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라이브 선샤인 마이너 갤러리 저장소

제 목
번역/창작 SS명작선) 시즈쿠 "손수건, 떨어뜨리셨어요." -5
글쓴이
ㅇㅇ
추천
2
댓글
0
원본 글 주소
https://gall.dcinside.com/sunshine/5006141
  • 2022-12-16 11:16:13
  • 58.224
 

시즈쿠쨩은 메뉴를 쭉 보더니, 고민스러운 듯이, 이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오빠는 정하셨나요?"


일단 정하긴 했는데...... 하고 메뉴에 써있는 것 중 하나를 가리킨다.


사이드 메뉴로서 샐러드나 술 안주가 될 만한 것도 있지만,


메인 메뉴로서는 파스타나 피자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피자도 괜찮을 듯했지만, 시즈쿠쨩도 있고, 그렇게 많이 먹는 것도 좀...... 싶어서, 고른 것은 파스타였다.


"오빠가 그거라면...... 저는, 이쪽으로 할게요. 그리고, 샐러드도 주문하지 않으실래요? 오빠는 야채 괜찮으세요?"


괜찮긴 한데...... 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끄덕이고는, 앗, 하고 놀란다.


시즈쿠쨩은 요리를 나눠먹을 생각인 건지 물어보니, 시즈쿠쨩은 의외라는 듯이.


"혼자 다 먹는 건 좀 쓸쓸하잖아요."


시즈쿠쨩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이 대답했다.


돌이켜보면, 시즈쿠쨩은 샌드위치도 아무렇지 않게 먹여줬고, 자기가 입에 넣은 꼬치를 그대로 쓰기도 했었다.


"앗...... 그렇겠네요. 오빠랑 저는 먹는 양이...... 오빠 것도 주문할까요?"


그런 뜻이 아니야. 싶었지만,


일단은, 괜찮아. 충분해. 라고만 대답했다.




요리와 음료를 주문하니, 음료가 먼저 나왔다.


당연하게도 시즈쿠쨩은 술이 아니고, 나도 술을 주문하진 않아서...... 좀, 느낌이 안 사는 것 같았다.


"오빠는 와인 같은 게 낫지 않았을까요......? 술, 따라드릴까요?"


시즈쿠쨩은 그렇게 말하며, 병을 기울이는 듯한 움직임을 하고는 즐거운듯 웃는다.


진짜 부탁하면 해주는 건지 궁금하긴 하다.


어쩐지, 시즈쿠쨩이라면 해줄 것 같긴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아니, 괜찮아, 하고 부드럽게 거절하니, 시즈쿠쨩은 "그래요?" 하고, 조금 아쉽다는 듯이 말한다.


"......오빠는 술 약하신가요?"


그렇지는 않아, 하고 대답한다.


술은 남들만큼은 마시는 편이고, 거기엔 와인도 포함된다.


하지만, 지금은 동년배의 누군가가 아니라, 시즈쿠쨩이랑 와있으니까.


필요 이상으로 마시게 될 것 같고, 혹시 만취라도 했다가는 큰일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하진 못하고,


ㅡㅡ집에 갈 때도 바래다줘야 하니까.


하고 말하자, 시즈쿠쨩은 놀란 분위기로 컵을 들고는, 꿀꺽꿀꺽 마셨다.


"......그렇네요."


시즈쿠쨩은 휙하고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리고는, 또 한 모금 마셨다.




잠시 후 요리가 나와서, 테이블에 놓인다.


시즈쿠쨩은 크림 계열의 파스타, 나는 볼로네제......인데,


내가 주문한 볼로네제는 면이 묘하게 폭이 넓은지라,


나도 모르게 눈썹을 치켜뜨니, 시즈쿠쨩은 큭큭하고 웃었다.


"모르시나요? 이게 탈리아텔레라는 거예요. 메뉴에도 써있어요."


그러고보니, 그런 것도 써있었지, 하고,


좀 부끄러워져서 기침을 하니, 시즈쿠쨩은 한 단계 더 귀엽게 웃었다.


힐끔 쳐다보니 "딱히 무시하는 건 아니에요!" 하고, 당황한 듯 손을 파닥파닥 흔들었다.


"드실까요?"


얼버무리듯 그렇게 말하는 시즈쿠쨩에게, 얼버무린 거지, 하고 말하니,


시즈쿠쨩은 "그런 거 아니예요!"하고,


즉석으로 부정하고는, 또 한 모금, 음료를 마시고.


"......잘 먹겠습니다."


분위기를 바꾸고자, 시즈쿠쨩은 제대로, 손을 맞대고 한 마디 했다.


바로 앞에서 제대로 행동하는 어린애가 있는데, 어른인 내가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어서,


그걸 흉내내듯, 잘 먹겠습니다. 하고 나서, 포크를 쥔다.




탈리아텔레라는 듯한 두께는 없지만 폭이 넓은 면은,


말하자면 키시멘 같은 거라서, 그렇게 생각하니, 젓가락으로 먹고 싶어진다.


실제로, 편의점에서 파스타를 샀을 때는 젓가락으로 먹을 정도다.


시즈쿠쨩이 시킨 건 탈리아텔레 같은 신기한 게 아니라ㅡㅡ하고,


시즈쿠쨩에게 시선을 향했다가, 나도 모르게 시선을 사로잡혔다.


"음......"


보면 안 된다고 머릿속으로는 생각하면서도, 눈을 뗄 수 없어서 바라보고 있으니,


시즈쿠쨩은 뒤늦게 눈치채고,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너, 너무 쳐다보지 마세요......"


시즈쿠쨩은 그대로, 슥하고, 입을 손으로 가린다.


뺨이나 입가가 보이지 않아도, 눈이나 귀를 통해 시즈쿠쨩이 무척 부끄러워 하고 있는 걸 알 수 있어서,


미안. 나도 모르게......하고, 사과한 후, 허겁지겁 내 몫의 파스타에 포크를 가져간다.


그걸 입에 넣고는, 반대쪽에 있는 접시에 시즈쿠쨩의 포크가 다가가는 것을 보고, 떠올리고 만다.


포크를 써서 아주 조금 휘감은 후,


그걸 그대로 입으로 가져가...... 살짝 머리카락이 흘러내려서인지,


비어있는 왼손으로 머리카락을 치켜올리며,


입을 약간만 크게 벌리고, 포크를 입에 물고,


감겨있던 파스타가 사라진 포크만이, 입술에서 미끄러지듯 나오는...... 그런 광경.


보면 안 되는 걸 봐버린 듯한 감각.


심장이 아파오고, 열이라도 있는 것처럼 얼굴이 뜨거워서...... 입에 넣었을 터인 볼로네제는,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 크림 파스타 맛있어요. 볼로네제는 어때요?"


무척 귀여운 미소로, 기뻐해주는 시즈쿠쨩의 순진한 질문.


솔직히 맛 같은 거 전혀 모르겠다. 라고 대답할 수도 없어서,


뭐 아마도 맛있겠지. 싶어서.


ㅡㅡ엄청 맛있어. 편의점이랑은 다르네.


하고 대답한 직후, 앗...... 하고 생각한다.


맛있다고 대답한 거야 그렇다쳐도, 편의점이랑 비교하다니,


분위기를 망친 거 아닐까ㅡㅡ하고, 걱정스러워서 시즈쿠쨩을 보니,


시즈쿠쨩은 "당연하죠."하고, 즐거운 듯 웃어주었다.


"......한 입, 먹어봐도 될까요?"


내 눈치를 보듯, 올려다보는 시선으로 시즈쿠쨩은 질문했다.


내 포크를 쓸...... 리가 없겠지만,


시즈쿠쨩이 입에 넣었던 포크가 닿는 것도, 그건 그거대로 좋지 않은 생각을 품게 된다.


그렇지만, 원래부터 나눠먹을 생각이었던 것 같고,


거절하면 시즈쿠쨩이 안 좋은 표정을 지을 거라고 생각하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래, 하고 끄덕이니, "감사합니다!" 하고,


내가 간접이 어쩌고 하는 걸 생각하고 있을 거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는 목소리로 기뻐하며,


두 파스타 접시의 위치를 바꿔놓는다.


둘 곳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는 생각했으나,


시즈쿠쨩은 "제 크림 파스타도 한 입 드세요" 하고, 권유했다.


고마워. 라고, 대답하면서도, 좀처럼 손 댈 수가 없었다.




샌드위치 때랑 비교하면,


내 몫과 시즈쿠쨩 몫의 포크가 따로 있다는 사실도 있고 해서,


그렇게 길게 망설이지는 않고, 시즈쿠쨩의 크림 파스타를 먹었다.


크림 파스타는 아주 약간 씁쓸한 단맛이 있는 크림이었는데,


파스타에 묻은 크림이 술술 목을 타고 넘어가는 게 의외로 기분 좋았고,


깊은 맛도 있어서, 맛있었다.


"어떠세요?"


그렇게 묻기에, 이번에야말로 진심으로 맛있다고 대답한다.


시즈쿠쨩은 볼로네제를 맛있게 먹은 듯해서 "둘 다 맛있어서 좋네요."라고, 기쁜 듯이 말한다.


시즈쿠쨩은 간접적인 어쩌고...... 같은 건, 전혀 생각도 하지 않는 거겠지.


그 순수함이 귀엽고, 사랑스럽고...... 하지만, 약간 걱정된다.


"오빠랑 같이 와서 다행이에요. 혼자서는, 두 접시나 못 먹는데다, 이상하게 볼 테니까요."


혼자 왔는데, 테이블 위에는 2인분 이상의 요리.


주위 사람들은 그런 걸 신경 쓰지는 않을 듯한 기분도 들지만,


시즈쿠쨩 본인은 그걸 신경 쓸 거고...... 부끄러워 하겠지.


하지만, 이건 굳이 나랑 함께여야 할 필요는 없는 일이다.


다른 날에 한 번 더 와서, 저번이랑 다른 걸 먹어도 될 거다.


하지만ㅡㅡ그런 말을 하는 건, 무의미하겠지.


그건, 시즈쿠쨩의 기쁜 듯한 얼굴을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기뻐해주니 다행이야. 라고 말하자,


시즈쿠쨩은 이미 귀엽게 웃고 있었는데도,


"기뻐요."


하고, 한 층 더, 귀엽게 웃어주었다.




샐러드랑 파스타를 천천히 먹었으나,


원래부터 그렇게 양이 많지 않기도 해서, 금방 접시를 비워버린다.


디저트라도 시킬까? 하고 시즈쿠쨩에게 물어보니,


시즈쿠쨩은 약간 고민하고는 "오빠가 주문하신다면야......" 하고, 소극적으로 말한다.


디저트는 디저트대로 제법 가격이 나가지만,


모처럼이니까 바닐라 아이스를 선택하니, 시즈쿠쨩은 티라미스를 골랐다.


"감사합니다."


점원에게 디저트를 부탁한 후, 시즈쿠쨩은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감사의 말을 하고는 미소를 보여준다.


소극적이지만, 귀엽고, 기뻐하는 걸 알 수 있는 미소.


이 가게의 요리는 전부, 고등학생 입장에선 비싼 가격이라 그런 걸까.


ㅡㅡ어른의 지갑을 걱정할 필요는 없어.
하고, 약간 폼도 잡아보지만,


시즈쿠쨩은 별로라고 생각했는지, 살짝 놀란 얼굴을 하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한, 작은 미소로 "그렇네요."하고, 대답했다.


"사실은 살짝, 단 것도 먹어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시즈쿠쨩은 그렇게 말하고는, "많이 먹는다고, 생각하셨나요?" 하고 내 눈치를 본다.


그렇네. 하고 동의해야 할지, 그렇지 않다고 해야할지.


망설이다가, 그렇지 않아, 하고 돌려준다.


큰 목소리로 말할 수는 없지만, 원래부터 양이 적었고,


디저트 하나 주문한 거 가지고 그런 생각을 하진 않는다.


게다가...... 맛있게 먹는 시즈쿠쨩은, 좋다.


디저트는 원래 어느 정도 준비를 미리 해두는지,


파스타나 샐러드보다도 상당히 빠르게 나와서, 테이블에 놓인다.


차가운 바닐라 아이스와, 약간 차가운 티라미스.


냉기가 흐르는 바닐라 아이스에 스푼을 꽂으려고 하니,


아직 타이밍이 아닌지, 제대로 꽂히지 않는다.


억지로 스푼을 꽂을까 생각하고 있으니,


시즈쿠쨩은 "먼저 티라미스 드실래요?" 하고 말하면서,


티라미스를 작게 잘라낸 포크를 내밀었다.


그건 시즈쿠쨩 몫이잖아. 하고 말했으나,


시즈쿠쨩은 한 입 정도는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괜찮아요. 드세요."


시즈쿠쨩은 웃는 얼굴로 그렇게 말하며,


계속 내뺼 수도 없는지라, 스푼을 두고 티라미스를 한 입 받아먹는다.


달콤한 크림과, 씁쓸한 코코아, 그리고 희미하게 느껴지는 커피 같은 산미.


그리고, 은은한 차가움과 감촉이 좋은 스펀지가 입에 넣자마자 녹아내리듯 흘러간다.


"음...... 맛있어!"


시즈쿠쨩은 자기도 한 입,


역시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로 자기 몫을 잘라내더니,


그대로 입에 옮겨서는 무척 맛있다는 듯이 뺨을 부풀린다.




너무나도 맛있게 먹기에,


아이스도 먹을래? 하고 물어보니 "정말요?" 하고, 무척 기뻐보여서.


역시 시즈쿠쨩은 귀엽구나...... 하고, 늘 생각하는 걸 재확인하고는 끄덕인다.


스푼으로 아이스를 찌르고,


그럭저럭 스푼이 잘 들어가는 걸 확인한 후,


한 입 분량을 잘라내서, 스푼으로 떠올려 시즈쿠쨩에게 내밀어서ㅡㅡ


"감사합니다."


ㅡㅡ감사의 말과 함께, 스푼을 쥔 손에 희미하게 무게가 실린다.


덥썩 스푼을 무는 감촉과, 스푼에 닿은 무언가가 움직이는 감촉.


그리고, 아이스가 사라져가는 감촉.


"차가워서 맛있네요!"


시즈쿠쨩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사라져간 무게.


하지만, 감촉만큼은 분명히 남아 있어서...... 내 쪽으로 다시 가져온 스푼의 미끌미끌한 것에 시선이 향하고 만다.


시즈쿠쨩은 본인이 직접 먹게 하려고 했었는데,


시즈쿠쨩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니까,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그래서, 자연스럽게 아이스를 퍼낸 스푼을 내밀고 말아서, 그래서......


"오빠. 아이스 다 녹겠어요."


시즈쿠쨩의 말을 듣고 정신을 차린 후, 매끈한 입술을 보고 만다.


방금 전까지 그게 물고 있었던 스푼을 보고 만다.


아이스는 빨리 좀 먹으라는 것처럼 손쉽게 스푼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된 이상 흐름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다고, 전력으로 아이스를 입에 넣는다.


아이스는 무척이나 차갑고, 무척이나ㅡㅡ달콤한 맛이 났다.




"역시, 저도 돈ㅡㅡ"


낼게요, 라고 움직이려는 시즈쿠쨩을 막아서고, 카드를 점원에게 내밀어 일시불로 결제한다.


시즈쿠쨩에게 사준다고 한 건 나였고,


생각보다 비싼 금액도 아니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시즈쿠쨩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었으니, 이 정도는 싼 거다.


"잘 먹었습니다. 오빠."


얻어먹은 걸 계속 신경 쓸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지,


시즈쿠쨩은 웃는 얼굴로 그렇게 말하고는, 내 옆에 서준다.


이제 남은 건, 집에 돌아가는 것뿐이다.


전철을 타고 카마쿠라로 가서, 카마쿠라에서 갈아타고...... 그리고, 거기서 작별이겠지.


어른이었다면, 딴데서 한 잔 더 하고 가지 않을래? 하고 꼬셔서,


그 후에는, 하룻밤을 같이 보내거나 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즈쿠쨩은 고등학생이니까, 같이 술도 마실 수 없고, 무단 외박은 더더욱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벌써, 완전히 어두워졌네요."


시즈쿠쨩은 옆에서 걸으며,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문득 그런 말을 한다.


별이 보이고, 달이 보이고, 가끔씩, 비행기인지 뭔지의 불빛이 보이는 밤하늘.


시간은 이미 19시를 지나가는 무렵이니, 집에 도착하면 22시 정도가 되려나.


가족에게 걱정을 끼치는 건 아닐까 싶어서, 집에는 전화했어? 라고 물어보니,


시즈쿠쨩은 "아침에 해뒀어요."하고, 웃었다.


동호회 멤버의 라이브였으니, 원래부터 늦게 돌아갈 예정이었겠지.


만약 나랑 같이 있지 않았다면, 시즈쿠쨩은 동호회 멤버들과 뒷풀이라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시즈쿠쨩은 한동안 묵묵히 걷다가,


지금 생각났다는 듯이 고개를 들고 "그러면 안 돼요?" 하고 갑자기 말을 꺼낸다.


"오늘은 그만, 집에 가야 해요."


어딘가...... 예를 들면, 노래방이나.


고등학생이라도 시간을 떼울 수 있는 곳은 얼마든지 있고,


물론, 들키면 이래저래 귀찮기는 하겠지만,


그런 곳에 데려가려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나보다.


당연하지. 하고, 확실하게 대답한다.


애초에, 그런 곳에 데려갈 생각은 없었다.


시즈쿠쨩이 집에 연락을 안 했다면, 연락시킬 생각이었고,


연락했다면 그건 그거대로, 조금이라도 빨리, 집에 돌아가게 해주고 싶다.


본심을 말하자면 좀 더 시즈쿠쨩이랑 같이 있고 싶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전혀 생각 안 하셨나요?"


캐내려는 것처럼 올려다보는 시즈쿠쨩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치며, 생각 안 해. 하고, 끄덕인다.


그럼에도 시즈쿠쨩은 "진짜로요?" 하고 물고 늘어졌지만,


진짜로요. 하고, 시즈쿠쨩을 흉내내듯 대답하니,


시즈쿠쨩은 재밌다는 듯이 웃으며.


"그렇죠!"


하고, 웃어줬다.




전철을 타고 우선은 신바시로 향해서, 거기서 카마쿠라로 향하고, 시치리가하마로.


환1승을 두 번이나 해야한다고 생각할지,


시즈쿠쨩이랑 그만큼 같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할지.


어떻게 생각할지를 정하자면, 망설임 없이 후자겠지.


오다이바에서 신바시까지는 수십 분 정도지만, 거기서 카마쿠라까지가 멀어서,


오늘 하루, 계속 돌아다녔던 시즈쿠쨩은 많이 지친 모양이었다.


다행히 좌석에 앉을 수 있었는데,


꾸벅꾸벅하고 팔 근처에 시즈쿠쨩의 머리가 몇 번이나 부딪혀온다.


가는 길의 전철이나 벤치에서는 몹시 동요했었지만,


지금의 시즈쿠쨩을 누군가한테 떠맡긴다......고 생각하면, 양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아, 죄송해요."


역에 멈추면서 크게 흔들리는 바람에 움찔한 시즈쿠쨩이 잠에서 깨고, 이쪽을 보며 사과한다.


기대도 괜찮아. 하고 말했으나,


시즈쿠쨩은 미안하다는 듯이 고개를 젓고는 "괜찮아요."하고 눈을 비빈다.


"......그러고보면, 오빠는, 요리 같은 건 잘 안 하시나요?"


시즈쿠쨩은 졸음을 참기 위해서인지, 이야기를 나누기로 한 모양이었다.


갑자기 요리를 하냐고 물어봐도...... 하고, 조금 생각해본다.


사람에 따라서 요리에 대한 인식에는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컵라면을 요리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인스턴트 우동이나 라면을 끓여서 토핑을 넣기만 한 걸 요리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직접 만든 것만이 요리이며, 그 이외엔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다.


오래 생각한 후에, 그럭저럭이려나. 하고 대답했다.


"그렇군요...... 별로 안 하실 줄 알았어요. 대단하네요."


시즈쿠쨩은 잠기운을 참아낸, 약간 불안정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졸리면 자도 되는데 싶었으나, 시즈쿠쨩은 최대한 깨있으려는 모양이었다.




"오늘은 재밌었어요."


시즈쿠쨩은 그렇게 말하고는 "감사합니다."하고 말을 이었다.


원래라면 친구랑 함께 지내고, 함께 즐겼을 시간.


그걸 나한테 써주고,


그럼에도 즐거워해주고, 기뻐해주고, 행복한 듯한 모습을 보여준 시즈쿠쨩.


진짜로? 하고 물어보니, 시즈쿠쨩은 작게 웃고는.


"진짜로, 예요. 오빠랑 함께 이것저것 할 수 있어서...... 즐거웠어요. 마지막에는 맛있는 디너도 사주셨고요."


시즈쿠쨩은 그렇게 말하고는 "즐겁지 않았으면 디너도 안 갔을 걸요."하고 웃는다.


하긴 그것도 그렇고, 다른 해야 할 일이 있다면서,


중간에 헤어지는 것도 마음만 먹으면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즈쿠쨩은 그렇게 하지 않고 곁에 있어주었다.


매번 즐거워하고, 기뻐해주었고,


열사병이라고 오해받은 그 순간에도,


시즈쿠쨩은 계속 나를 걱정해주었고, 행동해주었다.


"오빠."


시즈쿠쨩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린다.


귓가는 아니지만, 어깨 근처...... 약간, 몸을 기대고 있는 듯한 무게와 열기가 느껴지는 곳에서.


시선을 향해보니, 시즈쿠쨩은 이쪽으로 몸을 기대고 있어서.


"오빠는...... 즐거우셨나요?"


조용한 목소리로. 그렇게 물어보았다.




시즈쿠쨩의 질문에 나도 모르게 몸이 반응해버린다.


누군가와 무언가를 했을 때 나는 즐거웠지만 상대는 어땠을까?


그런 걱정을 하는 건 흔하니까,


시즈쿠쨩도 특별한 이유없이 궁금해졌을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시즈쿠쨩의 거리감이, 그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오빠?"


그런 생각이 대답을 늦춘 바람에, 시즈쿠쨩을 불안하게 만든 걸까.


어깨까지는 닿지 않는 탓에, 팔 중간에 닿아있는 시즈쿠쨩의 머리가,


부비부비하는 것처럼 움직이고는, 목소리가 천천히 들려온다.


졸음과, 불안이 섞인 목소리.


시선을 향하자, 시즈쿠쨩은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었고,


그 잠에 빠질 듯한 표정은, 어린애처럼 보이지 않아서...... 두근거리고 만다.


"오빠는, 별로ㅡㅡ"


즐겁지 않으셨나요? 하고, 분명 이어졌을 말을 가로막고,


즐거웠어. 라고 대답한다.


그 말은 진심이었고, 생각한 것 이상으로 감정이 담긴 탓인지,


시즈쿠쨩의 몸이 움찔하고 반응했다.


하지만...... 이건 얼버무리 수 없다. 거짓말을 할 수는 없다.


즐겁지 않았다니. 입이 찢어져도 말할 수 없다.




즐거웠어. 무척...... 혼자였으면 눈치 보여서,


중간에 빠져나왔을 법한 분위기 속에서,


거기에 녹아들어 어색함 없이 지낼 수 있었어.


항상 즐겁게 웃어주고, 기뻐해주고, 옆에 있어줘서,


즐거웠고, 기뻤고, 무엇보다도......


ㅡㅡ행복했어.


하고, 적나라하게 말하고는, 시즈쿠쨩에게서 고개를 돌린다.


마치 꿈 같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혼자서 회장에 가서는, 거기서 우연히 만나면 좋겠다...... 하고,


아주 약간 기대하고 있었을 뿐인 하루가,


아침부터 계속, 시즈쿠쨩과 함께 지내게 되어서.


"행복...... 인가요......"


시즈쿠쨩은, 내가 말한 본심을 곱씹은 후,


그리고...... 작게, 귀엽게, 행복이 느껴지는 웃음소리를 흘렸다.


"행복, 하셨군요...... 다행이에요."


시즈쿠쨩은 그렇게 말하며 기대고 있었던 자세를 바로 잡고는,


무릎 위의 가방에 올려뒀던 자기 손과 손을 맞잡고, 후...... 하고 숨을 내뱉는다.


"저도 행복했어요. 만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해서, 같은 목적지라고는 생각도 못해서...... 우연이란 존재하는구나...... 싶어서."


시즈쿠쨩은 막힘없이 평탄한 목소리로 말하면서도,


그 손은 정직하게도,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초조해하는 것처럼 바빠서.


"저, 상당히 제멋대로였다고 생각해요. 제가 스쿨 아이돌이고, 오빠는 팬이니까...... 아니죠, 제가 어린애고, 오빠는 어른이니까. 어느 정도는 부탁하면 들어줄 거라고 생각해서, 이용했어요."


모처럼이니까 같이 가지 않으실래요. 라는 권유도, 가고 싶은 가게가 있다는 이야기도,


회장에서 같이 다닌 것도, 요리를 나눠먹은 것도...... 전부 시즈쿠쨩의 어리광이었던 거겠지.


그리고, 나는 그걸 하나도 거절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말했어요. 우연도 쌓이면 필연이라고."


시즈쿠쨩은 그렇게 말을 꺼내고, 이쪽을 쳐다보았다.


우연도 쌓이면 필연이 되고, 그건 즉 운명이라고.


누가 말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딘가에서 누군가 말했던 것도 같은 이야기다.


그러나......


전철에서 도와줬던 것, 그 모래사장에서 만났던 것,


매일 같은 전철을 타게 된 것, 오늘, 이렇게 함께 행동하게 된 것.


우연히 일어난 것도 분명 있지만, 그렇지만...... 그 근간에 있는 것은 필연이다.


심지어 운명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작위적인 필연. 그런 자각이, 내 입을 막아버린다.


그 와중에, 카마쿠라 역에 도착해서, 환1승하려고 전철에서 내리니, 시즈쿠쨩이 뒤돌아선다.


"오빠."


낮에 비하면 사람이 적은 카마쿠라 역.


그래서인지...... 어쩌면, 한 걸음 더 다가오는 건 아닌가 생각해버린다.


시즈쿠쨩은 자기 가슴에 손을 얹고, 진정하자, 진정하자, 하고 심호흡을 하고는.


"......아이 씨의 손도 잡았으니, 제 손도 잡아주시지 않을래요?"


그렇게, 시즈쿠쨩은 내게 부탁했다.


어쩌면ㅡㅡ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부탁.


이미 아이쨩의 손을 잡았으니 여고생의 손을 잡는 건 거북하다는 변명은 쓸 수 없고,


게다가...... 이제 와서 손을 잡는 것쯤이야. 싶어서 끄덕인다.




그래. 그 정도라면...... 하고,


대답해주니, 시즈쿠쨩은 "부탁드려요!" 하고,


기쁜 듯이 손을 내밀어서, 그걸...... 잡아준다.


아이쨩보다도 가녀리고, 연약하고, 귀여운 손.


조금이라도 힘을 넣으면 망가뜨리게 될 듯한 그 손은, 상냥하게 내 손을 맞잡아줬다.


"감사합니다. 오빠."


그리고, 미련없이 멀어져간다.


고작 수 초 정도의, 악수 같은 것으로,


스쿨 아이돌과 팬으로서는, 그렇게 특별하지는 않다고 느껴졌다.


기쁜 듯한 미소는 점점 희미해지고, 나를 향한 눈동자는 굳세고, 하지만, 어딘가 슬퍼보여서.


"......역에 아버지가 데리러 와주셔서, 여기서 작별이에요."


시즈쿠쨩은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으나,


하지 못하고 삼킨 것처럼 한 순간 눈을 피한 후에 꺼낸 것이 그런 말이었다.


환1승을 위해 카마쿠라 역에서 같이 내리긴 했지만,


시즈쿠쨩은 그 너머의 전철은 타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건 아쉽다는 심정과, 다행이라는 심정이 있어서.


좋은 아버님이네, 하고 웃어주니,


시즈쿠쨩은 "맞아요."하고 동의하며 끄덕인다.




"오빠. 오늘은 정말로 즐거웠어요...... 감사합니다."


시즈쿠쨩은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숙여 "안녕히 가세요."하고, 손을 흔들며 카마쿠라 역을 떠나간다.


그 뒷모습을 어느 정도 지켜보다가...... 혼자서 전철을 탄다.


혼자가 당연했던 인생, 그러니까, 익숙할 텐데도,


그럼에도, 그게 너무나도, 외롭게 느껴진다.


그건 분명, 시즈쿠쨩이 곁에 있어줘서 그런 것만이 아니라,


곁에 있어준 그 시즈쿠쨩이, 항상ㅡㅡ.


아아...... 하고,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카린쨩이 말했던 "시즈쿠쨩은 우연이라든지 운명이라든지. 기쁘게 생각해버려."라는 말을 떠올린다.


시즈쿠쨩은 우연이면서도 운명적인 이 만남을 기쁘게 생각하고, 행복하게 느끼고, 그러니까 분명...... 그런 거겠지.


시즈쿠쨩은 순진하고, 무구하고, 몽상가 기질이 있고...... 그렇기에,


그 운명이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깊게 상처받고 말 것이다.


ㅡㅡ시즈쿠쨩을 상처입히는 짓은 절대로 안 할 거고, 누구도 못하게 할 거야.


라니, 어느 입으로 그런 소리를 한단 말이냐.


시즈쿠쨩의 곁에 있고 싶다, 더 알고 싶다, 깊게 아는 사이가 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시즈쿠쨩이야말로 행복해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믿고,


그런 식으로 오늘까지 해온 행동들이, 한 걸음만 잘못 내딛으면 시즈쿠쨩을 깊이 상처입히게 될 줄이야, 상상도 못했다.




월요일, 시즈쿠쨩과 함께 탈 예정이었던 전철보다 한 타임 빠른 전철을 타고, 회사로 향한다.


시즈쿠쨩이 나에게 호의를 품고 있는 건 기쁘다.


기쁠 텐데, 그게, 내 행동을 눈치채지 못하고 운명이라 믿은 순수한 마음이라고 생각하니,


설령, 내 행동이 시즈쿠쨩을 위한 거라는 생각에 해온 것일지라도,


너무나도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시즈쿠쨩은 내가 그랬던 것처럼, 전철을 놓쳐가면서까지 기다려줄까.


아니면, 그런 날도 있는 거라고, 그냥 평소랑 같은 시간에 전철을 타게 될까.


이럴 때, 시즈쿠쨩과의 연락 수단이 없다는 사실이 슬프면서도, 고맙기도 했다.


연락 수단이 생겼다가는, 시즈쿠쨩과 약속을 잡아버릴지도 모른다.


약속을 해버리면, 이런 식으로 피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연락 수단이 없으니까...... 시즈쿠쨩을 난처하게 만들 가능성도 있어서.


카린쨩한테 뺨을 맞고 "내가 말했지?"라고, 혼날지도 모른다.


하지만ㅡㅡ그게 옳은 일이다.


혼나는 게 당연한 거다...... 라고, 찝찝한 기분으로 출근하니,


아직 업무 시간까지 꽤 시간이 남은 것도 있어서 그런지,


담배를 피고 있던 선배랑 마주쳐서 "아침부터 우중충하구만" 하고, 그 자리에 붙잡혔다.


선배가 이리 와보라며 손을 흔들기에,


무시할 수도 없는지라 가까이 갔더니 "또 여동생?"하고, 정곡을 찔렀다.


실제로는 동생이 아니라 시즈쿠쨩이라는...... 피가 안 이어진 여고생이지만,


선배한테는 시즈쿠쨩을 동생으로서 소개했으니, 사실이나 마찬가지겠지.




선배는 "동생이 몸이 약하냐?" 하고, 깊게 파고 들어왔다.


저번에 말했던 건, 시즈쿠쨩이 몸이 안 좋았던 이야기였으니,


몸이 안 좋았다가, 회복되었다가, 또 몸이 안 좋아졌다...... 뭐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지만,


아니에요. 라고 고개를 저으니 "그럼 싸우기라도 했어?" 하고, 물어본다.


그렇게나, 지금의 나는 심각한 분위기인 걸까.


그렇게까지 신경 쓸 정도로 안색이 안 좋은 걸까.


싸운 건 아니지만요, 하고 대답한 후, 이를 꽉 깨물었다.


선배는 생판 남이고, 시즈쿠쨩을 동생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고.


어디까지 말해도 되는 걸까...... 망설이고 있으니, "그런 표정 짓고 있으면, 그 녀석이 시끄럽단 말야." 하고,


변함없이, 상사를 그 녀석이라고 부르면서, 선배는 담배의 끝자락을 내게 향했다.


연기 떄문에 기침을 하니, 선배는 담배를 치우고 "웃어줄 테니까 얘기해봐라" 하고 말한다.


어떻게 말할지 고민하고, 단어를 고르고, 짜맞춘 후에.


그러고 나서ㅡㅡ거짓말을 했더니, 동생이 그걸 무척이나 기뻐해줘서요. 라고,


속이고 있다는 사실, 감추고 있다는 사실, 그걸 무척이나 기뻐해주고, 행복하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


그게, 무척이나 미안해서...... 라고, 말한다.


연애적인 부분이나, 내가 실제로 하고 있는 짓은 생략한 상담.


선배는 얼굴을 찌푸리고는 "바보 아니냐?" 하고, 일축해버리고는.


정말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그건 니가 잘못한 거잖아" 하고 맞는 말을 했다.


그러고는 "솔직히 말하든가, 계속 속일 수밖에 없지. 그런 거는"하고, 담배 연기를 위쪽을 향해 뿜었다.


선배는 "너랑 동생한테만 관련 있는 거짓말이고, 혹시 그게 거짓말이 아니게 만들 수 있다면, 진실로 바꿔버린다는 방법도 있고."라고, 그럭저럭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다.


솔직히 말할지, 게속 속일지, 아니면 진실로 바꿀지.


운명을 진실로 바꾸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그건 결국, 계속 속인다는 뜻이 되겠지.


그럼 솔직하게 얘기하고, 미움받고, 버려지고, 다시 외톨이로 돌아갈까.


어느 쪽이 시즈쿠쨩에게 있어 좋은 일이 될까.


시즈쿠쨩이 안 좋은 감정을 느끼지 않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건......


시즈쿠쨩이 한 순간조차 상처받지 않는 것을 바란다면,


그건, 절대로 들키지 않도록 계속 속이는 방법이 되겠지.


그걸로 괴로워 하는 건 나 혼자뿐일 테니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더니, 선배는 담배불을 끄고,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다.


어느샌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나보다.


고개를 들자 선배는 "일 끝나거든, 한 잔 하러 갈래?" 하고 말해주었다.


금요일이면 몰라도, 월요일.


그런 날에 마시러 간다니, 꽤 강한 사람이구나 싶어서, 월요일인데요. 하고 말하니,


선배는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고는 "듣고보니 그러네."하고 중얼거린다.


하지만, 평소랑 다른 일을 해보면,


약간은 생각도 바뀌지 않을까, 정리되지 않을까...... 싶어서.


ㅡㅡ선배만 괜찮으시다면야.


그렇게 대답하자, 선배는 "주제 파악도 못하고 선배를 배려하지 마라"라고 말하면서도,


그럼 오늘은 칼퇴근 해야겠네 라며, 평소보다도 진질하게 일을 도와주었다.




여전히 쓸데없는 일을 떠맡거나,


틈만 나면 갈굼을 당하면서 고생하긴 했으나,


선배가 도와준 것도 있어서,


약간 시간이 지나기는 했지만,


거의 오차 수준으로 정시 퇴근을 할 수 있었기에...... 술집으로 향했다.


메뉴를 보지도 않고 "일단 맥주면 되겠지"라고 선배는 말한 후,


거기에 맞춰서 대충 안주나 샐러드를 주문하고,


다른 건 각자 알아서......라는 흐름이었다.


시즈쿠쨩과 함께 갔던 건 이런 술집 따위가 아니었고,


좋은 분위기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던데다, 둘이서 왔다는 상황은 같아도,


시끄러운 술집과, 조용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시즈쿠쨩은 항상 싱글벙글하는 입가가 보였지만,


선배는 담배를 물고 있어서, 가끔씩, 보이지 않게 된다.


시즈쿠쨩은 언제나 상냥해서, 달콤한...... 빠져들 것 같은 향기가 났지만,


선배는 담배를 많이 피니까, 코를 찌르는 듯한 냄새가 났고.


ㅡㅡ시즈쿠쨩과 선배는, 전혀 다르다.


당연한 사실을 당연하게도 생각하며,


이런데 와서까지 시즈쿠쨩만을 생각해버리는 건가, 하고 한숨을 쉰다.




선배는 이쪽을 보고 "그래서?"하고, 질문을 던진다.


거하게 마시고 잊어버리자고. 처음엔 그런 생각을 했던 모양이지만, 내가 무척이나 고민하고 있다고 판단한 듯했다.


그래서 선배는, "얘기 들어줄 테니까"하고, 질린다는 듯한 얼굴을 하면서도 말해준다.


ㅡㅡ선배는 운명을 믿으시나요?


그렇게 물어보니, 대놓고, 이 녀석 바보냐......라고 말하려는 듯한 얼굴로 "그런 걸 믿을 정도로, 제대로 살고 있지는 않은데."하고, 웃는다.


비웃는 듯한 웃음소리...... 어른의, 조금 잡스럽고, 바보 취급하는 듯한 웃음소리는,


시즈쿠쨩이 들려주던 목소리와, 보여주던 표정과는, 정말이지, 비슷한 구석이 전혀 없어서.


그런 식으로 역시나, 시즈쿠쨩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와중에,


맥주가 나와서 "일단은 건배"라고 하는, 딱히 이유도 없이 하게 되는 의식 같은 걸 하고 나서, 맥주를 한 모금 마신다.


씁쓸한 거품이 입에 들어오고, 뼈에 스며드는 듯한 발포주의 탄산 느낌이 퍼져나가고, 뒷맛이 좋은, 어른의 맛이 흘러들어간다.




선배는 이쪽을 보고는 얼굴을 찌푸리며 "그래서? 운명이 어쨌다고?"라며, 일단은 들어줄 생각인 모양이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조금 고민한 후,


운명을 믿고 있는 동생을 기쁘게 해주려고, 운명을 연출하고,


하지만, 너무나도 기뻐해줘서, 행복해보여서, 그러니까, 미안한 기분이 들어서......


라고, 일부의 진실만을 이야기하자, 선배는 "중증 시스콘이잖아."하고, 담배 연기를 환기구 쪽으로 뿜었다.


실제로는 동생이 아니니까 시스콘은 아니지만...... 시즈쿠쨩이 동생이었다면...... 하는 이야기는 일단 치워두고,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하고, 가볍게 웃는다.


몇 초쯤 침묵이 흐르고, 주위의 소음이 덮쳐온다.


선배는 담뱃재를 재떨이에 털어내고는 입에 물고 "운명 같은 건, 결국은 주관적 개념일 뿐이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거야."라고, 토해낸다.


주관적, 인가요. 라고 곱씹듯 중얼거리니,


선배는 담배연기를 뿜으며 끄덕이고는 "예를 들어 오늘 아침, 흡연장 앞을 지나간 널 불러세웠잖아?"하고 말한다.


그랬죠. 하고, 묵묵히 대답하니,


선배는 웃으며 "평소에 내가 거기에 있는 시간에 너는 지나가지 않아.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지. 그러니까, 운명일지도 몰라."하고,


고작 그 정도일 뿐이라는 듯이, "운명일 리가 없지만."하고 크게 웃어댄다.




그렇군...... 하고 생각한다.


그 때의 내가 선배를 만난 걸, 운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 자신의 의지로 일부러 그 시간을 골라서 행동한 결과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선배 입장에서는,


우연히도 그 시간에 만나게 된 운명일지도 모른다. 라는 인식이 될 수도 있다는 거지.


선배는 담배를 재떨이에 놓고 맥주가 담긴 잔을 손에 쥐고는,


호쾌하게 반쯤 마신 후 "운명따윈, 그렇게 느낀 멍청이가 아닌 이상, 자기 의지로 행동했다고만 생각할 테고, 운명은 언제나 작위적인 것일 뿐이야."라고, 웃었다.


그러니까, 어른은 운명을 믿지 않는다.


어른이 무언가를 운명이라고 말하는 건, 그랬으면 좋겠다는 체념에서 오는 것이지,


포기할 필요가 없는 이상은, 그 모든 건 자신의 선택으로 얻은 것이라 생각하기 마련이라고.


어쨰서 선배는 그런 식으로...... 하고, 나도 모르게 말했더니,


선배는 조금 놀란 얼굴을 보여주며 "니 동생이랑은 달리 어른이니까"하고 웃은 후,


때맞춰 나온 샐러드 안주를 입에 넣고는.


이거 봐라, 운명이 왔네. 하고, 비웃음 섞인 말을 하며 젓가락으로 계속 먹는다.


그리고 선배는, "어린애는 순수하게도 운명 같은 꿈을 꾸지. 어른이 보기엔 바보 같을 뿐이야."하고, 진심으로 질색이라는 듯이 중얼거린다.


어린 시절의 선배는, 운명을 믿었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운명은 거짓이었던 걸까,


운명이라고는 부르고 싶지 않은 것이었던 걸까.


아니면 결국, 운명 같은 건 느껴보지도 못한 채 어른이 되어버린 것일까.


그건 모르겠지만,


적어도 선배는 운명이라는 것을 혐오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캐보는 듯한 시선이 전해진 것인지 "니가 말하는 그건, 산타의 정체는 부모님이라고 가르쳐주는 정도의 시시한 이야기라고."하고, 빈정거리는 말이 날아왔다.




그러나, 그건 무척이나 상처를 주는 행동이다.


한동안 뒤끝이 남아 관계가 나빠질 거고, 그 진실을 알게 된 이상은 산타를 믿지 않게 된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운명이 만들어진 가짜라는 사실을 알게 된 시즈쿠쨩은, 운명을 믿는 순진함을 버리고, 최대한 좋게 말하자면, 어른에 한 걸음 가까워지는 것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아니면, 누군가와의 만남을 기뻐하지 않고, 친해지는 것에 신중해지고, 잘 웃지도 않는 여성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배우를 지망하고, 연기력을 갈고 닦으려는 시즈쿠쨩에게 있어, 꿈을 파괴당한다는 경험은,


사람의 마음에 남는 연기를 하지 못하게 만들 트라우마로 남게 되는 게 아닐까.


아니...... 어쩌면, 그 연기에 리얼리티가 생겨서,


마음을 사로잡는 연기가 되어, 발전할지도 모른다.


오히려, 어쩌면, 그 연기에는 비통함이 섞여들어서,


꿈을 보여주지 못하고, 꿈을 선사하지 못하고, 탁해져서,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자 "한 가지 해줄 수 있는 말은, 니가 먼저 고백하지 않았다가 들키는 게 가장 상처입힐 거라는 사실이야."라고, 선배는 말한다.


계속 속인다면, 시즈쿠쨩은 평생 운명을 믿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시즈쿠쨩과는 지금까지와 같은 관계로 남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걸 유지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고, 어쩌다 들킬 가능성도 충분히 있어서.


고민하고 있으니 "너는 동생이랑 너 자신, 어느 쪽이 더 소중한 건데?"하는 질문을 받는다.


그건 물론 동생......이라고, 즉답하자, 선배는 꽤나 혐오하는 시선을 내게 향했지만, 짧아진 담배의 불을 끄고는, 맥주를 마저 마신다.


그러고는 "하지만 동생한테 미움받기 싫어서, 솔직하게 말 못하는 거잖아?"라고 지적당한다.




시즈쿠쨩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으니까 말할 수 없는 거라고?


아냐...... 그게 아니라, 시즈쿠쨩을 상처입히고 싶지 않으니까,


괴롭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슬프게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진실을 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 것뿐이지ㅡㅡ하고.


고민하고, 생각하고...... 그러고 나서,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시즈쿠쨩을 위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시즈쿠쨩이랑 꿈 같은 시간을 경험하고는......


그걸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서,


어떻게든 그걸 잃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그렇다면, 이 얼마나ㅡㅡ



ㅡㅡㅡㅡㅡ


뒤늦게 정신차린 물붕쿤... 다음이 엔딩임

댓글이 없습니다.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5006251 일반 저때 일본에 비였나 눈이너무 많이와서 3 ㅇㅇ 2022-12-16 0
5006250 일반 짱깨년이 딸1감으로는 딱좋음 ㅇㅇ 118.235 2022-12-16 0
5006249 일반 급하게 카나타 재단만들었음 17 시오카나의이불 2022-12-16 13
5006248 뉴짤 청산 뉴짤 13 CHerryBlossom 2022-12-16 14
5006247 일반 이걸보고도 팬이 되지않을수 있을까 7 고돌희 2022-12-16 0
5006246 일반 물붕이들이 리유 눈나한테 환장하는 진짜 이유… 11 오다이바소녀단 2022-12-16 3
5006245 일반 2015년 리유 2 지나가던요소로 2022-12-16 0
5006244 일반 리유 생파 갈수있어서 다행이다 14 ㅇㅇ 2022-12-16 0
5006243 일반 왤캐 시간 순삭임 1 밥돼지하나요 2022-12-16 0
5006242 일반 개처럼 물어뜯네 ㅋㅋㅋ 3 ㅇㅇ 118.235 2022-12-16 2
5006241 일반 그 nhk 애니송 프리미엄 럽라 특집 때 리쨩 생각나네 1 citelg 2022-12-16 0
5006240 일반 럽지컬 악순환 날림식질함 2 ㅇㅇ 211.40 2022-12-16 7
5006239 일반 agf는 진짜 가길잘한듯 고돌희 2022-12-16 0
5006238 일반 방금 대전 애플가서 생카받고옴 1 귀계기괴 2022-12-16 0
5006237 일반 2015년 리유 10 ㅇㅇ 2022-12-16 2
5006236 일반 하테나일루젼 오프닝인가? 2 지나가던요소로 2022-12-16 0
5006235 일반 오 리유 데뷔곡이다. 스콜피온 2022-12-16 0
5006234 일반 토모리 투어 블루레이 나왔네 2 ㅇㅇ 122.249 2022-12-16 1
5006233 일반 근본 뮤즈 입럽에 중국인 캐릭터를 맡은 중국출신 성우 12 김인호사쿠라코 2022-12-16 6
5006232 일반 근데 리쨩 츤 만나고 개웃겼던거 하나가 ㅋㅋㅋ citelg 2022-12-16 0
5006231 일반 진짜 미친듯이 동경하던 존재 하나로 일본에 넘어왔는데 고돌희 2022-12-16 0
5006230 일반 논쨩 블로그 올라왔다 いいんだよ、きっと 2022-12-16 0
5006229 일반 리유의 아티스트 데뷔 동기 1 스콜피온 2022-12-16 0
5006228 일반 리유는 그리고 근본넘치는게 뮤즈부터 입덕한 사람에다 10 고돌희 2022-12-16 2
5006227 일반 소신발언) AGF 존나 소중함 4 citelg 2022-12-16 0
5006226 일반 성우덕후가 가장 기분나쁘다. 역시 오타쿠는 규제해야한다 6 김인호사쿠라코 2022-12-16 4
5006225 일반 나마들 누구든 오면 자리는 채워질텐데 2 火水金 2022-12-16 0
5006224 일반 치하쨩 인스타보니 서니파 보고 싶다 1 쿠카 2022-12-16 0
5006223 일반 컬러풀호라이즌 특 1 ㅇㅇ 2022-12-16 0
5006222 일반 뜬금없긴 한데 리쨩 야부 썰도 그렇고 2 ㅇㅇ 2022-12-16 0
5006221 일반 내한 와서 안무 체크해줬으면 좋겠다 밥돼지하나요 2022-12-16 0
5006220 일반 아 빨간파카 하나 더사둘걸 ATM 2022-12-16 0
5006219 일반 회장님 생일광고 보고 옴 1 미빔 2022-12-16 2
5006218 번역/창작 번역)いでらハル센세 니지동 4컷「카나타생일」 1 코코아쓰나미 2022-12-16 11
5006217 일반 리쨩이 야부쟝 멘탈 챙겨준 썰 보면 8 citelg 2022-12-16 2
5006216 일반 딱 저때 덕질 열심히했는데 4 ㅇㅇ 2022-12-16 0
5006215 일반 근데 또 뭐보고있음? 4 지나가던요소로 2022-12-16 0
5006214 일반 리유가 귀여운 리유를 알아냈다 모닝글로리 2022-12-16 0
5006213 일반 리유는 그리고 행동보면 사람이 되었음 6 고돌희 2022-12-16 0
5006212 일반 진짜 성덕은 럽@방 상관없이 키모이하네 8 ㅇㅇ 223.62 2022-12-16 0
념글 삭제글 갤러리 랭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