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편
5.
낙엽들이 떨어진 후 매서운 바람이 불어왔다-, 라고 하기에는 어쩐지 귀여운 도쿄의 겨울, 눈으로 뒤덮인 캠퍼스 위로 새로운 눈송이들이 자신보다 먼저 땅에 도착한 눈 위로 안착하기 시작했다.
전체적으로 언덕이 없는 평탄한 캠퍼스였지만 곳곳에 빙판길이 생겨 미끄러질뻔했다. 상경하고 나서 처음 느껴보는 겨울의 향기에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벤치에 몸을 맡겼다.
혼란스러운 시간들이 지나 편안한 매일매일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당황할 때마다 불쑥 튀어나와 나를 곤란하게 했던 시즈오카 사투리도 이제는 완전히 나오지 않고, 처음엔 어떻게 끼니를 해결해야 할 지 막막했지만 이제는 가뿐하게 식사를 준비하거나 귀찮으면 우버이츠를 사용해 먹었다.(도쿄의 배달음식은 엄청난 미래의 문물이여서 그런지 미친듯이 시켜먹다가 식단조절을 실패한 적도 있었다.) 처음엔 체력이 따라가지 못 하던 댄스동아리도 이젠 가뿐히 소화할 수 있게 되었고, 생전 처음 해 보게 되는 연애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도쿄로 올라온 뒤 우울감과 무기력함에 빠져 막막했던 18살의 누마즈 소녀의 엄청난 성장이였다.
나는 가끔씩 생각하곤 한다. 이 모든 것을 이루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 노랫소리가 아니였을까. 고난에 빠진 나에게 천사가 내려와 힘을 준 것이 아닐까. 하며 그 목소리를 다시 생각해내곤 한다. 이제 그 목소리를 찾아내는 건 그만뒀지만 언젠가 다시 만나보고 싶었다.
벤치위에 올려진 차가운 손에 따뜻한 온기가 가시지 않은 캔이 겹쳐졌다. 푸른눈에 단발, 사랑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나의 소중한 연인이 바라보고 있었다.
“앗, 깜짝 놀랐다고 아리사”
“많이 놀랐어 마루짱?”
“아무튼,, 갑자기 왠 오뎅캔이야?”
“겨울이 되니까 갑자기 옛날 생각이 좀 나서”
“오 어떤 기억이야?”
“옛날옛적 내가 아직 중학생이였을때 일본의 자판기가 아직 서툴러서 따뜻한 음료수인줄 알고 언니에게 오뎅캔을 준 적이 있었어 ㅋㅋㅋㅋ”
“에리씨도 많이 당황했었겠네 왠지 귀여울 거 같아. 중학생인 아리사”
“그렇지 ㅎㅎ 마루짱 혹시 24일이랑 25일에 시간 돼?”
“응 그 때면 알바도 끝날 때니까 가능할텐데 왜?”
“하코네 가자! 사실 멋대로 여관 예약해놨어!”
“갑자기??? 며칠전에 온천 얘길 하긴 했지만 행동력 너무 좋은 거 아냐 ??
뭐…. 나는 좋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