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마즈엔 아지가 맛있단다」
갑자기 말을 꺼낸 것은 여자친구였다.
「아지는 먹어본 적 있니?」
아지. 전갱이. 지금이야 알고 있지만 당시에는 아지라는 것이 금시초문이었다.
「강아지는 먹어봤지...」
그녀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한 것은 잠시의 침묵 후에 깨달았다.
나는 그제서야 아차 하고 말을 잇기 위해 질문을 던져본다.
「아지라는 게 뭔데?」
「아지라는 건 말이야 생선이야. 싱싱한 물고기. 사시미로 먹어도 좋고 기름에 튀겨도 일품이야.」
못마땅하다는 듯 쳐다보면서 말문을 연 그녀였지만, 이야기하면서 그 맛을 상상이라도 하듯 눈을 살짝 감고 음미하는 시늉을 하였다.
나도 따라서 눈을 감아보며 맛을 상상하려고 했지만 도무지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있다. 광어회. 새우튀김. 이와 비슷한 것을 생각하며 미지의 생선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잘 모르겠는데, 그게 그렇게 맛이 있어?」
「응! 언제 같이 누마즈에 가면 같이 먹자!」
「나는 누마즈 잘 모르니까 가이드 잘 해줘~」
그해 겨울 그녀는 갑작스레 떠났다.
아무런 예고도 없는 이별이었다.
가해 차량은 음주에 과속이었다고 한다. 미끄러운 눈길을 주저없이 달리다가 사람을 치고 그대로 달아났다.
한동안 아무 생각이 없이 알맹이가 빠진 껍데기만 남은 채로 누워지냈다.
뭐라도 생각하면 자꾸 그녀의 얼굴이 생각나 괴로울 뿐이었다.
하염없이 잠을 청하고 청하고 그래도 잠이 안들면 수면제를 복용했다.
2년이 지난 어느날 갑자기 그 약속이 생각났다. 누마즈에 함께 가기로 했던, 아지를 먹자고 했던. 무작정 배낭을 싸고 비행기표를 끊었다.
한겨울 진눈깨비가 내리는 도쿄에 도착해 그대로 신칸센을 타고 누마즈로 향했다.
새로운 여행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옛고향에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누마즈까지는 2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전철에서 내려 공기를 들이마셔보았다. 약간의 흙내음새와 섞여 그리운 듯한 향기가 났다. 그녀와 닮은 냄새였다.
개찰구를 지나 시내로 나아갔다.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곳곳에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마치 오타쿠들의 테마파크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러브라이브...산샤인...」
이름정도만 들어본 애니메이션이었다.
역 앞에서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도배된 버스를 타고 더 깊은 곳으로 향했다.
바다가 잘 보이는 곳에 내려 천천히 걸어보았다.
바다 너머로 보이는 커다란 하얀색 산봉우리, 구름조차도 뚫고 우뚝 솟아있는 그것은 일본인의 정신적 지주인 후지산일터, 뭉툭한 꼭대기는 언제든 폭발할 수 있다고 경고하는 듯 했다.
한참 걷다보니 식당이 하나 보였다.
「이케스야」 활어조집
아무래도 생선요리를 파는 곳 같았다. 들어가보니 손님이 꽤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그것을 찾을 수 있었다.
「鯵(あじ)」
그녀가 얘기했던 그 생선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때 얘기한 그 맛이 무슨맛일지 드디어 알 수 있겠다는 기대감과 씁쓸함이 교차했다.
자리를 정하고 카운터로 향했다.
「활아지동이랑 활아지 후라이 주세요.」
「네. 1210엔입니다.」
동전지갑을 열어 잔돈을 찾던 중 눈에 들어온 것은 자그마한 캔뱃지였다.
검은 긴 생머리의 소녀가 허리에 손을 얹고 당당하게 갑판 위에 서있는 그림이 그려져있었다. 입술 아래에는 점이 하나 찍혀있었다. 그녀와 똑닮은 모습이었다.
「혹시 이것도 파는 건가요?」
「캔뱃지 말인가요? 이건 300엔입니다.」
「이것도 하나 주세요. 혹시 이 캐릭터 이름도 있나요?」
「이 아이는 다이아쨩이라고 해요.」
「시내에 여기저기 있는 그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캐릭터인가요?」
「네. 러브라이브 선샤인이라고 여기 누마즈랑 우치우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요.」
러브라이브 선샤인... 애니메이션은 잘 안 보지만 흥미가 생겼다.
작은 캔뱃지를 받아들고 자리에 앉아 그 그림을 바라보았다.
이 아이도 누마즈 출신인걸까. 그녀와 똑같이 이곳에서 나고 자랐을까. 이 아이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숙소로 돌아가면 그 러브라이브 선샤인이라는 것을 한 번 보기로 했다.
얼마 안 지나 주문한 덮밥과 튀김이 나왔다.
핑크색 살 위에 은빛이 휘도는 회가 덮여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위에 올려져있는 파와 다진 마늘을 살며시 펴고 한 조각 집어들어서 입에 넣었다.
예상과 다르게 비리지 않고 신선한 느낌의 속살이 입에서 퍼져나갔다. 마치 아이스크림처럼 살살 녹아내리는 듯한, 신기한 맛이었다. 두어 조각을 더 집어서 입에 넣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애써 참으려고 했지만 덮밥 위로 무언가가 떨어졌다. 눈앞이 흐려져 떨어진 건지도 잘 보이지 않지만 그 다음 집은 한 점은 특히나 짠 맛이 강했다.
「엄청 짜잖아 이거...」
누군가에게 불평하듯, 그러나 아무에게도 닿지 않는 한 마디가 입에서 흘러나왔다.
다시 천천히 바다를 따라 쭉 걸어갔다. 주머니에서 아까 산 캔뱃지를 꺼내어 다시 바라봤다. 만약 같이 왔다면 「이거 너 닮았네」라고 농담을 건네어 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캐릭터처럼 너와는 더이상 만날 수가 없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그날 하루종일 러브라이브 선샤인이라는 애니메이션을 틀어놓고 봤다.
폐교 위기의 모교를 구하기 위해 스쿨 아이돌이 되어 대회에 나가는 소녀들, 결국 대회에서 우승을 하지만 폐교는 막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였다.
별볼일 없는 싸구려 스토리의 느낌이었지만, 모두 함께 노을빛 아래 교문을 닫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울고 있었다.
평생 나올 눈물은 이미 2년전에 다 흘렸다고 생각했지만, 오늘에 와서 아직 눈물샘이 마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쿠로사와 다이아.
자존심이 강하지만, 사실은 상냥하고 부드러운 아이였다. 처음에는 딱딱한 다이아몬드 같았지만 점차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열어주었던 그녀와 자꾸 겹쳐보여서 나도 모르게 속으로 응원하게 되었다.
「야리노코시타 코토나도 나이
소오 이이타이네 이츠노 히니카
소코마데와 마다 토오이요
다카라 보쿠라와 간바앗테 쵸오센다요네」
지금까지 무기력하게 살아온 나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듯한 가사였다.
그녀들은 폐교 저지라는 것에는 실패했을지언정, 단 한 번뿐인 청춘을 최선을 향해 빛낸 승리자들이었다. 쓸모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지막까지 전력으로 빛나고 있었다. 가슴 속 뜨거운 것이 느껴졌다.
이곳 누마즈가 바로 그녀가 태어나고 내가 다시 태어난 곳이다.
다시 서울로 돌아와서 러브라이브 선샤인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았다. 라이브를 쫓아다니며 열성적인 팬이 된 것은 불과 2년전의 나였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이야기이다.
가끔 회덮밥을 먹을 때면 그때 그곳에서 먹었던 짜디짠 아지동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문득 누마즈에 가고 싶어졌다.
...라는 상상을 해보았다.
이 글은 모두 픽션이며
누마즈 공기 킁'카'킁'카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