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라이브 선샤인 마이너 갤러리 저장소

제 목
번역/창작 레오니 텍스트번역
글쓴이
ㅇㅇ
추천
5
댓글
7
원본 글 주소
https://gall.dcinside.com/sunshine/4403300
  • 2021-11-30 14:34:02
  • 1.233
 



제1화

태양의 공주무녀와 이루어질 수 없는 약속


"어서오세요 오다이바 왕국에, 녹색 대지에 푸른 바다♪ 이곳은 세계의 중심지, 예술 번영과 무지개의 도시♪

야망을 품은 젊은이도 안식위해 은거하는자도 차별없이 품는 곳♪

어둠을 밝히는 태양신, 무구한 소녀의 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가호를 베풀어준다네♪"

소녀의 노랫소리에 중앙 광장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의 함성이 터져 나온다.


오·다이·바 왕국, 왕도 다이바. 1년에 한번 있는 대축제를 하루 앞둔 거리는, 구경꾼들로 떠들썩하고,

열기가 끓어 넘친다. "잘하는구만, 저 무희. 근데 왜 기사 분장같은걸 하고 있는거지?"

"어이, 당신 왕도는 처음이구만? 저 아이는 진짜 성기사님이라구"

마을 주민인 노파가 교회 근처에서 구경하던 행인의 혼잣말에 회답했다.

"상냥한 아이야. 시간이 허락할 때는 부탁하면 저렇게 불러주는거야 "

"뭐야? 시골사람을 상대로 속이려 들다니 악취미네. 기사가 저런걸 할리가…"

―꺄아아아악!

위험해, 위, 위! 갑자기 위쪽에서 고함소리가 들리고, 두 사람은 하늘을 바라본다.

아득한 상공에서 교회대종이 힘차게 두 사람을 향해 낙하 중이었다.

누구나 절망에 휩싸였던 그순간―.

"태양신의 빛이여, 나에게 힘을!"

드높은 영창

아까 노래하던 소녀가 당당하게 달려왔다.

"하아―압!"

평범한 사람이라면 불가능한 공중 도약. 공중에 뜬 대종에서 나오는 빛의 궤적.

검을 휘두른 소녀는 기합일섬으로 대종을 멋지게 두 동강 냈다.

"후우….다친 곳은 없나요?"

"이, 이거 정말 기사님이었네…"

"네. 저는 기사단 1번대 대장 세츠나라고 합니다!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아니아니, 혼잣말이야. 살았어. 고마워 세츠나님"

"이정도는 기사로서 당연합니다!"

강한 의지를 품은 눈동자와 긴 머리를 가진 기사 소녀―세츠나는 만면에 웃음을 띄웠다.


대리선으로 빛나는 대신전. 서늘한 돌로 된 복도의 막다른 곳, 공주 무녀의 방.

창문으로 저녁 놀이 붉게 비치고 있다.

침대에 걸터 않은 공주 무녀의 어깨에는 그 창문으로 날아든 것 같은 새가 멈춘다.

날개와 부리가 모두 흰 새다.

"실례합니다. 공주 무녀님! 1번대 대장 세츠나, 지금 돌아왔습니다!"

"정말, 세츠나쨩은 고지식하네. 둘이 있을때는 아유무라고 불러줘"

아유무, 아유무! 하고 , 수다스러운 새가 부스럭거리며 하얀 날개를 펼치고 날아간다.

"후후, 새치기 당했어요. 아유무씨, 저 아이 사람에 익숙하네요."

"응, 자주 놀러와주는 친구야."

세츠나는 공주 무녀를 섬기는 성기사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부터 아유무와 함께 지냈고 서로 막역한 사이이다.

"밖이 소란스러웠던 것 같은데, 무슨일 있었어? 이야기 들려줘."

이야기 들려줘. 이것은 신전에서 나가본적이 없는 아유무의 말버릇이다.

공주 무녀는 신의 사랑을 받은 아이.

사람과 신을 이어주는 존재로 일생의 거의 모든 것을 태양신에게 바치고 있다.

"―헤에, 정말로? 대단하네. 세츠나는 정말로 강하구나"

"매일매일의 단련 덕분이죠! …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유무씨 덕분이죠.

DP를 이용해서 신체의 힘을 강화했기에 높이 뛸 수 있었으니까요"

DP 다이=스키=파워의 약칭이다. 

이 세계에서는 살아 숨쉬는 자는 모두 그 몸에 DP를 품고 있다.

생명의 활력의 원천인 동시에 특별한 힘을 쓰기 위한 것.

소비량의 차이는 있어도, DP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불꽃놀이를 하거나 곰인형을 춤추게 하거나―. 이 축제 DP가 없으면 개최할 수 없습니다!"

DP는 태양빛을 받으면 회복된다. 태양의 힘은 공주 무녀의 기도가 있어야 유지된다고 한다.

"왕도에 사계절이 오고, 구름 한점없는 쾌청한 날씨부터 단비에 이르기까지 날씨가 안정되는것도

아유무씨 덕분이에요!"

"저,정말 그만해~, 세츠나쨩. 그것보다도, …좋겠다, 축제. 나도 한번이라도 좋으니깐 거리를 둘러보고싶어"

"그럼 지금부터 몰래 빠져 나갈까요?"

"…에? 에에엣!?"

"옛날에 같이 읽었던 그림책에 그런 장면이 있었잖아요. 용사님과 공주님의 사랑의 도피!"

"후후, 세츠나는 로맨스보단 용사님이 쓰는 전설의 무기에 푹 빠져있었다는거 다 아니깐"

"으윽! 그, 그건, 저런 멋있는걸 동경하지 않는 기사가 있나요!?" 

"아하하, 그립네. 근데 그건 동화일 뿐이지, 하물며 사랑의 도피라니….

내가 여기서 사라지면 모두가 곤란해져"

"물론 빠져나간다는 건 농담이죠. 정공법으로 갑시다.

제가 외출허가를 대주교님으로 부터 받아오겠습니다."

"에엣?"

"일년에 한 번 있는 특별한 날입니다. 잠깐의 시간이라면 융통성 있게 해주실 거예요.

저도 모시고 갈테니, 맡겨주세요!"

쿵, 하고 세츠나는 가슴을 친다.

"그, 그치만…, 괜찮을까…"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가슴에 감싸안으며 아유무는 잠시 망설였다.

이윽고 결심한 듯이 얼굴을 든다.

"정말로…,부탁해도 될까?"

"물론이죠!…어라?"

세츠나는 아유무의 두손을 자신의 양 손바닥으로 감쌌다. 

그순간 상당한 고령의 여성이 방에 들어온다.

"대주교님! 마침 찾아 뵐 생각이었습니다. 지금부터 공주무녀님을 축제에 모시고 와도 될까요?"

"밖으로 나가는건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공주 무녀에게 있어선 여기가 가장 안전한 곳이에요."

"하지만 공주 무녀님이라도 가끔은 외출정도…. 태어나서 쭉 이곳에 계셨으니까 적어도 오늘은"

"대종이 떨어지는것 같은 불길한 사고가 있어지 않나요!?"

대주교는 계속한다. 흉사의 전조일지도 모른다. 내일의 기도에 대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공주 무녀와 지금부터 의논해야한다. 외출은 어리석은 행동이다―라고.

"그치만, 대주교님…!"

"괜, 괜찮아요, 기사대장. …대주교님의 말씀은 제 몸을 생각해서 하신겁니다.

―알겠습니다, 곧 가겠습니다."

아유무는 세츠나를 저지하고, 대주교를 따라 간다. 복도를 나서기 전, 

고마워, 라고 입모양을 하면서 세츠나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꼬옥 가슴이 조이는 듯한 환한 미소였다.

"아유무씨…"

세츠나의 현기증은 방안을 울린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사라져 있었던 걸까.

하얀 새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축제 당일. 형형색색 빛나는 거리에 울리는 건, 축포와 금관 악기의 팡파레.

행진하는 고적대에게 끊임없는 갈채. 대신전에는 많은 사람이 몰려있다. 

제단에 서는 아유무의 모습에, 사람들은 황홀감에 눈물을 훔친다.

고개를 숙이고, 절하며, 숭배한다.

"…?"

맨 앞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세츠나는, 문득 몸서리를 쳤다. 온몸에 오한이 일었고,

기분나쁜 땀이 흘렀다. 몹시 긴장한―그 순간.

가샥!

굉음과 함께 대신전이 크게 흔들렸다. 벽이 깨지고

천장이 떨어져, 유리가 날아다닌다.

강풍이 휘몰아쳐 간다.

"무슨…!?"

곧바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비명과 절규가 난무하고, 공포와 혼란이 주위를 휩싸던 중―

세츠나의 눈동자에 비치는 것은.

"…드래곤?"

선박보다 더 거대한 생물. 칠흑의 비늘에 싸인 몸.

완강한 날개에 긴꼬리, 날카로운 송곳니.

그림책이나 신화 속에서만 나오던 존재가 눈앞에 나타났다.

"꺄아악!"

"공주 무녀님!? 이 녀석…!"

드래곤이 앞다리로 아유무의 몸을 움켜 잡고 있다.

아유무를 잡아가려는 건가!?

세츠나는 영창과 동시에 달리기 시작한다. 보이지 않는 계단을 오르듯

빛과 함께 허공을 달린다. 온몸을 튕겨 드래곤의 정수리에 호를 그리며 검을 내려친다.

군신의 힘을 다해! 

"하아아아―압!!"

반격은 없었다.

하지만, 공격해 온 보람도 없었다.

칼자루를 쥔 양 손바닥부터 온몸이 격한 통증이 온다, 그리고,

파칭, 하고 어이없이 검이 부러졌다.

"으…그런…"

강고한 비늘에 움츠러든 세츠나를 개의치 않고 드래곤은 날개짓을 한다.

"세츠나쨩…!"


아유무가 팔을 힘껏 뻗어온다.

"아유무씨…윽!"

떨어지면서, 세츠나도 대답한다.

서로의 시선이 엇갈리면서

손끝이, 지금, 바로 맞닿으려는 그 찰나.

포효와 함께 무심하게도 드래곤이 날아 오른다.

하늘을 가르는 손과 손.

"크윽…………!"

풍압에 튕겨 세츠나는 등부터 땅바닥에 내동댕이 친다.

"…아유무씨―!"

아무리 외쳐도 이제 목소리는 닿지 않는다.

아유무는 드래곤에게 끌려가버린 것이다.

…공주 무녀가 사라지는 것은 태양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

뚝, 뚝뚝.

차가운 빗방울이 세츠나의 뺨을 때린다. 순식간에 먹구름이 왕국 상공을 뒤덮으며,

왕도는 어둠에 싸이기 시작했다―.


----------------------------------------------------------------------



제2화

빛이 없는 세계와 마음이 굽히지 않는 성기사



―그것은, 언젠가의 기억―. "나는 괜찮으니까 그렇게 걱정하지마 세츠나쨩 그냥 감기야."

"그치만 얼굴이 빨갛잖아요" 세츠나는 찬물에 적신 천을 아유무의 이마에 얹는다.

침대에 반듯이 누워서 아유무는 콜록콜록 기침을 했다.

"약도 먹고 의사선생님에게 진찰도 받았으니까 이제 안정을 취하고 있으면 돼. 부적도 있으니까"

아유무는 살짝 가슴에 손을 얹었다. 몸에서 떼지 않고 걸치고 있는 목걸이를 꼭 쥐었다.

색이 칠해진 부적석은 대대로 공주 무녀에게 계승되고 있는 것이다.

"세츠나쨩은 방으로 돌아가 감시 옮으면 큰일이니까 조마조마 하게 돼"

  "그렇게 까지 말한다면 물러나겠지만, 무슨 일이 있다면 바로 불러주셔야 해요?"

발을 돌린 세츠나는 곧바로 몸이 쏠리며 멈춰선다. 뒤를 돌아보니 아유무의 손이 옷고름을 잡고 있었다.

"어라? 어째서? 정말, 나는….미안해 세츠나쨩"

아유무가 당황하며 손을 뗀다.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던 것 같다.

"역시 불안한가요? 자, 저에게 마음껏 기대주세요!"

"으으….이렇게 어리광부리면 싫지 않아?"



"상관없어요"

"…잠들때까지 곁에 있어 줄래?"

"후훗. 쉬운일이네요"

세츠나는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아유무의 앞머리를 손으로 부드럽게 빗었다.

"안심하세요. 잠들때까지 아무말없이 계속 곁에 함께 있을게요"


"으…윽!"

찌뿌둥한 몸에 세츠나는 신음을 낸다. 그리운―꿈을 꾸고 있었다. 드래곤이 사라진 후에 잠시동안 의식을 잃었던 것 같다.

"아유무씨…. 그러고보니 마을사람들은…!?"

세츠나는 무거운 눈꺼풀을 필사적으로 들어올렸다. 비가 그쳤지만 하늘에는 음산한 잿빛 구름이 드리워져 있었다.

절반이 무너진 대신전에는 아무도 없다. 오히려 거리 자체가 너무 조용하다.

"모두―들, 무사하신가요―!?"

상점, 대로, 골목, 웅덩이를 튀기며 세츠나는 뛰어다닌다. 하지만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평소에는 구석구석가지 아름답던 거리에는 짓밟힌 과일과 장난감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집이란 집은 모두 대문을 걸어 잠궜고, 창문은 굳게 닫혀 있다. 문을 두드려도 대답하는 사람은 없다.

안에서는 조용히 숨을 죽이는 거주자의 기운만이 느껴진다.

"이것이…, 태양의 공주무녀가 사라진 세계…"

거리에서 활기가 없어졌다. 아니, 희망도 평화도 믿음도 신뢰도 색채도 무엇이든.

공주 무녀의 부재가 알려지면 주변 도시또한 편치 못할 것이다.

시기심과 불신이 서서히 비대해지고 사람들의 마음을 물들일 것이다.



"…세계의 위기, 이네요"

대신전까지 돌아온 세츠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큰일이야 큰일!"

문득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근처 시장의 상인으로 보이는 소녀다. 신기하게도 아까 거리에 갔을때는 보지 못했다.

"장사는 끝이에요, 끝"

상인은 큰 가방에 물건을 채워나간다. 바구니와 콩, 오래된 램프와 보석, 멀리서도 숙련된 장인의

일품임을 알 수 있은 날개옷. 판매품에는 대략적인 통일감이 없다.

게다가, 상인은 혼잡을 틈타 태양신의 돌 손가락을 가방에 넣고 있다. 드래곤에게 파괴된 석상의 조각.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산산조각이 났다고는 하지만, 대신전의 보유물이다.

"저기, 잠깐…"

"출발, 출발"

세츠나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상인은 가방을 메자마자 달려나간다.

"기, 기다려주세요!"

쫓아가다가, 성문까지 와버렸다. 밖으로 나서는 순간, 위화감을 느낀다. 왜 문지기가 없지?

"뭘 우물쭈물하고 있는거야!?"

가까이에서 터져 나온 고함소리 쪽으로 향한다. 그자리에 있던 사람은 평소 성문을 지키고 있던

두 사람의 문지기, 그리고.

"마수…!?"

거대한 늑대 같은 모습의 한 마리의 짐승. 어둠보다도 검은 모피는 섬뜩한 푸른 불꽃을 내뿜고 있었다.

거리 근처에 나타나는 일은 좀처럼 없을 텐데.

"빨리 나를 도와줘! 당신 가속의 힘을 쓸 수 있잖아!?"



"그, 그치만 공주무녀님이 안계신데요!? DP의 회복은 어떡하죠!? 여기서 힘을 전부 소모하면…!"

검을 겨눈 문지기와 후위의 문지기들의 말다툼. 전자의 손발에는 여기저기 붉은 피가 흥건했다.

마수의 날카로운 발톱으로 듬성듬성 난 세 가닥으로 그인 자국.

마수는 진수성찬을 앞두고 있을 때처럼 입맛을 다시고 있다.

이상하게 긴 미끈미끈한 혀끝에서 침방울이 흘러내린다.

"…위험합니다!"

"엇, 세츠나님!? ―으악!"

말다툼을 틈타서 마수가 문지기 쪽으로 돌진해온다. 세츠나는 서슴없이 뛰어나가 문지기를 안고

데굴데굴 땅바닥을 구른다. 짐승의 발톱이 등을 가르기 직전이었다.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세츠나는 문지기가 떨어뜨린 검을 재빨리 손에 쥐었다.

"빌리겠습니다! 여기는 저에게 맡기시고 당신들은 빨리 도망가세요!"

부상자와 전투의욕을 잃은 자, 확실히 저 둘을 지키면서 마수와 싸우는건 버겁다.

문지기들도 바로 세츠나의 의도를 이해하고 자리를 떠난다. 세츠나는 검의 칼끝을 마수를 향해 겨눈다.

마수는 숨을 삼키며 땅을 걷어찼다. 옆으로 떨어지는 마수의 앞발에 세츠나의 앞머리 몇 가닥이 사르르 춤을 춘다.

"크윽…!"

진흙을 튀기며 좌우로 움직이던 세츠나는 어느순간 걸음을 멈췄다.

농락당하고 분노한 마수가 무작정 몸을 들이밀어 온다. 노리는 대로. 감쪽같이 자신의 사이로 꾀어 왔다.

"하아―압!"

전광석화. 세츠나는 공간을 찢듯 마수를 후려친다. 키야야악!

마수는 포효와 함께 서서히 증발하듯이 허공으로 녹아내렸다.

"해치웠습니다! …앗!?"

세츠나는 자만했다. 그늘에서 슬금슬금 마수가 몇 마리 기어나온 것이다.

"크윽…! 아직 이렇게나…!?"

움츠러든 그 순간, 세츠나의 머리에 떠오른건 아까 꾼 꿈. 그때, 자신은 아유무에게 뭐라고 말했는가.

계속 곁에 함께 있겠다. 그래, 계속이다. 그 말을 거짓말로 만들고 싶진 않다!

"이런 곳에서 질수는 없습니다! 저는― 아유무씨를 구하러 가는 겁니다!"

세츠나는 한 걸음 내딛는다. 그때 갑자기 세츠나와 마수 사이를 누군가가 가로막았다.

흰색의 로브에 흰색 후드. 온몸이 하얀 그 사람은 검자루를 쥐었다. 마수들이 일제히 덤벼들었다.

하얀 사람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검을 뽑았다. 하얀 로브가 한순간 휘날린다.

휘날린 로브가 가라앉자 마수들은 일제히 소멸하고 있었다.

압도적 강함. 세츠나는 경계하면서도 하얀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가, 감사합니다. 저기, 당신은…?"

푹 눌러쓴 후드에서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하얀 사람은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은 채,

세츠나를 값을 매기듯 위아래로 훝어보았다.

"마수의 무리정도로 동요한다…. 그정도로 공주 무녀를 구할 수 있겠나?"

예상외로 귀여운 소녀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나무라는 말투.

"목숨을 버리는 것과 같아. 공주 무녀는 추억으로 남기고 당신은 남은 DP를 소중하게 지키고 마을에서 사는게 좋겠어"

하얀 사람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절설의 무기도 방어구도 도움이 되는 도구도

하얀 사람과 같은 힘도 지금의 세츠나에게는 없다. 하지만―그게 무슨 핑계가 되겠는가.

태양이 사라진 거리, 웃음을 잃은 사람들, 그리고 영원히 아유무 없이 사는 삶. 받아들일리가 없다!

"거짓된 안녕에 굴복하는 것은 성기사의 불명예! 비록 이몸이 썩을지라도 저는 공주 무녀를 구하러 가겠습니다!"

큰소리를 치는 세츠나를 하얀 사람은 힐긋보고는 '안되겠네'하고 한숨을 쉰다.

"…말려도 소용없는 것 같네. 그렇다면, 이걸 줄게" 

하얀 사람이 던져 보낸 것을 반사적으로 받았다. 손안의 물건을 보고 세츠나는 깜짝 놀랐다.

"이건, 아유무씨의 목거리잖아! 당신 대체―!?"

고개를 들었을 때 하얀 사람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아유무의 목걸이를 도대체 어디서 구한것일까.

"꺄악…!?"

갑자기, 목걸이의 부적석이 빛을 발하며 허공에 떠올랐다. 게다가 어느 쪽을 가리키며 세츠나의 손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안내해 주시는 건가요?"

혹시, 아유무가 있는 곳으로? 세츠나는 쇠사슬을 움켜쥐고 이끌리는 대로 목걸이를 따라간다.

"읏, 저기 있는건―!?"

안개 낀 길을 벗어나서 시야가 열리는 곳, 두 사람의 그림자가 있었다―.



----------------------------------------------------------------------


제3화

영속의 소녀와 정령의 인도


아유무의 목걸이에 이끌려 도착한 곳은 나무가 우거진 숲속이었다.

세츠나의 시선 끝에는, 거목에 걸터앉은 여성과, 그녀와 담소를 나누고 있는 소녀의 모습있었다.

"저기―…"

"왠놈입니까!?"

말을 거는 순간, 소녀는 여성을 자신의 등에 숨긴다. 손에는 양날의 낯이 익지 않은 소형무기.

날카로운 칼끝이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아, 수상한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단지 이 목걸이의 인도에 따라―"

"…공주무녀에게 무슨일이 있나요?"

여성은 부드럽게 물어왔다.

"그 목걸이는 제가 옛날에 공주무녀에게 보낸겁니다. 요기를 떨치기 위해서요."

"엣? 어떻게 된 거죠? 저, 어디까지나 전해들은 이야기지만…이 목걸이는 바람의 정령님으로부터 받은거라고 들었습니다."

"정말! 둔하시네요. 이분이 바람의 정령님 본인이라니까요!"

세츠나에게 적의가 없다고 느꼈는지 소녀가 무기를 내려놓고 자랑스러운 듯이 가슴을 폈다.

"에엣!?"

정령은 막강한 힘을 가진 존재이다. 남보다 훨씬 높은 존재로서, 수명의 개념은 의미없다.

"후후, 참고로 말하면 저희 일족은 옛날부터 바람의 정령님과 맹약을 맺고 있어요!"

"그런! 엄청나네요!"

"오늘은 제가 일족의 23대 두령이 된 인사차 찾아뵈었던겁니다!"

"에엣! 두령님인가요!"

"저희 일족은 동쪽 섬나라에 있는 나카스의 숨겨진 마을에 속하는 닌자라구요!"

"헤에, 닌자라는건 확실히…"

"그래요! 은밀활동을 자랑하는 정예집단이에요! 비전의 기술이나 도구를 써서 싸우죠♪ 아까 쿠나이라든가"

"그럼 기본적으론 비밀스럽게 다닌다는 거군요!"

세츠나의 물음에 소녀는 단번에 창백해진다.

"아아앗, 카스밍, 또 말을 너무 많아져 버렸다…!"

아무래도 이 닌자의 우두머리를 자칭하는 소녀는 닌자가 지녀야 할 특성과는 반대로, 덤벙대는 점이 있는 것 같다.

"카스밍씨라고 했던가요?"

"아뇨, 카스미에요. 받힘은 두령에게 붙이는 칭호에요!"

"그럼 저도 카스밍씨라고 부를게요."

"윽, 또 카스밍에게 정보를 빼가다니! 당신 대체 누구에요!"

"아앗! 그렇네요, 이야기가 꽤 멀리 가버렸어요, 저는―"

세츠나는 이름뿐만 아니라 그동안의 경위를 남김없이 말했다.

"그래. 드래곤이 나타나 버렸군….그래서 목걸이도 요기에 눌려 나에게 향했다는 말이구나"

"바람의 정령님. 유구의 시간을 살아오신 당신이라면 아시겠죠.―드래곤을 쓰러뜨리고 공주무녀를 되찾는 방법을"

"제가 알기로 드래곤에게 이르는 방법은 단 한 가지뿐입니다. 3 대정령의 시련을 이겨낸 자에게만 길은 열린다고"

불, 바람, 물. 3 대정령의 시련―.

"그럼 시련을 받겠습니다!" 망설이지 않고 세츠나는 선언했다.

"에―.치사해요! 카스밍도 세계를 구하고 싶어요!"

"엣?"

"두령으로서의 첫 임무에 걸맞아요! 역사의 그림자에는 언제나 나카스의 닌자가 있다는 말, 모르나요? ―그러니깐 수행해드릴게요!"

"그, 그렇게 가볍게 결정할 일이…"

"진지하게 결정해도 결과는 똑같아요, 세츠나경! 어떻게든 될 거라구요!"

너무 낙관적이다. 그러나 몇 번이나 위험하다고 말해줘도 카스미는 전언을 번복하지 않았다.

결국에는 세츠나는 포기했다.

"그럼, 일단 그, 바람의 정령의 시련말인데. …합격이야"

에?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는 세츠나와 카스미.

"둘다 내 모습이 보이잖아. 정령의 모습은 마음이 맑은 사람에게만 보여. 그러니깐 합격. 그럼 불의 정령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줄게"

바람의 정령의 힘으로 단숨에 날아올라!…는 아니고, 목적지까지 며칠 걸려 자기 발로 이동했다.

"우리 정령은 관찰자입니다. 약간의 협력은 할 수 있어도 직접적인 개입은 무리에요. 큰 힘은 세상의 이치를 깨버리니까요."

그런거냐고 물어보는 세츠나의 팔을, 카스미가 끌어당겼다.

"이제 도착한거 같네요!"

험난한 길을 넘어온 불의 정령이 있는 장소, 양염의 동굴이다.

"얏호~오랜만~바람쨩"


용암이 뿜어져 나오는 동굴 안쪽. 열기에도 굴하지 않고, 불의 정령은 수직으로 우뚝 솟은 큰 바위 위에서 책상다리를 하고 있었다.

올려다보면 목이 아플 정도로 높은 위치.

"이야기는 들었어. 드래곤인가. 그럼, 바로 나의 시련을 줄까?" 불의 정령은 호전적으로 히죽 웃는다.

"둘이 덤벼. 나랑 승부야. 항복이라고 말하게 해줄게"

승부라고는 하지만, 불의 정령이 생각하기엔 어린애장난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큰 바위 위에서 순식간에 이동해서, 변덕스럽게 화염구를 던져올 뿐이다.

그것뿐이지만, 둘은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틈을 만들어야 겠네요."

"그럼, 여기는 카스밍에게 맡겨주세요! 오―잇!"

카스밍은 불의 정령의 시선을 끈다.

"갑니다! 비기·꼭두각시술!"

카스미는 파직! 하고 한쪽 눈으로 윙크를 날린다. 주변을 완전한 정적이 감싼다.

"카, 카스밍씨? 지금 그건?" 

"…카스밍의 귀여움으로 상대를 매료시켜 틈을 만들 작정이었어요…"

"굉, 굉장히 귀여웠어요!!"

"으윽,이렇게 된 이상 진심으로 갑니다! 비기·호접몽!" 카스미가 뿌린 잠의 가루는 열풍에 튕겨져 오히려 세츠나에게 쏟아진다….

"아앗. 일어나주세요! 세츠나경!"

"…헛!"

"다행이다! 카스밍, 좀더 진심으로 할거니까요! 비기·분신술!"

"!? 카스밍씨가 잔뜩…! 이건 아직 꿈인가요…?"

"세츠나경이 혼란에 걸리지 말아주세요!"

이런식으론 불의 정령을 이길수 있을리가

없다고―생각했는데.

"후훗…아하핫! 뭐하는거야, 너희들!"

두 사람의 얼빠진 대화를 듣고, 정령이 웃음을 터뜨리며, 화염이 멎었다.

"틈이에요! 비기·그림자 질주!" 카스미가 질풍처럼 달려, 불의 정령의 등뒤로 돌았다.

"다, 당했다!"

"각오하세요! 비기·천개의 손!"

"앗, 아하하하핫, 그, 그만둬, 항복, 항복이야!"

닌자가 기술을 쓰는 손끝으로 양쪽 겨드랑이를 간지럽혀진 불의 정령은 참다못해 항복했다.

"해냈어요!…읏, 꺄악!?"

"카스밍씨!"

껄껄 웃는 불의 정령의 등에서 밀려나, 카스미는 좁은 바위의 끝에서 발을 헛디딘다.

떨어지는 그 몸을, 일순간, 세츠나가 끌어안았다. 카스미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괜찮아요!?"

"…카,카스밍도 낙법정도는 여유롭게 할수있다고요!"

"아앗, 실례했습니다! 괜한짓을 해버렸네요"

"으…아뇨, 그게, 덕분에 살았네요." 카스미는 검연쩍은 듯 눈길을 돌렸다.

"이야~,방심하다 당했네. 음~그럼, 너희들은 시련을 훌륭히 이겨냈다! 그런고로 이거 가져가"

불의 정령이 슬그머니 품에서 꺼낸 것을 세츠나에게 넘겨준다.

"그게 있으면 드래곤의 비늘도 찢을 수 있을 거야"

"―이, 이건 설마! 몽환홍련검!?"

그림책에서 봤던 동경하던 전설의 검. "근데 이거 도신이 없는데요, 세츠나경. 부러진 건가요?"

"아뇨, 이건 정신력에 공명해서 실체화하는 거에요. 한번 해볼까요. ―홍련이여!"

세츠나의 부름에 응해, 코등이가 붉게 빛나면서 붉은 빛 칼날이 뻗어나온다. 세츠나는 시험삼아 가까운 바위에 칼을 내려쳤다.

바위가 두 동강이 난다. 아름다운 절단면, 무서운 예리함이다.

봐 봐요!라고 흥분하는 세츠나와 대단해라고 카스미의 눈도 반짝였다.

불의 정령이 흐뭇한 듯이 조언한다.

"말은 마음과 연결되어 있어. 기술의 이름이 있다면 검이 더 잘 구현해낼거야"

"그럼 우리와는 여기서 헤어지겠네"

"물의 정령은 더 만만치 않을걸?" 바람의 정령이 아유무의 목걸이에 길 안내 마법을 부여하여 돌려주었다.

카스미와 세츠나는 정령들에게 인사를 하고 다음 목적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아…카스밍, 이번 시련때문에 DP를 많이 써버렸어요"

"에엣, 회복수단이 없는데요…"

"뭐, 어떻게든 되겠죠!"

작아져가는 세츠나와 카스미들을 배웅하면서.

"저분들이 『진실』에 당도했을 때…, 저희 원망받을지도 몰라요."

"우리들은 그저 지켜 볼수 밖에 없지"

정령들은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


제 4 화

마지막 시련과 수경의 소리


"거기 아가씨들, 여행에 편리한 도구는 어떻습니까?"

물의 정령에게 향하는 도중. 세츠나와 카스미는 상인 소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런 세상에서는 장사도 안 되고…어린 동생들도 챙겨야 하는데"

"어린데도 큰일이네요…"

"세츠나경! 세상이 불안할때는 사기나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늘어난다구요!

…이미 사고 있어!?"

세츠나에게 귓속말을 하고 있던 카스미는 깜짝 놀랐다. 세츠나가 상품인 날개옷을 집어들고

금화가 든 가죽주머니를 꺼냈기 때문이다.

"기사된 자로서, 어려운 분들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습니다!"

"엣!, 다, 당신들 기사였나요!?"

"네. 어라? 그러고보니 당신 어디선가…. 아앗! 왕도 다이바의 태양신의 석상

일부를 가져간 상인 아닙니까…? 아, 이거!"

세츠나가 상인의 상품을 가리킨다. 소녀는 일순간 얼굴이 창백해졌다.

"…훔친 물건을 팔 생각이었죠?" 카스미가 눈을 흘겨보며 소녀를 바라보았다.

"아, 아하하, 무슨 얘기신지. …죄송합니다, 돈은 돌려드리겠습니다!


하는김에 그쪽의 '투명 날개옷'도 드릴테니 부디 봐주세요!"

상인 소녀는 짐을 꾸려 황급히 달아났다.

"참! 빨리도 도망가네요"

"동생분들은 괜찮을까요"

"세츠나경은 조금은 사람을 경계하는게 좋을거 같아요…"

상인이 떠나간 방향을 걱정스럽게 보는 세츠나를 보고, 어깨를 축 늘어뜨리는 카스미.

"그런거에 금방 속아넘어가나요. 뭐 카스밍이 붙어있으면 안심이지만요!"

"상품을 그냥 가져버렸는데 괜찮을까요?"

"신경쓸 것 없어요. 어차피 그런 수상한 물건, 짝퉁일거니까요"

에휴, 라고 하면서 카스미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유무의 목걸이―정체불명의 하얀사람이 어째서 이것을 가지고 있었는지

아직도 모르는―에게 이끌려 다음에 당도한 장소. 그곳은, 푸른색 종유석 동굴 끝에 펼쳐진

바다 밑의 거대한 궁전이었다.

"감이지만, 이 안쪽에 물의 정령님이 계실거 같네요…"

궁궐 안은 미로와 같았다. 이런저런 복잡한 장치가 있어서, 무작정 걷다보면 어느새 막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어찌저찌 최심부라고 생각되는 방에 다다랐을 때 뒤에서 벽이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유일한 통로가 막혀버린 것이다.

"으―앙, 갇혀버렸어요!"

"앗, 근데 벽에 뭔가 쓰여있어요. '열쇠는 상자 안에 있다' 이걸까요?"

덫을 경계하면서, 세츠나는 방 중앙에 놓여 있던 작은 상자를 집어들었다.

"…이상하네요. 못열겠어요. 뚜껑이 헐겁게 닫힌거 같은데도요."


"앗! 카스밍 알겠어요! 이거, 분명, 기계장치 상자에요! 특수한 장치가 되어 있어서 정해진 방식으로

움직여야 열 수 있다구요!"

"굉장히 어려울 것 같네요…"

"후훗, 세츠나경. 이 나카스 마을 두령 카스밍에게 맡겨주세요!"

카스미가, 쿵 하고 가슴을 쳤다.


"으으으~, 못 풀겠어…"

작은 상자와 씨름해도 성과를 거두지 못한채, 카스미는 무릎을 탁 꿇었다.

"앗! 카스밍씨! '투명한 날개옷'을 사용하면 상자의 일부를 투명하게 해서 구조가 밖에서 보일지도 모릅니다!

이걸로 풀리지 않을까요…?"

"그런 물건, 짝퉁이라니까요. …음 여기를 먼저 움직이면…?"

다시 작은 상자에 도전하는 카스미는 조금 오기가 생겨서 세츠나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날개옷이 가짜가 아니라고, 그 성능을 증명하기위해, 세츠나는 날개옷을 살짝 걸쳤다.

그 순간 세츠나의 모습이 사라졌다.

"어라, 세츠나경!? 날개옷을 쓴거에요!? 저, 정말 안보이잖아…?"

"카스밍씨"

세츠나의 목소리가 발밑에서부터 들린다. 카스미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거기에는 무려 손바닥 크기가 되어버린 세츠나가 있었다.

"에엣!? 어째서 그렇게 작아진 거에요!?"

"…음, 아무래도 '투명 날개옷'이라고 하는 것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몸이 작아진다는 얘기였나 보네요"

"그럴수가! 원래대로 돌아갈수있나요!?"

"날개옷을 벗어도 돌아갈수가 없네요…"

"에―!? 물의 정령님이라면 어떻게든 해결해주지 않을까요… 으으, 그치만 상자를 열지 못하면 이 방에서 나갈 수 없고…!"

"앗! 좋은 생각이 났어요!" 그러더니, 세츠나는 뚜껑 틈새를 통해 작은 상자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작은 상자 속을 살피고, 장치를 해명한 것이다.

"아아, 알겠습니다…!"

카스미는, 세츠나가 알려준 순서대로 조작하며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불가사리 모양의 돌이 들어 있었다.

벽에 있던 똑같은 모양의 구멍에 돌을 끼워 넣으니 눈앞의 벽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내려간다.

"그 많은 난제를 극복하고 용케 여기까지 왔군요"

조개 모양의 옥좌에 아름다운 여성이 걸터앉아 있었다. 물의 정령이다.

"다른 정령들한테서 얘기는 들었습니다. 저의 시련은, 이 미궁에서 길을 잃지 않고 저에게 까지 당도하는것. …합격입니다"

기쁜 일이지만, 일단은 세츠나의 몸을 원래대로 돌려놔야 하기에 카스미와 세츠나는 물의 정령에게 부탁했다.

"에에, 저라면 원래도 되돌릴 수 있긴합니다. 문제는 다른건 다 원래대로 돌릴 수 있어도 입고 있는 옷은 돌릴 수 없어요.

새로운 옷을 준비하도록 하죠"

물의 정령이 앞쪽 대좌 위의 커다란 수반에 손을 얹었다.

드레스나 갑옷, 갑주등 여러가지 의상들이 차례차례 수면에 비쳤다. 이 신비한 광경에 카스미는 금세 빠져들었다.

"…아, 귀여워. 이거, 세츠나경이라면 잘 어울릴거 같아요! 절대로 이게 좋아요!" 


손발뿐만 아니라 배까지 드러내고 있는, 화려한 의상이다.

물의 정령은 세츠나에게 손을 뻗었고, 세츠나의 작은 몸을 거품이 감싼다.

거품이 부풀어서 톡톡 터질 때쯤이 되자, 세츠나의 몸은 원래의 크기로 돌아가고 복장은 카스미가 선택한 의상으로 변해 있었다.

"그 옷을 입고 가세요. 사람들이 말하길 전설의 보구라고 하더군요"

"엣, 이게 전설의 보구!? 보구를 고를 생각은 없었는데요!?"

"말하지 않았나요? 뭐, 어느 것을 고르든지 일단 저의 가호는 있으니까요"

"일단인가요!? 으엥, 죄송해요, 세츠나경. 좀더 좋아보이는 갑옷도 있었는데요…" 

고개를 떨구는 카스미였지만, 세츠나는 아이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자신의 보구를 보고 있었다.

"아뇨! 이건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영웅담에서만 나온 '순수한 처1녀의 갑옷'이에요! 굉장히 희귀한 물건입니다.

설마 이걸 입을 날이 오다니…!"

"정말 그걸로 괜찮은가요!?"

와글와글 떠들고 있을 때, 갑자기 수반의 표면이 흔들렸다.

"앗…!?"

"엣, 이건 무녀공주님인가요!?"

수면에 비친 것은 아유무였다. 울고 있는건지, 얼굴을 양손으로 가리고 있었다.

"어쩌지, 지금쯤 다들 곤란해 하고 있겠지… 세츠나쨩은 날 구하러 와줄까? 그치만 이런 곳까지…?

세츠나쨩, 절대 오면 안돼…. 누구도, 누구도 오면 안돼…!"


그리고는 아유무의 모습은 곧 사라졌다.

"어, 어떻하죠…?"

카스미가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가운데 세츠나는 재차 결의를 다진다. 빨리 구하고 싶어―!

순간, 세츠나의 무기, 방어구, 목걸이가 빛나기 시작하면서 세츠나의 머릿속에 직접 어떤 장면이 흘러 들어왔다.

암흑의 성. 본능적으로 알고있다. 이건 드래곤이 있는 곳이야.

"세츠나경!? 괜찮아요!?"

"네. …목적지를 알아냈습니다"

3대 정령의 시련을 이겨낸 자에게만 길이 열린다는 게 이런 거였구나―.

"자, 다녀오세요" 물의 정령은 조용히 미소지었다.


"드래곤은 커녕 아무것도 없는데요, 세츠나경"

"이상하네요, 확실히 여기인데…"

주위를 둘러보는 카스미에게, 세츠나도 당황한다. 머릿속에 떠오른 길을 더듬어 왔는데

도착한 곳은 텅빈 황야다.

"어딘가 비슷한 장소와 헷갈린거 아닌가요?"

"…아뇨, 카스밍씨, 역시 여기가 맞아요. ―보세요"

세츠나는 똑바로 천공을 가리킨다.

"아앗! 섬이 떠있어!?"

하늘을 떠다니는 부유섬. 확실하다. 저곳에 드래곤이 있다. 하지만, 어떻게 저 멀리까지 갈수 있을까.

…그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볼수 있을 것같아. 세츠나의 머리에 떠오른 것은―과거를 함께 보냈던 어느 소녀의 일이다.


----------------------------------------------------------------------


제 5 화

옛 동료인 마법사와 궁지로부터의 탈출


이건 세츠나가 여러 나라를 떠돌던 때의 이야기.

성기사라는 신분을 숨기고, 스스로의 힘만으로 각지를 떠돈다. 

왕국을 떠나서, 견문을 넓히고, 자신을 단련한다.

공주 무당을 섬기는 것으로서, 강인한 심신을 손에 넣기 위한 수행.

그 와중에 들렀던 어느 고대 유적에서의 일.


비석앞에 두 소녀가 있었다. 뽀족한 모자를 쓴 소녀와 몸이 투명한 소녀.

두 사람은 사이좋게 이야기 하고 있었지만, 후자의 소녀는 아무리 봐도 마물―고스트다.

혹시 고스트가 모자를 쓴 소녀를 잡아가려는 건가? 그러나 정화할 방법은 없다.

뒤에서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며 세츠나는 초조해했다.

하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었다고 다음 순간 깨닫는다.

모자의 소녀가 고스트를 껴안고, 귓가에 뭔가 속삭인 후, 고스트는 반짝이며 허공으로 녹아내렸기 때문이다.

"굉장해요…성스러운 마법인가요?" 세츠나는 모자를 쓴 소녀 곁으로 달려갔다.

"으왓, 깜짝 놀랐어!" "아, 죄송합니다, 그만…!"

"아하하, 신경쓰지마. 방금껀, 마법이 아니고 그냥 수다 떤거야. 나, 그 고스트랑 친구가 되었거든. 계속 혼자 여기 있어서 외로웠나 봐"


"에엣!?" 고스트의 숙원이 이루워지자, 마법을 쓰지 않고도 정화된 것이다.

"나, 마법에 대해서는 영 소질이 없거든. 이래뵈도 마법사인데…'하늘과 땅의 이치여, 끊어져라. 나의 육체는 날개이니. 플라이 윙!'"

소녀는 하늘을 날기 위한 주문을 영창했지만,  그 몸은 조금도 땅에서 뜨지 않았다.

"봐, 이런 초급 마법조차 쓸 수 없다구"

소녀는 쓴웃음을 지었지만, 세츠나에게 돌아서자, 그 미소는 금세 밝고 상냥하게 되었다.

"나는 아이! 이런 외지에서 오늘밤 노숙이지? 같이 잘래?" "괜찮을까요? 감사합니다! 저는 세츠…"

여행 도중에는 다른 이름을 쓰기로 했던 것을 잊고 있었다.



"세, 셋츠라고 합니다. 잘부탁드려요, 아이씨" "잘부탁해 셋츠! 여행의 여로를 풀어보자, 여자아이끼리!"


밤이 되고, 숲속. 두 사람은 피운 불을 앞에 둔 채,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아이의 천진난만함은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풀어주었다.

세츠나는 오랜 친구를 만난 듯한 기분이 되어 있었다. 

"우리 할머니는 위대한 마녀야. 고향의 모두들에게 친절하게 다가가서, 모두에게 미소짓지. 나도 그걸 동경해서, 엄청 공부하고, 수행의 여행도 떠났지만,…

이렇게 됐네. 완벽하게 주문을 영창해도 계속 실패야. 혹시 나는 마법을 쓸 수 없는걸까?"

"음. 주문은 어디까지나 힘을 출력하기 위한 구조군요. 완벽하게 하려는 것보다, 아이씨 다움을 추구하는게 좋지 않을까요…? 틀에 박히지 않고, 자유롭게!"



마법사는 문외한이지만, 기사의 감이다. 아이에게는 뭔가 특별한 힘이 느껴졌다.

애당초, 마법을 쓰지 않고도 고스트를 정화시킬 수 있을 정도의 잠재력을 가진 터.

"자유롭게? 음~, 글쎄, '비공식주문으로 비행식개시♪' 뭐야, 에에에에―!?"

"아, 아이씨―!?" 아이의 몸이 두둥실 떠오르더니, 푱하고 하늘 높이 날아간다. 힘이 폭주하는지, 

아이의 몸은 삐걱삐걱 묘한 궤도를 그리며 종횡무진 허공을 나른다.

"하아~깜짝이야.…그치만, 날았어, 셋츠! 고마워!"

잠시 후 지상으로 돌아온 아이가 흥분한 채 세츠나의 두 손을 잡고 붕붕 흔들었다.

"아뇨, 저는 아무것도 안한걸요" "아니아니. 아이씨, 시야가 좁았던거 같아. 셋츠의 조언 덕분이야!"

그후로, 마법을 쓸 수 있게된 아이와 잠시동안, 함께 여행했다. 아이의 마법은 힘의 제어가 되지 않아 불안정했다.

하지만, 아이가 장차 그녀의 할머니와 같은 위대한 마법사가 될 것은 이제 누가 봐도 분명했다.

"…셋츠. 뭔가 곤란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아이씨를 불러줘! 나, 이제부터 더욱 경험을 쌓아서, 굉장한 마법사가 될거니깐!

우리 우연히 만났지만 또 자연히 만날 수 있을거야! 그런 인연이니깐! "

"아하하, 간지러워요"



헤어지는 순간, 아이는 세츠나를 끌어안으며, 세츠나의 등에 원을 그리면서 쓰다듬었다. 세츠나도 이별을 아쉬워하며 아이를 안아주었다.

팔에 힘을 준채―


"흠흠. 그러니까, 그 아이라는 분이라면, 부유섬까지 갈 수 있는 마법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죠?"

세츠나로부터 옛 이야기를 들은 카스미는 머리 위의 부유섬을 노려본다.

공주 무녀를 납치한 드래곤이 그 섬의 성에 있는건 틀림없다.

그렇지만, 세츠나와 카스미만으로는 섬까지 건너 갈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아이라는 분은 지금 어디에?" "그게…모르겠어요. 고향이라던가 행선지라던가

그런거 물어본 적도 없고, 그때 헤어진 후로 한번도 못만나서…"

"에에~!? 그런건 잘 들어두시라고요, 정말!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그 아이라는 분이라면"

"아이씨를 불렀어?" 에, 하고 세츠나와 카스미는 소리가 난 쪽으로 돌아본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어느새 거기에 서있던건―

"아, 아이씨!" "아하하, 놀라게 해버렸네! 그치만, 곤란할때 불러주라고 했었지? 또 이렇게 만나서 기쁘네!"

아이는 싱긋 웃었다. 어떻게 여기 있는지 안거지? 혹시 헤어질 때 세츠나의 등에 그린 원이 뭔가 위기감지 같은 마법이었을까?

아니,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에, 그러니까, 이 분이 아이라는 분?" "응, 맞아. 잘부탁해!" 조금 낯을 가리는 듯 세츠나의 등뒤에 숨은 카스미에게 아이는 한 손을 내밀었다. 카스미가 쭈뼛쭈뼛 악수에 응한다.



세츠나는 아이에게 지금 처한 상황을 대충 설명했다.

"아이씨의 마법으로 저희를 저 섬까지 데려다 주실 수 있나요?"

"그정도는 쉬운 일이지!" 아이는 손에 있는 지팡이를 높이 들었다. 스읍. 하고 깊이 숨을 들이마신다.

"―'어둠 속 무지개여 기지개를 펴라! 내일을 보우하라, 레인보우!'"

일순간. 와, 하고 카스미와 세츠나는 자기도 모르게 환성을 질렀다.

아이의 지팡이에서 섬을 향해 반짝이는 무지개빛이 뻗어나간다.

태양이 세계에서 모습을 감추고 어둠에 싸인 하늘. 그곳에 한줄기 희망처럼 무지개가 환하게 빛났다.

"자아!' 아이가 무지개 위로 뛰어 오른다. 아이의 마법으로, 섬까지 무지개 다리가 걸린 것이다.

"DP는 꽤 사용해버렸지만, 내 몸은 지킬 수 있을 정도의 힘은 남아있으니까, 나도 함께 갈게!"

"…! 감사합니다!" 정말 든든한 말이었다. 아이를 뒤이어 세츠나가, 그리고 그 뒤를 카스미가 이어 오른다.

"그럼, 가보죠. 드래곤을 쓰러뜨리러. 그리고, 공부 무녀님을 구하러!"


세사람은 이윽고 부유섬에 내려선다. "드디어 최종 결전인거죠!" "저 성 안에 드래곤이 있구나―"

세츠나의 왼쪽에서 카스미가 양손을 주먹으로 쥐고 가슴 앞에서 불끈 쥐었다.

오른쪽에서는 아이가, 이마에 손을 얹고 앞에 보이는 거대한 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라?" 성을 올라가려던 세츠나 앞에 갑자기 하얀 새가 내려앉았다.

"어라? 이 새, 어디서 본 적이… 앗, 무녀 공주님 방에 있던 아이 아닌가요!?"

아유무가 끌려가던 축제 전날 아유무의 방을 날아다니던 흰 새다.

"어째서 여기에…, 꺄악!?" 갑자기, 뭔가 폭발한 것 같은 충격이 일어난다.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고, 다시 눈을 뜨자, 새의 모습은 사라졌다.

"와아앗!? 변신했어!?" 카스미의 말대로, 새는 사라진 것이 아닌 인간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엣!? 다, 당신은…!?" "설마 정말 여기까지 와버릴 줄이야" 어깨를 으쓱하는 그 인물을 세츠나는 알고있다.



하얀색 로브를 입고, 흰 후드를 깊이 눌러쓰고 있기에 얼굴이 보이지 않는, 햐안 소녀다.

적인지 아군인지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강하고, 아유무의 목걸이를 세츠나에게 건내준, 저 하얀사람.

"당신들이 기다리고 있는 건, 비극일까, 아니면…"

하얀 사람은 의미심장하게 입을 다문다. 그녀와 안면이 없는 카스미나 아이는 당황하고 있었다.

세츠나도 상황파악이 되지 않았지만, 여기는 스스로 응할 수밖에 없다.

"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 세츠나의 물음에도 햐안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대답 대신 천천히 후드를 벗었다, 그리고 그 얼굴을 이쪽으로 향한다―.


----------------------------------------------------------------------


최종화

소녀 아유무와 영원한 약속


"당신은…!" "아시는 분이세요? 세츠나경?"

하얀 사람의 본모습을 보고 놀라는 세츠나에게 카스미가 묻는다.

"왕도에서 오신 분입니다. 신전에서 가끔 지나치며 본 적이 있었어요"

"그렇습니다. 성기사 세츠나님. 저는 교회소속의 신관 시오리코라고 합니다."

온통 하얀 모습의 시오리코는 총명한 얼굴의 청초한 소녀였다. 

"저기, 아까 비극 머시기라고 하지 않았어? 그거 무슨 소리야?" 아이의 질문에 시오리코는 눈을 내리 깔았다. 어쩐지 괴로워 보이는 얼굴.

"…저희 일족은 대대로, 새로 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저는 가끔 그 힘을 이용해서 공주무녀님의 방에 찾아뵙곤 했습니다.

물론, 공주무녀님은 새의 정체가 저인 줄은 모르고 계십니다."

그렇게 말하고, 시오리코는 세츠나를 쏘아내듯이 바라보았다.

"…세츠나님. 당신은 이 세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에?" 갑자기 엉뚱한 방향으로 샌 이야기에 세츠나는 당황한다. 시오리코는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말한다.

"공주무녀님이 기도를 드림으로써 사람들은 태양의 은혜를 입고 있습니다. 때문에 공주무녀님이 모습을 감춘 지금, 세계는 어둠에 싸여 있습니다."

"마, 맞아요. 그래서 공주무녀님을 구하기 위해 저는 여기까지―"



"공주무녀님이 공물과 같다고 느끼신 적 있으신가요?…태양신에게 바쳐지는 제물, 같은"

"에?" "공주무녀님의 모든 자유를 대가로 이루어진 세계에 의문을 품은 적은?" "…"

"많은 사람들의 행복 앞에는, 공주무녀님 한 사람만의 희생을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세츠나는 경직되고, 말문이 막혔다. 마치 갑자기 심장을 찔린 듯하다.

"저는…"

 가치관의 뿌리를 뒤흔드는 시오리코의 말에, 사고가 뒤따르지 못한다. "…계속 여기에 서 있을 수만은 없겠죠?"

시오리코는 성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세츠나가 물음에 답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시오리코의 얼굴에도 망설임이 보였다. 그녀 또한 무엇을 믿어야 할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아무리 자문자답을 거듭해도 해답에 도달할 수 없었다.

"…거기에 대한 대답은 드래곤을 무찌르고 나서 하자!"

"그, 그러게요. 시오리코경도 함께 싸워주실 수 있을 것 같고요!"

복합한 얼굴을 하고 있던 아이와 카스미가, 과할 정도로 밝게 행동하면서 배려해준다.

그래. 여기까지 와서 멈출 수는 없다. 일단 공주무녀를 드래곤에게서 되찾지 않으면 아무 소용도 없다.

"…갑시다!" 세츠나는 두 사람과 함께 시오리코의 뒤를 따랐다.

 

"공주무녀님, 구하러 왔습니다!" 세츠나와 동료들은, 폐허나 다름없는 암흑의 성에 발을 디뎠다.

기괴하고도 넓은 방. 불빛이라곤 없는 어두운 방의 안쪽, 갑자기 큰 물체가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세츠나에게 덤벼든다.

드래곤이다.

"각오하세요! …홍련이여!"



드래곤은 날카로운 발톱을 휘두르며 날개를 폈다. 세츠나는 실체화시킨 붉은 도신을 드래곤에게 향하며 자세를 취한다.

단번에 덤벼드는 상대에게 대응하려 할 때

"…그만둬!"

귀에 익은 목소리에 세츠나는 멈춰선다. 어째선지 드래곤도 멈춰선다.

"공주무녀님!?"

어둠 속에서 떠오르는 것처럼 불쑥 모습을 드러낸건―아유무였다.

"다행이에요, 무사해서…! 안심해주세요! 바로 도와드리겠습니다!"

"아니야!" 아유무는 드래곤을 감싸듯이 드래곤의 앞에 선다.

"!? 공주무녀님… 무슨?" "…이건, 나야" "에?"

"이 드래곤은…내가 만들어 버린거야"

"…에?"

세츠나는 아유무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인가?

"…저는 공주무녀님의 방에 들어갔을 때 공주무녀님의 속마음을 듣고 있었습니다."

시오리코는 말한다. 새의 모습으로 돌아다니며 뭔가 알아챈게 있는 듯 하다

"나도 다른 애들처럼 나가서 놀아보고 싶다. 세츠나님의 여행 이야기는 늘 기대되지만, 사실은 나도 세츠나님과 함께 거리에 나가서

모두와 노래를 부르고 싶어―. 하지만, 자유롭게 지내는 것은 무녀공주로서의 입장이 허락하지 않는다."

시오리코의 얼굴이 괴로운 듯하다.

"그래서 공주무녀님은 그 감정을 가뒀습니다. 하지만 억압된 감정은 나날이 커지고―이윽고 드래곤의 형태가 되서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려했다…"

다시 생각해보면 드래곤이 나타난 건 아유무가 대제사 중에 축제에 놀러가는 것이 금지된 다음 날이다.



그게 어두운 감정으로 가득 찬 물 잔을 넘치게 하는 마지막 한 방울이었단 말인가.

"…세츠나에게만은 나의 이런 못난 모습, 보여주고 싶지 않았어…" 아유무는 드래곤의 몸을 살짝 어루만진다.

"구해주러 온건 정말 고마워. 하지만 나는 같이 돌아갈 수 없어. 그도 그럴게, 나 때문에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는걸.

전부, 내가 잘못한거야…"

세츠나는 더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아니에요, 공주무녀님 때문이 아닙니다! 제가, 저희가 당신 혼자서 모든 걸 짊어지게 해버려서…!"

아유무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소망을 품었을 뿐인데.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는데. 세츠나의 가슴이 아프게 죄인다.

"하지만 내가 한일은 용서받을 수 없어. 나는 공주무녀에 어울리지 않을 거야…"

아유무의 몸이 서서히 검게 물들어 간다. 등 뒤의 드래곤에게 침식당해 일체화가 되고 있다.

아유무는 눈을 감고 귀를 닫아버렸다. 드래곤과 몸의 경계선이 점점 애매해지고 있다.

"…세츠나님! 공주무녀님이 어두운 감정에 완전히 삼켜져버리면 드래곤은 제어 할 수 없게 됩니다!"

시오리코의 목소리에도 초조함이 보인다. 그렇게 되면 쓰러뜨릴 수밖에 없는 건가?

아유무는 편안히 잠들고, 새로운 공주무녀가 탄생하고, 그리고 세계는 원래대로 평화로워졌습니다. 해피엔딩―

이라고? 그런건 ―틀렸어.

그뤼에페 2021.11.30 14:34:36
계란초밥마루 감사합니다.. 2021.11.30 14:35:27
Chelsea_FC 2021.11.30 14:35:53
아유뿅다뿅 짤린거야 여기까지가 끝인거야? 2021.11.30 14:55:02
ㅇㅇ 순수한 처1녀의 갑옷... 112.152 2021.11.30 14:56:14
ㅇㅇ 아 간당간당하게 마지막만 짤렸네 따로 올려드림 1.233 2021.11.30 15:14:33
누마즈앞바다돌고래 SS 뚝딱이다 2021.11.30 15:30:56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4436311 일반 미친기린입갤ㅋㅋㅋ 네주 2021-12-29 0
4436310 일반 기린입갤ㅋㅋㅋㅋㅋㅋ 챠엥 2021-12-29 0
4436309 일반 기린입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ttc 2021-12-29 0
4436308 일반 원래 저곡은 이악물고 무표정으로 웃참하는거 아니었냐 ㅋㅋ 1 ATM 2021-12-29 0
4436307 일반 미친기린입갤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기랑기랑 2021-12-29 0
4436306 일반 화질 죽어욧ㅆ 1 모닝글로리 2021-12-29 0
4436305 일반 여기 구린파만올라가있는겄도좋다 ㅋㅋㅋㅋㅋㅋ 기랑기랑 2021-12-29 0
4436304 일반 진짜 핫하 온라인 뒤져라 수준인데 프렐류드 2021-12-29 0
4436303 일반 화질 떡락하는거 보소 Gerste 2021-12-29 0
4436302 일반 기린좌 그립습니다 리캬코 2021-12-29 0
4436301 일반 뒤에 누마즈 풍경 나올 때 자막 뭐라고 써진 거임? az2015 2021-12-29 0
4436300 일반 지구는 오늘도 돌아갑니다 CarDinal 2021-12-29 0
4436299 일반 후리 ㅋㅋㅋㅋㅋ 한겨울의시어마인드 2021-12-29 0
4436298 일반 북원 허그 5 낙하쟝 2021-12-29 13
4436297 일반 이곡은 진짜 라이브로좀 보고싶다 AngelSong 2021-12-29 0
4436296 일반 배경 똑같네 ㅋㅋㅋ ATM 2021-12-29 0
4436295 일반 누마즈 나오네 ㅋㅋㄲㅋㅋㅋㅋㅋㅋ 전속전진 2021-12-29 0
4436294 일반 연차 몰아쓰길 잘했어 핀펫 2021-12-29 0
4436293 일반 지모다시 존나좋아 챠엥 2021-12-29 0
4436292 일반 전광판 시강 멈춰 ㅋㅋㅋㅋㅋㅋ 호엥호엥 2021-12-29 0
4436291 일반 니들 퇴근은 한거냐? 14 ㅇㅇ 223.38 2021-12-29 0
4436290 일반 ㄴㅇㄱㄴㅇㄱ 리캬코 2021-12-29 0
4436289 일반 누마즈의 아름다운 풍광이었나 전속전진 2021-12-29 0
4436288 일반 전광판+ 조명쑈 화질떡락 멈춰어... 계란초밥마루 2021-12-29 0
4436287 일반 샤 틀렸어 ㅋㅋㅋㅋㅋㅋ 계란마리 2021-12-29 1
4436286 일반 미친기린이래ㅋㅋㅋㅋㅋㅋ Tyltyl 2021-12-29 0
4436285 일반 지금까지 세토리 완전 퇴장유도 최적화 아님 ㅋㅋㅋㅋㅋ CarDinal 2021-12-29 0
4436284 일반 화질 뭉게지네 아 ㅋㅋㅋ sttc 2021-12-29 0
4436283 일반 자매미쳐 inin12 2021-12-29 0
4436282 일반 지모대시는 기린 나와야지 ㅋㅋ 골드MA 2021-12-29 0
4436281 일반 쿠로사와자매 나죽어!!!! Rubesty 2021-12-29 0
4436280 일반 또 그 미친기린을 볼수 있는거냐? ㅇㅇ 175.223 2021-12-29 0
4436279 일반 후리 샤 ㅋㅋㅋ 쁘렝땅 2021-12-29 0
4436278 일반 누마즈 어디갔어 계란마리 2021-12-29 0
4436277 일반 오늘은 미친기린 안나오냐 ㅋㅋㅋㅋㅋ ATM 2021-12-29 0
4436276 일반 뒤에 화면 비추지 말아줘 yoha 2021-12-29 0
4436275 일반 영상 시발 약빨았네 ㅋㅋㅋㅋㅋㅋ look00 2021-12-29 0
4436274 일반 뒤에 배경 작년에도 봤는데ㅋㅋㅋ 스콜피온 2021-12-29 0
4436273 일반 배경 개정신없네 아ㅋㅋㅋㅋㅋㅋㅋ 관악맨 2021-12-29 0
4436272 일반 저 정신없는 영상도 그대로네ㅋㅋㅋ ㅁㅅㅌㄱ 2021-12-29 0
념글 삭제글 갤러리 랭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