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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번역/창작 SS 번역) 흔들리는 무지개 -12-
글쓴이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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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글 주소
https://gall.dcinside.com/sunshine/5284444
  • 2023-06-06 18:00:21
 

흔들리는 무지개 -1-

흔들리는 무지개 -2-

흔들리는 무지개 -3-

흔들리는 무지개 -4-

흔들리는 무지개 -5-

흔들리는 무지개 -6-

흔들리는 무지개 -7-

흔들리는 무지개 -8-

흔들리는 무지개 -9-

흔들리는 무지개 -10-

흔들리는 무지개 -11-



*


Day 8 11월 10일

니지가사키 학원・동관 북측 임시 목욕탕 텐트

「아니 그니까, 작년 이맘땐 포키의 날이라고 막 떠들고 그랬잖아?」
「그랬었지, 카스미 양」

 일주일 만의 목욕에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말이 많아졌다. 시즈코도 기분이 좋았는지 평소 같으면 적당히 흘려들을 때가 됐는데도 웃으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었다.
 시간은 벌써 밤 9시가 가까워졌다. 목욕은 피난민이 우선이고 우리는 그 다음이다. 피난민들 전부는 아니더라도 꽤 많은 사람들이 목욕을 하고 난 뒤라 그런지 물은 하얗고 탁했다. 하지만 그런 건 신경 쓰이지 않았다. 온 피부에 비늘처럼 달라붙어 있던 불쾌감이 말끔히 씻겨 내려간다.
 몸을 적시는 뜨거운 물처럼 쉴 새 없이 수다를 떨다가, 그러고 보니 내일이 11월 11일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그게 지금 보면, 포키니 과자니 하던 게 엄청 사치스럽게 느껴진단 말이야」

 내 말에 욕조 속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완전히 빈티가 풀풀이다.
 욕조에는 엠마 선배, 아이 선배, 시즈코가 몸을 담그고 있었다. 그리고 몸을 씻고 있던 다른 한 명도 발을 넣었다.

「맞아요, 평소 얼마나 넘치는 삶을 살아왔는지 실감합니다. 길쭉한 거라면 건조 파스타도 있어요------후아아아, 좋은 물이네요!」
「나나 선배는 카스밍한테 밀가루 막대를 먹으라는 건가요…? 카스밍은 쥐가 아닌데요…」

 과자 대신 건면을 한 손에 들고 친구와 함께 셀카를 찍는다. 그건 좀 그렇지 않을까. 뭐, 이 사람에게 그런 걸 바라면 안 된다는 건 잘 알고 있다. 저번에도 목욕을 할 수 없으니 냄새가 신경 쓰이지 않느냐고 조심스럽게 말했더니, ?라는 표정을 짓고는 뭔가 번뜩이는 얼굴로 「괜찮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뭔가 좋은 생각이라도 있는 건가 싶었는데, 환한 미소를 지으며 「후각은 피로해지기 쉬워요! 그러니까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거예요!」란다.

「아하하! 회장, 하지만 파스타면엔 『설탕』이 안 들어가잖아? 그치, 카스카스?」

 아이 선배가 또 나를 놀려댄다. 목욕탕 텐트 출입구에 걸려 있던 휘장에 유려한 글씨로 『대설탕』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내가 그것을 보고 설탕이 들어간 거냐고 물은 것이다. 알고 보니 그게 아니라 『대설(大雪)탕』이었다고 한다. 경비를 위해 휘장 바로 옆에 서 있던 여성 대원까지 웃음을 터뜨릴 정도였다. 창피해 죽겠다.

「으으, 아이 선배! 그만 좀 하세요!」
「자자, 카스미 쨩, 다투면 안 돼~ 아이 쨩도 너무 놀리지 마?」
「헤헤, 엠마치가 그러면 어쩔 수 없네. 미안해? 카스카스」

 물에 녹아내린 줄 알았던 엠마 선배가 재빨리 우리를 타이른다. 고향에서도 형제끼리 싸우면 자주 말리지 않았을까. 그런데 스위스에도 목욕하는 습관이 있을까? 누구보다 뜨거운 물을 즐기는 것 같은데.

「참, 나나 쨩. 피난 온 사람들 중에 산부인과 의사나 간호사 같은 사람은 없을까?」
「산부인과… 말인가요? …아, D조의 아오바 히로세 씨 때문이군요. …아마 산부인과 의사나 간호사는 없던 것 같지만, B조의 와카마츠 미츠루 씨가 조산사 경력이 있을 거예요. 내일 정식으로 협조를 요청해 보겠습니다」

 나나 선배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말도 안된다는 표정의 시즈코가 목소리를 높인다.

「…혹시 나나 씨… 피난민 분들의 이름도 다 기억하고 있나요…?」
「아, 네. 위원장이면 당연히 그래야죠. 피난민 분들과는 모두 한 번씩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물론 방금 오신 분들과는 아직이지만요」
「진짜? 대박…」

 아이 선배가 솔직하게 경탄, 아니 절망하고 있다.
 도대체 이 사람의 머릿속은 어떻게 되어 있는 걸까? 한번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정말로 뇌가 나나와 세츠나 두 쌍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나 쨩, 체육관에 자주 오고 아이들 상대도 하잖아?」
「네, 그렇죠」

 그건 사실이다. 하루에 한 번씩은 체육관에 와서 상황을 살핀다. 대체 언제 그런 여유가 나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휴식 시간에 체육관에 오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언제 쉬는 건지 점점 더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물소리를 첨벙 내며 나나 선배가 일어섰다. 옷을 입지 않은 모습을 다시 보니 정말 작은 체구라는 인상이 강하다. 살도 확실히 빠졌다.

「어라, 나나 씨, 벌써 나가시게요?」
「좀 더 몸을 담그고 있으면 좋을 텐데~」
「선생님들과 미팅 예정이 있어서요. 젖은 머리로 얼굴을 맞댈 수는 없죠」
「이렇게 늦은 시간에? 힘들겠네… 혹시 우리가 대신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말해줘」
「맞아요. 나나 선배한테만 업혀가는 건 싫다구요」

 이미 한참 업혀가고 있는 것 같지만.

「감사합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여러분은 천천히 있다 나오세요」

 원래는 조별로 목욕 시간이 할당되어 있지만 우리는 예외였다. 약간의 특권이다. 이 정도는 하늘도 봐줄 것이다.
 나나 선배가 파란색 시트가 깔린 욕조를 가로질러 탈의실로 나간다. 욕조 속 모두가 일제히 나나 선배의 모습을 눈으로 쫓고 있었다.
 욕실과 탈의실 사이에 놓여 있는 발판이 선배의 발에 밟혀 삐걱거렸다.
 그것이 나에게는 선배의 몸이 삐걱거리는 소리로 들렸다.

「걱정되네, 나나 쨩…」

 엠마 선배가 조용하게 말했다.

「아이도. 지금은 하루 한 끼 정도는 아니지만, 과자 같은 걸로 때우는 일이 많지?」
「우리가 잠들 때도 돌아오지 않고, 일어나 보면 이미 나간 적도 있었어요」
「학교의 높으신 분들하고 이야기해야 할 때도 있다고 했죠… 카스밍이라면 정신적으로 못 버틸 것 같아요」

 나나 선배의 일은 대신해 주고 싶어도 대신할 수 없는 일이 많다는 것이 오히려 일을 더 귀찮게 하고 있었다.

「항상 나나 씨 옆에 있는 건…」
「유우유우, 였지」
「나나 쨩을 지켜봐 달라고 부탁해 볼까?」

 욕조에 앉아서 서로 얼굴을 맞댄다.
 모두들 다른 사람 걱정뿐이다. 누군가를 위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아이 선배의 말이 떠오른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결국 그것은 무엇일까. 내일은 카나타 선배와 시즈코가 체육관에 들어오기 때문에 나는 비번이다. 내일 천천히 생각해 볼까.
 그런데 나나 선배는 우리는 쉬게 하면서 자기는 전혀 쉬지 않고, 쉬려고 하지도 않는다. 걱정이다.
 내 손이 나나 선배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뜨거운 물속에서 펼친 손은 탁해서 보이지 않았다.


*


Day 9 11월 11일

니지가사키 학원・임시 회의실

 가느다란 손가락이 배포된 프린트를 따라간다. 글씨를 보는 그녀의 눈동자는 숙인 채로 내려앉아 있다. 입은 굳게 꾹 다물고 있어 옆에서 훔쳐봐도 표정을 알아보기 힘들었다.

「현재 피난민은 119명… 더 늘어났네요」
「체육관은 아직 여유가 있지만… 각 조의 인원도 늘어나서 조장님들만으로는 통솔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나나 쨩은 회의실에서 부회장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도 같은 프린트를 보면서 논의에 참여하고 있었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공통된 인식이 상당수 존재하고 있는 것 같아서 쉽게 끼어들 수 없다.
 그런데도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어젯밤 카스미 쨩과 시즈쿠 쨩에게 나나 쨩을 주의 깊게 지켜봐 달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유우 씨, 나나 씨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나나 선배, 유우 선배는 특히 믿고 있으니까요』

 내가 생각해도 나나 쨩은 너무 많이 일하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몇 번이나 쉬라고 말해도 듣지 않지만.

「그럼 오늘 회의에서 대책을 논의해 보죠」
「네, 알겠습니다」
「아, 잠깐! 나도 회의에 나가도 될까?」

 두 후배가 그렇게 간절한 얼굴로 부탁한 이상, 나도 오늘은 나나 쨩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을 생각이다.

「유우 씨도요? 좋습니다. 지혜는 많을수록 고마운 법이니까요」

 그러나, 그렇게 말하자마자 나나 쨩은 괴로운 듯 눈썹을 찌푸리며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나나 쨩!? 머리 아파!?」
「회장님…!」
「괜찮습니다. 걱정하실 것 없어요」

 나나 쨩이 꾸며낸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본다. 회색 눈동자가 평소보다 더 깊었다. 비가 와서 방 안이 어둡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그렇게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저기, 나나 쨩 역시----」
「나나 쨩! 잠깐 와줘!」

 힘차게 문이 열리며 카나타 씨가 뛰어 들어왔다. 심상치 않은 표정.
 그것을 본 나나 쨩의 눈빛도 급격히 날카로워졌다. 사정을 묻지도 않고 복도로 달려 나간다.

「잠깐 다녀올게요!」
「잠깐만, 나도 갈게!」

 카나타 씨의 발길은 체육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요!?」
「어제 왔던 C조 남자 하나가, 청소당번을 거부해서 조장님이 주의를 줬는데, 거기서 문제가 생겨서…」
「그런 일이…」

 서둘러 체육관으로 향한다. 동관을 나와 통로와 현관을 지나 체육관으로 달려간다.
 체육관 안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그 중심은 무대 앞 오른쪽 좌석 부근. 세 남자가 서 있다. 그중 한 명은 C조 조장님이다. 한 젊은 남자가 조장님과 눈치를 보며 대치하고 있고, 또 다른 안경 쓴 남자가 이를 말리려 하고 있다. 아이 쨩도 팔짱을 끼고 근처에 서 있었다.

「그쪽하고는 대화가 안 된다고. 말이 통하는 사람을 불러와」

 젊은 남자가 조장님에게 달려든다. 아이 쨩은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봤다.
 나나 쨩이 다가가서 그를 똑바로 쳐다본다.

「부르셨나요, 야마구치 사토시 씨. 대피소 운영위원장 나카가와 나나입니다」

 남자는 잠시 움찔했다. 자신의 이름을 순식간에 알아맞혔기 때문일까, 아니면 위원장이라고 말한 사람이 어린 소녀였기 때문일까. 그러나 이내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시죠?」

 나나 쨩은 위협적인 말투는 아니지만 단호한 태도로 그를 마주했다.

「그러니까, 왜 내가 임시 화장실 청소를 해야 하는 건데? 난 거기 쓰지도 않는데」
「야, 이제 그만해…」

 무대에 기대어 있던 아이 쨩이 혀를 찬다. 이미 지겨울 정도로 똑같은 말을 들은 모양이다.
 지인으로 보이는 안경을 쓴 남자도 곤란한 표정으로 어깨를 잡았지만, 남자는 그 손을 뿌리쳤다.

「그게 규칙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사용하는 화장실도 다른 분들이 청소해 주시고 있습니다」
「애초에 내가 왜 그런 일을 해야 해? 난 피난민이라고!」
「그래서 뭔데요?」
「…어?」
「계속 말씀드리고 있지만, 피난민 여러분은 손님이 아닙니다. 이 대피소는 여러분이 공유하는 생활공간입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대피소를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죠. 그것이 이곳의 규칙입니다」
「그건----」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여기서 나가셔도 상관없습니다」

 나나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말했다.
 남자의 얼굴은 분노에 떨고 있었다.

「----너, 니가 무슨 권한이 있다고 그따위로 말하냐, 이 꼬맹이가!」

 남자는 팔을 뻗어 나나 쨩의 오른쪽 어깨를 찔렀다. 나나 쨩은 아까의 그 엄한 태도와는 달리 쉽게 비틀거렸다. 그것을 내가 받았다.

「나나 쨩!」
「----너 이자식, 우리 나나한테 무슨 짓이야!」

 인내심이 바닥난 아이 쨩이 남자에게 달려들려고 하자 카나타 씨가 붙잡는다. 「아이 쨩 안 돼!」

「운영위원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아주 잘나셨네. 니들이 뭘 하는데? 우리는 체육관에서 덜덜 떨고 있는데, 니들은 따뜻한 방에서 호의호식하고 있는 거 아니냐, 앙?」

 너무 심한 말에 깜짝 놀랐다. 나나 쨩이 지금까지 피난민들을 위해 얼마나 몸을 아끼지 않고 일했는지도 모르면서 그런 말을 하다니.
 나도 모르게 입을 열 뻔한 그 순간이었다.
 안경을 쓴 남자가 나나 쨩이 야마구치라고 부른 남자의 어깨를 잡아 자기 쪽으로 돌리더니, 주먹으로 얼굴을 사정없이 때렸다.
 남자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작작 좀 해라…」

 유약해 보였던 남자는 이젠 주먹을 떨며 쓰러진 남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애들이 무슨 권한으로 그런 말을 하냐고? 아직도 모르겠냐? 그럼 내가 알려줄게. 얘네들한테는 그런 권한 따위 아무것도 없어」

 남자는 경탄과 탄식이 섞인 목소리를 힘껏 내뱉었다.

「얘들은 원래라면 이런 짓을 할 필요가 전혀 없어. 부모한테 보호 받으면서 집에서 떨고 있어야 하는 게 당연하잖아. 그런데도 불구하고 본 적도 없는 우리를 위해 일하고 있다는 게, 그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진짜로 모르겠냐!?」

 맞은 남자는 쓰러진 채 꼼짝도 하지 않고 듣고 있었다.
 그리고 안경을 쓴 남자는 우리 쪽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 자식, 이번 지진으로 회사가 무너져버려서요… 거기다 정전이 복구됐더니 아파트에 불이 나서 살 곳도 없어지고… 지금 제정신이 아니에요. 부디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더 숙인다.

「아뇨… 고개를 들어주세요」

 나나 쨩의 말에 남자는 한 번 고개를 살짝 들었지만, 곧 조장님 쪽으로 돌아서서 다시 허리를 숙였다.

「…조장님도 죄송합니다… 이 녀석은 제가 어떻게 할 테니 부탁드립니다…」
「아, 아뇨…」

 한동안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자리를 정리해 준 것은 조장님이었다.

「크흠…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위원장님은 돌아가셔도 됩니다」
「하지만」

 나나 쨩이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말할 것 같아서, 나는 재빨리 말했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나나 쨩, 가자」
「그럴 수는…」

 약간 그늘진 나나 쨩의 눈을 진지하게 바라본다. 괜찮아. 여기는 조장님한테 맡기자.

「…알겠습니다」

 나나 쨩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체육관을 떠났다.



 항상 오전에 열리는 운영회의는 오후로 미뤄졌다. 오전에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는 이유로. 나나 쨩은 평소대로 열어도 된다고 했지만, 나와 아이 쨩이 밀어붙였다.
 지금은 점심을 먹고 회의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나나 쨩은 식욕이 별로 없다며 간단한 음식만 먹었다. 얼굴은 평온을 유지하고 있지만, 오전의 충격이 아직 남아 있는 것 같다.
 나란히 놓인 책상에는 나와 나나 쨩, 아이 쨩, 카나타 씨가 앉았다. 정보반의 두 사람은 볼일이 있다고 학생회실에 갔다.

「…참, 그 사람 말인데, 청소는 제대로 한다고 했어」

 카나타 씨가 조금 말하기 어렵다는 듯이 이야기를 꺼냈다.

「아 그래. 아이는 단 1밀리도 용서 안 할 거지만」

 아이 쨩은 다리를 꼰 채로 창문을 통해 흘러내리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컵 가장자리에 입을 맞췄다. 아이 쨩은 감정이 잘 드러나는구나…

「그래도 어떻게든 해결돼서 다행이야… 정말 당황스러웠어」
「네… 하지만 이런 트러블은 어느 정도 있는 게 당연합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없었던 게 기적 같은 일이었죠. 다 여러분 덕분입니다」

 내 옆에 앉은 나나 쨩은 책상에 놓인 종이컵을 양손으로 감싸 쥐고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제가 조 내 분담을 좀 더 잘 생각해서 부탁했더라면 막을 수 있었을까요……」
「아니야, 나나 쨩 잘못이… 어?」

 나나 쨩의 손에 쥐어진 컵에 담긴 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 표면에 비친 천장의 형광등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앗, 지진이 또!?」
「뭐!?」

 고개를 들고 오감을 집중해 흔들림의 존재를 확인한다. 하지만 책상 위 종이도 흔들리지 않고, 책상과 의자가 흔들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기분 탓, 인가?」
「놀래키지 마, 유우유우~」

 쓰레기를 버리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던 아이 쨩이 내 뒤에서 안도의 목소리를 낸다.
 미안하다고 하면서 다시 나나 쨩의 손에 시선을 떨어뜨린다. 아까도 내 기분 탓이었나…?
 그러나 컵의 물 표면은 여전히 진동이 계속되고 있었다.
 어라? 하지만…
 설마----

「나나 쨩!」
「꺄악----」

 그녀의 손을 낚아챈다.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지진으로 물이 흔들린 것이 아니었다.
 흔들리고 있던 것은 나나 쨩의 손이었다.

「저기, 왜 그러세요? 유우 씨」

 심지어 나나 쨩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안 돼.
 그녀는 이미 한계다.

「나나 쨩! 오늘은 이만 쉬자!」
「왜, 왜 갑자기…」
「손! 손이 떨리고 있잖아!」
「어----어라?」

 자신의 이상 증세를 이제야 겨우 알아차린다.

「오늘 회의도 취소하자, 조장님들한테 말해 둘게」
「그, 그건 안 돼요! 운영회의는 대피소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꼭 필요한 회의입니다!」
「그런 건 알아! 하지만 우리도 나나 쨩이 걱정돼서 그래! 나 지금 진지하게 말하는 거야!」

 내가 잡고 있던 나나 쨩의 손끝에 힘이 들어간다. 그리고 팔을 휘둘러 내 손에서 벗어난 나나 쨩은 책상을 두드리며 일어서서 외쳤다.

「저도 항상 진지해요!!! 제가 지금까지 어떤 마음으로 싸워왔다고 생각하십니까!!?」

 눈시울을 붉히며 비통한 마음을 터뜨리는 나나 쨩. 갑자기 실내가 조용해진다. 그녀의 마음의 비명 외에는.

「저는, 전 항상!! 눈앞의 일에만 급급한 학교를 대신해, 학생들을 위해서…!! 그런데도…!! 제 독선이라는 건 알아요!!! 이번 일도, 제가 더--------」

 거기까지 말하고는 나나 쨩의 목이 막혔다.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변했다. 양쪽 검은 눈동자가 위로 향하고 눈꺼풀이 감긴다. 그리고 실이 끊어진 꼭두각시 인형처럼 옆으로 주저앉았다.

「----셋츠!!」

 아이 쨩이 거의 반사에 가까운 순발력으로 튀어나가 나나 쨩의 몸과 마루 사이로 뛰어든다. 그리고 나나 쨩의 몸을 끌어안았다.

「나나 쨩!」
「나나 쨩!? 괜찮아!?」

 나나 쨩의 의식은 희미하게나마 있었지만, 혼미한 상태였다.

「일단 의무실로! 카나 쨩, 먼저 가서 알려줘!」

 아이 쨩은 나나 쨩의 등과 다리에 팔을 끼워 들어올렸다. 카나타 씨도 달려 나간다.

「…유우, 씨…」

 힘없이 팔을 늘어뜨린 나나 쨩이 우물거리며 말한다.

「조장님, 들… 한테는, 제 일…은, 비밀로……」
「말하지 마, 셋츠! 간다!」

 아이 쨩은 나나 쨩이 흔들리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빠른 속도로 걸어갔다.
 나도 따라가려다 발이 멈췄다.
 넘어지면서 날아가 버린 그녀의 안경을 집어 든다.
 회색 테와 다리를 연결하는 경첩이 덜그럭거리며 소리를 냈다.



「나나가 쓰러졌다는 게 정말이야!?」

 회의실 문이 힘차게 열린다. 필사적인 표정의 카린 씨와 엠마 씨가 서 있었다. 이걸로 전원이 다 왔구나.

「응. 지금 의무실 침대에서 자고 있어. 카나타 씨랑 카스미 쨩이 같이 있어」

 의무실에 너무 많이 몰려가면 폐가 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회의실에 있었다. 나나 쨩의 소식을 라인으로 전하자 모두들 바로 달려왔다.
 불안한 표정의 엠마 씨가 물었다.

「그래서 선생님은 뭐라고 하셔?」
「괜찮아,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하셨어」

 걱정으로 멈췄던 숨을 다시 쉬는 듯 엠마 씨는 큰 한숨을 내쉬었다. 진료실에서는 얼마 전에 온 DMAT 의사가 나나 쨩을 진찰했다.
 카린 씨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다행이네… 원인은?」
「…과로」
「…그렇겠지」

 연일 격무가 계속되는 데다, 오전에 있었던 일이 계기가 되어 겨우겨우 유지하던 무언가가 끊어진 듯했다.
 카린 씨는 벽에 기대어 괴로운 듯 얼굴을 찌푸렸다.

「이렇게 될 때까지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니…」

 그 말은 내 마음도 찔렀다.

「미안해, 시즈쿠 쨩. 어제 시즈쿠 쨩이랑 카스미 쨩이 그렇게 말했는데… 내가 나나 쨩을…」
「유우 씨, 자책하지 마세요」

 쏴아, 빗소리가 실내를 가득 채운다.
 「나나 쨩에 대해 우리 말고 다른 사람에게도 얘기했어?」 아유무가 묻는다.

「선생님들한테는 이미. 하지만 피난민들에게는…」
「아직 말하지 않았어?」
「응. 회장이 조장님들한테는 말하지 말라고 해서… 아마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은 것 같아」

 아이 쨩은 나나 쨩의 마음을 상상하듯 눈을 감았다.
 그러자 리나 쨩이 정보반의 반장으로서 제안했다.

「…회의는 어떻게 할까? 15분 정도 남았는데. 오늘은 중지?」
「그래. 나나 쨩이 없는 상황이니…」
「아니, 하자」

 어느새 나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내가 대리로 들어갈게. 부회장님, 리나 쨩, 도와줄래?」
「그건, 물론입니다」
「괜찮겠어? 유우 씨」
「괜찮아. 나나 쨩하고 계속 같이 있었으니까, 나름대로 할 수 있을 거야」

 모두의 얼굴에는 불안감이 가득했다.
 어쩔 수 없다. 지금까지 우리를 이끌어 준 것은 누가 뭐래도 나나 쨩이었다. 리더 부재에 대한 우려만이 아니다. 우리에게 그녀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동료인 것이다. 그녀가 쓰러진다면 우리는 침착할 수 없다.

「…걱정 마. 일단 다들 일로 돌아가자? 나나 쨩에게는 카스미 쨩이 붙어 있고… 나나 쨩도 우리가 이러고 있지 않길 원할 거라고 생각해」
「…네. 그리고 회장님은 겨우 이 정도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부회장님의 눈빛은 흔들림 없는 신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모두의 마음이 움직인다.

「…응. 여기서 손 놓고 있다고 해서 나나 쨩이 낫는 건 아니니까」
「나나 씨가 쓰러진 게 일이 너무 과중해서 그런 거였다면, 더더욱 손을 움직여야겠죠」
「좋아! 힘내자 얘들아! 어두운 얼굴만 하고 있으면 회장이 깨어났을 때 걱정할 거야!」

 아이 쨩이 손뼉을 친다. 이를 신호로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의 위치로 흩어진다.
 그럼, 나도 중요한 일을 해치우러 가야지.

「유우 쨩, 힘내」
「응. 고마워 아유무」

 아유무가 나에게 미소를 지으며 회의실을 나간다. 그 미소가 무엇보다도 내 마음의 버팀목이었다.
 리나 쨩과 부회장님, 그리고 나는 회의실에 남았다.

「이제 곧 모두 오실 시간입니다만…」
「조장님들한테는 말하지 말라고, 정말 나나 씨가 그렇게 말했어?」
「응. 맞아」

 아이 쨩의 말대로 조장님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걱정을 끼치는 것이 그렇게 잘못된 일일까.

「어쨌든, 오늘 회의 목록을 좀 확인하고 싶은데」
「네. 저도 도와드리겠습니다」
「나도. 힘내, 유우 씨」

 곧이어 A조 조장님이 가장 먼저 들어왔다. 우리 셋이 작은 목소리로 회의를 하는 동안 선생님들도 들어와서 금세 참여 인원이 모두 모였다.
 조금 빠르지만 시작하자. 부회장님, 리나 쨩 두 사람과 눈인사를 나눈다.
 자리에서 일어서자 조장님들이 나나 쨩이 없는 것을 의아하게 여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러분, 모여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의에 앞서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먼저 오늘 회의를 미루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C조 조장님이 괜찮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아, 그 전에 자기소개를 하겠습니다. 총무반의 운영위원 타카사키입니다----」

 나나 쨩은 아까 그렇게 말했지만.
 미안해.

「----사실, 방금 전 나카가와 위원장이 과로로 쓰러졌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가 대리로 진행하겠습니다」

 조장님들이 놀란 얼굴을 이쪽으로 돌린다. 방 안이 시끌벅적해진다.
 부회장님과 리나 쨩도 내 얼굴을 올려다본다.

「타, 타카사키 씨!」
「그건 말하지 말라고 했던 게……」
「괜찮아. 날 믿어줘」

 나나 쨩은 『위원장이 쓰러졌다』고 모두가 걱정하고 혼란스러워 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분명, 모두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여러분, 진정하세요.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합니다. 잠시 충분히 휴식을 취하면 돌아올 겁니다. 오늘은 우리끼리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죠」

 처음으로 나나 쨩이 없는 회의가 시작되었다.


*


니지가사키 학원・제1체육관

 나나 쨩, 괜찮을까.
 해봐야 어떻게 할 수 없는 걱정을 하면서도, 다시 힘을 내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다.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안녕하세요, 아오바 씨」
「어머, 엠마 쨩. 본 조르노… 이번엔 맞지?」
「네!」

 내가 남부 이탈리아어권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아오바 씨는 착각했다며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어쩔 수 없지. 스위스 인구의 10%도 안 되니까.

「몸 상태는 어떠세요?」
「아주 좋아. 조산사 분도 소개해주고 고마워」
「아뇨, 그건 나나 쨩----위원장이 해준 일이니까요」
「아, 나카가와 씨? 후배가 위원장이라는 거 정말이었구나. 놀랐어」

 나나 쨩은 아오바 씨와도 이야기를 나눈 모양이다.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

「대단하네, 아직 고등학생인데… 나하고는 딴판이야」

 아오바 씨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그럼… 아오바 씨」
「응?」
「마음은 어떠신가요?」

 그녀는 당황한 듯 표정이 살짝 움직였다.

「뭔가 고민이 있진 않으세요? 제가 조언해드릴 수 있는 건 없을지도 모르지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질지 몰라요」
「…날카롭구나, 엠마 쨩…」

 아오바 씨는 망설이는 듯, 잠시 눈을 내리깔고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리고 약간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아줌마의 불평 좀 들어줄래?」
「물론이에요」

 쭈그리고 앉아있던 것을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다시 앉았다.

「…남편이랑 말이야. 잘 안 되고 있어. 요즘. 아이가 생겼다는 걸 알았을 때는 정말 기뻤는데…」

 아오바 씨는 큰 배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나도 첫 아이라 불안해서. 배가 커질수록 점점 초조해져서. 나도 당연히 일을 계속해야 하니까 어린이집도 알아봐야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듣는다.

「그래서 여유가 없는 상황에 남편이 육아휴직을 못 쓴다고 했어. 남편은 외국계 회사라 그럴 리가 없다고 했더니, 지금은 중요한 시기라고 하는 거 있지? 그럼 왜 아이를 낳는 걸 찬성했냐고 물었더니, 그건 네가 원해서 그랬던 거라고…. 그 뒤로는 말싸움으로 번져서 말도 안 하고, 아직 앙금이 남아있는데 남편은 급한 해외 출장이 들어왔다면서 집을 비웠어. 나는 출산휴가 중인데 말이야」

 계속 쌓아두던 속마음이 쏟아진다. 말하는 본인도 들려주기 씁쓸하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계속해달라고 재촉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진까지 일어나고. …마치 세상이 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축복하지 않는 것처럼… 어쩌면 이 애도 내가 엄마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라」

 그녀는 괴로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감사합니다. 말하기 힘드셨을 텐데, 끝까지 들려주셔서」
「아니야. 나보다 어린 학생한테 이런 말밖에 못하고, 꼴사납지…」
「…그럼 제 이야기도 들어주시겠어요?」
「…응」

 말을 시작하기 전에 한 번 천장의 조명을 올려다본다. 줄지어 늘어선 전등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저희 가족은 남동생하고 여동생이 7명 있어요」
「어머, 그렇게 많아?」
「네!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나는 아이들도 있어서, 엄마가 배가 컸을 때의 기억도 있어요」
「그렇구나, 그래서」
「네. 엄마가 병원에 갈 때마다 저는 계속 걱정하면서 엄마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어요. 태어날 때도 병원에서 계속 하느님께 기도했어요. 제발, 동생을 만나게 해주세요. 동생이 엄마, 아빠를 만나게 해주세요, 라고요」

 하얀 복도. 약간 어두운 조명. 부드러움이 결여된 소파. 들것의 타이어가 굴러가는 소리.

「하지만 여러 일들이 있었어요. 거꾸로 태어난 아이, 태어날 날이 지나도 소식이 없는 아이, 태어날 때 울음을 터뜨리지 않은 아이…… 일이 있을 때마다 저도 심장이 멎을 것 같았어요. 하지만, 가장 힘들어 보이는 건 엄마와 아빠였어요…」
「…그래」
「그래도 결국 모두 살아서 돌아왔어요. 힘찬 울음소리를 들려주었어요. 저는 그 아이들이 엄마아빠를 보고 싶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체육관에는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엄마만 힘든 게 아니에요. 엄마를 만나기 위해서 아이들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열심히 노력해서 태어나 처음으로 보는 엄마의 얼굴이 슬픈 표정이라면, 아이는 분명 실망할 거예요」
「…엠마 쨩」
「그러니까, 웃어주세요. 엄마. 힘든 일도 있겠지만, 아이들은 모두 엄마의 웃는 얼굴을 좋아해요. 힘든 감정이 뱃속의 아이에게 가지 않도록… 그런 것들은 모두 저에게 토해내 주세요」

 아오바 씨는 눈가에서 눈물을 한 방울 흘리며 고개를 숙였지만, 곧 고개를 들어 내 눈을 바라봤다.

「----그럴게. 고마워」
「…네」
 
 우리는 서로 웃었다.
 그때 D조 조장님이 돌아왔다. 회의가 끝난 모양이다.
 걱정스러운 표정의 조장님이 근처에 있는 피난민 분에게 말을 걸었다.

「운영위원장 나카가와 씨가 쓰러졌대요. 과로라고요」
「네? 정말요!? 그 머리 땋은 애 맞죠?」

 어떻게 조장님이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걸까. 나나 쨩이 말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유우 쨩이 말해버린 걸까.
 귀를 기울이자 여기저기서 위원장, 나카가와라는 단어가 들려왔다.
 아오바 씨의 귀에도 들린 모양인지 놀란 표정을 짓는다.

「정말이야!? 나카가와 씨가 쓰러졌다는 거」
「아, 네… 하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하니, 안심하세요」
「그, 그래… 우리를 위해 너무 노력한 거네…」

 아오바 씨는 조금 미안한 듯 눈을 감았다.

「정말… 우리들은 아무것도 못 해주고…」

 체육관 안에는 불안한 음성의 덩어리가 점점 커져만 갔다.


*


니지가사키 학원・동관

 늦어버렸다.
 계속 그 말이 머릿속에서 반복되고 있었다.
 나나 선배가 쓰러졌다.
 그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던 그녀는, 지금 침대 위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하얀 시트가 부풀어오르는 폭이 꺼림칙할 정도로 작다. 이 작은 몸으로 대체 얼마나 많은 짐을 짊어지고 살아온 걸까.

「카스미 쨩」

 옆에 의자를 늘어놓던 카나타 선배가 조용히 목소리를 낸다. 선배의 따뜻한 손이 무릎 위에 놓았던 내 손 위에 겹쳐진다.

「선배」

 나나 선배의 검은 머리가 하얀 베개에 묻혀 있다. 누워 있는 선배의 얼굴은 최근 본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해 보였다.
 나와 이야기할 때보다도 훨씬 더.

「카나타 선배… 저… 결국 아무것도 못 했어요」

 카나타 선배는 무릎에서 손을 떼고, 내 머리에 손을 둘러 안아주었다. 선배의 어깨에 머리가 닿는다. 차분한 냄새가 코를 가득 채웠다.

「…카스미 쨩. 회의도 끝났으니까 돌아가서 물이라도 마시고 오지 않을래? 아까부터 계속 여기 있잖아? 내가 나나 쨩을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응?」

 선배의 손가락이 부드럽게 머리를 빗는다.

「…네」

 소리를 내지 않도록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조심스럽게 연다. 뒤에서는 카나타 선배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복도를 비추는 의무실의 하얀 빛이 점점 가늘어지더니, 어느새 사라졌다.
 햇볕이 들지 않는 복도는 어두웠다. 교실 하나를 지나 회의실 문을 연다.
 안에는 리나코와 카린 선배, 유우 선배가 있었다. 다들 내 얼굴을 쳐다봤다.

「카스미 쨩…」

 나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

 안으로 들어가서 뒤에서 문을 닫는다. 의자 하나를 끌어당겨 앉는다.

「부회장님은요?」
「…지금 조금, 선생님이랑……」

 리나코는 마음이 여기 있지 않다는 표정으로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 한 손으로 답장을 보낸다.

「리나코, 뭐 보고 있어?」

 화면에는 여러 개의 창이 표시되어 있었다. 표계산 프로그램, 텍스트 파일, 메일 화면….

「조금…」
「아까부터 조금이라고만 하고」
「유우 씨, 카린 씨, 괜찮을까?」
「잠깐, 내 말은?」

 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친 후 리나코의 뒤로 모여들었다.

「궁금했어. 나나 씨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토록 열심히 해 왔는지… 궁금해서 조사해 봤더니 알게 된 게 있어」

 리나코는 창 중 하나를 가리켰다. 발송된 메일 목록. 리나코가 그 중 메일 하나를 클릭해 크게 띄운다.

「『시설 견학 일시에 대해서』…? 이 메일은?」
「학생회 컴퓨터에서 나나 씨가 보낸 거야」
「어떻게 그런 게…」
「학생회실 컴퓨터를 조금… 말이야」

 또 조금, 이라니. 표정도 바꾸지 않고 말할 일이 아니잖아. …표정이 변하지 않는 건 알지만.
 유우 선배도 눈을 휘둥그레 뜬다.

「뭐!? 그런 짓 해도 돼!?」
「지금 같이 혼란스러운 상황에는 아무도 눈치 못 챌 거야. 리나 쨩 보드 『완전범죄』」
「왠지 누구를 닮아서 대담해졌어」

 그 누구는 누구일까. 너무 많이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다. 아마 아이 선배겠지.

「그래서 알게 된 것은?」
「아, 응. 이거, 수신자를 봐」
「『소나 에리어 도쿄』?」

 학교 바로 옆에 있는 방재 연수 시설. 우리도 1학기에 견학을 갔었다.

「응. 나나 씨는 여기와 여러 번 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았어. 글을 보니 학생회 차원에서 몇 번 견학도 다녀온 것 같아. 수업과는 별개로」
「거기서 애기를 들어서 그렇게 많은 지식이 있었구나」
「그런데 왜?」
「나나 씨가 소나 에리어에 연락을 한 건 2학기에 들어가고 나서였어」
「2학기에 들어가고 나서…」
「다르게 말하면, 여름방학이 끝나고 나서」

 리나코는 마치 비밀을 털어놓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여름방학 때 일어난 일을 계기로 나나 씨는 학교의, 말하자면 방재 개혁 준비를 하기 시작했던 거야」
「여름방학… 아!」
「태풍이 왔었지! 학교 일부가 침수됐었잖아!」
「맞아. 나나 씨는 아마 충격을 받았나 봐. 내 추측이지만, 나나 씨도 처음에는 태풍이라든가, 해일이라든가, 수해 대책만 생각했던 것 같아. 이 지역은 해발이 낮으니까. 하지만 중간에 침수 가능성이 그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

 카린 선배가 고개를 끄덕인다.

「…쓰나미구나」
「응. 그리고 쓰나미뿐 아니라 쓰나미의 원인이 되는 지진에 대해서도 생각이 미친 것 같아… 그래서 나나 씨… 아니, 나나 씨만 그런 게 아니야. 아마 부회장님도 포함한 학생회에서 학교 방재에 대해 재검토를 진행하고, 그리고…」

 생각해보면 부회장님도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리나코는 여러 개의 다른 창을 띄운다. 모두 온라인 문자 입력 툴이다.

「이건 뭐야?」
「전부 학원 신청서… 라기보다는 상신서의 초안. 나나 씨, 꼼꼼하네. 이런 점 좋아」
「그런 건 됐고! 그래서 무슨… 상신서? 인데?」
「학교의 방재 메뉴얼 개정과 비상시 대피 장소, 대피로의 재검토… 그리고 이곳이 대피소로 활용될 가능성에 대한 보고야」
「거기까지 생각했구나…」

 유우 선배는 감탄의 한숨을 내쉬었다.
 2학기에 들어서면서 학생회가 바빠졌다는 것은 그런 이유였구나. 아니, 우리 학생회는 대체 뭔데? 니지가사키와 *카스미가세키를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일본 외무성)

「여기 좀 봐. 9월 말에 비상식량과 비축물자 확충을 학교에 요구한 서류…… 전교생이 고립되더라도 이틀간 학교에서 생활할 수 있는 정도의 식료품과 물품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어」
「이틀분? 생각보다 적지 않아…?」

 카린 선배가 의문을 제기한다.
 그 말대로 우리들의 학교생활은 이미 8일이 지나고 있었다.

「응. 하지만 전교생이, 라는 부분이 중요해. 우리 학교 학생은 3000명이나 되니까 전교생이 이틀이면 양도 그만큼 돼. 그리고 아무리 고립된다고 해도 걸어서 통학하는 학생이나 기숙사생도 많아. 1주 분이라고 하면 학교 측이 좋은 표정을 짓지 않을 것을 예상하고 나나 씨는 날실이 아니라 씨실로 그물을 장황하게 펼쳐둔 거지」

 카린 선배, 유우 선배와 눈이 마주쳤다. 다행이다. 리나코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건 나뿐만이 아닌 것 같다.

「…그런데, 비상식량도 물자도 그만한 양이 있었나?」
「확실히, 그만큼은 아니지」
「맞아. 나는 나나 씨와 함께 지하 비축 창고에 들어갔지만, 있는 건 무대 위로 가져온 그것뿐이었어」

 리나코는 또 다른 파일을 앞에 내밀었다.

「이쪽을 봐. 한 달 전인 10월 중순의 날짜가 적힌 상신서야」
「내용은?」
「이것도 식량과 물자의 증강을 요구하고 있어」

 어라?

「왜 또 같은 내용을? 그래도 부족했나?」
「아니, 9월에 상신했을 때의 양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야. 일부러 늘릴 정도는 아니야」
「그럼 왜?」
「…말했잖아. 이건 『상신서』라고」

 유우 선배가 뭔가 깨달은 표정을 짓더니 씁쓸한 듯 입술을 비틀었다.

「……학교가 거절했구나. 9월 상신을」
「아마 그랬을 거야. 그래서 조금이나마 비축량 확대를 위해, 양을 대폭 줄여서 재차 상신했어」

 리나코는 의자를 조금 빼고 나와 카린 선배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수량 감축을 강요당하고 나나 씨도 많이 억울했던 것 같아. 그래서 나나 씨는 그때 그렇게 말했던 거야. 『그래서 말했는데』 …라고. 유우 씨는 모르겠지만」

 대피소 준비 중 엠마 선배가 물 걱정을 할 때 나나 선배가 화난 어조로 내뱉었던 말이다. 학교가 비축물자 증설을 거절한 때 지진이 발생했고, 결국 학교는 대피소가 되었다. 그래서 『그래서 말했는데』 라는 것.

「그건 엠마 선배에게 한 말이 아니라 학교에 한 말이었구나」
「응. 참고로 나나 씨는 10월의 두 번째 상신에서 비축물자 목록에 생리대를 추가하는 것도 제안했어. 실물을 보니 이쪽은 통과된 것 같네」
「그 생리대는 타협의 산물이었구나…」

 카린 선배는 납득한 듯 했다. 하지만 곧 눈썹을 치켜세우며 컴퓨터 화면을 노려보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여학교인데 나나가 알아차릴 때까지 비축해둔 생리대가 없었다는 거야!? 어이가 없네…」
「나도 놀랐어. 솔직히 말해서 완전 엉망」

 내가 다니는 학교의 실태가 드러나고 있다.
 리나코가 핵심에 접근한다.

「나나 씨가 대피소 운영에 열심인 이유는 아마 두 가지일 거야. 하나는 자책감」
「자책…?」
「응. 좀 더 빨리 대책을 세웠더라면 더 확실히 대비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게 나나 쨩 때문이라니… 오히려…」
「…하지만 그 애의 책임감이 얼마나 강한지는 그 누구보다 우리가 가장 잘 알잖아」

 그렇다.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 책임까지 떠맡을 정도로 거대한 정의감 덩어리. 짊어질 필요도 없는 죄를 속죄하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둘째로… 이건 추측일 뿐이지만, 나나 씨는 학교를 바꾸고 싶었던 게 아닐까」
「무슨 소리야…? 리나코」
「방금 본 것처럼 학교 측은 미래를 내다보는 대책이나 그런 것에 소극적이야. 그런 학교가 방재대책을 계속 소홀히 해서 결국 이런 엄청난 사태가 벌어졌어. 그런 상황에서 대책을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절당한 나나 씨가, 예상치 못한 사태로 혼란스러워하는 학교를 대신해 리더십을 발휘한다면 어떨까? 학교 측은 나나 씨의 주장이 옳았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

 「『눈앞의 일만 생각하는 학원』 이라니…」 유우 선배가 천장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되면 학교도 태도를 바꾸지 않겠어? ……나나 씨는 그동안 학생회장으로서 학생들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 왔어. 하지만 학생회장이라는 직무의 한계도 느꼈던 것 같아. 학교까지는 바꿀 수 없다고. 하지만 어쩌면, 이렇게 표현하는 건 조금 그렇지만, 이 상황을 잘 이용한다면----그렇게 생각한 게 아닐까?」
「…그런 것까지」
「…그 바보」

 카린 선배가 이마에 손을 얹는다. 앞머리가 부풀어 오른다.

「…나나 쨩은 굉장하네… 벌써 몇 번이나 말했는지 모르겠어」
「…하지만 나나 선배. 이번 일로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쳤다고 생각하면 또 자책할 거야」

 그러자 유우 선배는 얼굴을 풀었다.

「그 부분은 괜찮아. 걱정을 끼치는 건 나쁜 일이 아니야. 나나 쨩도 이해해 줄 거야」
「하지만」
「걱정 마! 이미 손을 써 뒀거든」
「네…?」

 그때 회의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누구인가 해서 돌아보려고 했지만, 유우 선배의 얼굴에 시선이 고정되어 돌아볼 수 없었다.
 유우 선배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거 봐」


*


니지가사키 학원・임시 의무실

 어라.
 지금이 몇 시지.
 소독 냄새가 풍기고 있다.
 입안이 심하게 말라 있었다.
 천천히 눈을 뜬다.
 낯익은 천장. 교실의 그것이었다. 왜인지 형광등은 꺼져 있다.
 온몸에 무언가가 달라붙어 있다. 이건, 천?
 나는 누워 있었다. 칸막이 같은 것으로 둘러싸여 있다.
 얼굴을 옆으로 돌리니 의자가 놓여 있고, 그 위에 회색 안경이 놓여 있다. 내 것이다.
 그때 겨우 기억이 돌아왔다.
 맞아, 쓰러졌었지.
 형편없긴. 그렇게 학교에는 맡길 수 없다고 큰소리를 친 주제에.
 한심하다.
 또 모두에게 걱정을 끼치고.
 귀를 기울이자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소리,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목소리는 여러분…?
 사과드려야 해…. 몸을 일으킨다. 머리가 흔들리면서 이명으로 잠시 목소리가 멀어졌다.
 일어나면서 손을 뻗어 안경을 착용한다.
 시야 끝에 비친 침대 가장자리가 수평으로 돌아오자, 머리의 중심이 조여오는 듯한 통증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크윽……」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칸막이 너머가 분주해진다.
 칸막이 사이에 끼워진 끈에서 커튼처럼 늘어져 있던 천이 힘차게 당겨진다.
 잠에서 깨어난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애쉬그레이 색의 소녀였다.

「----나나, 선배…!」

 죄송합니다, 카스미 씨. 걱정 시켜서----
 그럴 틈도 없이 그녀는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깨어나서… 다행이에요…!」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받아내지 못하고 침대에 쓰러져 버린다.
 머리가 흔들려 둔한 통증이 두개골 안쪽을 휘젓고 다닌다.

「카스미 씨----아야야…」
「카스미 양! 그러면 안 돼!」
「나나 쨩은 아직 다 나은 게 아니야!」
「아, 앗… 죄, 죄송해요!」

 카스미 씨가 시즈쿠 씨와 엠마 씨에게 끌려 나간다.
 다른 분들도 속속 모습을 드러낸다.
 보이는 얼굴이 늘어날 때마다 죄송한 마음이 커진다.
 얼굴에 걸린 앞머리를 고치고 말했다.

「여러분, 걱정을 끼쳐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인다.

「잘난 척 큰소리치다 쓰러지다니… 위원장으로서 실격이네요」

 실내가 정적에 휩싸였다. 여러분의 표정은 알 수 없었지만, 내 손이 이불을 잡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후후… 생각했던 대로네」

 유우 씨가 쿡쿡대며 웃고 있었다. 그러자 모두 웃었다. 특히 카스미 씨의 미소가 낯이 익다. 장난을 치고 우리의 반응을 기다릴 때의 얼굴과 비슷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카스미 씨는 한 번 저쪽으로 물러나더니, 바구니를 들고 돌아왔다. 양손으로 들어야 할 정도의 크기지만 그다지 무겁지는 않아 보인다. 내용물은 무엇일까.

「나나 선배. 이것 좀 보세요」

 카스미 씨는 웃는 얼굴로 바구니를 내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이건…」

 바구니 안에는 여러 가지 물건이 들어 있었다.
 이건 과자? 이건 한 봉지 통째로, 이건 작은 봉지… 배급품에 들어있던 양갱도 있다. 페트병 차에 스포츠 음료, 주스… 그야말로 아무거나 들어있다. 음식뿐만이 아니다. 고무줄로 묶인 두통약, 감기약, 파스, 반창고. 영양제까지.
 대체 이건 무슨…?

「이게 다 뭔가요?」
「잘 보세요, 선배」

 카스미 씨가 과자 봉지 중 하나를 뒤집었다.
 거기에는 손글씨로 쓴 문구가 적혀 있었다.

『나나 쨩, 항상 고마워 이와키』

「이건… A조의…」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카스미 씨는 바구니의 내용물을 하나, 또 하나 꺼내어 나에게 보여주었다.

『나카가와 씨, 항상 수고 많으세요 미하루』
『나나 쨩, 지금은 푹 쉬어 소마』
『모두 나카가와 씨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회의에서 건강한 모습 보여주세요, 나카가와 씨』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말해주세요 사메카와』
『이거 먹고 영양 보충하세요』
『나나 언니 빨리 나아 후타바』

 이건, 혹시----

「나나 쨩」

 유우 씨가 내 옆에 앉아서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 모든 것들은 피난민 분들이 가져다주신 거야」

 카스미 씨의 얼굴을 보니 그녀도 고개를 깊이 끄덕였다.

「미안해. 나나 쨩은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내가 조장님들한테 말씀드렸어. 그래서 조장님들을 통해 모두에게 전해진 것 같아. 그랬더니----」
「한 명 한 명, 이렇게 가져다 주셨어. 메시지는 우리가 부탁한 게 아니야. 모두 피난민 여러분이 직접 써주신 거야」

 그런, 그런----

「나나 쨩, 잘 봐. 전부 나카가와 씨, 나나 쨩이라고 적혀 있지. 위원장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 모두 위원장이 쓰러졌기 때문에 걱정하는 게 아니야. 나나 쨩이 쓰러졌기 때문에 걱정하는 거라고」

 다시 손바닥으로 시선을 떨어뜨린다. 하나하나 손에 쥔다.

『언제나 감사합니다』
『이 마음은 다 표현할 수 없어요』
『고마워요』
『감사합니다』
…………

 그 이상은 시야가 뿌옇게 흐려져 읽을 수 없었다.

「……감사 드려야, 할 사람은… 저인데……」

 눈물이 쏟아져 멈추지 않는다.

「……이런, 부족한…… 저를, 위해………」

 왼쪽에서 카스미 씨에게 안긴다. 오른쪽의 유우 씨에게도. 다른 분들도 침대를 둘러싸고 내 손을 잡는다.
 카스미 씨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진다.

「선배… 선배가 첫날 밤에 저를 걱정해 주셨잖아요. 그러니까, 저도 선배를 걱정하게 해 주세요…」

 정말로.
 제가 여러분에게 받은 것에 보답하려면, 대체 얼마나 많은 일을 해야 할까요.
 아니, 아니죠. 여러분은 결코 보답을 바라고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단지 학생들을 위해. 피난민 여러분을 위해.
 그것이 언제부터인가 학교를 바꾸기 위해서, 학교에게 되돌려주기 위해서, 여러분을 이용하려고 했습니다.
 잘못한 건 저였군요.
 눈에서 끝없이 흘러나오는 무언가와 함께 마음 속 깊은 곳의 검은 무언가가 흘러나온다.
 하얀 침대 시트와 모두의 온기라는 산모복에 싸여 나는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계속>




흔들리는 무지개 -13-

그린돌핀 역시 사회고발물이잖아 이거 2023.06.06 18: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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