진심 말차를 마셔 보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또 다른 언젠가의 기회로 남겨 두고, 메구미는 아까 생각한 작전대로 일부러 코즈에를 도발해 보았다.

코즈에가 못 알아들을 만한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좀 '긁어 봤다'.

예상대로, 코즈에는 당황한 듯한 표정을 내비치고 있었다.

자기가 만든 차가 맛없다는 얘기를 들은 것은 오랜만일 테지, 어쩌면 처음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제 내가 알고 있다는 그 가게가 궁금해질 테고...

메구미는 철면피를 깐 채 찌뿌둥한 표정을 지으며, 속으로는 웃고 있었다.

코즈에는 차를 한 입 마신 뒤 메구미에게 말을 걸었다.


"확실히. 맛이 좀 거친 느낌이 드는구나. 뒷맛은 떫고. 빈말로도 좋은 차라고 말하지는 못하겠어. 잘 쳐 줘야 60, 아니 50점짜리 말차일까."

"어...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번에는 메구미가 당황할 차례였다.

맛이 별로였다는 건 단순히 긁어 보기 위해서였고, 실제로 평점을 매긴다면 85점 정도는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게 거친 맛인지, 뒷맛이 떫은지, 메구미의 입으로는 구분할 수 없었다.

하지만 코즈에는 메구미가 사실 차에 조예가 깊다고 착각해 버린 듯 했다.


"메구미. 솔직히 말해 너를 조금 다시 보게 되었구나."

"그... 그럼! 이 메구미 님을 뭐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처음 말차를 내 달라고 할 때만 해도, '분명 쓰다고 설탕 넣어 마실 텐데...' 라고 생각했단다."

"내가 츠즈리도 아니고 그러겠냐고! 아니 츠즈리도 말차 마실 때는 안 그러겠다!"

"그런 메구미가 맛있다고 할 만한 말차는 어떨지 좀 궁금해지는걸."


메구미는 그 말을 듣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오늘은 이상할 정도로 운수가 좋은 날이었다.

코즈에를 아무리 긁어도 혼나지 않지, 쉬는 시간은 벌써 30분을 넘어갔지.

앞으로 한 발만 더 내딛으면, 오늘 하루를 완벽한 하루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메구미는 마지막에 와서 허무하게 실패하는 허접한 사람이 아니기에, 숨을 가다듬고 아무렇지 않은 체 가볍게 말을 꺼냈다.


"그럼 가 볼까?"

"어라. 그렇게 쉽게 갈 수 있는 곳이니? 혹시 학교 안에 있다던가. 다도부?"

"그건 아니지만~ 카나자와 역 근처에 있지."

"그것 참 끌리는 제안이구나."

"그래서 말이지? 우리 슬슬 다음 공연용 옷감도 사야 하잖아? 그거 겸해서 내일 가 보는 거 어때?"

"옷감이라... 슬슬 다음 의상 준비할 때가 되기는 했지만."

"그치? 사치 선배한테 말해서 활동계 제출하면 둘이서 나갈 수 있을 거라구."

"응. 그것도 좋지. 좋은 생각이야."


넘어왔다.

이 얼마나 길고 긴 싸움이었던가.

메구미는 눈앞의 근육 괴물을 마침내 쓰러뜨리고, 자유를 얻은 것이었다.

활동계라면 외출 금지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고, 시간이 남으면 겸사겸사 방송 장비도 보러 갈까~ 하고 메구미는 생각했다.

코즈에가 그 말을 꺼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나에게 더 좋은 생각이 있는데."

"...?"

"추가 시험이 끝나고, 합격점을 받아서, 제대로 외출 허가를 받고 나가는 것."

"그, 그치만! 옷감은!"

"어라, 메구미가 의상 만들기에 그렇게 관심이 많은 줄은 몰랐는걸. 평소에는 한 번도 도와주지 않더니."

"그으으윽..."

"며칠 정도 일정이 늦어진다 해서 의상 만들기에 차질이 생기는 건 아니란다. 더군다나 우리는 스쿨 아이돌. 라이브 일정 같은 건 당연히 시험 일정을 생각해서 짜지."

"그런 거였어?!"

"하지만 댄스나 가창 연습이 늦어지면 퍼포먼스 측면에서 부족한 모습이 나올지도 모르지. 안 그래도 누구 씨가 추가 시험을 보는 바람에 며칠 늦어진 일정인데."

"..."

"그럼 지금 해야 할 일은 뭘까, 메구미?"

"...네.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 공부를 해야 합니다."

"참 잘했어요♡ 족히 30분은 쉬었으니, 150분 연속으로 공부해도 되겠지?"


메구미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문제집을 펴고, 이해할 수 없는 숫자들과 눈싸움을 할 뿐.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5


"메구미. 메구미? 곧 카나자와 역이란다. 어서 일어나렴?"

"엄마... 5분만 더..."

"나는 네 엄마가 될 생각도 없고, 지금 안 내리면 네가 어디까지 갈지 모르겠는걸."


메구미는 한 차례 크게 양 팔을 크게 뻗으며 기지개를 켜고는,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렇게 피곤했다면 오늘 정도는 그냥 쉬어도 될 것을.

어제 밤샘 공부-스스로도 불안하긴 했나 보다-를 하고 아까 막 추가 시험을 마친 메구미는, 즉석 채점을 마치자마자 시험지를 들고 교무실로 달려가 외출계를 써 온 것이다.

코즈에의 것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메구미. 혹시 무리하고 있는 건 아니지?"

"내가 코즈에인 줄 아나. 메구쨩은 극 E라서 나돌아다녀야 회복이 되거든요."

"극 E...? 양극 음극, N극 S극은 들어 봤어도 극 E는 도대체..."

"됐고, 그냥 따라와. 저번에 말차 마셔보고 싶다며."

"...어라, 설마 시험 공부를 봐 준 데 대한 보답이라던가?"

"..."


메구미는 코즈에 쪽은 바라보지도 않은 채, 대꾸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어디론가 걸어갔다.

하지만 메구미를 뒤에서 따라가는 코즈에에게는, 풍성한 머리칼 바깥으로 수줍게 고개를 내민, 새빨개진 귀가 보였다.

참 솔직하지 못한 아이라니까...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코즈에는 그렇게 생각하며, 뒤에서 미소지으며 메구미를 따라갔다.

그 미소가 사라지는 데는 5분도 채 걸리지 않았지만.


"메구미. 여기는 도대체..."

"보면 알잖아. 스벅 처음 봐?"

"스타벅스라는 곳은 커피 전문점이 아니었니? 말차는?"

"일단 들어가 보셔."


스타벅스라는 프랜차이즈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지만, 실제로 들어가 본 적은 없는 코즈에였다.

혹시 자기가 메구미의 연기에 속은 것은 아닐까.

들어가 앉아 있으면 메구미가 커피를 들고 와서는 '유감! 여기는 커피집입니다! 말차 같은 걸 기대했어?' 라고 말하지 않을까.

코즈에는 반신반의하며 적당한 2인 테이블석을 찾아 앉았고, 이내 메구미가 코즈에의 맞은편에 앉아 휴대폰을 이리저리 만지고 있었다.


"저기 메구미. 주문은 안 하니? 아니면 여기도 점원 분이 테이블로 와서 주문을 받는 거니?"

"평소에 얼마나 대단한 카페를 다니는 거야... 주문이라면 오는 길에 했는데?"

"오는 길에? 전화를 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는데..."

"요새는 세상이 좋아져서 버튼 몇 번만 누르면 주문이 된단 말이지. 코즈에한테는 무리겠지만!"


메구미는 그렇게 말하고 킥킥 웃었다.

코즈에의 목끝까지 '나한테 보답하러 온 거 아니었니?'라는 말이 올라왔지만, 메구미가 삐칠 것 같아 그만두었다.

...휴대폰 씨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단 것도 사실이고.


"경애하는 메구당 수령님! 핫 말차 라떼 우유 추가 2잔 나왔습니다!"

"이름 짓는 센스 하고는."

"귀엽지? 갔다 올게."


메구미는 부끄럼 한 점 없이 카운터를 향해 콧노래를 부르며 걸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메구미가 돌아와서는 테이블 위에 커피잔 2개를 올려 놓았다.

코즈에는 커피잔과 그 안에 담겨 있는 액체를 보자마자 메구미에게 말했다.


"이게 말차니?"



6



"응. 말차 라떼, 우유 많이."

"메구미. 말차에는 우유를 넣지 않아. 커피잔에 담겨 나오지도 않고."

"에에~ 또 할머니 같은 소리 한다. 먹어 보지도 않고 그러는 거야?"

"누가 할머니라는 거야."


그 말을 들은 코즈에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다시금 커피잔을 바라보았다.

메구미가 보기에, 이것은 틀림없는 말차였다.

하지만 코즈에가 보기에는 아닌 것 같았다.

메구미는 시험 성적표 배부 순서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긴장한 채로 코즈에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내가 왜 코즈에 눈치를 봐야 하지?'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코즈에가 커피잔에 손을 댄 순간 그런 생각은 쓸려나갔다.

코즈에에게는 쑥스러워서 제대로 말하지 못했지만, 아까 코즈에가 말한 대로 그녀에게 보답을 하고 싶은 건 사실이기에.

이왕이면 코즈에가 좋아해줬으면 한다.

내가 좋아하는 걸 코즈에도 좋아해줬으면 한다.

메구미가 이렇게 속을 태우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코즈에는 무심하게 커피잔을 들어 말차 라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역시 말차는 아니네."

"...아, 그래."

"하지만 맛있어."

"...그치! 맛있지! 역시 코즈에, 맛있는 걸 알아보는구만~"

"특히 이 우유 거품이 흥미로워. 말차도 거품을 내서 마시지만, 우유로 거품을 내니 더욱 부드럽게 넘어가는걸."

"핫하하! 이 메구쨩이 괜히 우유를 추가해서 먹는 게 아니거든~"

"뭐니, 그 웃음소리는. 사치 선배도 아니고."


메구미는 코즈에의 어깨를 툭툭 치며, 대견하다는 듯 웃어 보였다.

그 웃음은 대견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기쁨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걸 숨기기 위해, 일부러 더욱 호방하게 웃어 보였다.

코즈에가 좋아해 줘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며, 메구미는 자기 몫의 말차 라떼를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오늘 먹는 말차 라떼는 유독 단맛이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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