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오오키나 리본 센세
거북이는 바다에서 느릿하게 몸을 이끌고 나와 주변을 살핀다. 둔중한 발걸음은 조심스럽고도 조심스럽다. 젖은 옷자락 아래로 소금기 있는 물이 뚝뚝 떨어져 모래사장을 적신다.
"휴우... 일단 육지로 올라오긴 했지만, 토끼란 생물은 대체 어디 있는 걸까요."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지만 보이는 것은 풀숲과 길 뿐인지라, 거북이는 일단 길을 따라 되는 대로 걸어가기로 한다.
혹여 토끼를 놓칠까 싶어 풀숲 곳곳을 하나하나 주의 깊게 관찰한다. 그런 거북이를 나무에 기대어 귀엽게 바라보는 이가 한 명 있었으니, 그녀가 바로 토끼였다.
"아가씨, 혹시 누구 찾고 있어?"
거북이를 부르는 아리따운 여인은, 키 크고 날래 보이는 용모에, 쫑긋하고 길다란 귀의 소유자. 거북이는 알아차렸다. 용궁에서 그림으로만 생김새를 접하기는 했어도 토끼임이 틀림없으리라.
거북이는 실물의 토끼를 목격하고 한순간 굳었으나, 짐짓 모른 체 하며 확인삼아 토끼에게 질문했다.
"저는 용궁에서 온 거북이라고 해요. 용궁으로 토끼를 모셔 오라고 하는데, 그 토끼란 생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통 알 수가 있어야죠, 하하..."
"오, 그거 잘 됐네! 왜냐하면, 내가 바로 토끼니까."
성큼 다가온 토끼는 거북이의 한쪽 팔목을 잡고, 그녀 쪽으로 슬쩍 끌어당긴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거북이는 이미 토끼의 품 속으로 들어와 있다.
"그래서, 용궁에선 날 무슨 일로 부르는 건데?"
"아......"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는 것은 간을 앗아가기 위해서라곤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저 거북이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기 때문인가. 거북이로서는 스스로의 상태를 알 길이 없었다.
"뭐 좋아, 따라가 줄게. 그치만, 거북이 너에 대해서 좀 들어보고 싶은데♪"
토끼가 턱을 잡아 끌어당기니, 이대로 용궁으로 데려갈 일만 남았던 거북이로서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운데다, 이 자세에선 토끼의 미모가 더 잘 보이게 된다.
거북이는 이것이 혹여 상황을 빠져나가려는 계책이 아닌가 생각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선 무력으로 제압해 간만을 빼 와도 좋다. 그것이 토끼가 들은 명령이었다.
그러나 허리춤의 칼에 손이 가지 않는다. 아니, 애시당초 간을 빼낼 생각이 이미 사라져 있었다. 아아, 분명 토끼를 처음 보고 굳어버린 것은 이 토끼의 미모에 반했기 때문이었겠지. 거북이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으니.
"헤에, 용궁에서 그런 일도 있었구나?"
"신기하신 건가요?"
"아니, 육지 동물들하고 다를 거 없구나 싶어서."
어느덧 바다로 향하던 발걸음마저 멈추고, 이미 풀밭에 누워서 해질녘까지 여유롭게 이야기하고 있다. 평소에는 그렇게나 근면한 거북이였지만 이번만큼은 속으로, 하루가 걸려도 용궁에서는 그러려니 하지 않을까, 한다.
"아, 맞다... 그래서 용궁에서 날 왜 부른다고?"
"그게...용왕님께서 병에 걸렸거든요."
"병? 좀만 더 자세히 얘기해 봐."
토끼의 눈이 솔깃하다는 듯 커진다. 거기다 사뭇 진지한 것이, 섣불리 거짓으로 꾸몄다간 분명 들통이 날 것이었다. 더군다나 근면한 성품에 능숙히 거짓을 고할 수 있을 리도 없거니와.
"우, 우우우..."
"어, 어라? 울 정도로 심각한 걸까...?"
그런 거북이는 훌쩍이며 낱낱이 진실을 고해야만 했다.
"흑... 흐윽... 실은, 용궁에서의 명령이 있었어요. 토끼의 간을 가져오라고..."
"어? 간?"
"잘은 모르지만, 무기력하고 몸에 힘이 없다고도 하고, 열이 나기도 하고, 눈에 초점이 흐리고..."
토끼는 몸을 일으켜 하늘 저만치를 바라보고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얘기만으로는 정보가 부족할지도 모르지만, 그거라면 굳이 토끼의 간을 사용하지 않아도 괜찮아. 달에 의술에 정통한 친구가 살고 있어서 알고 있어."
"...네?"
달이라. 분명 하늘에 떠 있는 동그랗고 노란 물체였지.
"달에서 매일 절구로 찧고 있는 그거, 전부 다 약재거든."
"자, 잘은 모르겠지만, 토끼 씨를 죽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인가요?"
"물론."
거북이는 토끼를 와락, 껴안았다.
대안이 있다는 사실을 듣고 잠시 그친 눈물이, 안도감에 마저 쏟아져나왔다.
"다행이다...!"
"의학, 이라는 거지."
토끼는 거북이의 머리를 슬쩍 감싸안아, 품에 안고 거북이의 단단한 등을 두드렸다.
거북이는 육지의 밤풍경을 토끼의 무릎 위에 머리를 베고 감상했다. 용궁에서 보기에는 물결에 흔들려 흐릿하던 달빛이, 육지에서는 아주 동그랗고 선명했다.
"달이란 건 예쁘네요."
"그거, 원래 육지에서 무슨 뜻인지 알아?"
무슨 뜻이냐고 되물으려던 찰나, 토끼가 말없이 거북이에게 입을 맞췄다. 거북이는 순간 놀랐지만, 이내 눈을 감고 생소한 감촉을 받아들인다. 거북이는 토끼의 소매자락을 붙잡고 이 순간을 천천히 음미한다.
새로운 사랑이 탄생하는 순간을, 오직 달빛만이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시즈아이는 갓컾입니다
반박시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