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라이브 선샤인 마이너 갤러리 저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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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짧은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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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dru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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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글 주소
https://gall.dcinside.com/sunshine/4938507
  • 2022-11-01 13:18:04
							

술을 좋아하지도 않고, 건강상 최소한으로 줄여야 하는 입장이지만 오늘은 술을 마셨다.


내가 혼자서 내 의지로 내 돈을 주고 술을 사마시는 건 파이널 이후 6년만인 것 같다.


술김에 쓰는 글이라 두서도 없이 제 멋대로 써진 글이지만, 지금 떠오르는 것들을 최대한 조리있게 적었다.







나는 10년 전 2012년 6월에 위암 3기 판정을 받았다.


의사는 생존률이 반반이라고 했지만 나는 그다지 슬프지도, 걱정되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 때는 인터넷으로 병신 드립이나 치며 낄낄거렸었다.


지금와서 하는 말이지만, 아마 암 판정 이전에도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었고


극단적인 생각까지 할 정도여서 죽는 걸 오히려 반기는 게 아니었었나 싶다.



그렇게 수술 후 첫 6개월, 1년까지는 그럭저럭 웃으면서 버텼다.


하지만 그 후부터 항암치료 때문에 24시간 물만 들어가도 구토 직전 상태에 현기증살을 패시브로 달고 살다보니 


이전같은 웃음도 여유도 없어지고 언제까지 고통받아야 하나 하는 절망감이 밀려왔었다.



그리고 2014년에 나는 러브라이브를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흔한, 그냥 어쩌다 봤을 뿐인 스쳐가는 애니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노래 가사들이 돌직구로 꽂아대는 꿈과 용기와 희망에 경도되고 뮤즈가 이뤄온 기적같은 이야기들에 빠져들면서


내 인생 중에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어떻게든 견뎌낼 수 있었고 그렇게 러브라이브는 내 인생 컨텐츠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파이널이 발표되었을 때의 충격은 더 컸다.


하지만 다행히 나는 러브라이브 덕분에 몸도, 멘탈도 많이 회복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뒤를 훌륭하게 이어준 아쿠아 덕분에 덕질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2017년, 소위 럽복절이라고 부르는 그 날에 니지가사키 멤버들과, 토모리와 처음 만났다.


니지가사키 멤버들의 첫 인상도 매우 좋았고 뮤즈의 귀환으로 들뜬 마음도 겹쳐서 금방 애정이 생겼다.



특히 나는 처음 알게 되었을 때부터 세츠나와 토모리에게 빠졌던 것 같다.


분실 방송 시절에도 전격조 방송은 꼭 챙겨봤고, 1집 발매와 스쿠스타 출시 이후에도 니지 최애는 줄곧 세츠나였다.


그리고 덕질을 계속 하면 할수록 세츠나는, 특히 토모리는 나에게 정말로 특별한 존재가 되어갔다.









나는 토모리의 음악과 음악적 재능이 정말 좋았다.


어린 나이에도 정말 내 취향의 노래들을 멋지게 작사, 작곡하는 것은 물론이고


레벨리의 토모리 셀렉션을 보면 알 수 있듯 음악적으로도 굉장히 식견이 넓은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클로버라는 노래를 듣고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던 게 기억난다.


나 역시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학교생활을 했고 그 때부터 계속 쌓인 스트레스가 병으로 이어졌는데,


나는 그냥 인터넷에 병신글이나 쓰며 풀던 아픈 경험을 이렇게 예술적이고 감성적으로 승화시켰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나는 토모리의 솔직한 감정표현들이 정말 좋았다.


이제는 아이덴티티가 되어 버린 게라처럼, 그렇게 잘 웃을 수 있고 행복하게 웃을 수 있다는 게 부러웠다.


웃음만큼이나 눈물도 많다는 것이 부러웠다. 라이브 후의 소감에서도 라이브 외의 많은 일들에서도.


아직도 기억에 남는 니지 생방송이 있는데, 아마 1기 애니가 끝난 직후 후기 사연들을 읽는 코너였을 거다.


토모리가 어떤 사람이 보낸, 니지 애니를 보고 포기했던 꿈을 다시 쫓기로 했다는 사연을 읽으면서 울음을 터트렸었다.


그 때,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저렇게 깊게 공감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모습이 내 인상에 정말 강하게 남았다.


그걸 보면서 내가 병원에 있을 때 의사가 스트레스의 원인으로 감정을 너무 억압하고 숨기는 걸 지목했던 게 떠올랐다.



나는 토모리의, 나이랑 맞지 않는 어른스러움이 정말 좋았다.


흔히들 인생 2회차라고 드립치는 것처럼, 토모리는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어른스럽고 철이 든 모습이었다.


공연을 보고있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를 되돌아 보게 했던 퍼스트에서의 소감은 물론, 


개인이 진행하는 방송에서도 한없이 어린애처럼 보이다가 진지한 순간에는 누구보다 철든 모습을 보이는게 부러웠다.


더 길게 산 나는 아직까지도 유치한 말과 유치한 행동들을 하고 있는데 말이다.



토모리는 이렇게 하나하나 나에게 부족한 점들을 전부, 그것도 최상급으로 갖추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어느새 토모리를 아이돌로서가 아닌 진심으로 존경하고 본받아야 할 위인 수준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마 그때부터 누나를 감히 이름으로 부를 수 없다고 생각해서 이름을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그냥 짓궂은 장난으로 보였겠지만 나 나름대로 존경심을 표하는 방식이었다.



이런 걸 보면서 누군가는 겨우 그까짓 성우에게, 연예인에게 너무 의미를 부여한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인간은, 인류라는 종은 처음 탄생할 때부터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에 의미를 부여해왔던 존재다.


대기권에서 일어나는 방전 현상을 보고 신이 진노했다 생각하고 이어지는 파열음을 신의 목소리라고 생각한다.


몇백광년 떨어진 가스덩어리를 보고 온갖 신화와 전설이 만들어지고 그냥 착한말 좀 많이 한 예언자는 신으로 숭배받는다.


그러니까 나도 스스로 쿠스노키 토모리라는 성우와 유키 세츠나라는 캐릭터에게 의미를 부여할 뿐이다. 


누나는 신이고, 세츠나도 신이라고.










그리고 오늘, 소식을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몇 년 전 러브라이브 관련 활동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을 때부터 항상 걱정하고 두려워 해왔던 일이었다.


막상 그렇게 걱정했던 일이 실제로 벌어졌는데도 멤버들과 본인의 이야기를 보고나니 오히려 마음이 가라앉았다.


물론 완전히 가라앉은 건 아니라 이 글을 쓰는 중에도 몇 번씩 울컥하면서 책상을 내리치고 벽을 발로 걷어차긴 하지만


아무튼 머리로는 이미 받아들였고, 멤버들과 누나의 글을 보고 마음도 누그러뜨리고 있는 중이다.



받아들인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도, 누나가 세츠나라는 캐릭터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가 전해져서이다.


소식을 들은 지 얼마 안됐을 때에는 꼭 교체라는 강수를 둬야 했는지, 그냥 신 캐릭터를 추가하고


세츠나는 라이브에 참여하지 않는 레귤러 캐릭 정도로 남겨놓으면 안됐었는지 엄청나게 분하고 억울했지만


누나가 세츠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세츠나를 위해서 어떤 결정을 내린건지 알고나니 그런 마음이 사그라들었다.


정말로, 마지막까지 누나다운 책임감과 누나다운 상냥함이 묻어나는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또 한편으로는, 그 소식을 보는 순간 내 인생의 한 사이클이 마무리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병으로 고통받고, 러브라이브로 구원받은 10년이 이제 저물어 간다.


누나와 세츠나가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처럼, 나도 인생을 새롭게 시작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긴다.



마무리와 새로운 시작이라고 하지만, 탈럽도 아니고 휴럽도 아니다. 


내일은 또 내일대로, 오늘과 별 차이없이 살아갈 것이다.


니코나마를 보며 웃고, 라이브를 보며 열광하고, 스쿠스타를 보며 한숨을 쉴 것이다.


그렇지만 내 마음 속 깊은 곳은 뚜렷하게 오늘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 같다.



뭐가 어떻게 나뉘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건 살아봐야 알겠지.




확신할 수 있는 건, 나는 누나를 정말로 존경하고, 진심으로 사랑하고, 앞으로도 그럴거라는 것 뿐이다.







반쯤 취한 채로 울면서 쓰는 글이고, 


일어나면 왜 이딴 글을 썼나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글 마지막에 이 말은 꼭 쓰고 싶다.







고맙습니다, 유키 세츠나를 맡아줘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건강하세요.


                                                                        


















PS


소식 뒤늦게 알고 온 애들이 교체는 안된다느니 캐릭터도 같이 내려야 한다느니 해도 너무 꼽주지 말자


그만큼 세츠나=누나라는 공식을 받아들인 애들이고 애정이 있는 애들이 혼란스러워서 하는 말이니까


굳이 누나의 뜻을 무시하니 어쩌니 욕하지 않아도 좋게 설명하고 머리 식으면 다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함


니코마키 2022.11.01 13:20:00
모닝글로리 진지한 글인데 누나라고 하니까 좀 웃기다 짜슥아 2022.11.01 13:20:40
인정할수없어 역시 사람은 술이 들어가야 명문이 나오는구나 2022.11.01 13:21:08
citelg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프냐 진짜 2022.11.01 13:21:40
AngelSong 슬프네 2022.11.01 13:23:42
꽃잎같은안녕 가슴 찢어진다.. 2022.11.01 13:23:48
ㅁㅅㅌㄱ 2022.11.01 13:24:22
페피 2022.11.01 13:24:28
ZGMF-X20A 게이야… - dc App 2022.11.01 13:25:02
いいんだよ、きっと 진짜 ㅈㄴ 슬프다 - dc App 2022.11.01 13:25:15
LoveLive239 진짜 마음이 너무나 아프다.. 2022.11.01 13:26:10
TORIN 명글이네..... 2022.11.01 13:28:23
사시데마리아 울면서 개추박음 2022.11.01 13:28:56
계란초밥마루 이렇게라도 자신의 감정을 잘 풀수있게 글 잘 쓰는게 부럽네... 모두 힘 내자 2022.11.01 13:29:27
sttc 아프지말고 건강해라 물붕아 2022.11.01 13:30:06
M.M.T 겨우 눈물 멈추나 했더니 이글읽고 다시 운다 - dc App 2022.11.01 13:3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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