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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창작 SS명작선) 시즈쿠 "손수건, 떨어뜨리셨어요." -1
글쓴이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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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글 주소
https://gall.dcinside.com/sunshine/5006042
  • 2022-12-16 10: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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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 관련 스레에서 정말 꾸준히 언급되는 2022년 탑클래스 명작


초반 전개랑 주인공이 당황스럽지만 끝까지 볼 가치가 있으니


내츄럴본백합오타쿠인데도 이거 번역하는데 시간 잔뜩 꼬라박은 날 믿고 ㄱㄱ



ㅡㅡㅡㅡㅡ


특별한 일은 무엇 하나 없는 나날이었다.


정신을 흔드는 알람에 눈을 뜨고, 표시된 [월요일]이라는 단어에 우울함을 느끼면서, 오늘도 출근인가 하고 짜증을 낸다.


아슬아슬한 타이밍까지 자고 있었던 얼굴에 찬물을 끼얹어 의식을 끄집어내고, 잔뜩 사둔 200ml 정도의 야채 쥬스를 찌그러뜨리듯 위에 집어넣을 뿐인 아침 식사.


대충 이를 닦고, 마지막에 클리닝 맡긴 게 언젠지도 애매한 낡은 정장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와, 사람이 가득한 전철에 흔들리며, 밀려나고, 내 잘못도 아닌데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린다.


전철 안에서 본 흘러가는 풍경처럼, 나 자신의 인생도 다른 수많은 사람들에 녹아들어, 있거나 말거나 아무 차이도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나날ㅡㅡ


"손수건, 떨어뜨리셨어요."


ㅡㅡ그런 나날에, 빨간색이 비쳤다.




"저기... 아닌가요?"


빨간색ㅡㅡ시선을 끄는 빨갛고 커다란 리본을 달고 있는 소녀는, 당황한 듯한 표정으로 내게 손을 내밀었다. 손에는 다림질도 하지 않은 주름투성이 줄무늬 손수건이 있었다.


왼쪽 뒷주머니를 만져보고, 있어야 할 감촉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 감사를 표현하고 손수건을 받아든다.


"아뇨, 별 거 아니에요."


감사는 필요없다고, 연상에, 남자, 소녀가 보기에는 커다란 체구일 터인 모습에도 겁먹지 않고 싱긋 웃고서는, 그대로 발빠르게 전철 안으로 돌아간다. 방송이 흐르고, 문이 닫혀도, 소녀가 탄 전철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창문으로 보이는 빨간 리본이, 다른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한 단계 더 밝아보였기 때문이었다.




작은 체구이기는 했으나, 아마도 고등학생인 듯한 교복을 입고 있었던 소녀. 떠나는 순간, 흩날린 머리에서 느껴진 향기는 무척이나 달콤해서, 오랜만에 기분 좋은 고양감을 느꼈다.


손에 쥐고 있었던 시간은 한 순간이었으나, 틀림없이 만지고 있었던 그 손수건. 이번엔 떨어뜨리지 않겠다고 가슴 안쪽 주머니에 집어넣고, 그 교복은 어느 학교일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며 전철을 기다린다.


과장 안 보태고, 귀여운 외모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다 손수건 따위를 주워주고, 말을 걸어주는 상냥한 아이. 다시 생각해보면 목소리도 귀여웠다......까지 생각하고, 당황하며 고개를 젓는다.


성인인데다, 닳고 닳은 직장인 남성이, 친절하게 대해준 여고생을 생각하고 있다니, 이상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평소엔 회사에 도착하는 게 가장 빠르기에, 커피 메이커를 준비하는 등의 작업을 강요당한다.


내가 커피를 마실지 안 마실지는 상관없다. 하는 게 당연해서 감사받을 일도 없고, 안 하면 혼날 뿐인 그런 잡무.


조금 늦게 도착한 오늘은 다른 사람이 했기 때문인지, 지각한 것도 아닌데 팔자 좋구만 하는 갈굼을 들으며 업무가 시작되고, 점심 때까지 해달라며 11시 지나서 일을 떠맡아, 15시 넘어서 점심 식사.


퇴근 시간인 19시가 다가오자, 가능하다면 오늘 중으로. 라며, 부탁한다는 말조차 없이 나에게 일을 떠넘긴다. 가능하다면, 이니까 퇴근할 준비를 했다가는, 끝났냐? 하고 눈총을 사니까, 오늘 중으로 끝내고자 어차피 없었던 일이 될 잔업 시간을 신경쓰지 않고, 22시 넘어서 퇴근한다.


잠에 빠질 듯한 전철의 흔들림을 느끼면서, 소녀가 주워준 손수건을 쥔다. 오늘 아침의 고작 두세 마디는, 사무적인 업무 멘트나 일을 떠맡는 경우를 제외하면, 오랜만에 나를 향해 던져진 것이었다.


그건 대화라고는 부를 수 없는 것이었고, 그러나, 기뻤다. 그저 우연히 손수건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눈치 못챘으면 그냥 그대로 넘어가도, 딱히 상관없는 것이었는데.


그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다시 한 번...... 나를 위한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생각해버린다. 다시 한 번, 손수건을 떨어뜨리면 주워줄까. 말을 걸어줄까. 이번에는...... 조금 더 친근함이 담긴 대화를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있을 수 없는 일을 생각한다.




그렇게, 소녀를 만나기 위한 나날이 시작되었다. 알람이 울리는 것보다 조금 더 빨리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빵을 먹고, 야채 쥬스를 마신다.


이를 닦고, 대충이나마 다림질을 한 정장과 와이셔츠를 입고서는, 반드시 손수건을 가지고 간다.


소녀를 만나게 되었을 때, 정장이 구겨져 있는 게 싫었다. 지친 얼굴을 하고 있는 게 싫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그런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ㅡㅡ그러나, 말을 걸 수는 없었다.


성인 남성과, 여자 고등학생은 저쪽이 말을 거는 경우는 있어도 남성이 먼저 말을 거는 건 말도 안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업무 같은 것도 아니고, 지인조차 아니라면 더더욱 그렇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저 같은 시간, 같은 전철을 타는 소녀를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그 애는 내가 타는 역보다 이전 역에서부터 타고 있어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전철을 타고 온다.


일상적으로 반복하는 행동은 어떤 법칙성이 생기고, 고착화되어, 예외가 개입하지 않는 이상은 불변적인 것이 된다.


그 결과, 소녀가 언제나 같은 시간, 같은 전철을 탄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서는, 나도 반드시 그 시간, 그 전철을 타고자 했다.


말은 걸 수 없고, 건드릴 수도 없다. 그러나,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때 말을 걸어줬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반복해서 들려온다. 나만을 향한 말. 나만을 봐준 눈동자.


손에 넣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조금씩 흘러나와, 덮어버리듯 스마트폰에 집중하는 척을 했다.


회사를 가기 위해, 그녀를 남겨두고 전철에서 내린다. 문득 스마트폰의 화면을 보자, 그녀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회사에서 써야한다며 강제로 설치한 그룹 채팅용 어플. 그 무음 기능이 있는 카메라가, 어느샌가 제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다.




지워야한다고 바로 생각했다. 이건 도촬이다. 다른 목적을 위해서, 겸사겸사 같은 장소에 있는 거랑은 차원이 다르다고. 이성적으로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울 수 없었다. 나쁜데다 쓰려는 게 아니다. SNS에 올라온 사진이나 동영상을 저장하는 거랑 다를 게 없다...... 악용하지만 않으면 된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말았다.


저장하고, 잠금 화면에도 배경 화면에도 설정하지 않은 채 그냥 갤러리에 담아둔다. 가지고 있을 뿐, 우연히 손에 넣은 사진을 가지고 있을 뿐.


별 생각없이 캡쳐한 스샷으로 가득한 폴더 안에, 딱 한 장만 교복을 입은 소녀의 사진이 있다. 보고 있으면 기운이 나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사진. 갈망하는 마음을 억제하기 위해서라도, 그건 지우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침마다 그 모습을 보기만 해야했던 나날에서, 스마트폰을 켜면 볼 수 있는 나날로 바뀌었다. 그 모습은 변하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는다.


목소리도 소리도 냄새도 나지 않지만, 그 딱 한 번 느꼈던 목소리와 냄새에 의존해 그 움직임을 생각하고, 내게 말을 걸어 웃어주는, 그런 모습을 늘 생각했다.


그걸로 만족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나 손에 넣으면 하나 더, 하나 더, 욕구는 강해질 뿐이었고, 괜히 더 괴로워질 뿐이었다.


그래서ㅡㅡ무심코 저질렀다.


그녀의 사진을 수정해서, 배경과 얼굴을 완전히 알 수 없게 만들고, 익명 게시판에 여동생인 척 올렸다. 얼굴은? 같은 말이나, 구라치네, 같은 의심이 가득한 와중에, 기다리고 있었던 말이 나왔다.


[니지가사키의 학생?]


내가 직접 학교를 알아낼 순 없다. 하지만, 누군가는 알고 있다.


니지가사키로 검색하자 나온 것이 니지가사키 학원. 그 교복은 틀림없이 그녀와 같은 것이라, 무심코 웃어버렸다.


여기라면 반드시, 그녀의 교복에서 학교명을 이끌어낼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ㅡㅡ너무나도 정확히 들어맞았기 때문이었다.




그냥 여고생이, 니지가사키 학원의 여고생이 되자, 고양감이 들었다. 원래라면 아무것도 알 수 없었을 터인 그녀의 정보가 손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니지가사키 학원은 학년별로 리본 색이 다른 듯하여, 노란색...... 크림색이라고 말해야 할까. 그녀의 그 컬러는, 올해 1학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이라는 사실만 알면, 대충 나이도 추측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는 15~16살이고, 유급을 고려해도 17살. 하지만, 그 애의 분위기 상 유급할 거 같지는 않으니까, 15~16살이겠지.


만 16세의 니지가사키 여학생이라는 사실까지, 단숨에 진전되자, 뭔가 원래부터 아는 사이였던 거 같은 느낌도 들었다.


평범하게 대화를 나누거나, 같이 놀거나 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근처에 살고 있어서, 가끔 인사를 나누는 정도의 관계성.


그렇게 생각하자, 좀 더 노력하면 이름을 알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점점 일하는 중에도 그녀를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타인을 향한 것이긴 했지만, 귀여운 미소를 보여줬던 여자애. 가슴에 울려퍼지는 목소리로 말을 걸어준 여자애.


직장에서 날아오는 부조리한 고함소리나 갈굼에는 들어있지 않은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던 단 한 순간의 추억은, 열심히 살자고 생각하게 만들어주니까.


하지만, 추억은 닳아간다. 익숙해진다. 불과 몇 분 정도를 반복하는 건, 불만을 자극하고, 욕구를 크게 만든다. 그녀의 목소리를 또 듣고 싶다. 나를 향한 상냥한 목소리를...... 좀 더, 하고.


말을 걸어서, 이름을 물어볼 수 있을까. 아니, 무리일 것이다. 아냐, 어쩌면...... 하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가로막힌다.


이야깃거리다. 그녀가 경계하지 않고 대답해줄 만한 이야깃거리를 찾아야한다.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건 거의 없다. 전철을 타는 시간, 타는 차량, 평소에 있는 위치, 15~16살이고, 니지가사키 학원의 1학년이라는 사실 정도다.


거기서 이야깃거리를 만든다고 치면, 우선 전철에 대한 건 NG라고 생각한다. 그런 이야기를 했다간, 그녀는 틀림없이 전철의 탑승 위치를 바꾸겠지. 시간마저 바꿀지도 모른다. 그걸 다시 알아내는 건 고생스럽다.


그리고 연령 이야기도 NG일 것이다. 그저 손수건을 주워줬을 뿐인 상대가 연령을 알아맞춘다니 공포 그 자체일 것이고, 그녀를 무섭게 하거나 상처주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저, 좀 더 친해지고 싶다...... 아니, 거기까지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한 번만 더, 목소리를 듣고 싶을 뿐이니까.


그렇다면, 니지가사키 학원에 대한 이야깃거리가 남는다. 인터넷에서 니지가사키 학원으로 검색하면 그 학교에 대해 정보가 이것저것 들어오는데, 일단 눈에 띈 건, SIFㅡㅡ스쿨 아이돌 페스티벌이라는 것이었다.


니지가사키 학원의 스쿨 아이돌 동호회 주최로 열린 그 이벤트는, 여러 학교가 협력하여, 스쿨 아이돌이라는 학생들이 라이브를 선보이는 떠들썩한 것이었다.


이거라면 그녀도 알고 있지 않을까. 하고, 동영상 사이트에 올라온 걸 보려고 한 참에, 눈을 의심했다.


거기에는, 그녀랑 닮은 여자애가 스쿨 아이돌로서 등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돌스러운 의상을 몸에 두르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그녀. 이어폰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는 손수건을 주워줬을 때보다 늠름해서, 귀엽다기보단 멋있게 느껴졌다.


자연스럽게...... 눈물이 흘렀다. 왜 몰랐을까. 왜 관심도 없었을까. 이렇게 간단히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이렇게 간단히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하고 후회한다. 그리고, 예기치 않게 그녀의 이름까지 알 수 있게 되었다.


[니지가사키 학원 스쿨 아이돌 동호회 소속, 오사카 시즈쿠]


그것이 그녀의 본모습이었다. 어쩌면 예명으로 가짜 이름을 쓰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딱히 중요치 않다. 내가 알 수 있는 한의 정보에서, 그녀를 부를 수 있는 요소라면, 본명이 아니라도 상관없었다.


스쿨 아이돌 오사카 시즈쿠쨩이지?


그렇게 말을 걸면, 라이브를 본 한 사람의 팬으로서 봐줄지도 모른다. 그 때처럼 상냥한 목소리로 귀여운 미소로, 대화에 응해줄지도 모른다.




아니, 갑자기 말을 걸어봤자 경계당할 뿐이다. 게다가, 전철 안에서라니, 자칫하다간 치한으로 의심받을 수도 있다. 어느 정도는 그녀에게 말을 걸어도 수상하지 않은 장소와 시간을 생각해야만 한다.


집을 나와 역에 도착하여, 전철을 타고 학교 근처에서 내려, 거기서 학교로. 기본적으로는 이런 행동 패턴이라고 생각한다. 니지가사키 학원이라면, 어딘가에서 환1승할 필요가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시즈쿠쨩을 만날 수 있는 건, 전철을 타고 학교 근처에서 내릴 때까지의 전철 안이라는 극히 짧은 시간 뿐. 그러나, 이 시간에 말을 거는 계획은 리스크가 있으니 바꿔야만 한다. 그렇다면...... 시즈쿠쨩이 전철을 탈 때까지의 대기 시간을 노리고 싶다.


우연히 만났는데, 본 적 있는 얼굴이다. 스쿨 아이돌...... 이라는, 갑작스럽고 허술한 시나리오를 생각한다. 그걸 가다듬는 건 시즈쿠쨩이 타는 역을 알게 되고 나서 해도 늦지 않다.




그 후의 행동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우선은 시즈쿠쨩이 타는 시간의 전철이 어느 역에서 어느 시간부터 움직이는지를 확인한다.


첫차인가 아닌가. 그걸 확인하고, 내가 타는 역 이전의, 사람이 많을 법한 주요 역을 체크한다.


니지가사키 학원으로 향하는 노선에서 가장 먼 건 쿠리하마 역이지만, 평소에 타는 전철은 즈시 역 출발이므로, 그 사이의 역은 시즈쿠쨩이 타는 역에서 제외할 수 있다.


시간대에서 역산하자면 즈시 역에서 출발하는 그 전철을 타려면 첫차를 타도 놓칠 가능성이 있고, 애초에 너무 빨리 일어나야 한다는 걸 생각하면, 해야 할 일은 하나 뿐.


하루 전에 집에 가지 않고 즈시 역으로 향해, 역 근처의 호텔에 묵는다. 이 방법밖에 없다. 그렇게 항상 타는 전철, 항상 타는 차량에 타고, 시즈쿠쨩이 타는 걸 기다린다.


약간 돈은 들겠지만, 일상을 일에만 투자하느라, 그저 쌓이기만 하는 생명의 대가를 쓰기에는 충분한 이유였다.




시즈쿠쨩을 만나고부터, 그저 기계처럼 움직이기만 하던 일상이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아침에 일어나는 우울함도, 직장으로 향하는 숨막힘도, 또 내일이 찾아오는 고통도,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사라져서, 시즈쿠쨩을 생각하는 생활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매일 바뀌는 커다란 리본. 가장 눈에 띄는 그 날과 같은 빨간 리본이 될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진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다. 하지만, 전하지 않는다. 그저 담아두기만 하는 걸로 충분하다고, 평소랑은 다른, 호텔의 이불을 덮으며 생각한다.


내일 시즈쿠쨩이 타는 역을 알게 될까. 알게 되면 바로 말을 걸어야 할까. 아니, 차라리ㅡㅡ


잠에 빠져드는 동안에도, 머릿속은 시즈쿠쨩으로 가득해서. 머리를 쉬게 할 틈도 없었으나, 하지만, 무척이나 행복했다.




평소보다도 조금 더 빨리, 낯선 호텔 방에서 눈을 뜬다. 깨어난 직후지만 의식은 선명해서, 빠르게 준비를 마치고 잽싸게 역으로 향한다.


여기에 온 어젯밤, 길은 확인해뒀지만, 만약의 사태가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내가 타야 할 전철보다 두 타이밍 빠른 전철이 도착할 쯤에, 평소와 같은 차량, 평소와 같은 승차 위치에 맞춰 대기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시즈쿠쨩이 이 근처에 살고 있을 가능성도 있을지도 모른다고, 시선만큼은 제대로 깨워둔다.


전철이 하나 떠나고, 둘 떠나고, 내가 타야 할 전철이 와서 탄다. 하지만 시즈쿠쨩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고, 즈시 역을 떠난다.


그렇다고는 해도, 시즈쿠쨩의 일정에 따라서는 이 이후의 역에서도 시즈쿠쨩을 만나지 못할 가능성은 있고, 아직 후보지에서 제외할 수는 없다. 승차 역을 알아낼 때까지, 반복하자고 생각하던 참에ㅡㅡ


다음 정차 역인 카마쿠라 역에서, 빨간색을 발견했다.


ㅡㅡ그 날도 봤었던, 빨간색을.




잘못 볼 리가 없는 빨간색이, 내가 탄 전철, 같은 차량에 탄다. 사람들 속에 파묻혀 있어도 절대 놓치지 않을 빨간색. 그 모습을 눈으로 따라가며, 파열할 듯한 심장이 들어있는 가슴을 손으로 억누른다.


들뜬 마음이 멈추지 않는다. 반드시 알아내려고 했던 정보니까, 알아낸 거야 당연한 일이지만, 알아냈다는 기쁨은 끝이 없었다.


시즈쿠쨩에 대해 하나 더 알 수 있었다는 사실. 완전한 남남에서 승차 역을 아는 사람으로 조금씩, 하지만 확실히 거리감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 그 기쁨 덕분인지, 말을 걸고 싶다는 욕구에 사로잡힌다.


사람들을 뚫고 지나가, 시즈쿠쨩 옆에 서서, 손수건을 주워줬던 이야기, 학교 이야기, 스쿨 아이돌 이야기......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전부 하고 싶다.


혹시 경계당하더라도 괜찮다. 승차 역을 아는 이상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 언제든지......


아냐, 그렇지 않다. 라고 고개를 젓는다. 말을 걸고 싶은 게 아니다...... 상냥한 목소리를 듣고 싶다. 미소를 보고 싶다. 그러니까 이렇게 신중히 거리를 좁혀나가는 건데, 일시적인 충동에 사로잡혀서야 전부 물거품으로 돌아간다.


시즈쿠쨩이 무서워 하는 표정도, 혐오하는 표정도, 보고 싶지 않았다.




오다이바에 있는 니지가사키 학원의 1학년, 15~16살. 스쿨 아이돌 동호회 소속이고, 동영상 사이트에도 그 모습이 올라와 있는, 가장 가까운 역은 카마쿠라 역이고,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같은 차량을 타는, 오사카 시즈쿠쨩.


그저 손수건을 주워줬을 뿐인 여자애에서, 단숨에 정보가 모여서, 어느샌가 친구밖에 모를 듯한 정보까지 알게 되어버렸다. 잊지 않도록 스마트폰의 메모장에 그 정보를 적고 있으니, 뒤에서 누가 말을 걸었다.


점심 시간인데도 추가적인 업무 의뢰였다. 나 말고도 한가한 사람이 있을 거고, 점심 시간 끝나고 나서 해도 될 텐데, 굳이 점심 시간에 일을 떠넘기고는, 자기는 그만큼 쉬는 시간을 연장하고, 그렇다고 내가 쉬는 시간을 연장하면 갈궈댄다. 맨날 있는 패턴이다.


시즈쿠쨩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기쁨도 점점 식어서, 현실이 뼈에 사무친다. 매일 아침, 시즈쿠쨩을 만날 수 있다는 행복이 있다고 해도, 그 이외의 시간이 괴로웠다.


빨리 내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만을 하고 있다.




23시를 지났을 쯤에, 내가 내려야 할 역을 지나쳐 카마쿠라 역에서 내린다. 아무리 그래도 이 시간에 시즈쿠쨩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없었고, 오히려 이런 시간에 만나게 된다면 그런 위험을 용납하고 있는 부모에게 화가 났을 것이다.


부활동의 일환이라고는 해도, 아이돌 활동을 하고 있는 딸이 심야에 돌아다니게 내버려두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내가 카마쿠라에 온 건, 힐링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간도 시간인지라 어둡고, 정적뿐인 장소지만, 이 어딘가에 시즈쿠쨩이 있다고 생각하니, 공기가 훨씬 맛있게 느껴졌다. 그러고 나서 근처 호텔로 향하자, 수많은 매물 정보가 붙어 있는 부동산을 발견해서 발을 멈췄다.


차라리, 카마쿠라로 이사오는 건 어떨까. 지금 사는 아파트 월세 정도로는, 비슷한 조건의 집을 빌리는 건 어렵겠지만, 돈을 좀 더 얹으면 어떻게든 된다.


월세 보조금이 없는 회사니까, 교통비만 일부 구간 내 돈으로 부담하면 회사에 보고할 필요도 없다...... 정확히는 하고 싶지 않다.


보고해봤자 이사한다고 쉬지 마라, 교통비가 늘어난다니 엿먹이는 속셈이냐, 같은, 괜한 잔소리를 듣게 될 뿐이겠지. 광고를 체크하며 생각한다.


기왕이면ㅡㅡ시즈쿠쨩 집 근처에 살고 싶다. 라고.




주말, 카마쿠라에 매물을 찾으러ㅡㅡ가지는 않았다. 대신에, 오다이바의 어떤 회장에 왔다. 왜냐면, 오늘은 여기서 시즈쿠쨩이 소속된 니지가사키 학원 스쿨 아이돌 동호회의 라이브가 개최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솔로 아이돌로서 활동하고 있는 동호회지만, 가끔씩, 유닛을 짜서 라이브를 하는 경우도 있다. 오늘은 그 유닛 라이브를 하는 날이고, 시즈쿠쨩이 소속된 건, [A・ZU・NA]라는 이름의 유닛.


멤버는 A의 우에하라 아유무, ZU의 시즈쿠쨩, NA의 유우키 세츠나 3명. 시즈쿠쨩을 제외한 두 사람은 한 학년 높은 2학년이라서, 위축되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은 쓸데없는 것이었다. 라이브에 나온 세 사람은 무척이나 친한 사이처럼 보였다.


"오늘은 와줘서 고마워~"


핑크를 기조로 삼은 의상의 여자애가 밝은 목소리로 회장에 있는 팬들에게 인사를 건네자, 환성이 터지고, 거기에 대답하듯 세 사람이 손을 흔든다.


시즈쿠쨩은 회장을 둘러보고는,


"또 와주신 분들도, 처음 와주신 분들도, 오늘은 부디, 저희들의 스테이지를 즐겨주세요!"


아이돌이 팬에게 향하는, 상냥한 목소리로 모두에게 그렇게 말했다. 모두를 보고, 모두를 향하고 있다. 그걸 알고 있는데도, 아무래도, 시즈쿠쨩과 눈이 마주친 듯한 기분이 든다. 그 날, 서로 바라봤던 순간이, 뇌리에 새겨져 있기 때문일까.


"그럼ㅡㅡA・ZU・NA 랜드...... 개장합니다!"


파란색이 메인인 의상의 여자애가 기운차게 선언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라이브가 시작되었다.




시즈쿠쨩이 소속된 A・ZU・NA의 라이브에 사용된 곡은 밝고 선명한 것도 있는가 하면, 조금 어두운, 놀이공원으로 따지자면 호러 계열의 어트랙션을 방불케 만드는 곡조도 있거나, 콜을 의식한 건지, 가끔 그걸 요구하는 듯한 동작을 넣는 부분이 있거나 해서, 나잇값도 못하고 즐길 수 있었다.


세 사람이 사라지고, 회장의 열기도 점점 식어들고 있을 무렵...... 문득, 주위를 둘러본다. 주위에는 나보다도 훨씬 어린 연령대의 사람들이나, 여자애들이 많다.


친구랑 함께 있거나, 애인을 데려온 사람도 많은 와중에, 맨날 입는 낡은 정장은 아니긴 하지만, 분위기에 전혀 안 어울리는 차림으로 혼자 서있어서 그런지, 소외감을 느껴서 잽싸게 그 장소에서 떠난다.


시즈쿠쨩의 라이브는 귀여웠다. 즐거웠다. 꿈만 같았다. 하지만, 그 장소에 내가 있어서는 안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즐거웠기에, 밝고, 떠들썩하고, 그야말로 테마 파크 같은 분위기에, 나는 너무나도 안 어울린다고 자각하게 된다.


잽싸게 역으로 향하는 와중에, 가게 앞에 있는 팝업 광고를 발견하고 발을 멈춘다. 평소에는 갈 일이 없을 듯한 그 가게에선, 스쿨 아이돌 관련의 품목을 팔고 있는 듯해서, 무시할 수가 없었다.


니지가사키 학원이 있는 오다이바, 거기에 있는 가게의, 스쿨 아이돌 관련의 상품. 그렇다면, 어쩌면 시즈쿠쨩도 뭔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게에 들어가서, 안내에 따라 나아가 스쿨 아이돌 관련 상품이 있는 코너에 도착한다. 토오 학원이나 시노노메 학원 같은 학교의 스쿨 아이돌 관련 상품이 놓여있는 한 구석에, 그것이 놓여져 있었다.




니지가사키 학원의 스쿨 아이돌 아크릴 키홀더나 캔뱃지, 포스트 카드 같은 것들이 있었고, 시즈쿠쨩의 것도 틀림없이 진열되어 있었다.


꿈은 아닌가 고민하고, 내가 사도 되는 걸까 생각하고, 하지만, 결국엔 시즈쿠쨩과 관련된 것은 전부 샀다. 캔뱃지도, 포스트 카드도, 아크릴 키홀더도, 전부.


A・ZU・NA로서 활동하기 시작한 건 최근인지, 아직 유닛 관련은 없었고, 일단 그 정도만 구매해서 1만엔조차 쓰지 않은 채 끝났다.


시즈쿠쨩의 굿즈를, 고작 그 정도의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문득 신경 쓰여서ㅡㅡCD는 없는지, 계산대를 담당하는 점원에게 물어보았다.


점원에 의하면, 그런 건 니지가사키 학원 뿐만 아니라 어디서도 판매하지 않는 듯하여,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는 게 전부 아닐까요 라는 듯했다.


어째서, 스쿨 아이돌로서 라이브를 하고, 이런 굿즈까지 판매하고 있는데, 그 곡을 들을 수는 없는 걸까. 가능하다면 CD를 사고 싶고, CD에 직필 싸인을 받고 싶다.


내 어린 시절, 싸인 CD를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보여줬던 것을 떠올려서, 그런 생각을 한다.


그렇다보니, 굿즈는 판매하지만 CD는 판매하지 않는다, 지금은 그런 시대인 걸까 하고, 좀 쓸쓸한 기분을 느끼며 가게에서 나왔다.


하늘을 보니 저녁노을이 펼쳐져 있어서, 이런 하늘 아래에서 시즈쿠쨩과 함께 걷는다면 행복하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라이브 회장에서 시즈쿠쨩을 기다리면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고 이제와서 후회하긴 했으나, 일단은 포기하고, 집에 돌아가기로 했다.




시즈쿠쨩의 굿즈를 가방에 달고 있으면, 시즈쿠쨩은 눈치채줄까. 눈치채면 어떤 반응을 해줄까.


기뻐해줄까. 부끄러워서 안 보려고 할까, 못 본 척을 할까...... 아니면, 말을 걸어줄까.


그렇게 생각하며, 시즈쿠쨩의 아크릴 키홀더를 집에 있는 PC 옆에 세워둔다.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었다.


시즈쿠쨩의 굿즈를 달고 다니는 것 자체에는 아무 문제도 없지만, 성인 남성이 자기 굿즈를 가지고 있으면, 어쩌면 시즈쿠쨩은 무서워 할지도 모르니까.




평소와 같은 시간, 같은 전철. 거기에 타면, 시즈쿠쨩이 기다리고 있다. 스쿨 아이돌으로서 얼굴을 드러낸 채 활동하는데도, 주위 사람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건지, 아니면 나처럼 조용히 지켜보는 건지, 누가 말을 거는 일은 없는 듯했다.


저렇게 귀여운데, 저렇게 좋은 목소리인데. 안 팔리는 아이돌 같은 상태인 건 뭔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게, 안타깝다.


시즈쿠쨩에게 말을 걸고 싶다. 동영상 봤어. 스쿨 아이돌 라이브 대단했어. 귀여웠어. 좋은 곡이었어.


ㅡㅡ좋아해.


정신을 차린다.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갑자기 성인 남성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들으면 시즈쿠쨩은 무섭기만 할 테니까...... 차라리 어른이 아니었다면, 시즈쿠쨩도 기뻐해줬을까.


오늘도 몰래, 전철에 흔들리는 시즈쿠쨩을 지켜보면서 생각한다.


심신을 깎아내는 업무를 끝내고, 집에 돌아가는 23시의 전철 안. 당연하게도 사람은 적고, 아무데나 앉을 수 있지만, 아침, 시즈쿠쨩이 있었던 장소의 옆에 서서 눈을 감는다.


눈을 감으면, 시즈쿠쨩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오늘은 이 색깔의 리본이었다거나,


살짝 머리카락이 떠있었다거나, 스커트가 구겨져 있었다거나,


가방에 달고 있는 스트랩이 줄었다거나 늘었다거나.


어제는 좋은 일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오늘은 즐거운 무언가가 있는 날인 걸까, 기쁨을 숨기지 못하는 표정


그 반대인 건지,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도 있다.


그 모든 게, 선명했다.




시즈쿠쨩 옆에 있고 싶다고, 생각해버린다.


침울할 때는 어떻게든 해주고 싶고, 기쁠 떄는 그걸 공유해줬으면 좋겠다.


그저 전철에서 옆에 서있었을 뿐이 아니라, 한 쪽이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시시한 거라도 좋으니까 잡담을 하고 싶다.


사소한 일로도 즐거운 듯이 웃는 시즈쿠쨩을 보고 싶다. 나 이외의 누군가가 아니라, 나랑 함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어느샌가 카마쿠라 역까지 도착해서, 당황해서 내린다. 아직은 카마쿠라에 이사하지 않았으므로 집은 이전 역이지만, 반대 방향 전철을 타지 않고 역을 나와 호텔로 향한다.


예정에는 없었으나, 마침 잘 됐다고 다음 행동을 취하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카마쿠라 역의 개찰구 너머의 장소에서 스마트폰을 만지며 시즈쿠쨩이 오는 걸 기다린다.


카마쿠라 역에는 서쪽 출구와 동쪽 출구가 있다. 서쪽에는 동전과 동쪽에는 학, 각각 유명한 장소를 나타내고 있어서 원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게 일반적인 듯하다.


익숙하지 않은 입장에서는, 택시나 버스라면 동쪽, 그 외에는 서쪽으로 가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어쨌든, 출구가 두 개 있으니까 한쪽만 지켜보는 걸로는 부족하다.


시즈쿠쨩의 승차 위치를 생각하면, 중앙 계단으로 올라올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서쪽 출구 개찰구에 가깝게 서서 대기한다.


서쪽 출구에는 또 하나, 에노덴이라고 불리는 에노시마 전철선이 있어서, 시즈쿠쨩이 그걸 경유하고 있을 가능성도 고려한 판단이다.




항상 시즈쿠쨩이 전철을 타는 시간이 다가오자, 긴장감이 감돈다. 승차 역이 여기인 건 알고 있으니까 몇 번이고 도전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두근두근한다.


시즈쿠쨩이 오는 방향을 알아내기만 해도, 더욱 시즈쿠쨩에게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친구 이상밖에 모를 듯한 정보, 팬으로서는 알 수 없는 정보.


그것이, 지금 눈 앞까지 와있다는 사실에 참을 수 없이ㅡㅡ가슴이 설렜다.


꾸준히 주위를 둘러보며, 시즈쿠쨩을 찾고 있으려니, 역무원이 수상하다는 듯이 이쪽을 쳐다보는 게 보여서, 일단 전화하는 척을 한다.


아직 도착 안 했는지, 여기가 맞는 건지. 친구에 대한 짜증 같은 걸 부리면서, 시선만큼은 서쪽 출구를 향하고 있다. 최소한 서쪽 출구가 맞는지 아닌지만이라도 확인해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서쪽 출구가 아닌가, 동쪽 출구인가.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향하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ㅡㅡ그것이 보였다.


빨강이 아니라 벚꽃색의 커다란 리본, 묶여있는 다크 브라운의 머리카락과, 니지가사키 학원의 교복. 잘못 볼 리가 없는 시즈쿠쨩이, 에노덴 환1승 출구에서 들어온다.


카마쿠라 역 근처가 아니라, 더 멀리서 오고 있는 건가 하고 놀라면서도 그 뒤를 따라간다.


여기까지는 왔지만, 에노덴까지 쫓아가는 건 시간적으로 어렵지 않나, 하고 조금 고민한다. 돈 문제야 별로 중요하지 않으나, 시간이 부족했다.


익숙한 노선이라면 쉽게 조정할 수 있겠으나, 다른 노선과 환1승이 포함되면 갑자기 어려워진다. 회사에 지각할지도 모른다......


아니지...... 지금까지도 계속, 일 때문에 다른 걸 포기해왔는데, 시즈쿠쨩까지 포기하면 무엇을 위해 사는 건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


시즈쿠쨩과 좀 더 가까워지고 싶다. 시즈쿠쨩을 좀 더 알고 싶다. 그걸 포기한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평소에는 카마쿠라 역에서 좀 더 지난 역에서 타니까, 시즈쿠쨩을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는 게 최선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카마쿠라 역에서 같이 전철을 타니까, 바로 앞에 시즈쿠쨩이 있다.


밸런스 좋은 이목구비, 깔끔하게 뻗은 머리카락 한 가닥 한 가닥, 우아한 손목과, 가느다란 손가락, 정돈된 손톱, 팔보다도 매혹적으로 부풀어있는 다리.


전부 제대로 볼 수 있었고ㅡㅡ꽃 향기가 난다. 향수처럼 강하지는 않고, 지한제 같은 자극도 없다. 부드러운 향기.


혼잡한 탓인지, 가끔씩, 덥다는 듯이 손부채질을 하고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곤 했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시선이 떨어지지 않는다. 사람들 사이에 파묻힌 나와는 달리, 시즈쿠쨩은 섞이지 않는다.


잘라낸 것처럼 선명하고...... 누구도 발을 들일 수 없는 곳에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닿고 싶다. 옆에 있고 싶다. 그 눈을 내게 향해줬으면 좋겠다. 목소리를 들려줬으면 좋겠다. 그런 욕구가 끓어올라, 괜히 더 포기할 수 없는 마음이 강해졌다.




시즈쿠쨩을 향한 마음이 강해져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일을 빨리 끝내고, 정시 이후의 잔업을 거절하고, 손가락질을 무시하고는 재빠르게 카마쿠라 역으로 향한다.


카마쿠라 역 주위의 노선표와 시간표, 그리고, 에노덴의 노선도와 시간표. 그것들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시즈쿠쨩은 니지가사키 학원에 다니기 위해, 카마쿠라에서 요코스카선을 타고, 신바시 근처에서 환1승하고 있을 터.


그리고 그 카마쿠라 역에 가기 위해서 에노덴을 이용하고 있다. 에노덴...... 에노시마 전철선의 주요 역은, 카마쿠라 역, 에노시마 역, 후지사와 역 정도려나.


중요한 건 카마쿠라 역이 아니라, 후지사와 역에서도 토카이도 본선의 우에노 도쿄 라인을 이용하여 니지가사키 학원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약간 차비가 늘어나겠지만, 신경 쓸 정도는 아닌데다, 후지사와 역에서 가는 게 더 빠르다.


그렇다면. 시즈쿠쨩의 집은 후지사와 역에 가는 것보다, 카마쿠라 역으로 가는 게 편하다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거기까지 조사한 후, 바로 에노덴을 타고 코시고에 역으로 향한다. 좀만 더 조사하면 시즈쿠쨩의 주소를 알 수 있다.


주소를 알게 되면 이사할 수 있다. 이사하면 시즈쿠쨩과 더 오래 있을 수 있다. 혹시 맨션이나 아파트라면 옆집으로 이사해 인사를 하거나, 일상적인 생활을 알 수 있게 되어 친해질 수 있다.


일어나는 시간, 자는 시간, 식사, 화장실, 입욕...... 그런 평소 생활 습관을 알 수 있게 되면, 그건 가족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생각하니ㅡㅡ어째선지 눈시울이 붉어졌다.




코시고에 역에서 다소 거리는 있지만, 호텔을 발견해서 하룻밤 묵는다. 당분간 계속해서 묵을 가능성도 있으나, 예산에 문제는 없다.


오늘 시즈쿠쨩이 탔을 전철 시간을 역산해서, 내일 타야 할 전철을 정해둔다. 그보다 빨리 코시고에 역에서 대기하고...... 해야 할 일은 카마쿠라 역 때랑 다를 게 없다.


내일 예정을 정한 후에, 메일 서비스의 수신함을 연다. 저번 주말에 시즈쿠쨩의 라이브를 본 후 생긴 습관이었다.




스쿨 아이돌 페스티벌. 통칭, SIF를 주최한 니지가사키 학원은, 참가 학교나 일반 라이브 관람자의 참가 신청 등을 받기 위한 공식 사이트를 개설한 상태다.


시즈쿠쨩의 라이브에 참가해서, 전문점에 굿즈는 있으나 CD는 없다는 상황을 알게 되어, 라이브 곡의 CD나, 라이브의 DVD/BD를 판매할 예정은 없는지에 대한 질문을 보냈으므로, 그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으니까. 라는 이야기는 알겠지만, 역시 실물을 갖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특히, 시즈쿠쨩이 찍혀 있는 표지가 있다면 반드시.


실물은 낡아가기 마련이고, 동영상 사이트의 섬네일도 있다. 라는 말을 듣게 될지도 모르지만, 낡지 않는 매력 또한 있는 법이고, 낡아가는 것으로 좀 더 깊게 느껴지는 매력 또한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과거에 겪은 추억이라는 지표를, 낡은 것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몇몇 광고 메일 사이에, SIF 사이트에서 온 메일이 섞여있는 것을 확인하고, 연다.


[~CD 또는 DVD, BD를 통한 라이브 영상 및 음악 판매에 대해서는, 현재 기획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말과 함께, 링크 페이지에서 각 학교 사이트 또는 동영상 사이트에 접속해주시거나, 라이브에 참가해주세요. 라는 문장이 함께 적혀 있다.


기획하고 있지 않다면, 기획해주지 않으려나. 흔히 말하는 자주 제작스러운 걸 의뢰할 수 없을까.


거절 메일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어서, 생각하고, 묘안을 이끌어내려고 한다.


고등학생은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으니까, 시즈쿠쨩에게 개인적인 라이브를 의뢰해서ㅡㅡ


아니, 그건 어려울 거다, 라고, 금방 기각한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수상하고, 승낙받을 리가 없다.


그러니까 역시...... 시즈쿠쨩과 친해지고 싶다.


좀 더 시즈쿠쨩에 대해 알게 되고, 좀 더 가까워지고...... 시즈쿠쨩이 옆에 있게 해주는 관계가 되고 싶다.




그렇게 해서 드디어, 시즈쿠쨩의 진짜 승차 역을 알게 되는 순간이 왔다.


에노시마 전철선은, 도쿄에서 흔히 보는 8칸이나 10칸 이상의 긴 편성이 아니라, 최대 4칸 편성으로 무척이나 짧다.


기점으로 삼은 코시고에 역은 아예 4칸 편성이면 승하차 할 수 없는 차량이 있을 정도로 철저하다. 여기서 시즈쿠쨩을 기다리는 건 너무나도 간단했다.


타야 할 전철이 오는 것보다 빨리 코시고에 역에 가서, 역앞에서 시간을 떼운다. 그것뿐.


카마쿠라 역이랑은 달리 입구가 하나뿐인 한산한 역이기에, 시즈쿠쨩이 걸어오는 방향조차 알 수 있는 최적의 장소.


그렇다고 그렇게 간단한 이야기는 아니라서, 여유를 가지고 한 타임 전의 전철이 출발하고, 타야 할 전철이 와도 시즈쿠쨩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4칸 편성 중 가운데, 모든 차량을 확인하기 쉬운 장소에 자리를 잡아 다음 역을 기다린다.




코시고에 역을 떠나, 다음은 카마쿠라고등학교앞 역에 정차한다.


시즈쿠쨩이 어째서 여기가 아니라, 일부러 먼 니지가사키 학원을 고른 건진 모르겠지만, 그 이유가 아니었다면 다녔을지도 모르는 학교 근처다.


만약 그랬다면 시즈쿠쨩이랑 만나지도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면, 그 이유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눈물이 나는 걸 참으면서, 시즈쿠쨩이 타지 않는지 신중하게 체크한다. 학생들이 내리거나 타거나 하면서 섞여드는 가운데, 시즈쿠쨩의 모습은 없었다.


요코스카 선도 그랬지만, 오늘 못 만난다고 그 역이 후보에서 제외되는 건 아니다.


시즈쿠쨩의 컨디션 등으로 시간이 바뀔 수도 있으니, 오늘 없었을 뿐이라는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못 만났다는 건 카마쿠라 역에도 없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라서...... 약간 동요하게 된다.


다음은 시치리가하마 역이라는 곳인데, 카마쿠라고등학교앞과 비교하면 내륙부에 있는 역이라 그런지, 코시고에 역에 비해 이용객도 많아보인다.


하지만, 평소에 이용하는 요코스카 선에 비하면 별 거 아니다ㅡㅡ라고, 생각하던 참에, 갑자기...... 호흡이 멈췄다.


아니, 시간이, 소리가, 그 모든 게 멈춘 듯한 감각에 사로잡힌다.


인기척이 많은데도, 마치 청각을 빼앗긴 듯한 정적에 휩싸여, 그리고, 흔들리는 커다란 리본을 눈으로 쫓기 시작하여 간신히 감각이 돌아왔다.


그건 틀림없이 시즈쿠쨩이었다. 니지가사키 학원의 교복, 다크 브라운의 머리카락ㅡㅡ그리고, 나를 봐달라는 듯이 비교적 커다란 리본.


잘못 볼 리가 없는 모습이, 한 칸 안쪽의 차량에 보인다.


시즈쿠쨩의 약간 서민스럽지 않은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역인데, 시즈쿠쨩은 그 곳을 승차 역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사실은 서민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저렴한 맨션 같은데 사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 희망에 들뜨면서도, 시즈쿠쨩이 탄 위치를 기록하고, 역을 기록하고, 절대 잊지 않도록 가슴에 새겨둔다.




옆 차량에 시즈쿠쨩이 있다. 친구랑 함께가 아니라, 혼자서.


다른 학생들도 있고, 그 애들의 대부분은 친구나 부활동 동료 같은 상대가 있는데, 시즈쿠쨩은 외톨이였다.


말을 걸고 싶다. 친구가...... 아니, 우선은 팬과 아이돌의 관계라도 좋다.


최소한, 생판 남이라는 관계성을 벗어나, 시즈쿠쨩이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지금은 불가능하다. 준비가 끝날 때까지는, 시즈쿠쨩 옆에 설 수는 없다고 마음을 다잡고...... 그 마음을 익명인 걸 이용해 SIF의 메일 페이지에 적는다.


시즈쿠쨩의 라이브를 더 보고 싶다, 좀 더 듣고 싶다, 좀 더 많은 의상을 보고 싶다.


수많은 스쿨 아이돌 중에 제일 좋아하고, 진짜 팬이라고 최대한 마음을 담아서 보내ㅡㅡ는 건 어떻게든 참고, 숨을 내뱉어 마음을 진정시켰다.




에노덴 카마쿠라 역에 도착해서, 먼저 내린 시즈쿠쨩의 뒤를 따라간다.


걸을 때마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치마, 하늘하늘 흔들리는 머리, 눈을 사로잡는 차밍 포인트인 리본.


지금까지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시즈쿠쨩의 모습이 잘 보여서, 맞바람이 불어오는 위치 관계 때문인지 평소 같은 부드러운 냄새도 전해져 와서, 매혹당한다.


나도 모르게 발이 빨라져서는, 뒤에 딱 달라붙을 뻔한 것을 어떻게든 참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걷는다.


JR 카마쿠라 역의 정거장에 도착해, 시즈쿠쨩의 오른쪽 뒷편 3명분의 간격을 두고 줄을 선다. 사실은 시즈쿠쨩 옆에 서고 싶다. 뒤에 서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만 더 참는다.


업무의 우울함 따위는 깔끔하게 날려버리고, 시즈쿠쨩, 시즈쿠쨩, 시즈쿠쨩. 머릿속엔 그것뿐이고, 하지만, 행복했다.




평소보다 훨씬 가까운데서 시즈쿠쨩을 지켜본다.


니지가사키 학원의 교복은 이미 익숙해졌지만, 시즈쿠쨩이라 그런지 질리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냄새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에 있으니까, 그 표정은 평소보다 선명하게 보인다.


그 때문인지, 시즈쿠쨩이 스쿨 아이돌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나, 시치리가하마 역에서 에노덴을 타고 온다는 사실.


그 모든 걸 모르는 사람들에게 안쪽으로 떠밀려가는 모습이 무척이나 가슴 아팠고, 괴로워보여서 이를 악 문다.


나라면 절대로 시즈쿠쨩을 지킬 텐데. 짓누르지 않도록, 떠밀지 않도록, 괴롭다고 느끼지 않도록, 배려할 텐데.


아무도 시즈쿠쨩을 배려할 생각이 없다는 점이...... 무척이나 화가 났다.




그 짜증이 남은 채로 하는 일은 힘들었다.


잔업도 하지 않고 돌아간 것에 대한 보복인지, 오전 중에 해라, 하고, 딱히 기한도 없고 긴급성도 없는 업무를 잔뜩 떠넘기고는, 끝내자마자 1분도 안 지나서 다시 하라고 퇴짜.


고작 수 분만에 볼 수 있는 내용도 아니고, 어디를 수정해야 하는지도 불명확. 물어보면 머리를 쓰라고 갈굼당하고, 시간 낭비 같아서 손도 대지 않고 다시 제출해보니, 승인.


일도 하지 않고, 하는 척만 하는 상사에게서 넘어오는 업무를 계속 처리하다보니, 어느샌가 22시.


오늘 중으로 하라던 사람은 이미 퇴근했다니 뭐하자는 걸까, 하는 생각은 하지 않고, 마지막 퇴근 체크를 끝낸 후, 22시 50분에 전철에 탄다.


시치리가하마 역에서 내리고, 근처의 호텔로 향한다.


예정 시간은 한참 지났지만, 미리 연락해둔 덕분에 금새 체크인을 끝내고 방으로 가서, 그대로 쉰다.




다음 날 아침, 이번에도 빠른 시간에 일어나 잽싸게 역으로 향한다. 시즈쿠쨩의 집이 가깝기도 해서, 며칠쯤 묵기 위해, 체크아웃은 하지 않고 서두른다.


시치리가하마 역은 불운하게도 출구가 두 군데 있기 때문에 정거장에서 기다릴 건데...... 시즈쿠쨩이 어디에서 오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여기까지 온 이상 차라리, 기다리는 게 아니라 따라가보는 것도 방법은 아닐까 살짝 고민한다. 일을 쉬었다가는 그 다음 날이 어떻게 될지 무섭지만, 시즈쿠쨩을 알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스토커 행위가 용납되는 걸까. 미행당하고 있다고 느끼면 시즈쿠쨩이 무서워하지 않을까, 불안해하지 않을까.


눈치챘을 경우, 전부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겁이 나서...... 시즈쿠쨩이 오는 방향을 확인하는 일에 집중했다.




어제, 안쪽으로 밀려들어갔던 시즈쿠쨩은, 오늘은 타자마자 바로 연결부 쪽으로 이동해갔다.


그 뒤를 따라, 시즈쿠쨩 옆에 선다. 대화는 평범한 일이 아니지만, 옆에 선다, 뒤에 선다. 그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새삼스레 생각한다.


너무 의식한 나머지, 해선 안 된다, 할 수 없다고 착각했을 뿐이지.


시즈쿠쨩의 반대편에서 오는 압력에는 하반신에 힘을 실어 어떻게든 대항하여, 시즈쿠쨩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배려한다.


시즈쿠쨩이 쾌적하게 지낼 수 있다면야, 한 사람 두 사람쯤이야 못타도 딱히 상관없다고 생각했기 떄문이다.


애초에 억지로 타려고 하니까 전철이 지연되는 거다. 다음에 타라. 하고, 시즈쿠쨩을 위한 공간은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


시즈쿠쨩이 곁에 있으니까, 향기가 한 층 더 강하게 느껴진다. 아주 살짝 어깨가 닿기만 해도 두근두근해서, 열이 오른다.


시즈쿠쨩은 분명 모르겠지. 동작 하나, 목소리 하나. 고작 그것만으로도 힐링받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도, 그 향기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도.


시즈쿠쨩은 분명, 벌써 잊어버렸겠지. 손수건을 주워줬던 상대가 이렇게나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아직 대화는 할 수 없지만, 옆에 서있다. 그것만으로도 막연히 달성감 같은 게 퍼져나가는 걸 느낀다.




시즈쿠쨩은, 전철 안에서는 딱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지도 않고 음악인가 뭔가를 듣고 있다.


거리가 있어서 안 들리는 거야 당연하겠지만, 바로 옆에 있는데도 소리가 전혀 새지 않아서, 시즈쿠쨩이 듣고 있는 게 뭔지 알 수 없다.


지쳐있는데 괜히 소리가 새는 사람이 있으면 불쾌하고, 시즈쿠쨩이 소리가 새지 않도록 듣고 있는 건 성실해서 좋은 거지만, 그래도, 유감이었다.


시즈쿠쨩이 자주 듣는 곡을 알고 싶다.


다음 라이브를 위해 자신의 곡을 듣고 있는 걸까. 동호회의 다른 애의 곡을 듣고 있는 걸까. 아니면...... 다음 신곡을 듣고 있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하고, 신경 쓰인다.




스마트폰도, 시즈쿠쨩은 들여다봤으면 좋겠다.


물론, 들여다보지 않고 바른 자세를 하고 있는 건 시즈쿠쨩답고, 그런 시즈쿠쨩이 역시나, 좋다.


하지만, 시즈쿠쨩을 더 알게 될 기회를 잃고 있는 건 참을 수 없이 아깝다.


시즈쿠쨩의 키와 내 키, 그 위치 관계를 따져보면 옆이나 뒤에서 시즈쿠쨩의 스마트폰 화면을 볼 수 있다.


잠금 화면의 비밀번호를 알아낼 수 있으면, 어쩌면 생일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걸로 축하하고 싶다. 해주고 싶다.


교우 관계도 파악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좀 더 깊게 시즈쿠쨩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




시즈쿠쨩을 알고 싶다. 좀 더 많이, 좀 더 깊게. 만약 이루어진다면 시즈쿠쨩의 전부를 알고 싶다.


시즈쿠쨩은, 그런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단 한 번, 친절한 마음으로 다가간 상대를, 이렇게나 빠져들게 만들 정도의 매력이 자신에게 있다는 걸, 시즈쿠쨩은 이해하고 있을까.


전철의 흔들림으로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향기가 퍼져나간다. 곁눈질로 보니, 흔들린 순간에 시즈쿠쨩의 몸이 가볍게 떠오르거나 해서...... 귀여움이 늘어난다.


어른도 흔들려서 당황하는 경우가 있지만, 시즈쿠쨩은 더 작은 체구다보니 영향이 큰 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ㅡㅡ덜컹, 하고 강한 흔들림이 덮쳐온다.


"꺅!"


손잡이를 잡고 있어도 자세가 무너지는 흔들림에 귀여운 비명을 지르나 싶었더니, 가벼운 힘으로 내 발을 밟았다.


"죄송합니다, 미안해요......"


시즈쿠쨩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딘가를 향한 게 아니라, 틀림없이 날 향한 목소리였다. 즉시, 괜찮아, 라고 대답해주자,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라고 시즈쿠쨩은 고개를 숙인 후, 살짝 거리를 둔다.


그런 마음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시즈쿠쨩에게 밟힌 것이 가슴에 울려퍼지고 만다. 시즈쿠쨩이라면 얼마든지 좋다. 오히려 좀 더 밟아줘도 괜찮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또 시즈쿠쨩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게 기뻐서, 고양감에 휩싸였다.




빠르게 업무를 끝내고, 퇴근 후에 할 일이 넘어오기 전에 퇴근한다. 시즈쿠쨩에게 짓밟힌 건 의외로 건강에 좋았던 모양이라, 업무가 너무나도 술술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망설임 없이 시치리가하마 역으로 향해서, 호텔에서 갈아입고, 바로 다시 외출한다. 시치리가하마 역으로 돌아가, 시즈쿠쨩이 걸어온 길을 따라, 가로등이 켜져있는 밤거리를 걷는다.


어디에 갈림길이 있고, 막다른 길이 있는지. 막다른 길이 있으면, 그 주위의 명패를 체크하고 후보에서 제외한다.


요 며칠 봐온 시즈쿠쨩의 체격과 보폭, 그리고 평균적인 걷는 속도를 고려하며, 1시간 정도 산책하고, 여러 길을 후보에서 제외했다.


그러고 나서, 시즈쿠쨩이 지나갈 수도 있는 대기 장소를 정해둔다.




다음 날 아침, 여유를 두고 호텔에서 출발해, 미리 정해둔 체크 포인트에서 대기한다.


아무것도 없는 장소에서 멀뚱히 서있으면 수상하기 짝이 없으니, 자판기 같은 게 있는 장소를 대기 위치로 삼아, 사람이 오면 슬쩍 확인한다.


이 길이 아닐 가능성도 있으니까, 늘 타는 전철을 놓치지 않을 타이밍을 제한 시간으로 삼아 시즈쿠쨩을 기다린다.


빨리 와주지 않으려나 기대하며 기다렸으나, 아슬아슬한 타이밍까지 기다려봐도 시즈쿠쨩이 모습을 나타내는 일은 없었고, 뛰어서 역으로 향한다.


항상 타는 전철이 도착할 쯤에 역에 와보니, 시즈쿠쨩의 모습이 이미 있었기에, 완전히 잘못 짚었구나, 하고, 후보를 제외하면서 시즈쿠쨩의 옆 차량에 탔다.




요코스카 선에서는, 어제랑 마찬가지로 시즈쿠쨩의 뒤를 따라, 차량 내에서는 옆이나 뒤가 될 수 있도록 적절히 위치를 잡았다.


처음엔 거리가 있어도 괜찮았는데, 어제 시즈쿠쨩 옆을 경험하고 나니, 이제 양보하기 싫어지고 말았다.


시즈쿠쨩의 몸을 아무렇지도 않게 떠미는 사람도 있고, 짓누르는 사람도 있다. 그런 일을 당하는 시즈쿠쨩이 불쌍하지 않나. 그렇게도 무관심하게 굴 거면 나에게 양보해주길 바란다.


게다가, 시즈쿠쨩의 향기를 그런 사람들에게 빼앗긴다고 생각하니 참을 수가 없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스마트폰을 훔쳐보거나, 치한 행위를 하려는 사람이 없을 거라는 보장도 없다. 아니, 시즈쿠쨩이라면,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내가 옆에 있어야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오늘도 어거지로 승차하려는 압력 때문에 팔도 다리도 고통스럽지만, 시즈쿠쨩을 지켜주고 있으니까 그런 거라고 생각하면, 참을 수 있다.


그 고통이, 지금 시즈쿠쨩 옆에 있다는 사실을 현실로 만들어주니까, 오히려 감사마저 느껴질 지경이다.


멀리서 지켜볼 때는, 사람들에게 짓눌려서, 숨쉬기도 힘들어보였던 시즈쿠쨩은 어제도 오늘도 편안하게 음악을 듣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눈을 감고, 음악을 듣고 있는 시즈쿠쨩. 소리가 새지도 않고, 흥얼거리지도 않는, 조용하고 가련한 시즈쿠쨩의 모습은, 어떻게든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눈을 감고 있으면 위험해, 하고, 전철이 흔들렸을 때 잡아주거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욕구를 떨쳐낸다.


그런 행동은, 하다못해 대화를 하는 사이가 되고 난 후에 해야 한다. 지금은 일단, 시즈쿠쨩의 향기를 느끼는 정도만 해둔다.




정시 퇴근 할 수 있는 건, 일을 빨리 마무리하고 집에 갈 준비를 하니까 그런 거 아니냐. 일은 제대로 하고 퇴근해야 하는 거다.


그런 흔한 잔소리 수준의 갈굼 때문에 오전을 허비하고, 업무 태만이라며 점심 시간 안에 시말서를 제출하라는 소리를 들었다.


업무를 정시에 문제 없이 끝내고, 딱 좋은 상태로 정시 퇴근하는 것도 용납되지 않는 건가 싶지만, 내가 끝났다고 주위 사람들도 끝났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우선 퇴근해도 되는지 물어보라고 한다.


그렇게, 최소한 1시간은 잔업해야 하는 거라고. 잔업 수당이 포함되어 있는 것도 아닌데.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면서, 시즈쿠쨩과 비교하면 회사 내에서의 관계따윈 쓰레기나 마찬가지라고, 내심 토로한다.


시즈쿠쨩도, 몇 년 있으면 이런 세계에 들어오는 거라고 생각하니, 불안해진다.


시즈쿠쨩은 갑질뿐만 아니라, 폭언이나 성희롱 같은 피해를 입을지도 모른다.


원래 스쿨 아이돌이었다는 걸 아는 상사가 있거나 하면...... 상상하니,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이런 사회에 시즈쿠쨩이 들어오는 걸, 그저 보기만 해도 되는 걸까. 정말, 괜찮은 걸까.




잔업을 강요당하면서도, 어찌어찌 날짜가 바뀌기 전에 호텔로 돌아온다. 연박 일정으로 잡혀 있어서 체크인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한도라는 게 있으니까.


한편으로 시즈쿠쨩의 주소를 알아내기 전에는 어디로 이사해야 하는지 정할 수 없기도 하다. 어차피 이사할 거라면 시즈쿠쨩 집 근처로 하고 싶고, 엉뚱한 곳으로 이사했다가는 마음이 꺾일지도 모른다.


시즈쿠쨩과 함께 역으로 향해서, 전철을 기다리고, 환1승하고, 그리고ㅡㅡ


전철에서 내리는 나에게, 시즈쿠쨩이 "다녀올게요"나 "다녀오세요"하고 손을 흔들어준다. 그런 날이, 언젠가는......


하지만, 괜찮은 걸까. 시즈쿠쨩을 지켜주지 않아도. 그런 광경은 확실히 매력적이지만, 가장 중요한 건 시즈쿠쨩이 행복해지는 것이다.


시즈쿠쨩이 행복해지기에는, 사회는 너무나도 썩어있다. 시즈쿠쨩을 괴롭하고, 상처입히고, 망가뜨리려고 한다.


그런 건 용납할 수 없다. 그러니까, 시즈쿠쨩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라도...... 훨씬, 훨씬, 깊게, 시즈쿠쨩에 대해 알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ㅡㅡㅡㅡㅡ



번역 오랜만에 하는데 글자수 때문에 짤리고 환1승 열1차 필터링 걸리고 정신 나갈 것 같네

ㅇㅇ 선개추 총 몇편정도 됨? 2022.12.16 10:09:25
ㅇㅇ 글자수 제한 때문에 올려봐야 알 수 있을듯; 분량은 길긴 한데 술술 읽힘 58.224 2022.12.16 10:12:19
호시조라당 굉장할 정도로 잘 읽히네 이거 2022.12.16 10:21:04
ㅇㅇ 원래 SS스레는 대사 형식 아니면 아무도 안 읽으려고 하는데 이건 필력도 좋고 읽기 쉬워서 그런지 보는 사람 많았음 58.224 2022.12.16 10:22:22
크레이키스 믿고 봐도 괜찮겠지..? 주인공 뭔가 ㅈㄴ 키모이한데 2022.12.16 10:29:18
ㅇㅇ 초반만 넘어가면 괜찮아짐 주인공 말고 시즈쿠를 믿으면 됨 58.224 2022.12.16 10:2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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