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말하고 웃는 치짱의 모습을,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따사로운 햇살이 창문너머로 스며들어와
치짱의 모습을 비추고 있는 거울에 반짝이고 있었다
어째서....
그런 말을 한걸까
그냥 말하지 않고 있어주었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입술을 꽉 깨물고 있는 나를 보며
치짱은 말을 이어나갔다
"카논짱이 쿠쿠짱을 좋아한다는건 알고 있었어...
하지만 그걸로는 어떻게 해도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어서...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카논짱을 위해 참아야 한다는걸 알고 있었지만,
이 마음을 전해두지 않으면 나 분명...."
그만.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어째서 나를 또 힘들게 하는거야
이제 막 마음의 결정을 내린 참이었는데
왜.......
치짱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다
아니, 지금의 표정만큼은 보고 싶지 않아
하지만 이대로 도망친다고 해결되는건
아무것도 없다
제대로 이 이야기의 결말을,
내 손으로 직접
매듭지어야만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용기를 내어
줄곧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아.....
안될 것 같아...
나로서는 도저히....
치짱을 상처 입힐 수 없어
치짱을 괴롭게 하고 싶지 않아
힘겹게 고개를 든 순간
치짱의 일그러진 그 얼굴이,
붉게 물든 눈동자가,
차갑게 흘러내리는 눈물이
나의 입술을 그대로 얼어붙게 만들었다
치짱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미안해, 한 마디 뿐
그 세음절에 불과한 짧은 단어를
아무리해도 발음할 수가 없었다
그런 나의 마음을 꿰뚫어보았다는 듯
치짱이 애써 울음을 참는듯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따뜻한 미소가
싸늘한 공기를 가로질렀다
"내 어리광은 여기까지!
나는 이걸로 된거야
카논짱,
그럼 잘지내야해?
치사토의 몫까지,
제대로 행복해져야해?"
치짱은 그대로 뒤를 돌아 문쪽으로 향했다
들고 있던 가방에 살짝 튀어나온 종이를 보고도
거기에 적혀 있던 한자가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음에도
치짱을 불러 세우는 일은 할 수 없었다
쿠쿠짱도 치사토짱도 나에겐 너무나 소중한데
나는 모두를 행복하게 해줄 수가 없어
이대로라면 우리 셋 중 누군가는
나머지 둘의 행복만큼
불행을 짊어지게 될게 분명하다
그게 치짱이 되는 건 싫어
모든 걸 알고서도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내 자신이 너무나도 밉다
이걸로 되는 걸까...
치짱이 다른 학교에 가서
새로운 인연을 쌓고
행복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게 정답인걸까...?
짧은 순간 수많은 생각이 지나가며
이대로 치짱이 나가면
다시는 치짱을 만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간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