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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번역/창작 [SS] Spring Rain (2)
글쓴이
Saku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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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글 주소
https://gall.dcinside.com/sunshine/4078600
  • 2021-05-31 14:21:58
 




(2)


그날 이후로 저는 좀처럼 당신을 찾아갈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당신과 저와의 시선의 괴리를 인식하면 인식할수록 점점 더 좁힐 수 없는 간격이 될 듯해 보였기 뿐만 아니라, 함께 있을 때 저의 사고는 오직 당신만을 향하지만, 당신은 어느샌가 멍하니 ‘그분’을 당신만의 세계 안에 불러내서 함께 있다는 점, 그것이 제가 만남을 꺼린 이유였습니다.


제가 다시 당신을 만난 건 4월 말이 되어갈 때였습니다. 저번처럼 제가 일방적으로 찾아갔다기보다는, 당신이 학생회 일로 관련하여 저를 부른 것이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한 당분간은 그다지 바쁠 만한 일이 없었기 때문에 저는 그것이 표면적인 핑계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해가 조금 길어졌기 때문인지, 마지막으로 제가 학생회실에 갔을 때보다는 실내가 더 밝은 빛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당신은 무관심한 눈길로 본인의 책무를 다하고 있는 중이었고, 제가 앞자리에 앉자 그때가 되어서야 고개를 들었습니다.


“뜬금없이 불러내서 죄송합니다만, 앞의 그 서류의 수치들만 간단히 비교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괜찮으시다면 잠깐 시간을 내주셨으면 합니다.”


역시 불투명한 의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의도의 불투명함은, 제가 조금도 그 의도의 실마리를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에서 한층 신비로운 구조를 더해가는 것만 같았습니다. 흐릿한 예감 속에서 제가 간신히 도달한 곳은 당신이 저와의 또 다른 만남을 기꺼이 주선할 것이라는, 그런 제 욕망이 투영된 공상에 가까운 낭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공상은 곧이어 엄격한 보복을 당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제가 일을 끝마쳤을 때, 당신은 제가 기억하는 한 처음으로 멍하니 오다이바의 바다를 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당신의 옆에 나란히 섰습니다. 매끄러운 빛깔이 엿보이는 바다가 투영되는 유리창 안에는 당신의 맑은 눈동자가 흐릿하게 비치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손과 저의 손 사이에 생긴 자그마한 간격, 채워지지 않는 부분, 손의 미묘한 떨림이 저를 괴롭게 했습니다.


“저번에 나나씨가 말씀하셨죠. 언제든지 고민이 있으면 충분히 이야기해달라고. 저를 돕고 싶다고요.”


“네, 분명히요.”


저는 강렬한 예감에 사로잡혔습니다. 그것은 결코 제가 도와주고 싶지도 않고 도와줄 수도 없는 안타까운 일이라는, 그런 불길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저의 시선과 당신의 시선은 항상 엇갈리기 마련이었음으로.


“다름이 아니라, 아유무씨에 대해서 말인데요.”


“좋아하신다고요?”


당신은 얼굴의 흰 광택을 핏빛으로 지웠습니다. 그 사실을 확인당한 것이 차마 부끄러워서 견딜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리깔고, 오른손으로 붉은 완장이 있는 왼팔을 괴롭다는 듯이 붙잡는 당신이 있었습니다. 그런 반응이 더욱 부끄러움을 부추긴다는 것도 모르고, 동요를 평온함으로 위장하려는 마음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당신의 순수함이 막연한 질투심을 일으켰습니다.


“알고 계실 줄은 몰랐어요.”


“네. 그걸 시오리코씨에게 떠보거나 하지는 않았지만요. 고백하는 걸 저에게 도와달라고 말하고 싶으신 건가요?”


평소와는 달리 은근히 거친 말투로 당신을 대함은, 저의 마음을 완전히 배제해둔 듯한 당신의 태도를 질책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놀라울 정도로 저에게는 무관심한 것과, 단지 친한 선배 이상의 감정은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걸 항상 분명하게 증명해오는 당신의 투명함이 저의 익애를 희석하려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당신은 사랑이라는 과목에 있어서만큼은 틀림없는 낙제생이었습니다.


“딱히 무언가 거창한 걸 도와달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제가 어떤 장소, 어떤 때, 어떤 식으로 임하는 것이 좋을지 가르쳐주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왠지 나나씨는 이런 분야에 대해서는 저보다도 경험이 많을 것 같고, 제가 이런 걸 털어놓을 수 있는 분은 당신밖에 없으니까요.”


안타깝게도 저의 교제 경험은 당신과 마찬가지로 ‘0’이었습니다. 또한 당신과 같은 것은 저도 지금 첫 짝사랑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었으나, 저의 경우에는 그 상대가 당신이라는 점에서 참으로 극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정말이지 진부하고 흔하기 짝이 없는 세 사람의 관계였습니다......


저는 기꺼이 당신의 고백을 돕기로 했습니다. 이 모순됨이 실은 당신이 실패하리라는 강력한 확신이라는 동기를 전제하고 있음을 아는 자는 오직 저밖에 없을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이 닿지 못하리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그렇기에 더욱 당신의 등을 떠밀어 줄 수 있었습니다.


“설령 실패하고 그 이전의 관계로는 돌아가지 못한다고 해도, 그래도 정말로 상관없으신가요?”


“설령 받아들여지지 못한다고 해도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단지 그분에게 저의 마음을 온전히 전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저는 나름대로 제가 생각하는 바를 알려주었습니다. 경험이 없는 사람이 알려주는 것이기에 그다지 큰 도움은 되지 않겠지만, 어차피 실패할 것을 전제하였기 때문에 정말로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날짜는 주말의 어느 따뜻하고 화창한 날로, 옷은 연분홍빛이 돌면 좋고, 그분이 좋아하는 가게에 가고, 해가 저물어가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에는 인적 없는 으슥한 공원으로 향해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벤치에서 가방에 있던 꽃을 건네고...... 부질없는 말이었습니다.


당신이 제 말을 너무나도 진지한 표정으로 경청하는 모습이 저의 입꼬리에 팽팽한 압력을 가져다 주었다는 사실을 당신은 모르겠지요. 당신을 비웃을 의도는 당신을 사모하기에 당연히 없었지만, 어설픈 연기에는 어딘가 웃기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러함에도 저는 고통스러운 열연을 끝까지 해내 보였습니다. 그리고는 연기의 보상으로서 당신의 결의가 가득 찬 미소를 받았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2주 정도는 당신을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부재가 그때만큼 크게 느껴진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당신이 한시라도 빨리 고백하기를, 그리고 실패하기를 마음속 깊이 바랐습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저는 더 이상 당신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갈 명분을 들이밀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당신을 연모한다고 해서 당신의 의지마저 연모하게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의 이러한 감정은 당신의 짝사랑 상대, 즉 그분에 대한 명백한 질투로까지 변모해 있었습니다. 그분은 당신의 아름다움과 기품 따위는 모르고, 애초에 알고자 하는 마음조차도 없습니다. 당신이 만약 그분의 차별 없는 상냥함에 이끌렸다고 한다면, 당신을 향한 저의 상냥함은 그것과 동질의 것, 아니, 그 이상의 것이 아닌가요?


하지만 저는 여전히 당신과의 사랑을 꿈꾸었습니다. 굳이 밝히자면 당신에게 더 나은 행복의 존재를 일깨워주기 위함이 아니라, 전적으로 저의 욕망에 따른 마음입니다. 그분과의 교제보다 저와의 교제가 더 당신을 기쁘게 하리라고는 마음 속에서조차 감히 말할 수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당신이 연모하는 건 그분이니까요. 하지만 당신의 소망이 실현 불가능함이 증명되는 순간, 자연스레 저를 향한 감정이 기꺼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5월의 한 월요일에 저는 학생회실을 찾아갔습니다. 아마 그 시간 동안 당신은 충분히 고백을 시행했을 테고, 저로서는 그 감정이 완전히 식어버리기 전에 당신 내면의 위태로움이 저를 버팀목으로 삼아주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아무래도 나카가와 나나라는 자는 옹졸하기 짝이 없나 봅니다.


그날의 학생회실은 유독 어두웠습니다. 당신은 불을 켜두지 않았고, 거대한 통유리창으로부터 들어오는 햇빛은 음울한 잿빛 구름에 가로막혀 충분히 투과되지 못했습니다.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듯한 머나먼 하늘을 배경으로 한 당신의 뒷모습이 머지않아 아스러져 사라질 듯 희미해 보였습니다.


“시오리코씨?”


유리창 너머로 얇은 선들이 보이는가 싶더니, 이윽고 격렬한 빗줄기가 창밖을 가득 채워 이곳은 봄 저녁의 칠흑 속으로 점차 빨려들어 갔습니다. 그 순간 뒤를 돌아본 당신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나타났습니다. 저로서는 그 음울한 기쁨을 담은 표정이 성공과 실패 둘 중 무엇을 의미하는지 떠올려 낼 수 없었습니다.


“저기, 어떻게 되셨나요?”


“나나씨가 생각하시기에는 어떻게 되었을 것 같은데요.”


당신은 잔혹하기 짝이 없는 말을 했습니다. 제가 실패했을 것이라고 말하지 못함은 당신의 감정을 보존해주기 위함이 아니라 실제로 당신이 실패하기를 바랐다는 것에 그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말을 내뱉어 버리면 마치 제가 당신을 직접 실패로 이끈 것이 된다고 저 스스로 여기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말렸으면 당신이라는 사람은 절대로 그런 짓은 하지 않았겠지요.


의자가 둔탁한 소음을 냈습니다. 평소에 보여주던 자그마한 행동 하나하나의 절도가 지금 흐트러져 있다는 것에서 저는 당신의 상처 입은 내면을 보았습니다.


“조금 전이었어요.”


“네?”


“나나씨가 오시기 전에, 마침 학교에 남아 계시던 아유무씨를 이곳으로 불러냈었어요. 주말에 약속을 따로 잡고 싶었지만, 그렇지만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미루다가, 오늘 가까스로 여기에서 말씀을 드렸어요.”


당신은 잠깐 감정을 정리하는 듯 보였습니다. 가슴 쪽의 교복이 미세하게 부풀어 오르고, 자그마한 어깨는 그늘 속에서 불길하게 움츠러들었습니다. 목소리는 울적하게 잠겼으나 거동을 흩트리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는 듯했습니다.


“원래 실패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그렇게, 그런 식으로 다짐했으니까 이런 기분이 들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했어요.”


“더는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당신이 보여주려고 하는 그 회한을 저는 마주하기가 두려웠기에, 최선을 다해 어두운 감정을 마치 불식시켜야만 하는 것으로 치부하려는 말을 꺼냈습니다. 그러한 감정이 가진 자기 파멸적인 힘, 저는 그것이 당신을 상처입히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희미한 빗소리가 마음속의 고동을 감추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당신은 마치 의식이 빗소리에 빨려 들어간 듯 허공을 응시하다가, 이내 안타까운 훌쩍임을 내뱉었습니다. 책상 위로 빗물을 머금은 듯한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제 안에 일으켰습니다.


단지 등 언저리를 쓰다듬어주기만 하는 자신을, 당신의 아픔을 속으로 주장해왔던 저의 다정함으로 덮어주지 못하는 자신을 질책했습니다. 당신은 저의 자그마한 위로의 손길에도 차마 견뎌내지 못하겠다는 듯 더욱 몸을 떨었습니다. 완전히 거부당했다는 충격, 자신을 둘러싸는 외부의 모든 것을 거부하기 위해 떨리고 있는 자그마한 어깨......


당신 옆에 무릎을 꿇고 상체만 일으켜 당신과 눈을 마주치고자 했습니다. 그러자 당신은 기꺼이 얼굴을 돌려 낭자한 모습이 된 머리카락과 물기가 어린 세상에서 가장 애절한 눈빛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애절함은 어딘가 무시무시한 증오와도 같은 잔혹함을 저의 눈에는 품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아름다운 얼굴이 이게 뭔가요. 울지 마세요, 이제.”


당신은 저에게 안겨들었습니다. 전해져오는 뜨거운 고동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거부로부터 받은 감정은 슬픔이 아니라 치욕이어야만 한다고. 슬픔은 결국에는 치유되고 또다시 건전한 애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겠지만, 치욕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마음을 완전히 끊어내고 말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당신은 단지 최선이 아니라 차선이라는 것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떠올려내기만 하면 됩니다. 저는 이미 당신의 마음의 완벽한 차선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이미 그 차선에 손을 대고 있음에도 여전히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이 행동하고 있었습니다.


고동이 마침내 멈추었다고 느꼈을 때, 학교는 이미 상당한 어둠에 잠식당해 바다 건너 저 멀리 빌딩의 건물들이 보일 뿐이었습니다. 저와 당신과는 아무런 관련도 가지지 않는다는 듯 밖에는 기나긴 폭우가 단지 무감정하게 퍼붓고 있었습니다. 세상은 온통 잿빛이었고, 그 안에서 유일하게 색을 머금은 존재는 당신의 눈동자였습니다. 당신은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는 것이 부끄럽다는 듯 눈동자를 내리 깔았고, 저는 부드러운 손길로 엉킨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눈가에 맺혀있는 이슬을 닦았습니다.


“어두워졌으니까 빨리 나가죠.”


“네, 그러는 게 좋겠어요.”


저희는 실체를 가진 것만 같은 육중한 암흑으로 뒤덮인 저녁의 봄비를 뚫으며 나아갔습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드넓은 길 가장자리만이 가로등의 불빛이 듬성듬성 켜져 있어서, 마치 그 부분만이 비 안에서 빛의 섬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어째선가 이 비의 세계 속에서 존재하는 사람은 저와 당신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비가 대지에 부딪히는 소리, 구두가 물기로 가득한 길을 밟으며 내는 질척거리는 소리, 비가 두 사람의 우산에 닿아 만들어내는 어딘가 둔탁한 울림과도 같은 소리. 그런 비가 만들어내는 영원할 것 같은 갖가지 소리가 당신과 저 사이의 침묵을 풍요로운 음악으로 채웠습니다. 이때의 잔잔한 감동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아 지금이 당신과 함께한 시간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신과 자주 거닐던 다리에 도착했습니다. 화려하던 도시의 야경은, 비의 장막 뒤에서 뿌연 불빛만을 희미하게 내뿜고 있었습니다. 그 도시의 풍경, 제가 돌아갈, 당신이 돌아가게 될 도시의 풍경은 이 순간 저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머나먼 나라의 풍경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비와 다리가 영원히 이어져 있을 것 같은 건 어째서일까요......


“나나씨, 여태까지 여러 가지로 도와주셨던 것, 그리고 오늘의 일까지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장대한 빗소리 사이로 불투명하게 들려오는 그 목소리는, 빗소리의 침범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경쾌하게 들렸습니다. 마치 조금 전의 회한을 이미 다 떨쳐냈다는 듯이.


“제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인걸요.”


그렇게 말하고선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으로 당신이 혹시나 저에 대해 제기할 수 있는 행위의 동기에 대한 의문을 불식시키기를 원했습니다. 저의 마음을 조금은 투명하게 해두어도 이제는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저는 그 이후 어떤 식으로 나아갈지는 당신과 마찬가지로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당신이 그분에게 거부당했던 것처럼, 저 또한 당신에게 언젠가 거부당하고 말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당신에게서 저의 감정을 확신 받을 수 있는 어떠한 증거조차 받아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단지 여태까지 감사했다는 말은 당신 특유의 단정하고 예의 바른 성품에 자연스레 붙어나온 말에 불과했고, 그것에는 희미하지만 견고한 타인의 벽이 보였던 것입니다.


......늘 그렇듯이 역과 역 사이에 있는 공원을 저희는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나무에는 이미 달빛을 머금은 벚꽃은 없었고. 비를 맞아 한층 생생함을 더해가고 있는 연초록빛 잎사귀들만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젖은 몸으로 가로등 불빛을 받아 무수히 번뜩이고 있는 길 가장자리에는 새하얀 철쭉과 분홍빛 철쭉이 가지런히 이어져 있었습니다. 언젠가 당신의 집에 있는 아름다운 정원을 둘러보고 싶습니다. 돌아보는 데 시간이 넉넉히 걸릴 듯한, 그런 곳을 오늘처럼 당신과 유유히 거닐고 싶습니다.


쓸쓸한 5월의 비 내리는 저녁 공기에 차가워진 손을 끈적한 손가락이 휘감았습니다. 그리고 빗방울 몇 개가 붙잡힌 손을 타고 차갑게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축축함이 선명한 쾌감으로 전해져온 것은 어째서일까요.


“잠깐이면 되니까요. 만약 나나씨만 괜찮으시다면 이번 주말에 만나주셨으면 합니다.”


“그, 어떤 일이신가요?”


“다름이 아니라 저번에 부모님께 책을 선물 받은 일을 말씀드렸는데, 마땅히 보답해야 하는 것이라고 용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건 나나씨만을 위해 사용하고 싶으니, 주말에 시간을 내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당신의 그 제안에 어떤 감정과 태도로 임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순수하게 기뻐하기에는 이미 저의 마음은 당신에 관한 것만큼은 이리저리 그 모양새가 꼬여 명확히 판단해낼 수 없었습니다. 항상 좋고 싫음이 명백했던 저에게, 당신은 처음으로 그 판단을 막아섬으로써 방황하는 마음의 외로움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네, 그런데 어떤 곳을 가고 싶은지는 아직 잘 모르겠네요.”


“그 부분은 온전히 저에게 맡겨주셨으면 합니다.”


‘맡겨달라’는 말에는 어딘가 설렘이 있었습니다. 저는 정말로 당신의 손길에 맡겨져서 지금의 온갖 고뇌를 잠시라도 잊어버렸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당신의 시선, 당신의 몸짓, 당신의 말로 저를 기꺼이 이끌어 주신다면. 당신과 같은 곳에 서서 당신과 같은 방향을 보고 함께 나아갈 수 있다면......


“기대해도 될까요.”


“그럼요.”


당신은 입꼬리뿐만 아니라 눈초리마저도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웃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저 또한 저렇게 웃고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을 조금 더 알고, 당신에게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기꺼이 당신이 제공해 주었다는 사실이 마음을 기쁨으로 부풀어 오르게 했습니다. 다음이 제가 바라오던 그때가 될 것임에 틀림 없다는, 막연하지만 강렬한 확신의 기쁨...... 문득 떠올렸습니다. 그때야말로 당신에게 고백할 수 있는 순간이 마침내 찾아오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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