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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번역/창작 ss 번역) 사랑을 밝히다 -2-
글쓴이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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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gall.dcinside.com/sunshine/4392974
  • 2021-11-20 17:2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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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점심을 마친 나와 시즈코는 거리를 어슬렁거렸다. 오후에 보러 갈 무대가 시작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남은 것 같다. 데이트 자체는 내가 말을 꺼냈는데 내용은 전부 시즈코에게 맡긴 채여서 좀 미안한 일을 한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는 해도.


「……하지만 무대라는 것은 같은 연극이라도 TV 드라마나 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점이 있어. 뭔지 알겠어?」

「……연기하고 있는 사람이 눈앞에 있는 것?」

「맞아! 그 말대로야, 카스미 양! 무대 연극이라고 하는 것은 연기자와 관객이 같은 장소에 있어. 말하자면 관객도 무대를 만드는 일원이야. 셰익스피어 시절에는 관중석 쪽으로 돌출된 무대에서 연기했는데, 지금보다 더 관객과 연기자의 거리가 가까웠어. 그래서 말이지……」


 이렇게 희희낙락 연극에 대해 떠드는 시즈코를 가까이 보고 있으면, 즐거워 보이고 괜찮지 않나 생각하게 된다.


「……게다가 비유 표현 등을 구사하는, 완곡한 대사 같은 것도 무대만이 가능한 것이지. 드라마나 영화는 등장인물의 모습을 그대로 오려냈기 때문에 아무래도 자연스러운 대본이 필요하지만, 무대는 등장인물의 그때그때의 감정이라든지, 어떤 의미에서는 캐리커처해서 보여주는 거잖아? 그야말로 셰익스피어가 바로 좋은 예시인데……」

「흐음…… 하지만 아까 연극의 주인공은 뭔가 심술궂지 않았어? 일부러 히로인에 대해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을 하고, 사실은 좋아하면서 말이야」

「뭐~? 그게 좋은 거라구. 들었다 놨다 밀고 당기는. 끈적한 걸지도 모르지만 그게 좋아」

「그런 거야?」

「그런 거야」


 말했겠다?

 문득 오른편을 보니 작은 잡화점이 있었다. 일명 팬시샵이라는 것.


「귀엽다……」

「응? 와아, 귀여워라」

「시간 아직 괜찮아?」

「응, 괜찮아」

「들어가보자!」

「응!」


 점내는 따뜻한 오렌지 빛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전후좌우 선반에 빽빽이 소품이 진열되어 있다. 가게 안쪽 카운터에는 점원으로 보이는 베레모를 쓴 젊은 여자가 앉아 있었다. 우리의 모습을 인식하고 인사해 왔기에, 나도 가볍게 인사하고 들어갔다. 통로는 좁기도 해서 시즈코와의 거리가 한층 가깝다. 거의 어깨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당연히 손은 잡은 채. 가게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다른 손님이 없어서 다행이다.

 그나저나, 대단한 양이다. 심지어 다 귀여워. 앤티크 숍도 겸하고 있는지 하나뿐인 상품도 많은 것 같다. 그런 상품들은 심플해서 장식이 적고 색채는 수수하지만 차분한 화려함이 있다. 전에는 이런 것에 별로 끌리지 않았는데, 최근 갑자기 눈에 띄게 되었다. 아마도 시즈코의 취미가 옮은 것이다. 반대로 시즈코는 요즘 내가 좋아했던(지금도 좋아하지만) 파스텔 색상의 폭신한 옷이나 소품들을 예전보다 더 잘 입고 다닌다.

 분명 그 만큼, 평소부터 서로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겠지.

 우와아, 왠지 부끄럽다.


「아앗」

「으, 뭐, 뭐야?」


 시즈코가 뭔가 발견한 것 같은 소리를 질렀다.


「저거 예쁘지 않아?」

「어디----아, 귀엽네」


 머그잔. 색이 다른 두 개. 비 갠 뒤의 하늘 같은 연한 블루와 갓 딴 레몬 같은 밝은 옐로우. 아무래도 한 쌍의 페어 머그컵인 것 같다. ……그런데 왜 이 두 색이지? 보통 빨강 파랑 이런 거나 흰색 검정 이런 거 아닌가. 그렇지만 이것은 무늬도 좌우 대칭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밖에도 여러가지 색이 있는 것들 중에 두 개가 아니고, 역시 처음부터 이 두 가지 색으로 한 쌍을 만든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보니 마치.


「어쩐지 우리들 같네」

「……응」


 직접 듣고 말았다.


「이거 사자. 커플로」

「응,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후후. 좋은 걸 찾아냈네. 카스미 양 이런 노란색 좋아하지?」

「응. ……아, 근데」

「어?」

「교환해 보지 않을래? 시즈코가 노란 걸로, 카스밍이 하늘색으로……」

「…………」

「……안, 될까」

「아냐. 그거 좋다, 너무 좋아」


 시즈코는 잔잔한 감동을 머금은 눈을 오렌지로 빛내며 머그잔을 바라보았다.


「그럼, 이거----」


 계산대로 가져, 라고 말하려는 순간 시즈코의 휴대폰이 울렸다.


「----어머니가 전화하셨네. 무슨 일일까…… 미안해, 잠깐 받으러 나갈게」

「그래. 아, 그럼 내가 계산해 놓을게. 지갑 줘」

「알았어. 자, 여기. 그럼 부탁해」


 이날을 위해 데이트 지갑을 준비하고 있었다. 둘이서 똑같이 돈을 넣어 두고, 지출은 여기에서 조달한다. 덕분에 누가 계산할지 귀찮게 따지지 않아도 된다.

 시즈코는 스마트폰을 귀에 대면서 가게 밖으로 나갔다.

 두 개의 머그컵을 단단히 가지고 카운터로.

 그건 그렇고 여러 가지가 있다. 커틀러리에는 식기, 스테이셔너리에는 장식품, 시계, 스트랩에 머리 장식…………

 ……………….


「이거 주세요」

「네」


 여자 점원은 앉은 채로 손을 움직이며 말했다.


「예쁜 분이시네요」


 그리고 흘끗 가게 밖으로 시선을 주었다. 시즈코를 말하는 것 같다. 혹시 다 들린 걸까.


「친구세요?」


 그리고 의미 있는 미소를 지으며 눈을 올려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간파하는 듯한 시선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만.


「아니에요」


 같은 말을 해버렸다.


「후후. 그러셨군요…… 그럼 이쪽 두 개는 따로 봉투에 담을게요」

「아, 네. ……저기, 이건 따로 계산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이건 래핑해 드릴까요?」

「괜찮나요?」

「물론이죠」

「그럼…… 부탁드려요」

「알겠습니다」



「미안해, 기다렸지」

「아니, 괜찮아. 전화는 뭐였어?」

「별 거 아니었어. 안심해」

「그래, 다행이다. 아, 다 됐어! 이거 시즈코 거야」

「응, 고마워」


 정중하게, 시즈코의 머그잔이 든 종이봉투에는 노란 리본, 내 것에는 파란 리본이 걸려 있었다. 저 점원, 의외로 보통내기가 아닌 것 같다.


「후후, 쓰는 게 기대되네」

「나도…… 참, 시간은?」

「그게…… 아직 여유는 있는데, 어떡할래? 일찍 갈까?」

「그럴까. 괜히 아슬아슬하게 들어가고 싶진 않고」

「응, 알았어」

「그럼 에스코트 좀 부탁할게, 시즈코」

「네~」


 또다시 걷기 시작한다. 머그컵이 들어 있는 종이봉투를 이미 가방을 들고 있는 쪽 손에 일부러 걸고. 이유는 한 쪽 손을 비워두기 위해서. 하지만 그 손도 곧 닫혔다. 부드러운 온기가, 잡을수록 되돌아온다.


「다음은 어떤 연극이야?」

「글쎄…… 우리하고 좀 통하는 게 있으려나」

「우리하고 통한다? 무슨 뜻이야?」

「후훗, 그건 볼 때의 재미로……」

「으-. 그럼 내용은 어떤 느낌이야? 시즈코도 아직 몰라?」

「아니, 알고 있어. 일단, 원작이 있는데…… 으음」

「왜 그래?」

「아니, 원작을 미리 말해주는 것도 괜찮을까 생각했지만. 금방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짧아서……」

「그렇구나」

「근데 말투나 그런 게 카스미 양한테는 어려울까 봐서」

「시즈코 그건 무슨 뜻이야?!」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는 사이에 그 극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니 공연 시간. 시즈코와 있으면 아무것도 아닌 시간도 순식간이다.

 객석이 어두워지면서 막이 오르더니, 무대 위도 중앙에 비추어진 스포트라이트를 제외하고는 어두워졌다. 이윽고 흔히 세계사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옛날 로마인 같은 옷을 입은 남자가 추레한 차림으로 나타났다. 내가 놀라서 옆의 시즈코를 쳐다보자 시즈코는 빙긋 눈짓을 했다. 그저 두고 보라는 것뿐이다. 안심한 듯, 혹은 두근거림이 늘어난 듯한 기분으로 하는 수 없이 앞으로 돌아선다.

 고대인 풍의 남자가 지껄여댄다. 무대 위에는 달리 아무도 없지만 누군가에게 말을 건넨다----라고 할까, 일방적으로 말을 쏟아내고 있다.

 보고 들으면서 점차 설마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과연 그건 맞는 것 같았다. 아까부터 저 남자밖에 나오지 않는다. 혼자서 계속 수다를 떤다. 아까 시즈코가 우리에게 통하는 게 있다고 말한 것이 겨우 이해되었다. 이 사람도 우리와 같이 솔로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친근감이 생겼다. 등이 저절로 펴졌다.


『……꽃은 시들기 전에야말로 꽃이다. 아름다울 때 가지를 쳐야 해. 그 사람을 제일 사랑하는 건 나다. 어떤 식으로 남에게 미움 받아도 좋아. 하루라도 빨리 그 사람을 죽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나는 마침내 이 괴로운 결심을 굳힐 뿐이었습니다.……』


 시대배경 같은 것을 아는 사람에게는 한층 더 재미있을지도 모르지만, 당연히 내가 알 턱이 없다. 어휘도 난해하다. 그렇지만, 그런데도, 소름이 돋는 연기에는 마음이 움직일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 게다가 점점 나는 극의 내용보다도 연기하고 있는 이 남성이 지금 어떤 기분으로 이 역을 연기하고, 이 대사를 토하고 있는지(말한다기보다 토한다고 하는 표현이 적절한 말투였다) 생각하기 시작해 거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나도 솔로의 즐거움은 알고 있다. 무대 위에서 오직 자신만이 나란히 앉아 있는 관객의 시선과 주목을 독차지하는 그 열락. 한번 알아버리면 이젠 다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저릿한 그 쾌감. 열광의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서 스스로 그것을 만들어내고 관장하는, 그 신적인 만족감.

 물론 솔로만의 고충도 아플 정도로 잘 알고 있다. 스포트라이트 아래 떠오른, 단 1인분 밖에 없는 그늘의 쓸쓸함, 불안함. 그렇지만 그런 것들도 전부 통틀어 충실하다. 아무리 힘들고 고생스러워도 세월이 흐르고 나면 그때는 즐거웠다고 웃을 수 있듯이, 그런 공포와 중압감마저 결국 감미로운 흥분으로 변하고 만다. 그러니까 빨리 다음을, 다음엔 더, 하고 계속 요구해 마지않는다. 이제는 거의 마약에 가깝다.

 그래서 면전에서 미친 듯이 애증을 외치는 이 남자가 지금 어떤 흥분 상태에 있는지 내 일처럼 알 것 같았다. 그렇게 되니 재미있게 느껴졌다. 남들이 재주를 부리는 모습은 보는 이도 즐겁다.

 또 어느새 막이 내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맨 처음으로 박수를 쳤다.


「어땠어? 카스미 양」

「응. 너무 재미있었어」

「재미있었어? 그래, 다행이다」


 그만 홀로 연기한 그 남자에게 자신을 덧씌운 듯한 감상이 나왔다.


「시즈코」

「응?」

「고마워. 이 연극을 골라줘서. 왠지…… 힘이 났어」

「……응! 천만에! ……그럼 나갈까?」

「그래」


 그리고 우리는 다시 세상의 틈새를 헤맨다.



8


 결전의 월요일은 으스스할 정도로 여느 때처럼 지나갔다. 평소와 같이 등교해서, 수업을 받고, 점심을 먹고, 또 수업을 받고, 벌써 방과 후. 시즈코와 만나는 일도 시즈코에게 연락이 오는 일도 없었지만, 나와 시즈코는 원래 학과가 다르기에 그런 일은 그리 드물지 않다.

 다만 드디어 부실로 가는 시간이 되자 역시 긴장됐다. 금요일에 헤어지고 나서야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은 동아리 활동이 끝난 뒤에 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그때까지는 어떻게든, 가능한 한 평소대로 행동하고 싶었다. 그런데 여기에 와서 항상 어떤 식으로 시즈코를 대했는지 전혀 모르게 되어버렸다. 어라? 항상 뭐라고 인사했지? 부실에 들어갈 때 카스밍 항상 어떻게 행동했더라? 평소대로, 라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그렇게 부실 문 앞에서 끙끙 거리는데.


「……카스미 쨩?」

「끄악?!----으, 리나코잖아…… 놀래키지 말아줘」

「아니, 문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서 있는 것도 충분히 무서우니까…… 왜 그래? 안 들어가?」

「아, 아니, 들어가. 들어갈 건데………… 시즈코 몰라?」

「시즈쿠 쨩? 시즈쿠 쨩이라면 오늘은 연극부 일이 바빠서 못 온대」

「어, 리나코 어떻게 아는거야!?」

「카스미 쨩이 물어봤잖아…… 아까 오는 길에 만났어」

「아, 그렇구나……」


 카스미 쨩 이상해. 그렇게 말하고 리나코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연극부라. ……정말일까.

 단지 어떻든, 그 장소에 시즈코는 반드시 올 것이다. 나와의 약속을 시즈코가 어길 리가 없으니까.


「………얍」


 저절로 좁혀지는 문틈으로 몸을 미끄러뜨리듯 들어섰다.

 그때부터 연습은 왠지 어느 때보다 집중할 수 있었다. 이 뒤에, 개인적으로는 생애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일대 이벤트를 앞두고 있는데. 하고 싶은 말은 정해져 있지만, 뭐라고 말할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는데. 스스로도 신기할 정도로 침착했다.

 다만 한 가지, 어딘가 부족하다----라고나 할까, 가슴에 외풍이 부는 것 같은 느낌이 든 것은 아마도 시즈코의 얼굴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다려, 시즈코」


 각오하고 있어.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했어. 수고.

 제각기 동료와 제 자신을 위로하며 오늘의 활동은 끝. 평소에는 좀 더 게으름을 피우며 학교를 나서는데, 오늘만큼은 그럴 수 없다.


「그럼 카스밍은 돌아가 볼게요!」

「응? 뭐야, 카스카스 벌써 돌아가?」

「오늘은 빠질 수 없는 일이 있어서…… 그리고 아이 선배, 카스밍이에요」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하고 부실을 나서려 했다. 문을 반쯤 열고 힐끗 뒤를 돌아본다. 키가 큰 남 돌보기 좋아하는 언니가 내 시선을 알아챘다. 모든 것을 짐작하고 있는 것 같은 카린 선배는 깜빡하고 윙크를 날렸다. 선배 나름의 격려인 것 같다.

 흥.

 선배에게 격려받을 만큼 침울해지지 않아요.

 메롱으로 돌려주고는 총총걸음으로 방을 떠난다.

 시야에서 사라지는 순간에 보였던 선배의 얼굴은 「그래야 카스밍답지」 하고 웃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처음엔 빠른 걸음 정도였던 내 다리는 어느새 달리고 있었다.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 그 밖의 잡념을 떨쳐버리고 떼어놓듯 정신없이 달렸다. 또 하나, 어떻게 해도 버릴 수 없는 마음을 움켜쥐고.

 빨리 시즈코를 보고 싶다.

 지정한 장소, 금요일에 시즈코와 헤어진 해변가에 도착했다. 아직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뭐야, 하고 실망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돌계단에 걸터앉는다. 핸드폰을 꺼내서,


「도착했어」


 라고만 보낸다. 읽음 표시가 뜨는 것조차 확인하지 않고 핸드폰을 껐다. 이곳에는 역시 아무도 없다. 사회와 분리되어 홀로 세상과 대치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다.

 내가 지금부터 마주해야만 하는 것은 단 한 명이다.

 아니, 그래도 말이지, 하고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지금 나에게 있어서 그 한사람은 이 세상 모든 것보다 중요하다.

 하네다로 착륙하는 비행기의 굉음이 대기를 찢었다. 그게 가라앉자 오히려 더 조용해진 듯했다.

 그리고 그 정적을 자글자글 모래길을 밟는 발자국 소리가 깨뜨린다.

 왔다.

 그녀다.


「…………」

「……정말, 늦었어. 시즈코」

「……미안」

「……아냐. 괜찮아」


 양다리를 가볍게 들어 올리고 반동으로 일어선다. 양팔을 똑바로 옆으로 뻗고 까치발로 서자 갑자기 홀가분한 느낌이 들었다.

 자.

 지금부터 나의 고요한 일상은 깨진다.

 아니. 깨진다…가 아니다.

 내가 깨뜨린다.


「…………」

「……있지, 시즈코」


 그녀의 정면에 서서 이름을 부르자 그녀는 움찔 어깨가 뛰어올랐다. 떨리는 손은 가방끈을 꽉 움켜쥐고, 고개를 숙인 시선은 내 발밑을 향하고 있었다.


「오늘은, 중요한 이야기가 있어서 불렀어」

「중요한, 이야기……?」

「응. 우선은………… 고마워」

「고마워……?」


 아까부터 시즈코는 앵무새처럼 말을 따라하기만 한다.

 나는 개의치 않고 이야기를 계속한다.


「응. 오늘, 여기 와줘서, 나랑 이야기하려고 해줘서. 그리고----」


 여기에 와서 불어닥친 두려움을 심호흡으로 바꿔 내뿜는다.

 스으, 하아.

 ……좋아.


「……날 좋아한다고, 말해줘서, 고마워」

「……!」


 자, 말해버렸다고.

 이젠 물러서지 않아.


「그리고」

「카스미 양, 그건 이제 됐----」

「안 됐어」

「어……?」

「시즈코가 됐대도 내가 안 됐어. 그러니까 일단 들어봐」

「…………응」


 전에 없이 순순한 시즈코다.


「계속할게? 그리고, 미안해. 그런 중요한 일을 억지로 말하게 해서」

「아니야, 카스미 양은 잘못 없어. 내가 멋대로」

「아니, 나야, 시즈코를 울린 건」

「하지만----」

「아-! 됐으니까! 내 잘못이야! 거기다 오늘은 그런 것보다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니까!」

「네, 넷」


 내가 조금 소리를 지르자 시즈코는 야단을 맞은 개처럼 작아졌다.

 뭔가 조금 귀여워 보인다.


「좋아한다고 말해 줘서, 나 정말로 기뻤어. 거짓말 아니야」

「……응」

「하지만 말이야, 카스밍은 아이돌이니까. 카스밍은 모두의 것이지, 누구 한 명만의 것은 될 수 없어」

「…………으, 응」

「그러니까………… 으………」


 지금부터 하는 말을 시즈코는 예상조차 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일주일 전의 나 자신조차 상상하지 못했다.

 어쩌면 이는 지금까지의 「나」를 밑바닥부터 뒤집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래도 이게, 내가 낸 대답이니까.


「그러니까, 그래도 괜찮다면, 좋아」

「-----어……?」


 시즈코가 간신히 고개를 들어 난처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다시 똑바로 마주하니 갑자기 온몸이 뜨거워졌다.

 머리끝까지 과열되기 전에 오로지 입을 움직였다.


「그, 그러니까! 이렇게 귀여운 카스밍이, 지금보다 더 귀여워져서 팬들에게 추켜올려진다고 해도, 시즈코가 풋 하고 웃지 않는다고 약속한다면………… 사, 사귀어도 좋다고 말하는 거야!」

「……헤?」

「뭐야?! 시즈코는 카스밍을 좋아하지?! 시즈코는 애인이 이 카스밍이면 불만이라도 있어?!」


 자신이 뭔가 의외로 엉뚱한 말을 지껄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후에에!? 그, 그런 일은, 있을 리가, 없지만……」

「그럼 뭐야?」

「…………어째서……?」

「어째서긴, 그야----」


 「너를 좋아하니까 그렇지」.

 그렇게 말하면 분명 멋있겠지만.

 역시 거짓말은 못하니까.


「……저기 시즈코. 나 이래봬도 엄청 많이 생각했어. 어떻게 해야 좋을까 하고. 근데 뭐가 뭔지 모르게 돼버렸어. 그래서 내가 시즈코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 생각해봤어」

「……응」

「그래서 말이야, 생각해 봤는데…… 나는 시즈코를 좋아해. 하지만 시즈코가 나를 향해 주는 『좋아해』와는 아마 다를 거야」

「……응. 알고 있어」

「그래도, 생각해 봤어. 꼭 같은 기분이어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을까 하고」

「…………」

「분명, 좋아한다는 기분이 어떤 것인가 하는 건, 사람마다 다르고, 그때마다 다를 거야. 그러니까, 『평범』한 『좋아해』 따윈 없고, 『옳은』 『좋아해』라는 것도 없어…… 시즈코가 지금 갖고 있는 『좋아해』도, 카스밍만을 위한 특별한 것. 그렇지? 아니라고 하면 화 낼 거야」

「서, 선택지가 없잖아…… 하지만, 그럴지도…… 아니, 맞아」

「그러니까 말이야. 나도, 나만의 『좋아해』, 시즈코만을 위한 『좋아해』를, 만약 찾을 수 있다면, 찾아보고 싶어. 시즈코와 함께」


 그래, 함께.


「그건 분명----엄청 즐거울 것 같으니까」


 그렇게 말하고 시즈코는 처음으로 표정을 풀었다.


「후후…… 카스미 양답네」

「시즈코가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거야」


 뭐, 이 대답도 나 혼자서는 절대 못 냈겠지만.

 한층 불안해 보이는 것을 눈동자에 머금고 시즈코는 겁먹은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정말로 괜찮아?」

「뭐가?」

「……후회할지도 몰라」

「괜찮아. 후회해도 좋아. 내가 결정한 일이니까」

「……나의 이 기분도 그냥, 마음의 미혹일지도 몰라」

「그러면 그래도 좋아. 혹시 그렇다고 해도, 시즈코의 지금 기분은 진짜. 그렇지?」

「…………응」

「그러니까 말야. 이제 그만 대답 좀 해줘」

「대답?」

「응. 대답」


 조금 등줄기를 펴고. 시즈코의 눈을 똑바로 본다.


「……나와, 사귀어 줄래?」


 시즈코는 그 단정한 얼굴을 찡그리고, 굵은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네…… 잘, 부탁드려요……!」

「……응. 좋아」


 시즈코는 눈물로 젖은 얼굴을 양손으로 감싼 채 내게 휘청휘청 힘없이 다가왔다.

 나는 그녀를 붙잡고 움찔거리고 있는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정말…… 시즈코는 울보네」


 모든 것을 말해냈기 때문에 탈진해서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무릎을 어떻게든 지탱하면서.

 나는 팔 안에 있는 여자친구…와의 내일을 상상하며 두근두근 들떠 있는 심장의 감촉을 즐기고 있었다.

 

 그것이 한 달여 전의 일이었다.



9


「가끔가다,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을 때가 있어」

「뭐야 갑자기」


 오렌지로 물든 역 앞 거리가 시즈코의 판타지 발언으로 인해 갑자기 그림책의 한 장면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저기 있지, 난 카스미 양이랑 이렇게 있을 수 있다는 건, 정말 꿈에도 생각 못했거든…… 그래서 혼자가 되었을 때면 문득 전부 내가 꾸고 있는 적당한 꿈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돼」

「꿈인지 생시인지?」

「후후, 맞아」


 이렇게 남의 눈도 거리낌 없이, 야외에서 한쪽 손을 잡은 채 마주보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제 와서 꿈만 같다니, 시즈코는 로맨티스트…… 정말 심지가 깊다.

 뭐 그렇지만…… 그렇겠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해 본 사람에게만 보이는 세상도 있을 것이다.

 시즈코 것은 이루어졌지만.

 하여간, 감사하라고.

 벌써 해가 지려고 했다. 시즈코가 돌아갈 길을 생각하면 슬슬 귀로로 들어서지 않으면 안 될 때. 하지만, 쥔 손에 실리는 힘은 서로 강해질 뿐.

 ……어떻게 한담. 약속은 학교 근처였지만, 돌아가는 건 아마, 시즈코가 갈아타는 시부야역에서 작별일 것이다. 여기서 시부야역까지는 정말 금방이고.

 ……응. 지금밖에 없겠네.


「……그럼 말야」

「응」

「꿈이 아니라는 걸 증명할 수 있는 게 있으면 좋겠어?」

「어?」

「잠깐만 손 좀 놔줘」

「어, 으, 응……」


 그렇게 섭섭해하지 마.

 금방 웃는 얼굴로 만들어줄게.

 가방 속을 뒤져----뒤질 필요까지는 없었다. 손상시키거나 찌그러뜨리지 않도록 가방 속 모든 물건의 맨 위에 그것은 있었다. 귀엽게 포장된 그것을 꺼내 시즈코에게 내민다.


「자, 이거」

「어, 뭐야?」

「줄게. 아까 그 잡화점에서 샀어. 머그컵과는 별개로」

「……정말?」

「응. 내 선물」


 시즈코는 조심스레 꾸러미를 받더니,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부릅뜨고 그것을 응시했다.


「……열어도 돼?」

「물론」


 포장을 뜯지 않도록 살며시 테이프를 떼어내는 시즈코. 그리고 포장지를 열고, 그것에 닿았다.


「……리본」

「응. 시즈코 항상 리본으로 머리 정리하잖아. 그리고 시즈코가 내 헤어핀 줬고. 그러니까, 그 답례라고 할까, 뭐랄까」


 시즈코가 항상 빨간 리본을 애용하고 있길래 큰맘 먹고 반대로 하얀색으로 해 보았다. 그런데 그냥 흰색이 아니라 아주 연한 분홍색 리본. 벚꽃잎 색깔 같은.


「……귀엽다」

「노란색이나 하늘색 같은 것도 생각했는데, 그건 머그잔으로 이미 해버려서 이런 걸로 해봤는데…… 마음에 들어?」

「응. 엄청. 정말…… 정말로 기뻐. 고마워, 카스미 양」

「으, 응」


 시즈코는 눈을 반짝이며 아직 리본을 바라보고 있다. 정말로 감동하면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타입일까.


「……써 봐도 돼?」

「이제 시즈코 거니까. 좋을 대로 해」

「응! 그럴게」


 시즈코는 살짝 달았던 리본을 풀었다. 그리고 익숙한 솜씨로 연분홍색 리본으로 머리를 한 올 묶었다.

 그 일련의 행동에 왠지 가슴이 뛰었다.


「어떠, 려나」


 광택이 나는 리본은 시즈코의 풍성한 갈색 머리 꼭대기에서 조신하고도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니.

 이건 분명 시즈코가 빛내고 있는 거야. 그런 것을 아무런 위화감 없이 생각한다.


「귀여워. 진짜 귀여워. 엄청」

「리본이?」

「시즈코가!」

「에헤헤헤」


 정말이지 이 아가씨는.

 ……귀엽네에.


「고마워. 소중히 간직할게」

「응. 그래도 잘 좀 써줘?」

「알고 있어. 후후후후」


 시즈코는 알기 쉽게 들떠 있다. 후, 가 많아.


「다행이다. 좋아해줘서」

「그야 물론! 카스미 양에게 받은 선물이니까」


 「카스미 양에게」라.

 그래서 그렇게 좋아하는 걸까.

 그렇다면 좋겠다.


「……시즈코」

「응?」

「……다음엔, 내가 에스코트할게」

「……정말?」

「응」

「후후. 기대된다」


 시즈코와 미래의 이야기를 한다. 먼 미래가 아니라도 좋다. 다음주 일요일의 일이든, 내일 방과 후의 일이든, 다음 쉬는 시간에 일이든, 뭐든지 좋다. 함께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말하며 기대에 미소를 띄우고, 느슨해진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같은 시간을 나누는 행복을 한번 더 되새긴다.

 그런 시간들이 참을 수 없이 좋았다.

 이윽고 시계가 6시를 알렸다. 아스팔트 위에서 뭔가를 쪼아먹던 비둘기들이 떼지어 날아간다.


「……돌아갈까?」

「응」

「……있지」

「응-?」

「손, 잡아도 돼?」

「항상 맘대로 잡잖아」

「그렇긴 하지만, 좋지?」

「……좋아. 자」

「후후. 고마워」


 오사카 시즈쿠.

 내 손을 기쁜 듯 잡는, 귀찮고 귀여운 연극소녀.

 나의 애인.


「카스미 양」

「이번엔 뭐야?」

「좋아해」

「……응」


 나도-----.

 ……아니.

 그건 또, 다음에.

ㅇㅇ 112.152 2021.11.20 17:31:03
ㅇㅇ 아직까지는 달달한데 훅 꺾지는 않겠지 - dc App 2021.11.20 17:41:48
계란마리 아직 2편이나 더 남았다니 2021.11.20 17:4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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