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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번역/창작 [SS] Forever and a day
글쓴이
Saku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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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글 주소
https://gall.dcinside.com/sunshine/4307041
  • 2021-10-03 15:20:11
 




극장


유우가 시즈쿠를 처음으로 학교 밖에서 만난 건 가을날 어느 연극 공연장에서의 일이었다. 어두컴컴한 극장에서 밖으로 문을 열고 나왔을 때, 유우는 창밖에서 스며든 빛에 긴 머리카락이 가볍게 찰랑이는 것을 보았다. 시즈쿠 쪽에서도 유우를 알아채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유우가 멋쩍게 손을 흔들자 시즈쿠는 입가에 자그마한 미소를 흘리며 걸어왔다.


“선배가 와 있는지는 전혀 몰랐어요.”

“나는 앞에서 세 번째 줄에 앉았었는데, 시즈쿠쨩은?”

“저는 일찌감치 맨 앞줄 한가운데에 앉아 있었어요. 그편이 조금 더 공부가 되니까요. 그래서 선배를 발견하지 못했나 봐요.”

“원래도 이렇게 혼자서 연극을 보러 다니니?”-유우는 극장 건물의 문을 나서며 물었다. 

“취미 겸 공부에요. 선배도 연극을 좋아하는지는 몰랐어요.”

“특별히 좋아한다기보다는, 그냥 후배가 좋아하는 게 어떤 건지 궁금했을 뿐이야.”


시즈쿠는 멈춰서서 유우에게 천천히 눈을 마주쳐왔다. 눈동자는 나무의 푸르른 그림자 아래에서 깊게 잠겨 있었고, 선선한 가을바람에 앞머리가 살짝 흔들렸다. 하늘은 가을답게 진한 바다 같은 색으로 시즈쿠의 위에 드넓게 펼쳐져 있다. 주변은 무척이나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다.


“왜 제가 좋아하는 게 궁금하세요?”

“시즈쿠쨩이 연극에 대해서 말할 때를 보면 언제나 행복해 보였으니까. 이것만으로는 안되니?”

“충분해요. 방금 보고 나온 연극, 제가 가장 좋아하는 연극이에요. 길러온 개에게 저 연극의 등장인물의 이름을 붙일 정도로.”

“분명 오필리아지? 불운한 죽음을 맞은 여자.”

“잘못 붙인 이름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렇게 붙인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저는 그 인물이 마음에 들어요. 오필리아는 사랑하는 햄릿이 자기 아버지를 죽인 것을 알고는 미쳐버리지만, 그렇지만 여전히 그를 사랑했고, 결국에는 우아한 죽음을 맞은 거에요.”


시즈쿠는 평소에 연극에 대해 이야기할 때보다는 한층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유우는 문득, 자신이 알고 있던 여태까지의 시즈쿠의 모습은 아주 단편적인 한순간에 불과하다는, 즉 그것만으로는 이 배우를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연극이 취미이자 목표인 착실한 후배라고는 쉽게 단정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난 희극이 더 좋네.”

“어째서요?”

“그렇게 묻는다면-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항상 즐거운 일로 하루를 가득 채우기에 바쁘거든.”

“선배다운 대답이네요.”

“나 답다는 건?”

“제가 보는 선배의 모습은 늘 그렇다는 이야기에요. 음악과 전과도 그냥, 하고 싶어서 해본 것에 불과한 거죠? 그리고는 보기 좋게 성공해버리고.”


시즈쿠는 왜 자신은 유우의 늘 싱글거리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생각했다. 유우는 어느 때 보아도 그 얼굴이나 말투에 조금의 우울도 묻어나지 않는 선배였고, 미숙한 배우 특유의 고민에 쉽게 빠져들고 마는 자신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류의 사람이었다. 동호회 내에서 모두를 도와주는 존재이기는 하지만 특별히 이 사람과 친해지고 싶다고는 느껴본 적이 없었다.


“혹시 내가 여기 있어서 기분이 상했니?”-이 솔직하다 못해 저돌적인 질문에 시즈쿠는 대사를 까먹은 배우처럼 크게 당황했다.

“그렇게 들렸다면 죄송해요. 단지 유우 선배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에요. 그렇게 늘 밝은 기분으로 살 수 있어서 좋겠다는, 그런 생각이요. 평소에 선배를 그다지 나쁘게 보고 있던 건 아니에요. 다만 선배를 가만히 보고 있자면 꼭 저와는 다른 어떤 곳에 살고 있는 사람을 보는 것만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어요.”

“시즈쿠쨩은 가끔 보면 참 이상한 면이 있네.”

“선배가 더 이상해요.”


유우는 괜히 어색해져서 멋쩍게 웃었다. 시즈쿠는 그런 유우의 웃음이 무의식적으로 흘리는 의미 없는 미소임을 알면서도 어쩐지 조금 기분이 풀렸다. 시즈쿠는 문득, 이 사람을 조금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은 미숙한 음악가를, 조금은 이상한 선배를.


“바로 가마쿠라로 돌아가는 거니?”

“기껏 도쿄에 온 김에 조금 더 둘러보려고요. 함께 어울려 주실래요?”



연극 연습


유우는 11월 어느 날 시즈쿠의 집을 방문했다. 시즈쿠의 집을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대문에서 20미터는 쭉 걸어가야 2층짜리 저택의 현관에 닿는다. 관리인을 두는 건지 앙상한 나무만 남은 정원의 낙엽들은 한곳으로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시즈쿠는 유우를 마침 기다리고 있던 건지 정원 한가운데에 가만히 서서 선배를 향해 다정한 듯 보이는 손짓을 했다.


2층에 있는 시즈쿠의 방으로 함께 올라가면서 시즈쿠가 말했다. “선배가 먼저 연극 연습을 도와주고 싶다고 하실 줄은 몰랐어요.”

“궁금했거든. 여러 가지로.”


방과후 연극부 연습실에서 나온 시즈쿠를 음악실에서 나온 유우가 무심코 마주친 건 얼마 전의 일이었다. 유우는 우연의 일치로 시즈쿠와 함께 연극을 보았던 것을 떠올리고는, 순전한 호기심으로 후배의 연습을 보고 싶고, 허락만 해준다면 자신이 도와주고 싶다고 제안했던 것이다. 시즈쿠는 잠시 고민했지만  이 사람 앞에서는 어쩐지 순수한 아이를 대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 거절할 생각은 나지 않았다.


고풍스러운 방 안에서 커튼은 활짝 열려서 따스한 가을 햇빛이 방 안에 드리워지고 있었다. 시즈쿠는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대본을 들고 한 부분을 펼쳐서 유우에게 내밀었다. 유우가 그 부분을 다 읽는 동안 시즈쿠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시즈쿠는 무척이나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선배는 지금의 이 분위기를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하고 상상했다.


“조금 어려운걸. 이 극의 배경은 뭐니?”

“19세기 이탈리아 귀족계요. 생소하죠? 이번 겨울에 하게 되는데 저는 여주인공이나 다름없는 역할을 맡았어요. 선배가 그 상대 역을 연기해 주시면 돼요.”

“상대 역은 누가 하기로 되어 있어?”

“연극부의 부장- 3학년에 머리가 짧으신 분이요.” 시즈쿠는 유우가 왜 그런 것까지 물어보는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 해보자. 시즈쿠쨩은 대본을 전부 외운 거니?”

“그럼요. 괜찮으실 때 시작해 주세요.” 시즈쿠는 침대 위에 사뿐히 걸터앉았다. 유우가 첫 발음을 내딛기까지의 시간이 시즈쿠에게는 한참이나 길게 느껴졌다.

......


“마리아, 잠깐만 이대로 있어 줘요. 내 생각을 전부 말하게 해 줘요.”

시즈쿠가 일어났다. 천천히 말하는 시즈쿠의 그 목소리에는 분명 감정이 담겨 있었다.

“용서해 주세요. 저는 더 이상 당신 말을 들을 수 없어요.”

“아무 말도 하지 않을게요. 아주 잠깐이라도 곁에 있어 줘요, 마리아...... 나는 그저- 당신에게 다시 전에 드렸던 그 말을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그 숲에서, 내겐 잊을 수 없는 그 시간, 거의 성스러운 시간으로 기억하고 있는 그때에 했던 말을......” 유우는 아직 대사를 다 외우지 못한 배우가 흔히 그러하듯이, 대본을 힐끗거리면서도 상대방을 똑바로 바라보는 일을 놓치지 않았다.

“기억하고 있어요.” -시즈쿠는 오늘은 자신의 연기하는 목소리가 무척 자연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마치 자신이 정말 마리아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때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여러 번 마음속으로 당신을 불렀는지 말씀드릴 수 없을 겁니다. 당신에게 나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기만 해도 온몸이 행복으로 떨렸고...... 잊지 않았죠? 10월 그날 저녁, 우리 단둘이 달렸던 그 숲을요?”-시즈쿠는 동의하듯 고래를 살짝 끄덕였다.

“당신이 내게 했던 말은?” 유우는 나지막이, 하지만 숨겨둔 열정이 뜨겁게 드러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전부 기억해요.” 시즈쿠는 선배를 향해 한 발짝, 그리고 또 한 발짝 움직였다. 이제 나올 대사가 가장 중요하다. “전부, 전부. 제 마음을 왜 감추겠어요? 당신의 물음 속에 있는 다른 질문이 뭔지 알아요. 당신은 아직도 제가......” 시즈쿠는 문득, 방 안이 너무 덥고 또 얼굴이 너무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 대사가 도저히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잠깐 쉬어요.” 시즈쿠가 선배로부터 다시 몇 발짝 뒤로 떨어지며 말했다. 유우의 얼굴에 어느 때와 같이 아이다운 장난기가 나타나 있었다.

“그치만, 아직 마리아의 대사를 전부 다 하지 않았잖아.”-이 감미로운 음성에 시즈쿠는 선배로부터 의외의 면을 발견하고는 조금 놀랐다.

“대사를 순간 까먹어서 그래요. 연습한 지 오래되지 않은 연극이거든요. 죄송해요.”

“그래?”-다음에 나올 대사가 어떤 것이었는지 사실 시즈쿠는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당신은 아직도 제가 당신을 사랑하는지 묻고 있는 거지요-’ 단지 대사일 뿐인데도 이전에 연극부의 부장과 연습했을 때와는 달리 어쩐지 그 대사를 내뱉는 자신을 상상하기만 해도 시즈쿠는 몹시 부끄러워지는 것 같았다. 그 감정에 시즈쿠는 선배가 의외로 연기를 잘했기 때문이라는 주석을 붙였다. 


“선배, 정말 연기 처음 하는 거 맞으세요?”

“응, 처음이야. 경험자가 보기에는 어떤 것 같니?”

“처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하셨어요. 마치 정말로 그 인물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선배가 연극부에 들어오셨어도 좋았을 텐데.”

“과찬이야. 난 그냥 되는 대로 해봤을 뿐인데.”


유우는 시즈쿠가 그토록 연극을 사랑하는 이유를, 이 후배를 조금은 알 것도 같았으나 어쩐지 지금의 이 대화마저도 꼭 연극의 일부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제 생각에 선배는, 어떤 걸 하더라도 잘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동호회의 모두를 도와주기 위해 시작했던 피아노도, 반년도 채 되지 않아 바로 음악과로 넘어가실 정도고...... 지금 연극도 의외로 느낌이 있는 걸 보면 뭐든지 잘 해서 부럽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 않아. 나는- 나는, 시즈쿠쨩이 생각하는 것만큼 대단한 사람은 아닌걸. 평소에는 어떻게 보고 있을지 몰라도 의외로 주위를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이런저런 실수도 곧잘 하고......” 


시즈쿠는 선배의 세심한 대답에 어쩐지 선배를 잘못 대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유우는 분명히 평소처럼 자신이 그녀를 가볍게 대해주기를 원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시즈쿠는 종종 딱딱하다는 소리를 듣기는 하지만 동급생들과 있을 때는 그렇지 않다. 단지 선배 같은 사람을 가볍게 대할 자신이 나지 않았을 뿐이다. 어째서 선배만은 가볍게 대하기 어렵다고 자문한다면, 그건 분명......



일기


유우는 그동안에 자신이 습관처럼 써왔던 일기를 다시 읽어보면서 문득 특이한 점을 발견해냈다. 앞부분은 스쿨 아이돌에 대한 이야기, 아유무와 함께 나누었던 대화에 관한 짤막한 감상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연기나 연극, 그러니까 시즈쿠와 결부된 생각들이 일기에는 적혀 있는 것이다. 그 중에 유독 재밌는 내용은 그 후배와 어느 날 나누었던 대화를 전부 적은 것이었는데, 자신이 한 말보다는 다른 사람이 한 말이 유독 기억에 남아 시즈쿠가 했던 말만 적고 읽어보니 당장이라도 그녀와 꼭 대화를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부실에 일찍 오셨네요, 선배. 아니요, 연극도 동호회도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건데 힘들지는 않아요. 오히려 보람있고...... 다른 분들은 아직 안 오셨나 봐요. 잠깐 옆에서 쉬어도 될까요? 오늘만큼은 피곤하네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선배도 그 영화를 보셨어요? 저도 그 장면이 좋아요. 빗속을 가로질러 뛰어가는 장면 말이에요. 제가요? 선배도 참, 그런 칭찬을 한다고 해도 저는...... 무슨 말이냐고요? 선배는 모르셔도 좋아요. 정말로 안 가르쳐 드릴거니까요. 또 그렇게 웃으신다. 이번 주말은 연극부 연습이 있어서요, 본방이 얼마 남지 않아서...... 죄송해요. 네. 상대역은 연극부의 부장님이 맞는데요, 그게 그렇게 신경쓰이세요? 선배는 정말 오늘따라 더 이상하시네요. 부장이 연기를 선배보다 더 잘하는 게 당연하잖아요. 정 그렇다면 내년부터는 연극부로...... 농담이에요. 아, 저기 누구 온다.


어디를 가냐고요? 연극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아뇨, 그냥 먼저 돌아가셔도 돼요. 분명 신경 쓰는 사람이 있을테고......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요. 다들 무대를 앞두고 예민하니까요. 선배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직전에는 조용히 혼자 연습해보고 싶은걸요...... 무대는 당연히 보러 와주실 거죠? 네. 꼭 맨 앞자리에 와주세요. 


정말, 분명히 연극부 연습이 또 있으니 먼저 가시라고 말해드렸었는데...... 누가 보면 오해한다구요? 벌써 겨울이에요. 너무 춥네요. 네, 이러고 있으면 별로 춥지는 않네요. 이번 연극이 끝난 주말이면...... 좋아요, 선배랑 가는 거라면. 아뇨, 쉬고 싶은 때까지 연극을 보지는 않아요. 가끔은 유원지도 나쁘지 않겠지요. 네, 저는 별로 가본 적이 없어요. 애초에 중학생 때는 그다지 같이 갈만한 친구도 없었고...... 카스미 씨요? 카스미 씨와는 여름에 한 번 갔었어요. 꼭 역까지 같이 가주시지 않아도 괜찮았었는데. 내일 또 봐요. 선배......



관람차


유우는 유원지 앞 입구에서 시즈쿠를 기다리고 있었다. 옷을 새로 샀다. 평소에 입던 대로 입고 가도 그 후배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겠지만 어쩐지 그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키가 작아서 거의 발목까지 내려오는 갈색 코트는 아직까지는 어색한 옷이었다. 춥기도 해서 머리를 완전히 풀었는데 시즈쿠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잘 모르겠다고 유우는 한참이나 추위에 떨면서 생각하고 있었다.


선배- 유우는 뒤를 돌아보았다. 빨간 코트 차림의 그녀는, 처음 보는 리본을 머리에 하고 빛이 춤추는 듯한 우아한 걸음으로 유우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유우는 겨울 공기에 빨갛게 상기된 볼에 눈길을 주면서, 피부가 무척이나 부드러우리라는 상상을 했다. 그 얼굴에서 작은 불꽃 같은 미소 한 점이 일렁이다가 스치듯이 사라졌다. 


“죄송해요. 오래 기다리셨어요?”

“아니야. 정말 방금 전에 도착했어. 표는 사놨으니까 바로 들어가자.”  


유우는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곧 잊고 신이 나서 시즈쿠를 이리저리 끌고 다녔다. 처음에는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금세 간 곳이 롤러코스터 앞의 기나긴 줄이었다. 유우는 꼭 소풍을 간 어린아이처럼 들떠있는 반면에 시즈쿠는 선배에게 마음대로 끌려다니는 것이 어쩐지 불편하다는 마음이 되었다.


“재밌겠지?”

“저, 이런 거 진짜 못 타니까요.”

“무섭니?”

“솔직히, 네. 그래서 여태까지 한 번도 타본 적이 없어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걸 즐기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카나타 씨라던가......”

“나랑 같이 탄다면 분명 괜찮지 않을까? 처음에는 누구나 그래. 나도 처음 탄 건 의외로 몇 년 전에 아유무가 먼저 타보자고 해서 타봤던 거고...... 내가 바로 옆자리에 타줄게.”

“이번 한 번만이에요.”  


......


“괜찮니?”

“괜찮지만 이런 걸 타는 건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할래요.”

“그래? 그럼 시즈쿠쨩의 유일무이한 경험 중 하나에는 옆에 내가 있었던 게 되는 거네.”

“그렇게 되려나요? 아, 저기 보세요.”


시즈쿠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서는 퍼레이드가 진행되고 있었다. 뮤지컬에서 볼 법한 캐릭터 분장을 한 사람들, 선두를 맡은 음악대가 내는 연주 소리, 형형색색으로 돌아가는 불빛들, 그리고 퍼레이드를 둘러싼 사람들 사이에서 둘은 화려한 음악 소리에 묻혀버린 떨림은 알지도 못한 채 손을 따스하게 맞잡고 있었다. 시즈쿠가 문득 놀란 이유는, 손을 생각지도 못한 채 잡고 있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지금의 이 접촉이 무척이나 평범한 일상의 단편적인 한순간처럼 자신에게는 큰 의미가 없는 행위였다는 것이었다.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생각하기 나름이었다.


“저런 게 좋니?”

“아니요. 그냥 봤을 뿐이에요.”

“무대에 서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려나.”

“많은 사람 앞에 나선다는 점에서는 그렇지만요...... 배우와 피아니스트는 어딘가 비슷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난 피아니스트는 아닌걸. 졸업하면 작곡 쪽 일을 할까 고민하던 참이었어.”


시즈쿠는 그동안 당연히 유우가 무대 위에 서는 피아니스트가 될 줄로만 알고 있었기에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무대 위에 서는 것과 똑같이 선배 또한 무대 위에 설 게 분명하다고, 그런 식으로 자신을 선배에게 이상하게 겹쳐보고 있었다. 선배를 자기 나름대로는 이해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다시금 그녀와의 미묘한 색조의 차이를 느끼는 것이었다.


......


12월의 태양은 무척이나 짧은 것이어서, 태양은 벌써 하늘 위 구름을 붉게 물들여가며 서쪽 끝으로 떨어져 가고 있었다. 시즈쿠는, 오늘의 만남을 이대로 끝내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걸 발견해냈고 유우에게서도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비슷한 감정의 흔적을 찾아내려고 했다. 유우는 시즈쿠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 시선을 따라가 보니 시즈쿠는 그곳에 커다란 관람차 한 대가 석양을 받으며 느긋하게 돌고 있는 것을 알았다.


“마지막으로, 어때? 분명히 지금 관람차에 타면 석양이 지는 모습을 높은 곳에서 볼 수 있을 거야.”

“좋아요.”


시즈쿠는 유우의 당당한 발걸음을 뒤따라갔다. 어쩐지 손이 허전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지만 그런 느낌은 분명히 심해진 추위 덕분이었다. 관람차에 타고 나서야 자신이 관람차를 타는 건 지금이 처음이라는 걸 알았다. 관람차는 서서히,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추위에 언 손을 따뜻하게 하고 싶다는 마음도 들지 않고 붕 뜨는 듯한 느낌에 홀린 듯이 멍해지는 것이었다.


곧 그들이 타고 있는 칸이 중간까지 올라가니 태양이 보였다. 타오르는 저녁 하늘의 빛으로부터 무심코 고개를 돌리던 유우는 시즈쿠의 붉게 상기된 얼굴과 마주했다. 그리고 자신도 이런 표정을 짓고 있을지 상상했다. 만약 그렇다면 그건 발그레한 노을빛 탓이다. 이 순간 안에서 시즈쿠의 침묵은 비밀스러웠고 유우에게는 그 비밀을 지금이 아니면 밝혀낼 수 없고 또 밝혀내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이는 것이었다.


작고 새하얀 것이 스쳐 지나가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뜨겁게 타오르는 태양을 배경으로, 눈송이들이 주홍빛을 흘리며 그들 주위로 하늘하늘 떨어져 내렸다...... 


시즈쿠는 손을 잡으려 하지도, 무언가 말을 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단지 눈을 꼭 연기하듯이 지긋이 감았을 뿐이었다. 이제는 립스틱을 발랐음을 알아챌 수 있는 입술만이 유우가 주시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그 몸짓이 선배를 놀리거나 시험해보기 위한 연극이라고 생각했다면 유우는 상처받았겠지만, 높이가 절정에 다다른 관람차의 흔들림에 힘입어 상냥하게 입술을 포개어 볼 수 있었다.  


비밀에 닿았다고 생각한 순간, 또 한 번의 흔들거림이 두 사람의 입술을 떼어 놓았다. 그 간격을 다시 좁혀 온 것은 시즈쿠였다. 어느샌가 잡은 손을 마음의 증표 삼아 시즈쿠는 서로의 마음의 빛깔을 확인해 보려고 했다. 눈을 감고 있으면서도 상대방을 완전히 알 수 있게 되자 입맞춤은 한층 부드러워지고 대담해졌다. 시즈쿠는 따스함이 몸속에 녹아들어 퍼져감을 느끼면서, 키스가 이토록 기쁜 건 이 감촉 때문인지 아니면 이 순간만큼은 서로의 마음을 의심할 이유가 불타 사라져버렸기 때문인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남아 있던 망설임은 입맞춤을 통해 한순간에 언제 그랬다는 듯이 깨끗이 씻기고, 그 자리를 처음 맛보는 종류의 행복이 가득 채웠다. 


유우는 키스를 하면서 후배에게 가볍게 붙잡히지 않은 손으로 그녀를 쓰다듬고 싶어했다. 조심스레 뻗은 손은 유우의 머릿속에서는 쑥스러움에 발그레져 있는 뺨에 닿았고, 시즈쿠의 뺨이 조금도 차갑지 않고 뜨겁고 부드럽다는 사실에 유우는 부끄러운 건 같았구나 하고 안심했다. 기나긴 입맞춤에서 눈을 뜰 때, 그건 마치 달콤한 꿈에서 깨어나는 화사한 아침과도 같아서 다시 그 꿈으로 들어가려고 해도 눈꺼풀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에 결국에는 눈을 뜨고 마는, 그런 아쉬움으로 둘은 가득 차 있었다. 그때는 이미 타올라 사라져버린 태양의 잿빛 어둠이 서로의 표정을 가려주었다. 


관람차 안에서와 똑같이 관람차에서 내려 유원지에서 나가기까지 둘은 침묵을 지켰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른 의미의 침묵임을 서로 알고 있었다. 먼저 말을 꺼내는 쪽이 조금 더 용기가 필요해진, 더 이상 일상 속의 자연스러운 침묵이 아니게 되어 버렸다. 시즈쿠의 뺨에 눈송이 하나가 가벼이 내려앉았으나 뜨거운 뺨에 녹아들어 곧 눈물 같은 이슬이 맺혔다.  


유우는 유원지 입구에서 조금 지나 몇 시간 전에 지나왔던 역으로 가는 길에서 시즈쿠를 따라 발걸음을 멈추었다. 시즈쿠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과 동시에 그토록 확인해 보고 싶었던 표정을 유우는 마주할 수 있었다. 그 표정을 보았어도 유우는 후배에게서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었는데, 그건 다만 시즈쿠에게서는 여태껏 보지 못한 낯선 표정이었다는 이유였다. 낯설지만 그 의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시즈쿠가 하얀 입김과 함께 입을 열기까지의 그 순간이, 유우에게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길게 느껴졌다...... “선배, 괜찮으시다면 오늘은......”



Forever and a day


유우가 3학년이 된 어느 여름날 시즈쿠의 방에 들어갔을 때 그녀는 알몸이었다. 맨몸에 하이힐만 신고 뒤에는 전신 거울이 있었는데 그곳에 아름답게 이어진 허리에서부터 등까지의 윤곽이 비추어지고 있었다. 부끄러운 건지 아니면 흥분을 감추기 위함인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고, 유우는 옷을 벗으려는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가만히 다가가 시즈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살결에 시즈쿠의 상냥한 손길이 닿는 것이 느껴졌다.


정사가 끝난 뒤 유우는 나른함과 여름 특유의 습기에 젖어 한 손을 후배의 허리 위에 올려둔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어.” “어떤 건데요?” 시즈쿠의 숨결이 뺨에 와닿는 것을 느꼈다. “한참이나 고민했던 건데, 이걸 처음 말하는 건 시즈쿠가 아니면 안될 것 같아- 씻고 나올게.” “같이 들어갈래요.” 


시즈쿠는 잠깐 유우가 무엇을 전하고 싶어 하는지 생각해봤지만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시즈쿠가 아니면 안될 것 같아’ 라니. 선배의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쉽게 감명받아버리는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지 시즈쿠는 물을 맞으면서 생각하고, 곧 그런 반응은 사랑의 특징이라고 결론지었다.


...... 두 사람은 다시 옷을 입고 침대 위에 걸터 앉았다. 시즈쿠는 선배가 확신을 가질 수 있을 때까지 차분하게 곁에서 침묵을 지켜주고 있었다. 사랑하는 이의 앞날을 함께 비추어볼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쁜 것인지 시즈쿠는 새삼스럽게 지금 또 한번 확인하고 있었다. 그리고 유원지에서의 일 이후의 나날들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바뀌어 갔는가를.


“나, 피아니스트가 되려고.”-이토록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를, 시즈쿠는 오직 자신의 연인에게서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라고 생각했다.

“어째서인지 물어도 될까요?”

“시즈쿠를 보면서 느꼈어. 무대 위에 서서 자신의 최선을 보여주는 게, 자신의 전부를 표현해내는 게 얼마나 근사한 일일까 하고. 무대 위에서의 시즈쿠는 항상 행복해 보였고, 이토록 가까이 있으면서도 시즈쿠의 그런 기분을 나만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저를 위해서 그런 꿈을 정하는 건-” “시즈쿠를 위해서가 아니야. 어디까지나 나는 내가 두근거린다고 느낀 일은 무엇이든지 체험해 보고 싶을 뿐이야. 단지 시즈쿠는 그걸 발견하도록 도와준 거야.”

“무대 위에 서는 건, 행복하면서도 동시에 괴로운 일이에요. 더군다나 선배는 피아노를 시작하신 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요. 분명히 남들보다는-” “알고 있어. 그런 건.”


유우의 말에는 일말의 체념도 또는 반대로 터무니없이 이상적인 느낌도 없었다. 시즈쿠는 문득 자신이 배우를 꿈꾸어오면서 체험했던 감정을 선배도 똑같이 체감하게 되어버리지는 않을까 두려워졌다. 그리고 곧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언젠가 사랑의 자리는 없어져 버리는 순간이 온다는 예감이었고 시즈쿠는 유우의 상냥한 눈길을 마주하면서 형용할 수 없는 불안한 암시를 느꼈다.


“저, 키스해 주세요.” 


유우는 시즈쿠의 허리를 껴안고 오랫동안 키스했다.


......아까 소리를 너무 크게 질러버린 건 아닐까요. 어차피 집에는 아무도 없잖아. 그런 날만 나를 부르면서. 그치만 바로 옆집이 부모님이랑 친하시단 말이에요. 만약 들켜버리면 정식으로 말씀드리자. 저희, 아직 고등학생이라고요? 눈 깜짝할 사이에 졸업해있을 기분이 들어. 선배가 떠나버리면 저는 어떻게 앞으로 학교를 다녀요. 최선을 다해서 시즈쿠를 만날게. 대학에 가면 더 매력적인 피아니스트와 만나 버리는 거 아니에요?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말아줘. 언제까지나 나는 시즈쿠 외에는 그 누구도 이토록 사랑할 수 없을 것만 같다고 항상 생각하는걸. 선배도 참......

내일은 어떻게 하실래요? 아직 오늘도 시간이 조금 남았는데? 그냥 가고 싶은 곳이 있느냐고 묻는 거에요. 시즈쿠와 가는 거라면 어디든지 좋아. 극장이든, 연주회든, 유원지든, 집이든, 어디든 간에 말이야. 선배, 갑작스럽지만 선배는 그럼 이제부터는 지금 당장이라도 연습을 하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요? 맞아. 하지만 그만큼 시즈쿠와 함께 있는 시간이 소중한걸. 그런 말을 듣는 건 물론 기쁘지만...... 저는 선배가 좌절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요. 부담스럽게 들렸다면 죄송해요. 한 번도 선배에게서는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으니까 선배가 가뿐히 합격했으면 좋겠어요.  

밤이 깊어졌네요. 졸리니? 아뇨. 조금 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보고 싶은 영화도 있었고...... 선배. 응? 가끔 그런 생각이 들지 않나요? 언제까지 이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지. 영원히, 라고 하면 거짓말이 되려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거니까. 그러면 이렇게 해요. Forever and a day. 셰익스피어? 알고 계셨어요? 시즈쿠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으니까. 선배는 정말 치사한 사람이에요. 선배가 얼마나 저에게 소중한 사람으로 느껴지는지 선배는 꿈에도 모를 거에요. 언젠가는 알게 될까? 언젠가는요......


시즈쿠는 문득, 자신들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고등학생이고, 영원을 말하기에는 너무 어리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자 이 모든 것이 꼭 연극처럼, 기나긴 연극의 제 1막이 지금 막 내려가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마치 한숨을 자고 일어나면 제 2막이 시작되어 있고, 그때에는 이미 시간이 흘러 자신도 선배를 따라 졸업을 앞두고만 있을 것 같았다. (完)






-


수사물 SS를 3편 정도 써놨는데 현생 때문에 아무래도 당분간은 못 올릴 것 같네. 겨울에나 올라갈 듯.

계란마리 ㅗㅜㅑ 관람차 부분에서 감탄했다 다음 SS도 기대할게 2021.10.03 15:33:32
Sakulight 그 부분 특히 힘줬는데 알아봐주니 고맙네 ㅋㅋ 2021.10.03 15:3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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