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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번역/창작 [ss]사야카호 - 빙판 위에 피어난 꽃 4
글쓴이
ほのり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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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글 주소
https://gall.dcinside.com/sunshine/5789416
  • 2024-06-12 17:19:06
 

링크 넣을 자리.


금지어 있어서 사이에 /를 넣었습니다.












7.




카호는 즐겁지 않은 플루트는 그만두고 다른 부를 찾아다니며 체험 활동을 계속했다. 사야카에게 격려를 들어놓고 플루트는 그만두는 게 이상해 보일 수는 있지만, 나름의 성장을 이룬 결과였다. '이건 내가 원한 꽃피움이 아니니까.' 정답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다른 길을 찾을 수도 있게 됐다.




한편 사야카는 카호를 도울 만한 사람이 되기 위해 무용부 선배들에게 상담을 받았다. 지적받는 문제는 여전했다.




"사야카. 전부터 해온 이야기와 똑같지만, 이상적인 만점 답안지를 그대로 베껴서 똑같이 만점을 받을 수는 없어. 남의 표현력은 완전한 내 것이 아니니까. 남의 건 그만 쫓고 너는 너만의 표현법을 찾아야 해."




사야카는 스즈키 선배에게 전과 같은 이야길 반복해서 들었지만, 지금의 사야카는 이전의 사야카와는 조금 달랐다. 지금의 사야카는 보다 실마리에 가까웠다. 무어라 콕 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전과는 달라진 점이 있는 것 같았다. 그걸 찾으면 자신만의 표현법이란 것도 자연스레 완성되리란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아직은 자기 안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짚을 수 있는 단계는 아니었다. 고민이 도로 막힌 사야카는 아직은 답을 낼 수 없는 문제에는 신경을 끄고 선배에게 평소 궁금했던 걸 물어보기로 했다.




"저, 그런데 스즈키 선배. 부장 선배도 시간이 남아 보이는데 어째서 항상 스즈키 선배가 절 전담하다시피 봐주시는 건가요?"


"왜 잘난 부장은 가만있고 나만 계속 바쁘게 널 봐주고 있냐는 질문인가?"


"아, 아뇨… 의미는 그게 맞긴 한데 그렇게 말하실 것까진…."


"아니야. 타당한 의문이다. 네가 납득할 수 있도록 자세히 설명해 주지. 부장은…."




아, 또 시작이구나. 사야카는 이어질 길고 긴 말을 잘 이해할 각오를 마쳤다.




"부장이 지금의 부장으로 이르기까진 엄청나게 힘들고 긴 연습의 과정이 있었다. 하늘에서 벼락처럼 내려온 기재가 아니란 말이지. 한 발 한 발 계단을 올라가며 착실히 쌓아 올린 성취. 그게 부장의 노력이다. 그럼 너는 어떨까. 너도 부장과 스타일이 비슷하지. 아마 넌 휴가가 주어져도 평소랑 똑같이 이른 시간에 일어나서 연습이나 할 거야. 부장과 너의 장점은 꾸준함이다. 하지만 한 가지 장점만으로 모든 일을 해결할 수는 없어. 네 문제를 꾸준함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면 진작에 극복했을 거다. 요컨대 직진은 그만두고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 봐야 한다는 거지. 그리고 그런 면에선 내가 부장보다 낫다. 부장은 너랑 똑같이 땡땡이라곤 상상도 못 할 올바른 녀석이지. 나는 다양한 관점으로 네 움직임을 봐줄 수 있어. 부장도 그걸 알아서 나한테 너를 맡긴 거다."




듣고 보니 과연 그랬다. 스즈키 선배는 항상 남의 이목을 끌려고 하고, 장난치는 데 열성을 다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언제나 이렇게 제대로 후배를 생각해서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사야카는 납득했다는 말과 함께 감사 인사를 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동아리를 이곳저곳 들쑤시는 병아리가 있다던데. 듣자 하니까 네 반 친구 같더라? 여기에는 안 온대?"


"카호 씨 이야기일까요…? 그보다 무용부는 제가 추천하질 않았어요."


"대체 왜지? 내가 못 미덥냐?"


"바로 그 말부터 하시는 걸 보면 선배 스스로도 자각하고 계시는군요…?"


"이 자식, 춤도 못 추면서 입만 살기는. 만만해졌다 이거지."


"우에에에에에…."




스즈키 선배는 장난스럽게 사야카의 옆머리를 두 주먹으로 누르며 빙글빙글 돌렸다. 본의치 않게 우스꽝스러운 소리를 낸 사야카는 꽁한 표정으로 손을 뗀 스즈키 선배를 노려봤다. 사야카라고 해서 춤을 못 추고 싶어서 못 춘 게 아닌데.




"그러고 보니 선배, 저 이번 주에는 빙상장에 다녀올까 해요. 역시 도망치기만 하면 안 될 거 같아서."


"그래. 딴짓은 할 만큼 했으니 돌아갈 때가 됐지. 잘 하고 와라."


"네,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




사야카가 슬럼프를 해결하고 스케이트를 잘 타게 된다면 무용부에 발길을 끊을지도 모르는데도 스즈키 선배는 잘 다녀오라고 인사했다. 사야카는 한낱 임시 부원인데도 동등한 일원으로 대해주는 이곳이 좋았다. 모든 걸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언제라도 등을 기댈 수 있는 장소. 그걸로 족했다.








다시 카호 쪽으로 돌아가서. 카호는 최근 손댄 모든 활동에서 다 망했다. 악기를 제대로 익히려면 최소 몇 달은 걸릴 만큼 재주가 없는 편이었고, 몸을 쓰는 일에선 체력 부족을 실감했다. 사야카의 도움으로 나름 운동을 한다고 한 건데도 이렇다니, 확실히 지금까지의 자신은 온실에만 머물러 있었다는 걸 느꼈다.




악기류는 격차를 느끼기 너무 쉬워 즐기질 못했고, 사야카를 따라 무용이라도 해볼까 했지만 카호의 눈엔 충분히 대단해 보이는 사야카가 선배들에겐 비판을 듣는다는 걸 알고 마음을 접었다. 아무리 그래도 사야카보다 잘할 자신은 없었다.




카호는 연주회를 한대서 간 곳에서 옆자리에서 같이 선배에게 플루트를 배우던 아이의 연주를 듣게 됐다. 카호가 플루트를 그만두고 연습실을 나와 정처 없이 학교를 떠돌던 시간 동안 그 아이의 실력은 뚜렷하게 늘어있었다. 선배들이 보기에도 장했는지 선배들은 성공적인 연주를 마치고 그 아이를 둘러싸 칭찬을 쏟아내는 데 여념이 없었다. 카호는 순수하게 축하하는 마음을 가질 수 없었다. 노력하고 싶은 일도, 노력할 기회도 모두 가진 그 아이가 부러웠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요즘 카호에겐 한 가지 근심이 더 있었다.




카호에겐 학교 관리실을 찾아가서 허락을 받아 얻어낸 등굣길 근처의 작은 화단이 있었다. 위치도 좋고 빛도 잘 드는데도 아직 흙뿐이라 무언가 씨앗이 심어져 있는지 주인지 있는 화단인지 궁금해 물어보러 간 길에 얼떨결에 맡게 된 화단이었다.




원하는 만큼을 이것저것 다 심을 수 있을 정도의 넉넉한 크기였지만 그 공간을 모두 채울 생각은 들지 않았던 카호는 귀퉁이 한구석에만 두세 종류의 씨앗을 심어뒀는데, 다들 무탈히 자라 잎을 키우는 듯하더니 도중에 한 아이가 병이라도 걸렸는지 시들시들하게 된 지 한 주가 지났다. 살리려고는 해봤지만 카호가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니었는지 통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 학교에 와서 처음으로 심은 아이니만큼 잘 자라주었으면 했는데, 아침에 본 상태로는 아무래도 오늘이 마지막 기로일 듯했다.




방과 후가 되어, 마지막 희망을 잡고 뿌리라도 살아있다면 다른 곳에 옮겨줄 생각으로 흙을 파 보았지만 식물은 이미 뿌리까지 다 죽은 상태였다.




카호도 자신이 살핀 아이가 죽고 살고는 자신이 온전히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어렸을 때 몸에 찾아온 병마가 제 마음을 신경 쓰지 않았듯이, 어떤 일은 사람의 의사와 관계없이 그저 운명대로 흘러간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굳이 이렇게 또 일깨워준 건 참 너무한 일이었다. 카호는 원망할 데를 찾지 못해 갈 곳 없는 감정으로 마음에 패인 자국을 만들었다가,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화를 냈다가, 이내 눈물이 흐르려는 걸 막으려고 눈을 꾹 감았다 뗐다. 이 아이가 죽은 건 안타까웠지만 카호에겐 다른 무언가를 충분히 동정해 줄 여유조차 없었다. '미안해.' 해줄 수 있는 건 한 마디 짧은 말뿐. 카호는 흙에서 식물을 뽑아내고 뒷정리를 했다.




"…아~~ 정말! 이렇게까지 안 풀릴 건 없잖아! 이제 몰라! 나 놀러 갈 거야!"








"알겠지? 사야카쨩?"


"하나도 모르겠는데요…."


"같이 놀이공원에 가자는 거야!"


"놀이공원을 간다고 하면 외출 허가를 안 내주실 거 같은데요?"


"이유야 지어내면 그만이지~ 설마 사야카쨩… 거짓말 못 해?"


"거짓말은 할 수 있어도 안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만…."




사야카는 카호의 뜬금없고 허황된 제안을 거부하려 했다. 허나 카호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사실 안 간다고 말할까 봐 티켓은 이미 온라인으로 결제했어! 실물 출력도 해서 환불도 못 해!"


"…네에에에?"


"에이, 빼지 말고. 사야카쨩도 놀이공원 가고 싶지 않아?"


"그렇게 가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데요…."


"왜? 사야카쨩은 놀고 싶지 않아?"


"네에…."




사야카가 '이번 주엔 빙상장에 가기로 했거든요.'라고 말한다면 쉽고 빠르게 카호를 퇴치할 수 있겠지만 사야카는 그러지 않았다. 사야카는 어딘가 핀트가 나간 카호의 모습이 익숙했다. 카호도 핀트가 나가고 싶어서 나간 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아직 사야카에겐 말하지 않은 어떤 일이 있었으리라. 때문에 손쉽게 자신의 일정을 이유로 꺼내 들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는 건, 사야카에게 거절할 만한 마땅한 명분이 없다는 의미였다.




"사람이 어떻게 놀고 싶지 않을 수가 있지…? 사야카쨩 괜찮아?"


"괜찮은데요…."


"아니야. 사야카쨩은 안 괜찮아."




카호는 사야카가 자신과는 달리 굉장히 성실하다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비장한 확신에 차 말했다. 사야카는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카호를 어떻게 제정신으로 돌려놓을지를 생각했다. 그러나 사야카를 설득하기 위해 아무 말이나 하는 것 같은 카호에게도 의외로 사야카를 꼬드길 말이 준비돼 있었다.




"사야카쨩은 놀이공원 가본 적 있어?"


"그건 당연하죠. 저를 뭘로 보시고."


"엄마 아빠랑 손잡고 갔겠지. 친구들이랑만 간 적도 있어?"


"…없는…데요."




확실히 사야카는 그랬다. 극기 훈련을 갔으면 몰라도, 놀이공원에? 카호는 사야카가 움츠러든 기세를 타 사야카가 놀아야 하는 이유를 설파했다. 해본 적 없는 일을 어떻게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 확신할 수 있냐고. 우선 제대로 놀아봐야지 자기가 휴식이 필요한 사람인지 아닌지도 알 수 있는 거라고.




놀고 쉬는 데에도 전력을 다해 본 경험은 없는 사야카는 마땅히 반박하지 못했다. 사야카는 딱 봐도 노는 일에 부러 시간을 쏟을 법한 아이는 아니라서, 카호가 쿡 찔러본 말이 가볍게 적중했다. 사야카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엉뚱한 일은 이번만이에요. 다음엔 똑바로 상의해 주세요."


"이예이~!"




그리하여 사야카는 고등학교 생활 중 첫 일탈을 저지르게 된다. 해야 하는 일을 뒤로하고 선생님껜 거짓말을 하며 가는 곳이란 게 놀이공원이라니, 예전의 사야카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지.




카호는 잔뜩 신난 채로 열심히 짠 계획표를 보여줬다. 어떤 놀이 기구를 타고 어떤 음식이 맛있고 기념품이 뭐가 있냐는 것들. 생각보다 꽤 꼼꼼하게 채워진 내용이었다. 기왕 일탈을 할 거면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냐는 카호의 정성이었다. 그런데 사야카가 보기엔 문제가 하나 있었다.




"저, 카호 씨… 다 좋은데, 밤까지 놀다 오실 생각인 건가요?"


"당연하지! 사야카쨩이랑 놀이공원에 갈 일이 얼마나 있다고."


"그게 아니라… 늦은 시간에 운행하는 버스는 교직원들이 주로 타는 버스라고요? 그걸 탔다가 안의 선생님들께 받을 관심이 두렵지도 않으세요?"


"어… 괜찮지 않을까?"


"준비해 둔 구실이라도 있는 건가요?"


"그런 건 없는데,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카호는 놀 생각에만 빠져 벌점을 받을 가능성 같은 건 상상도 하지 않고 있었다. 열심히 해도 해도 안 돼서 분한 마음을 식히려고 놀러 나갔다 오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다면 잘못된 건 자신이 아니라 이 학교라는 믿음이었다. 그래도 사야카는 아직 카호가 어떤 마음으로 놀자고 하는 건진 몰랐지만, 괜히 이러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으로 더 이상 따지지는 않기로 했다. 돌아오는 길에 능청을 떨며 선생님들을 자연스럽게 속여야 하는 숙제가 부과되었다. 정말 사야카답지 않은 일이었다.








놀이공원에 입장했다는 걸 알리듯 주변은 온통 화려한 색채로 가득 차 있었다. 타이밍 좋게 둘의 바로 앞에서 얼굴을 온통 하얗게 칠한 피에로 분장을 한 사람들이 행진하기도 했다. 카호가 그들 중 하나와 눈이 마주치자 피에로는 환영한다는 듯 씨익 웃었다. 입꼬리에 칠한 붉은 입술 분장이 길게 늘어졌다. 카호도 반갑다고 신나서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피에로는 고개를 숙인 뒤 갈 길을 갔다.




사야카는 출발하기도 앞서 걱정이 잔뜩이었지만, 그래도 놀이공원에 도착해 밝아진 카호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몸이 아팠던 어린 시절은 물론이고 중학교를 다닐 때까지도 통금이 있어 자유롭지 못했다고 하니 이런 델 올 기회도 얼마 없었을 거다.




"멋있다… 공연 같은 것도 하는 사람들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일정이 있는지 찾아볼까요?"


"아냐, 놀이공원에 왔으니까 일단은 놀이 기구부터. 우선은…. …뭐였더라? 모르겠다. 보이는 것부터 타보자!"




잔뜩 신나 눈앞의 풍경을 하나하나 둘러보던 카호는 결국 자신이 짜둔 계획표도 잊고 당장 앞에 보이는 놀이 기구를 향해 달려갔다. 사야카는 어쩔 수 없다고 웃으며 카호를 쫓아 달렸다. 한눈을 팔면 카호는 미아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탄 놀이 기구는 정석 중의 정석, 롤러코스터였다. 카호는 내내 신나게 비명을 지르다가 내려와선 들뜬 심장을 진정시켰다. 처음엔 긴가민가했던 사야카도 카호의 비명이 조성해 주는 분위기를 타고 한껏 즐길 수 있었다. 재밌었냐고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다음 목적지는 롤러코스터보다 더한, 공포를 자아내는 기구들이었다. 사야카조차 차마 담담하게 바라볼 수 없었다.




"저거… 괜찮겠어요? 안 무서워요?"


"무서우려고 타는 건데 안 무서우면 안 되지 않아?"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요…?"


"자, 가자! 사야카쨩!"




몸이 아픈 어린 카호가 얼마 없는 기회로 놀이 기구를 타봤자 기껏해야 느릿느릿한 순환열/차나 회전목마 정도였다. 놀러 가서도 아픈 몸을 신경 써야 했던 카호는 억척스럽게 자라 갖고 싶은 걸 탐했다. 사람을 초고속으로 떨어지게 하고, 공중에서 이리저리 돌게 만드는 놀이 기구들이 주는 공포조차도 카호에겐 갖고 싶은 경험이었다. 카호는 망설임 없이 달려나갔다.




몇 개의 놀이 기구를 더 타고, 1년 동안 지를 비명을 다 지른 카호는 목이 쉴까 걱정하는 사야카에게 물병을 받아 마셨다. 어째선지 어린애와 보호자 같은 광경이었다. 한편 사야카의 감상은 조금 엉뚱한 방향으로 튀었는데, 나중에 래프팅이나 암벽 등반 같은 일들을 해도 재밌겠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언젠가 미래에 실제로 하게 된다면 사야카는 당연히 카호를 끌고 갈 생각이었다. 사야카도 카호에게 이끌려 두서없는 놀이공원엘 왔는데, 사야카라고 카호를 못 끌고 가겠는가? 카호는 아직 자신의 미래가 이 순간에 결정됐다는 걸 알지 못해 태평했다.




실컷 즐기고 난 뒤에는 음식의 차례였다. 하스노소라의 교내 식당도 수준급의 요리를 제공했지만, 그래도 바깥의 식당을 찾아가지 않아도 좋을 정도로 가짓수가 많지는 않았다. 특히 영양의 균형을 신경 쓰지 않는 길거리 음식이라면 더했다. 카호는 뜨끈뜨끈한 추로스를 입에 물고 다음에 즐길 건 뭐가 있을지 찾으며 돌아다녔다.




다른 노점상도 찾았는데, 거기선 머리띠를 비롯한 여러 장식물을 팔고 있었다. 치장에 특별한 관심을 두진 않은 사야카도 눈을 번뜩일 수밖에 없었는데, 머리띠 중 레서 판다의 귀 모양 머리띠가 있었기 때문이다. 레서 판다를 좋아하냐는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야카의 빛나는 눈을 본 카호는 그 머리띠를 두 개 구입해서 하나를 사야카에게 씌워줬다. 만족하는 모양이었다.




다음에 찾은 건 실내 놀이터였다. 어린이용의 작고 안전한 시설과 청소년과 어른을 대상으로 한 시설이 구분돼 있었는데, 카호는 두 곳을 다 이용했다. 항상 창밖으로 바라만 보며 부러워했던 풍경 속이라도 이제는 들어갈 수 있었다. 사야카는 커다란 고등학생 둘이 정글짐을 타는 모습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 꼬마 아이를 보고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즐거워하는 카호의 표정을 보고 생각을 고쳤다. 카호가 진심이라면 사야카도 진심이어야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어린이용의 작은 미끄럼틀에 몸을 비집고 들어갈 순 없었다. 다른 아이들도 있는데 위험하게 경찰과 도둑 같은 걸 할 수도 없고. 뭘 할 수 있을까 찾아보던 사야카는 철봉을 발견하더니 자연스레 턱걸이를 시작했다. 카호도 사야카를 따라 턱걸이를 시도했지만 전혀 되지 않았다. 사야카는 열심히 운동하셔야겠다고 웃으며 카호를 격려했다.




적당히 활동하고 나니 배가 고팠다. 식당에 들어간 카호는 한톤라이스를 주문하고 행복하게 식사했다. 여기서만 먹을 수 있는 건 아닌데 괜찮냐는 사야카의 물음에 카호는 좋아하는 거니까 좋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사야카는 같은 메뉴를 주문했다.




식당에서 나온 둘은 이동하다 유령의 집을 마주쳤다. 하지만 사야카는 몰라도 카호는 이미 오늘 충분한 비명을 지르기도 했고, 다른 놀거리부터 즐기자는 생각에 유령의 집은 다음에 또 왔을 때 들르자고 약속했다. 다음을 약속하는 행위도 카호에겐 각별했다.




놀 만큼 놀아 슬슬 체력이 다해 가는 카호는 기념품을 챙기자며 알록달록 꾸며진 상점에 들어갔다. 이거다 싶은 느낌을 찾아 헤맨 카호는 내부의 즉석사진관을 발견했다. 카호는 당장 멀리 있던 사야카를 불러왔다.




안에는 소품들이 여럿 있었다. 머리띠는 이미 쓰고 있으니까 패스. 코스튬 의상보다는 평범하게 그냥 교복으로. 꽃다발 소품도 있어서 카호는 해바라기 소품을 골랐다. 장난스러운 외형의 선글라스도 하나. 마지막으로는 포즈를 결정해야 했는데, 사진관엔 이전에 들른 사람들의 사진이 가득해서 참고하며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평범하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그중에서 특별한 날로 정해 특별한 곳에 와서 가까운 사람과 기념사진을 찍는 일. 카호는 이런 일을 같이 할 친구가 있어 정말 기뻤다.




즐겁게 사진을 찍고 나오자 어느덧 바깥엔 노을이 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제 슬슬 마지막이에요. 하나만 더 타고 돌아갈까요?"


"마지막… 마지막이라면 역시…!"




둘은 대/관람차를 탔다. 노을 지는 경치를 보기 좋은 시간대라 그런가 줄이 꽤 있어서, 대기하는 시간에 카호는 오늘 즐긴 것들이 어떻고 어때서 좋았다고 잔뜩 떠들었다. 꽤나 활동적인 하루를 보냈는데도 카호는 여전히 밝게 웃으며 기운을 유지하고 있었다. 학교를 나서기 전엔 핀트가 나간 모습을 걱정했었지만, 역시 카호는 사야카의 생각보다 더 질기고 굳센 씨앗인 모양이었다.




관람차의 높이가 중간에 이르기 시작했을 때부터는 온통 주홍으로 물든 경치가 환하게 보였다. 놀이공원 안뿐만 아니라 바깥까지 서서히 시야가 트였다. 둘은 말없이 바깥 풍경을 바라봤다. 시간에 따라 사람이 줄어들고 낮만큼의 활기가 없어진 놀이공원의 정경은 특별한 시간의 끝을 알리는 것 같았다. 사야카는 관람차에서 내리고 학교에 돌아간 이후의 일을 떠올렸다. 내일도 언제나의 아침 훈련을 할 테고, 방과 후엔 빙상장에 가겠지. 실은 오늘 갈 계획이었지만.


카호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지 놀이공원에 오고 나서부터 계속해서 보여준 밝은 모습은 꽤 가라앉아 있었다. 아까는 일단 카호의 말에 따라주자는 생각에 묻어두었던, 카호를 걱정하는 마음이 살금살금 올라왔다.




"저… 카호 씨."


"응?"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평소랑 상태가 달라 보이셔서요."


"아~ 별일 아니야. 동아리 체험 활동이 잘 안되기는 했는데 그건 평소랑 똑같았고, 그리고, 그리고…."


"……돌보던 식물이 죽었어……."




카호는 애써 웃어넘기려고 했지만 아침의 일을 떠올리자 그러지 못하게 됐다. 조금만 마음을 놓아도 바로 눈물이 주르륵 흐를 것 같았다. 사야카도 카호의 눈에 담긴 슬픔을 읽었다. 그럼에도 어찌해줄 도리가 없어 미안했다.




"있지, 사야카쨩."


"네…."


"도망쳐 온 곳에서 보는 풍경도, 예쁜 거구나."


"그렇네요…."


"어쩐지 쓸쓸해."


"카호 씨…."




카호는 창 너머로 손을 뻗은 채, 사야카에겐 겨우 닿을 만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풍경 속에 내가 피워낸 꽃이 하나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오늘 카호는 분명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결국에는 도망쳐 온 곳에서의 일이었다. 자신이 도망쳤다는 걸 잊을 수 있을 정도로 즐거운 건 다행이었지만, 마지막까지 모른 체할 수는 없었다.




"사야카쨩은… 어때? 사야카쨩의 일은 잘되고 있어?"


"그거 말인데요, 실은 이번 주엔 빙상장에 가기로 했어요. 다음에 여기 또 오자고 약속드렸는데, 앞으로 제 일정이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죄송해요."


"그렇구나… 스케이트…."




불현듯, 어떠한 생각이 카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사야카의 파란 머리와 파란 눈. 그리고 새하얀 빙판. 사야카는 또다시 카호가 힘들 때 카호를 도울 수 없음을 자책하려 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 없었다. 사야카의 길과 카호의 길은 지금 막 같아졌으니까. 카호의 눈이 번쩍였다.




"…그거다!"


"네?"


"스케이트 타러 가는 거지? 나도 데려가 줘!"


"스케이트를…요?"


"응, 스케이트."




사야카는 카호가 스케이트를 타야만 하는 이유를 곧바로 떠올리지 못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분야기는 하지만 매력이란 주관적인 거니까. '타고 싶으면 타보는 것도 괜찮겠죠.' 사야카의 생각은 그뿐. 하지만 카호가 떠올린 스케이트장에 가야 하는 이유는 확실했다.




"사야카쨩. 나 사야카쨩이 스케이트를 타는 걸 보고 싶어."


"사야카쨩이 대단하다고 했던 사야카쨩네 언니의 표현력이란 게 어떤 건지 조금이라도 느껴보고 싶어. 사야카쨩이… 대신 보여줄 수 있을까?"




사야카는 차마 자신이 언니의 표현력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에 여기 와 있는 거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사야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하나 더 있어. 나, 스케이트를 타보고 싶어."




카호는 자신감을 갖고 싶었다. 자신이 어떤 꽃으로 피어날 수 있을지 지금 당장 알아내는 게 힘들다면, 적어도 꽃으로 피어날 수 있는 에너지를 갖고 있다는 걸 확인받기라도 하고 싶었다. 카호가 지금부터 스케이트를 시작한다 해도 어릴 때부터 몇 년 동안 꾸준히 해온 사야카처럼 능숙하게 탈 수도 없고, 대회에 나갈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카호는 스케이트에 집중해 보고 싶었다. 사야카가 현재의 사야카를 이루는 데에 얼마만 한 노력을 들였는지 알고 싶었으니까. 카호도 그걸 알고, 자신도 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면, 다른 무엇을 할 때에도 자신감을 갖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기 위해서 카호는 우선 사야카가 피워낸 사야카만의 꽃을 보고 싶었다. 지금은 겨울을 맞고 시들었다고는 하지만 카호의 생각엔 그렇지 않았다. 왜냐면 사야카는 이미 카호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꽃 한 송이를 피워냈으니까. 자신과의 길지 않은 만남으로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꽃을 피워냈는데,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족과 함께하며 몇 년을 키운 꽃은 얼마나 대단하겠냐는 생각이었다. 사야카가 키워낸 꽃의 뿌리는 결코 죽지 않았을 거다.




카호는 사야카의 마음이 반짝이며 빛나는 순간을 놓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이미 한 번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다면 어쩌면 자신이 사야카의 슬럼프에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겠냐는 데까지 생각이 이어졌다. 자신의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주제에 오랜 경력자의 슬럼프에 참견할 자신은 있다는 게 우스워 보일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사야카에 한정해서는 자신을 가질 수 있었다. 카호는 스스로를 믿진 못해도 사야카를 믿을 수는 있었다.




사야카는 카호의 눈에서 각오를 읽었다. 지금까지 여러 번 카호의 각오를 느껴왔으나 이번엔 유독 강한 의지가 드러났다. 그래서 속마음을 캐묻지 않았다. 지금 카호에게 필요한 건 확실한 대답일 테니까.




"…그래요. 같이 가요."




돌보던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며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 같았던 눈이, 어느새 또 단단한 각오를 다진 눈으로 바뀌어 있었다. 사야카는 카호의 강함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생각했다. 철이라기엔 잘 상처 입었다. 나무라기엔 아직 굳건하게 자라지 않았고, 그저 질긴 풀이라기엔 땅에서 뽑히질 않았다. 오직 카호만이 가진 억센 마음의 형태였다. 사야카는 그 형태가 좋았다.




관람차는 정상을 찍고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창문으로 비치는 붉은 노을빛이 카호의 눈과 머리카락에 겹쳐 평소보다 진한 색을 만들어냈다.




















둘에겐 오늘의 마지막 숙제가 남아있었다. 돌아가는 버스에서 선생님을 마주쳐도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레 변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운이 안 좋았다. 버스에서 마주친 선생님은 다름 아닌 까다롭기로 유명한 사감 선생님이었다.




"켁…."


"벌써부터 티를 내면 어떡해요. 조심해요."




사야카는 잠입 영화의 주인공이 된 심정으로 연기에 몰입했다. 평소 표정, 평소 표정. 어색하지 않게. 몰입이 꽤나 효과가 있었는지 선생님은 사야카의 인사를 자연스레 받았다. 왜 이제서야 돌아오는 버스에 탄 거냐는 선생님의 물음에도 사야카는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준비한 변명을 댔다. 길에서 다친 고양이를 발견해 도우려고 다가갔지만 계속 도망쳐 잡기 위해 추격전을 벌였고, 잡고 보니 주인이 있는 고양이라 주인이 도움에 감사하며 뭐라도 대접하겠다는 걸 거절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둘은 오늘 활동적인 일을 많이 해 군데군데 너절한 기색이 있어 설득력을 더했다.




"흐음…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이만하면 충분히 넘어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어진 선생님의 말은 사야카를 절망하게 했다. 아차 싶었다.




"그런데 두 분 다 머리에 참 귀여운 걸 쓰셨군요. 제 손녀딸이 데려가달라고 성화를 떨어서 기억하고 있지요. 그 놀이공원에만 있는 동물 귀 머리띠에 관심을 가지더군요."


"아, 아앗…."


"신청서에 거짓 용무를 적어내고 늦게까지 오락 시설을 이용한다. 둘 다 벌점입니다."


"한 번만 봐주세요! 사야카쨩이 친구끼리만 놀이공원에 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고요!"


"가, 갑자기 절 왜 팔아요? 가자고 한 건 카호 씨잖아요?!"




친구와 서로 언성을 높이고 옥신각신하며 책임을 떠미는 행위는 상황을 회피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둘은 사이좋게 벌점을 받았다. 살면서 일탈이라곤 해본 적이 없는 바른 생활 아이인 사야카는 인생 첫 벌점에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의외로, 나름 모범생이라 자부하던 사야카의 자존심에는 흠집이 나지 않았다. 카호를 혼자 두는 쪽이 더 불량한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야카는 벌점을 받을 걸 알았어도 카호와 함께했을 것이다.




기숙사로 돌아와 각자의 방으로 갈라서려는 때, 카호는 사야카에게 사과했다.




"미안해, 사야카쨩… 나 때문에 괜히 사야카쨩까지."


"아니에요, 저도 재밌었어요. 진심이에요. 잘 자요, 카호 씨."




하지만이라고 덧붙이는 것도 막겠다는 듯 사야카는 할말을 마치고 재빨리 방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역시 카호는 문자로 미안하단 말을 보냈다. 그리고 함부로 언니 이야기를 꺼내서 미안하다고, 사야카가 싫었으면 무시해도 된다고도 했다. 사야카는 정말로 괜찮았는데.








사야카는 씻고, 예정에 없었던 나들이에 밀린 공부를 하고, 침대에 누워 어두운 천장을 말똥말똥한 눈으로 뚫어져라 보기도 하면서 자신이 느꼈던 언니의 반짝임을 카호에게 보여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다. 언니의 스케이팅은 왜 그렇게 아름답게 느껴졌던 걸까. 언니만의 특별함이 대체 뭐라서 무용부 선배들의 춤보다, 좋아하는 걸 하며 행복해하는 하스노소라의 수많은 학생들보다 언니의 모습만이 가치있게 느껴졌던 걸까.




사야카는 고민을 이은 끝에 마침내 깨달았다. 타인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건 특별함이 아니었다. 그런 걸 특별하다고 불러서는 안 되었다. 그 본질은 집착이었다. 이제 세상에서 다시는 찾아볼 수 없게 된 언니의 움직임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걸 인정하지 못해 대체품을 찾으려고 든 거였다. 사야카는 대체품을 자신에게서 찾으려고도 했고, 하스노소라의 학생들에게서 찾으려고도 했다. 하지만 언니는 세상에 하나뿐인 언니였다. 대체란 게 가능할 리가.


불가능한 일을 바랐기 때문에 사야카의 이해는 비틀렸다. 아름다움을 보고 순수하게 아름답다 감탄하지 못했다. 언니가 아닌 건 곧 못난 거라고 여겼다. 언제나 자신보다 앞서 있던 언니의 모습이 사라져서 느끼는 당황과 불안을 지금까지도 간직한 채 모든 일에 그 부정을 덧바르며 살아온 거였다.




그렇다면 슬럼프도? 기억을 하나하나 되짚으며 감정을 떠올리자 사야카는 스케이트를 타는 자신의 모습까지도 부정으로 덧칠해왔다는 걸 알았다. 언니는 사야카가 스케이트를 타는 모습을 좋아했는데, 정작 사야카는 스케이트를 부정에 더 가까운 마음으로 대했다. 언니에게 미안했다. 자신만의 보물이 아닌 언니의 것까지 상처 입힌 셈이었다. 이런 건 언니를 좋아하는 사람이 할 일이 전혀 아니었다.




이제부터라도 마음을 고쳐먹어야 했다. 사야카는 첫 기억을 떠올렸다. 스케이트를 사랑하게 된 첫 기억. 다치지 않도록 언니가 당부해 준 내용. 사야카까지 스케이트를 타게 됐으니 유망주가 생겼다며 사람들이 좋아하겠다고 너스레를 떤 일. 언니가 제일로 좋아하는 거니까 사야카도 좋아해 주면 기쁠 거라는 말까지. 그렇게 사야카는 천천히, 천천히 첫 마음으로 되돌리는 일을 시작했다.








사야카가 언니의 움직임을 재현하는 건 어려웠다. 그래도 어쩐지 카호가 원하는 꽃피움을 보여주는 건 가능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사야카는 언니의 표현력을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고, 잘 아는 사람이니까. 언니를 그대로 따라 하는 건 불가능해도 언니에게 가진 동경을 표현하라고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보여주는 대상이 카호라서 더더욱. 사야카는 꽃피운다는 카호만의 표현에 힌트를 얻기도 했다. 만약 카호가 언니의 움직임을 봤다면 언니를 어떤 꽃이라고 생각했을까. 그 답은 사야카의 마음에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사야카는 내일을 기대했다. 슬럼프의 실마리를 잡은 것도 그렇지만, 이제라도 진짜 언니가 좋아할 만한 일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카호가 함께한다는 것도 좋았다. 카호가 여태껏 포기하지 않으며 바라온 꽃피운다는 이상을 언니와 연관 짓자 사야카의 마음속 언니의 모습은 어느 때보다도 선명해졌다. 카호가 바란 꿈이 수년간 언니에게 받아온 마음과 비슷할 정도로 강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카호의 꿈은 보통 꿈이 아니었다. 사야카가 꽃피우는 일에 가까워진다면 사야카에게 영향을 받는 카호도 같이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지 몰랐다. 사야카는 카호에게 꿈 하나를 통째로 선물 받은 기분이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응원하고 공감하게 만드는, 그래서 점점 더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그런 꿈. 카호의 꿈은 우선 사야카에게 닿았다. 그리고 사야카의 마음속 언니에게도 닿았다. 아직 피어나지 못한 카호가 영향을 끼친 범위는 여기까지였지만, 만약 사야카가 이대로 슬럼프를 완전히 극복하고 카호가 가진 마음의 형태를 세상에 퍼트린다면, 얼마나 더 큰 일이 일어날지 기대됐다.




기대를 안고 드는 잠자리는 여느 때보다 편안했다. 잠에 든 사야카의 가슴이 두근, 두근 울렸다.










































8.




사야카는 오랜만에 보는 스케이트장의 모습에 긴장하고 있었다. 언제 와도 똑같은 풍경과 마음까지 가라앉히는 낮은 온도는 친숙했지만, 오늘 사야카는 최소한 앞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줄 가능성이라도 건져야 했다. 사야카가 남에게 기대받을 만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사야카가 바란 것들이 모조리 수포로 돌아갈지도 몰랐다. 차라리 대회에 나가 수상조차 하지 못했을 때가 나았을지도 몰랐다. 지금의 사야카는 그때와는 달리 품 안에 두 명의 꿈을 더 안고 있으니까. 사야카의 실패는 사야카만의 실패가 아니었다.




사야카는 잔뜩 무거워진 마음으로 스케이트를 잘 탈수 있을까 걱정했다. 카호가 끈을 엉망으로 조인 스케이트화를 신고 뒤뚱뒤뚱 걸어오며 도움을 요청하기 전까진. 사야카가 오랜만에 마주친 얼굴과 인사를 나누며 잠깐 신경 쓰지 못하던 사이 혼자 잘 해보려고 애쓰다가 실패한 듯했다. 사야카는 웃으며 곧장 다가가 사이즈를 마저 체크하고 끈을 조여줬다.




"스케이트화는 딱 맞지 않으면 부상으로 이어지기 쉬우니까 조심하셔야 해요."


"으응, 고마워. 생각보다 움직이기 어렵네…."


"괜찮아요. 익숙해지기 전까진 원래 힘들어요."




점검을 마치고 처음으로 빙판에 나선 카호는 얼음 위에 가득 차 있는 찬 공기를 들이쉬었다. 이 낮은 온도가 사야카에겐 피부처럼 익숙할 거라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사야카처럼 따뜻한 아이가 찬 공기에 익숙하다니. 아니면 언제나 녹지 않는 얼음 위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성격을 갖게 된 걸지도. 아무튼 간에 온통 파란 외형을 갖고서 하얗고 차가운 얼음 위에 서는 게 익숙한 것치고 사야카는 마냥 차갑다 할 수 있는 이미지가 아니었다. 희한했다.




"우선 카호 씨부터 봐드린 다음 몸을 풀고 있을게요. 바로 보여드리기엔 아직 제 감각이 남아있는지조차 알 수 없어서…."


"사야카쨩, 아까 긴장했지?"


"네? …네. 아무래도 공백기가 길었다 보니 걱정하는 마음이 들어서요."


"사야카쨩, 오랜만이니까 잘 안돼도 괜찮아. 스케이트는 사야카쨩이 좋아해서 오래 하게 된 일이지? 오늘만큼은 잘하는 것보다 즐기는 데에 신경 써줘!"


"…네, 고마워요, 카호 씨."




녹지 않는 얼음 위에 서도 카호의 마음은 언제나 따뜻했다. 사야카는 빙판을 좋아하긴 해도 빙판이 무언가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은 아니라고 생각해왔지만, 어쩌면 그것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중요한 건 마음의 형태. 제 언니가 빙판 위에서 빛나는 꿈을 꿨던 것처럼. 사야카와 카호도 할 수 있다.




사야카는 카호에게 간단한 요령과 다치지 않기 위한 주의점을 다시 한번 알려주고, 카호가 충분히 익숙해진 듯했을 때 인사를 나누고 안쪽 라인으로 들어가 몸을 풀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빙판 위를 누비며 중간중간 카호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살폈는데, 서두르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천천히 잘 나아가고 있는 듯했다. 아무래도 역시 카호를 걱정하는 것보단 나중에 카호에게 뭘 보여줄지를 생각하는 게 먼저일지도 몰랐다.




사야카는 어제의 카호가 대/관람차에서 다진 주홍빛 각오와, 방으로 돌아와 떠올린 언니에 관한 생각들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그러고는 빙판 위를 누비는 자신의 감각에 집중했다. 처음의 때로 되돌린 사야카의 마음. 항상 카호에게 받고 있는 따뜻한 마음. 따뜻한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 보여주고 싶은 것. 봄. 사야카의 마음속 이미지가 점점 더 선명해졌다. 사야카가 오랜 시간 찾아 헤맨 정답이 가까웠다.




그리고 사야카가 카호를 걱정해서 몸을 푸는 와중에도 시선을 주었듯이, 카호도 사야카를 걱정해서 힐끗힐끗 바라봤다. 처음엔 정석적이지만 굳은, 딱딱한 움직임만을 보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야카는 잊고 있던 감각을 찾기라도 한 듯 전혀 다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피겨에 관해서는 뭘 모르는 카호도 자신을 표현하는 움직임이란 게 무엇인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사야카가 아니라면 저와 같은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사야카가 좋은 모습을 보여주자 카호도 덩달아 신이 났다. 저런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여태껏 링크에 한 번도 오지 않았다는 게 아쉬웠다. 카호는 조금씩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단, 사야카가 말한 주의사항들을 잊진 않고서.




몸의 감각과 마음의 온도, 얼음 위의 차가운 공기. 오래 잊고 있었던 것들을 다시 떠올린 덕분에 사야카는 기분이 상쾌했다. 이 기분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몸을 충분히 풀었다고 생각한 사야카는 카호에게 돌아갔다. 폼을 보아하니 벌써 많이 익숙해진 듯했다.




"카호 씨!"


"사야카쨩! 어땠어? 잘 된 거 같았어?"


"후후, 네,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다행이다… 기대할게!"


"네!"




카호는 평소보다 훨씬 눈에 띄게 신나 있었다. 스케이트가 취향에 맞았던 걸까? 사야카는 곧바로 이유를 물어보기로 했다.




"플루트나 다른 것들을 할 땐 별로 즐겁지 않아 보이셨는데, 지금은 무척 즐거워 보이시네요."


"응, 이건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거니까. 사야카쨩이 어떻게 지금의 사야카쨩이 된 건지 알고 싶었거든."


"그래서 좀 알아낸 게 있으신가요?"


"응. 피겨는 즐거운 거고, 여긴 사야카쨩이 사랑하는 장소야."


"후훗,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그건 사야카쨩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지!"




표정이라, 과연 그랬다. 사야카가 느끼기에도 지금 자신의 표정은 한껏 풀어졌다. 학기의 첫날과 비교하면 어떨까? 카호와 처음 버스에서 만난 그때의 표정과 비교한다면? 친구 따윈 사귈 생각 없다고 말했던 그때의 사야카가 지금 같은 표정을 지을 수 있었을까?




"사야카쨩이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진작에 오자고 할 걸 그랬다."


"그렇네요, 망설임 때문에 괜히 먼 길을 돌아온 것 같아요."


"…좋아! 몇 바퀴 더 돌아야지! 사야카쨩이 타는 걸 보니까 나도 더 하고 싶어졌어!"




몸이 다 풀렸으니 이제 보여줄 준비가 다 됐다고 했는데도. 카호는 신이 나서 앞으로 달려나갔다. 사야카는 카호의 옆에 따라붙어서 카호의 움직임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잘하고 계셔요, 그렇게 하는 거예요. 목표까지 파이팅!"




사야카는 즐거워하는 카호의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이게 언니의 시선이었고, 언니는 무엇보다도 사야카가 즐거워하길 바랐다는걸. 새로운 장소에 뿌리내릴 용기, 비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마음, 순수하게 즐거워하며 짓는 미소. 누구라도 길을 걷다 멈춰 서서 바라볼 아름다운 꽃. 그건 카호의 마음이었다. 카호는 이미 꽃을 피워냈다. 당장은 사야카만 알고 있는 변두리의 작은 꽃이지만, 카호는 계속해서 자라나 언젠가 세상에 자신의 모습을 당당하게 드러내게 될 테다.




카호는 사야카가 어떻게 지금의 사야카가 된 건지 알고 싶었다고 했다. 그게 굳은 각오를 다지면서까지 할 생각이라면, 카호는 아마 사야카처럼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는지도 몰랐다. 씨앗인 카호로서는 10년 동안 같은 일을 했다는 게 멋있어 보였겠지. 사야카도 언니처럼 되고 싶었다. 그런데 언니처럼 잘하고 싶었던 걸까, 언니처럼 즐겁고 싶었던 걸까? 처음에는 분명 후자였다. 언니의 눈부신 미소는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면 지을 수 없는 표정이었으니까. 사야카는 여태까지 자신이 들은 지적들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그제야 알았다. '나는 잘해야만 하는 게 아니었구나.'




카호가 스케이트를 탈 만큼 탄 다음, 사야카는 마침내 카호에게 자신의 스케이팅을 보여주기로 했다. 사야카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여태껏 받아온 마음들을 떠올렸다. 언니의 꿈, 카호의 꿈.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갖고 있는 건 세상에서 오직 사야카뿐이었다. 자신이 언니에게서 느낀 반짝임을 카호도 느낄 수 있길 바란 사야카는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


얼음을 녹이는 봄. 상충하는 듯한 그 둘이 한 장소에 펼쳐진다면 어떨까? 사야카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겨울에도 피는 꽃. 빙판에도 피는 꽃. 그건 바로 카호의 마음. 사야카는 카호가 얼마나 대단한 꽃을 피웠는지 알려주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사야카만의 스케이팅은 언니와는 다른 것이었다. 동경하는 언니의 표현력과 카호에게 보여주고 싶은 꽃피우는 이미지가 합쳐진 사야카만의 스케이팅은, 그야말로 빙판 위에 피어난 꽃이었다.














사야카의 꽃피우는 스케이팅은 사야카가 오랜만에 온 줄 몰랐던 옛 스케이트 선생님의 눈에 띄어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아서 걱정했고, 어디서 뭘 하고 왔길래 이렇게 달라졌느냐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샌가 사야카의 동료와 감독님까지 합세해서 사야카에게 질문 공세를 시작했다. 미안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라 그런지 하나같이 말이 많다며 카호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밖으로 보낸 사야카는 자신을 에워싼 사람들을 보고 번호표 뽑고 질문하라면서 상황을 진정시켰다.




한바탕 쏟아진 질문 세례를 침착하게 넘긴 사야카는 대답할 건 충분히 대답했고, 밖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며 나와 카호와 합류했다. 기다리는 사람은 또 누구냐며 비명에 가까운 질문이 또 하나 날아왔지만 사야카는 무시했다. 이미 붙잡혀 있는 시간이 길었다. 카호는 사야카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러나 어딘가 쭈글쭈글한 기색도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러지 않아도 카호가 자신의 스케이팅을 보고 무척이나 기뻐해 준 덕에 자신감이 붙었던 사야카는 지체 없이 사정을 물어봤다. 어지간한 일은 자신이 다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부끄러워서 말하기 싫은데… 듣고 놀리지 마?"


"당연하죠."


"실은 나… 내가 사야카쨩이랑 가장 친한 친구인 줄 알았는데, 아까 보니까 사야카쨩이랑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이 많아서…."




카호의 말은 이랬다. 학교에서는 가장 친한 친구로 지내 내심 뿌듯한 마음이 있었는데, 사야카에게도 당연히 이전의 인연이 있을 걸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특수한 사정이 있었던 자신과는 달리 사야카에게는 친한 친구들이 많았을 텐데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고 사야카의 제일 친한 친구라 자신하고 있었던 게 부끄럽다고.


사야카는 카호의 이야길 듣고 웃음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엔 처음 겪는 일이니 어쩔 수 없어도, 앞으로도 카호가 계속 같은 생각을 하게 두진 않을 셈이었다.




"아―! 놀리지 말라고 했는데!"


"진정하고 들어보세요. 카호 씨를 놀리려는 생각이 아니니까요."


"사실 저, 오늘 잘 못 탈 줄 알았어요. 그렇게 오래 쉬었는데 잘하는 쪽이 오히려 이상하잖아요."


"그런데… 예전에 제 스케이팅을 봐줬던 사람들이 다 제가 예전보다 오히려 나아졌다고 말했어요."


"제가 예전의 저와 달라졌다면 절 바꾼 사람은 어느 쪽일까요? 예전에 만난 사람들? 아니면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




사야카는 그윽한 눈길로 카호를 바라봤다. 눈빛으로 감정을 전달하겠다는 것처럼 한없이 진지하면서도 장난스러웠다.




"…나 때문에 사야카쨩이 바뀐 거라고?"


"바뀌다마다요. 벌써 세 번째 말하네요. 저는 카호 씨에게 의지하고 있어요."




이번에도 카호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했다. 사야카를 몇 년 동안 봐온 동료들과 감독님, 무용부의 선배들까지 다 더해도 그보다 카호의 영향력이 더 강하다는 게 말이나 될까? 사야카는 물론 카호가 스스로를 믿기 힘든 환경에 놓여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카호가 가진 힘은 자신보다 남에게 더 강한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사야카는 아직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카호의 힘을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카호에게 충분한 설명을 해줄 의무가 있었다.




"저는 오늘 꽃피운다는 느낌으로 스케이트를 탔어요. 카호 씨가 언제나 말하는 꽃피움이요."


"비바람이 불고 겨울이 찾아와도 포기하지 않고 언제나 즐거운 일을 찾아 환하게 웃는 카호 씨의 마음을 좋아해요."


"그런 카호 씨에게 봄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까 고민하다가, 언니에게 스케이트를 배웠던 제 첫 봄을 떠올렸어요."


"언니는 제가 스케이트를 하며 즐거워하길 바랐어요. 그런데 언니가 다쳐서 스케이트를 타지 못하게 되고, 링크에서 다시는 언니의 모습을 보지 못하게 되자 저는 즐거움을 잊어버렸어요."


"언니에게 당당할 수 있을 만큼 노력하겠다면서 정작 언니가 제게 선물해 준 즐거운 감정은 잊고 있었다니, 잘될 리가 없었죠."


"그게 제 슬럼프의 정체. 저의 봄은 겨울이 와서 앗아간 게 아니라 저 스스로 잊어버린 거였어요."


"그런데 카호 씨에게 언니의 표현력을 대신해서 보여달라는 부탁을 받고는 제가 언니의 어떤 점을 좋아했는지 다시 기억할 수 있었어요."


"다른 누가 그런 부탁을 했다면 저는 대답하지 못했을 거예요. 부탁한 게 카호 씨라서 저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어요."


"왜냐면 제가 언니와 같은 수준의 스케이터가 되는 건 무리지만, 꿈을 찾아 헤매는 카호 씨에게 동경하는 언니의 표현력을 전달하는 건 가능할 거 같았거든요."


"카호 씨가 누구보다 꽃피우길 바라고 있어서, 그래서 저는 언니의 마음을 일부나마 타인에게 전할 수 있었어요."


"오늘 저는 저의 첫 봄으로 돌아간 것처럼 언니의 마음과 제 마음을 돌아봤어요. 그 덕분에 오늘도 가장 행복한 때처럼 스케이트를 탈 수 있었어요."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더 잘해야만 한다는 강박에 휩싸여 즐거움을 잊고 있던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될 만큼 후련했어요."


"전부 다 카호 씨의 덕이에요! 결코 과장하는 게 아니에요. 카호 씨가 아니었더라면 오늘 저는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을 거예요."


"그러니까 자신감을 가져 주세요. 제 소중한 마음을 되찾아 준 소중한 분."




소중한 분. 그렇게 말하며 사야카는 양손으로 카호의 한쪽 손을 붙잡았다. 자신의 감정이 온전히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제 카호 씨가 제게 특별하다는 걸 충분히 아시겠죠?"




카호는 대답 대신 눈물 몇 방울을 흘렸다. 그리고 사야카에게 안겨 들었다. 사야카는 한 손으론 카호의 등을 받치고, 한 손으론 뒷머리를 슬슬 쓰다듬었다.




"저는 카호 씨가 스스로를 표현하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카호 씨는 저만 알고 있기엔 너무 예쁜 사람이거든요."


"……난 뭘 해도 미숙하고 겁이 많은데도?"


"지금의 카호 씨도 충분히 강하고 멋있는 사람이에요. 카호 씨의 용기가 세상에 퍼졌으면 좋겠어요."


"…그럼 나… 스케이트 탈래. 그러면 앞으로도 사야카쨩을 더 많이 볼 수 있을 테니까…."


"네, 뭐라도 좋아요. 카호 씨가 원하고, 즐거워하는 일이라면 카호 씨는 어디에서도 꽃피울 수 있어요."




카호를 응원하며 카호가 꽃피울 수 있길 바란 사야카가 처음으로 피운 카호를 위한 꽃. 비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마음과 용기, 즐거운 미소를 모두 갖춘 카호가 피운 꽃. 그리고 오늘 새로 핀 꽃 하나. 사야카가 자신의 언니와 카호에게서 받은 마음을 한데 모아 표현한 자신만의 꽃.


카호도 오늘 사야카가 보여준 꽃에 영향받아 새로운 싹을 하나 틔우기 시작했다. 씨앗에서 자라 잎과 줄기를 만든 그 식물은 빙판을 닮아 차가운 외형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결코 내면까지 차갑진 않았다. 겨울의 냉기를 견디고 자라 겨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속에는 따스함을 품고 있는, 카호만의 특별한 꽃으로 자라날 잎이었다.


























☆.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길을 같이 걷던 친구가 나보다 한발 앞서 햇살이 비치는 밝은 길로 빠져나갔다. 사야카쨩 같이 원래도 대단한 아이가 햇빛까지 받으니 꽃 피는 건 금방이었다. 사야카쨩은 누가 봐도 어여쁜 하나의 꽃으로 자라났다. 그리고 사야카쨩은 그게 내 덕이라고 말했다. 내가 없었다면 사야카쨩도 어딜 가야 할지 몰라 길을 헤매었을 거라고 했다.




그런데 솔직히 나는 그게 정말로 내 덕이라고 생각하진 못했다. 사야카쨩은 뭘 해도 될 씨앗, 아니 원래도 이미 어엿하게 자란 하나의 꽃이라고 여겼다. 단지 겨울이 찾아오고 살을 찢는 듯 날카로운 바람에 기세가 시들고 몸을 웅크리다 보니 이젠 세상에 볕들 날이 없을 거라고 착각하게 된 거다. 살면서 처음 겪는 겨울이니 따스한 봄볕이 내리쬐는 게 언제가 될지도 몰랐던 거겠지.




그러니까 난 사야카쨩이 봄을 되찾은 걸 내 덕이라고 말하는 게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봄은 누가 불러오는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오는 거니까. 겨울을 같이 견뎌줘 고맙단 말이라면 모를까.




그래도 이건 살면서 한 번도 봄을 겪어보지 못한 나의 네거티브.


사야카쨩이 겨울을 겪지 못해 겨울이 언제 끝날지 몰랐듯이 나도 봄을 겪지 못해 내가 어떤 꽃으로 피어날 수 있는지 자신하지 못하는 것뿐일지도 몰랐다. 무엇보다 사야카쨩은 거짓말도 빈말도 잘 못하는 성격이니까. 사야카쨩의 정직함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사야카쨩이 그렇다면 그런 걸지도 모른다. 구태여 의심하고 의기소침해 빛을 쳐다보지도 않으려 한다면 그땐 정말로 꽃피우지 못할 거다.




사야카쨩이 긍정하는 내 가능성이 궁금해졌다. 하지만 길고 긴 겨울만을 겪으며 쌓아 온 네거티브를 모른척하고 한순간에 바뀔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한순간에 모든 부정을 버릴 수 없다면 시간을 들여 나를 이루는 걸 천천히 바꿔보는 건 어떨까?


나는 사야카쨩을 따라 스케이트를 타보기로 했다. 사야카쨩이 거쳐 온 길을 똑같이 걸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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