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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물갤SS] 시오리코「키스란 건 이렇게나 쓴 거였군요」
글쓴이
니코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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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gall.dcinside.com/sunshine/4078006
  • 2021-05-31 09: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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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츠나「시오리코씨, 최근들어 얼굴이 밝으시네요!」

시오리코「그런가요? 저는 잘 모르겠는걸요」

세츠나「아까부터 휴대폰을 보면서 싱글벙글하시던데요!」

세츠나「뭘 보고 계셨는지, 저도 좀 봐도 될까요?」

시오리코「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 말하면서 휴대폰의 화면을 끕니다.

오늘 점심에 갓 찍은 저와 아유무씨의 투샷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싫었으니까요.

직접 싼 도시락의 계란말이를 제 입에 넣어주려는 듯한 포즈를 취하는 아유무씨.

카메라는 보지 않고 아유무씨만을 바라보는 저.

아유무씨는 자랑이라도 하는 듯이 바로 유우씨에게 그 사진을 보냈습니다만, 저는 역시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네요.

세츠나「수상한데요~?」

유우「안녕! 거기 무슨 재밌는 일이라도 있어?」

세츠나「유우씨! 안녕하세요!」

시오리코「안녕하세요, 유우 씨, 아유무씨」

아유무「안녕, 시오리코쨩!」

시오리코「아까는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해 주셔서 고마웠어요」

아유무「아냐, 나도 마침 같이 먹을 사람이 없어서 곤란했는걸」

유우「미안하다니까~ 오늘은 세츠나쨩이랑 선약이 잡혀 있었거든」

세츠나「유우씨의 도시락 맛있었죠!」

유우「세츠나쨩의 도시락은... 아하하」

시오리코「세츠나씨의 요리는 도대체 어떻길래...」

아유무「분명 내 도시락이 더 맛있었을 텐데」

유우「그래도 세츠나쨩, 점점 늘고 있다구!」

유우「다음에는 얼마나 늘어 있을지 기대돼!」

세츠나「그러네요! 혹시... 주말에 시간 되시면 요리를 가르쳐 주시지 않을래요?」

유우「주말? 응! 난 세츠나쨩이라면 언제든지 괜찮아!」

세츠나「에헤헤... 그렇게 말씀하시면 부끄럽네요」

아유무「...그럼 나도 주말에 놀러 갈까나」

아유무「시오리코쨩! 저번에 게임 센터 가보고 싶다고 했지?」

시오리코「아, 네」

아유무「이번 주말에 시간 되지? 둘이서 놀자!」

아유무씨는 자연스럽게 제 손을 잡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최근들어 아유무씨 쪽에서 먼저 말을 걸어주시는 일이 많아진 건 기쁜 일입니다.

같이 점심을 먹자거나, 놀러 가자거나.

손을 잡는다거나, 팔짱을 낀다거나.

저는 그럴 때마다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살짝 끄덕입니다.

다음에는 제 쪽에서도 손을 잡아 볼까요.

유우「에~! 나도 게임 센터 가고 싶은데!」

아유무「그럼 유우쨩이랑은 나중에 둘이서...」

세츠나「유우씨, 그럼 요리 끝나고 같이 게임 센터도 가죠!」

유우「그거 좋네! 세츠나쨩은 게임도 꽤 잘할 거 같고」

세츠나「맡겨 주세요! 태고라면 자신 있어요!」

유우「후후, 나도 태고라면 어디가서 지지는 않는다구!」

아유무「...」

아유무「우리는 인형뽑기나 할까?」

아유무「둘이서 스티커사진도 찍고」

아유무「아, 게임센터 앞의 크레이프도 맛있으니까 같이 먹자!」

유우「저번엔 나랑 같이 먹었지」

아유무「그러네, 기억나? 그 크레이프를 먹다가 떨어뜨렸을 때 유우쨩이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유우「그건 좀 잊어줘!」

세츠나「먹다가 떨어뜨릴 정도로 맛있는 건가요?」

세츠나「저도 그 크레이프, 먹어 보고 싶네요!」

유우「그럼 태고에서 진 사람이 쏘는 거다?」

세츠나「그 도전, 받아들이죠!」

아유무「같은 게임센터로 가는 거구나」

유우「우연히 만날지도 모르겠네!」

아유무「주말이 기다려지네...」

아유무「그치, 시오리코쨩?」

시오리코「네, 기대되네요」

저는 들뜬 마음을 최대한 억누르며,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아유무씨의 옆모습이 약간 쓸쓸해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요.

그런 모습도 포함해서 좋아합니다만, 역시 아유무씨는 웃어 주셨으면 합니다.

주말에는 아유무씨의 웃는 얼굴을 잔뜩 볼 수 있기를 바라며, 저는 몰래 휴대폰을 켜서 투샷을 다시 보았습니다.


2

시오리코「우으으... 죄송합니다」

시오리코「설마 한 개도 못 뽑을 줄은...」

아유무「아니야, 시오리코쨩은 인형뽑기 처음이잖아」

시오리코「그래도 엄청 갖고 싶어하셨잖아요」

아유무「괜찮대도, 이제 다른 층이나 둘러보러 갈까?」

아유무씨는 그렇게 말하며 저에게 웃어 보였습니다.

그 미소만 보면 모든 걱정이 녹아 없어지는 기분입니다.

하지만 오늘의 아유무씨가 저에게 주는 것은 미소뿐.

손도 잡아 주지 않고, 팔짱도 껴 주지 않습니다.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텐데, 저는 언제 이렇게 욕심쟁이가 되어버린 걸까요.

저는 부끄럽지만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해, 먼저 걸어가는 아유무씨를 불러세웠습니다.

시오리코「아유무씨」

아유무「응?」

시오리코「그... 오늘은」

아유무「시오리코쨩, 얼굴이 빨개」

시오리코「오늘은!」

시오리코「...손, 안 잡아 주시는 건가요?」

아유무「미안, 나 손이 땀범벅이라...」

시오리코「새, 생각해보니 저도...」

바보바보바보!

섬세한 여자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하다니요!

아니, 물론 저도 여자입니다만.

그래도 아유무씨 정도로 섬세하지는 못하다구요.

아유무씨와 손을 잡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머릿속의 회로가 쇼트해 버린 것이 원인일까요.

사람은 사랑을 하면 바보가 되는 걸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며 긴장 때문에 땀에 젖은 제 손을 바라보았습니다.

혹시 아유무씨도 긴장하고 계신 걸까요?

아유무「그럼 갈...」

???「크레이프 맛있네요!!!」

저 커다란 목소리, 못 알아볼 리가 없습니다.

게임센터 밖을 걸어가는 건 유우씨와 세츠나씨.

둘 모두 한손에는 크레이프를 들고 있네요.

얼핏 본다면 연인으로 착각할 것만 같습니다.

유우「낮에 세츠나쨩의 요리를 먹어서 그런가 더 맛있는 거 같아」

세츠나「정말, 유우씨!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라도 상처받는다니까요!」

유우「미안미안」

세츠나「그럼 사과의 의미로 유우씨의 크레이프 한 입 주세요!」

유우「먹고 싶으면 그냥 먹지 그랬어」

세츠나「유우씨가 먹여주세요!」

유우「그건 역시나 좀 부끄럽달까...」

세츠나「아~앙! 자, 빨리요!」

아유무「시오리코쨩」

시오리코「아, 네」

아유무「우리도 크레이프 먹으러 갈까」

시오리코「네? 아까는 다른 층 구경하신다고...」

아유무「가자, 내가 쏠 테니까」

아유무씨는 그렇게 말하며 제 손을 붙잡고는, 저를 끌고 갔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것과는 다르게, 아유무씨의 손은 전혀 축축하지 않았습니다.

유우「어, 아유무!」

세츠나「우연이라는 건 참 신기하네요!」

아유무「그러네, 우리도 크레이프나 먹을까 해서」

시오리코「두 분 모두 안녕하신가요」

유우「시오리코쨩은 잘 놀고 있었어?」

시오리코「네, 덕분에요」

덕분에요, 인가요.

흔히들 쓰는 형식적인 수사지만, 오늘따라 형식적이 아닌 것만 같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요?

저는 유우씨 덕분에 아유무씨와 놀러 나올 수 있었던 걸까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해버린 걸까요.

세츠나「여기 크레이프 정말 맛있네요! 시오리코씨도 꼭 드셔보세요!」

유우「공짜로 먹어서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게 아니고?」

세츠나「들켰나요?」

아유무「시오리코쨩도 공짜로 먹을 거니까 괜찮아」

유우「뭐야, 아유무가 쏘는 거야?」

아유무「응」

그 순간, 저는 제 팔에 느껴지는 폭신한 감촉에 놀라 옆을 바라보았습니다.

그곳에 있는 것은 팔에 꼭 달라붙어 온 아유무씨.

평소였다면 팔에 정신이 팔려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했을 텐데, 오늘의 저는 어째서인지 냉정했습니다.

...아유무씨, 저랑 둘만 있을 때 이러신 적 있었던가요?

아유무「어디보자... 유우쨩은 초코 바나나, 세츠나쨩은 딸기 크림이네」

아유무「우리도 저걸로 먹자, 시오리코쨩」

시오리코「...」

아유무「시오리코쨩도 참, 부끄러워하긴」

유우「이왕 모인 김에 같이 놀...」

세츠나「다음엔 어디로 갈까요?」

세츠나「노래방은 어떨까요!」

세츠나「점수로 내기나 할까요?」

유우「현역 아이돌이랑 노래방 점수 내기라니, 무리라구」

유우씨는 그렇게 말하며 세츠나씨에게 이끌려 갔습니다.

옆을 바라보니, 아유무씨는 마치 그때와 같이 쓸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아유무씨의 그 표정은 크레이프를 살 때도, 먹을 때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분명 웃고는 있었지만, 얼굴 한구석에는 그 표정이 남아 있었다고 말해야 할까요.

저는 아유무씨에게 묻고 싶은 것이 산더미였지만, 제대로 말을 꺼내지도 못한 채 헤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헤어질 때까지도 아유무씨가 다시 제 손을 잡아 주시는 일은 없었습니다.


3

시오리코「안녕하세요, 부회장님」

부회장「안녕하세요... 잠깐, 몸은 괜찮으세요?!」

시오리코「저는 괜찮습니다. 학생회 업무를 시작하죠.」

부회장「아뇨, 회장님은 좀 쉬고 계세요.」

시오리코「괜찮다니까요. 지금은 오히려 일을 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부회장님이 보기에도 제 몰골은 초췌해 보이는 모양이군요.

밥을 먹으려고 해도 입맛이 없어 한 입만에 젓가락을 내려놓고.

잠을 자려 눈을 감으면 아유무씨의 그 옆모습이 생각나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이틀 정도를 그렇게 지냈으니, 부회장님의 반응도 놀랄 만한 건 아닙니다.

부회장「정 그러시다면... 여기 있는 서류를 결제해주세요」

시오리코「네, 감사합니다」

머릿속을 뒤덮는 생각을 치우기 위해 일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서류의 글자는 눈에 전혀 들어오지 않고, 계속해서 아유무씨와의 일을 떠올리고 맙니다.

머릿속으로 생각을 하면 할수록 하나의 결론에 도달해가서.

그걸 인정하기 싫어서 아무리 합리화를 해 봐도 모순이 생겨서.

끊임없이 괴로워하다 정신을 차려 보니, 제 손에는 어느새 핸드폰이.

오늘 저녁을 같이 먹지 않겠냐는 문자를 보내 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온 답장.

'미안해, 오늘은 유우쨩이랑 먹기로 해서...'

사실은, 그렇게 말하실 줄 알고 있었어요.

그래도 매달리듯 문자를 하나 더 써 봅니다.

'그럼 연습 끝나고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저는 아유무씨를 만나서 뭘 하고 싶은 걸까요.

머릿속에서 이미 결론을 내린 사실을 굳이 확인하고 싶은 걸까요?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요?

시오리코「...부회장님」

부회장「역시 피곤하시죠? 일이라면 제가...」

시오리코「여쭤보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괜찮을까요?」

부회장「네? 저는 괜찮지만...」

시오리코「알고 싶지 않은 진실이라도 알아야 할 때가 있는 걸까요?」

부회장님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짓습니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좀비 같은 몰골의 학생회장이 갑자기 생뚱맞은 질문을 던지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겠죠.

그럼에도 그녀는 제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줍니다.

부회장「이미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는 사실이 있다면, 애매한 채로 놔두는 쪽이 더 상처가 되지 않을까요」

부회장「자꾸만 희망을 가지고,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 건 오히려 그 일을 계속 떠올리게 하잖아요」

부회장「차라리 확실히 매듭을 짓고 넘어가는 쪽이 낫다고 생각해요」

시오리코「그런가요」

그 때, 손 안에서 휴대폰이 진동했습니다.

아유무씨에게서 온 한 글자의 답장.

'응.'

그 짧은 문자가 가져올 앞으로의 파란을, 저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4

아유무「시오리코쨩, 빨리 집에 가서 쉬어야 하는 거 아니야?」

아유무「오늘 연습에서도 계속 넘어지고...」

시오리코「저는 괜찮아요」

저는 오늘 이 말을 몇 번이나 하는 걸까요.

실은 전혀 괜찮지 않으면서.

아유무「무슨 일이라도 있어? 이렇게 따로 불러내고」

시오리코「아유무씨는 유우씨를 좋아하죠?」

아유무「음... 그야 소꿉친구니까」

시오리코「아뇨, 연인으로서 좋아하냐는 의미예요」

아유무「가,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는 거야」

시오리코「중요한 이야기예요」

적어도 저에게는요.

저는 뒤에 이어질 그 말을 목 너머로 삼키며 아유무씨를 바라보았습니다.

아유무「...응」

시오리코「그럼 왜 저와 연인을 연기하셨나요?」

아유무「아니야! 시오리코쨩은 사이좋은 친구고...」

시오리코「그럼 왜 유우씨 앞에서만 제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거나 하신 건가요?」

그 말을 내뱉는 제 목소리는 상상 이상으로 평범해서, 스스로도 놀랐습니다.

좀 더 감정을 실어서 말할 줄 알았는데요.

제 머리는 이미 어떤 결론이 나오든 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걸까요.

아유무「그건...」

시오리코「유우씨와 세츠나씨가 친하게 지내서 질투하셨겠죠」

시오리코「그래서 반대로 유우씨가 자신에게 질투하게 만들었다... 잘 된 것 같지는 않지만요」

아유무「미안, 미안해...」

시오리코「저는 괜찮아요」

괜찮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생각한 그대로의 결론이라 안심했습니다.

이런 형태로라도, 아유무씨의 곁에 있을 수 있다면 행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어쩌면, 만에 하나라면.

제 마음을 솔직히 전한다면.

언젠가는 저희 둘이 이어지는 미래가 있을지도 몰라요.

시오리코「앞으로도 어울려 드릴게요」

아유무「엣?」

시오리코「유우씨의 질투만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누구라도 괜찮은 거였잖아요?」

시오리코「그런데 굳이 저를 선택해 주셨다면, 그게 우연이라고 해도 저는 기대에 부응해야겠죠」

아유무「그렇지만 시오리코쨩...」

시오리코「괜찮습니다, 저한테는 그게 연기가 아니었으니까요」

시오리코「...저는 당신을 좋아하니까요」

시오리코「드디어 말할 수 있었네요」

아유무「...」

저는 그 순간 아유무씨의 표정에서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아유무씨는 제 말을 듣고 미안한 듯 고개를 숙일 뿐이었습니다.

제 갑작스러운 고백에도 아유무씨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옛날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시오리코「아유무씨, 설마...」

아유무「...미안」

누구라도 괜찮은 게 아니었군요.

굳이 저를 고른 이유가 있었던 거군요.

제가 당신을 좋아한다는 걸 아니까, 써먹기 편하니까.

진짜 연인처럼 보이니까.

시오리코「절 가지고 노셨군요!」

아까까지의 냉정함은 사라지고, 분노만이 남았습니다.

이딴 진실, 알고 싶지 않았어요.

멋대로 좋아하고.

멋대로 기대하고.

멋대로 착각하고.

멋대로 실망하고.

멋대로 상처입는.

그런 흔해빠진 짝사랑으로 좋았어요.

저는 아유무씨의 양 어깨를 꽉 잡았습니다.

아유무「시오리코쨩, 아파...」

시오리코「저는 더 아프다고요!」

시오리코「그렇게나 유우씨가 소중했나요!」

시오리코「다른 사람을 상처입혀 가면서 노릴 만큼!」

시오리코「저는 아유무씨의 곁에 있는 걸로 충분했는데!」

아유무「미안해...」

그렇게나 소중한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눈앞의 사람을 상처입히고 싶어 견딜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망가뜨리고 싶습니다.

분노에 눈이 멀어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게 되었을 즈음, 멀찍이 유우씨가 보였습니다.

아무래도 아유무씨가 너무 늦어 찾으러 온 거겠죠.

저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오리코「아유무씨, 뒤에 누가 왔는지 봐요」

아유무「유, 유우쨩」

시오리코「자, 언제나처럼 연인 연기를 해 보자구요」

시오리코「이번엔 둔감한 유우씨도 확실히 질투할 수 있게」

저는 그렇게 말하고는 아유무씨의 입술을 빼앗았습니다.

너무 급작스러워 채 닫지도 못한 앞니 사이로, 아유무씨를 탐합니다.

아유무씨는 좀 더 단 맛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키스란 건 이렇게나 쓴 거였군요.

아유무씨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은 채로, 그저 울고만 있습니다.

유우씨는 저희를 보고 이쪽으로 다가오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유우씨에게 과시하듯, 더 격렬하게 키스합니다.

유우씨가 등을 돌려 달려나가기 시작할 때, 저는 아유무씨를 놓아 드렸습니다.

분노한 여자와 울고 있는 여자.

아무리 봐도 키스가 끝난 뒤의 현장은 아닙니다.

저희 둘 사이에 이어진 은색 다리만이 아까의 일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 은색 다리가 끊어질 때쯤, 저는 울고 있는 아유무씨에게 말했습니다.

시오리코「그렇게 싫으셨나요」

아유무「미안해... 미안해, 시오리코쨩...」

시오리코「아까부터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시오리코「사과한다고 끝날 일이 아니라는 건 아시잖아요!」

시오리코「싫으면 반항을 하시라고요!」

시오리코「혀를 깨물던가, 팔로 밀치던가, 발로 차던가!」

시오리코「그렇게 힘이 약하지도 않잖아요!」

아유무씨는 정말로, 사람이 모질지를 못합니다.

사랑을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겠다고 생각했다면 더 나쁜 사람이 되어도 될 텐데.

저 따위한테 미안하다는 감정을 느끼지 않아도 될 텐데.

저 따위는 내팽개치고 유우씨에게 달려갈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그렇게 어중간한 건가요.

아유무씨가 정말로 나쁜 사람이었다면, 맘놓고 미워할 수라도 있었을 텐데.

시오리코「도대체 왜 그러시는 건데요...」

어중간한 건 저도 마찬가지인가요.

그렇게나 아유무씨를 상처입히고 싶어했으면서.

막상 아유무씨를 울리고 나니 자신도 울고 있으니까요.


5

다음 날이 되고, 다음 주가 되어도 저와 아유무씨 사이에는 어색한 기류가 맴돌았습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상황.

사과한다고, 대화한다고 풀어낼 수 있는 매듭이 아닌지라, 계속해서 같은 상황을 유지할 뿐입니다.

한편 이런 사정을 전혀 모르는 유우씨는, 그 날부터 정신을 놓고 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언제나의 활기찬 유우씨는 어디론가 가 버리고, 남아 있는 것은 영혼 없는 껍질뿐.

그런 유우씨를 옆에서 바라보면 알 수 있습니다.

유우씨가 아유무씨에 대해 가졌던 감정 역시 소꿉친구 이상의 것이었음을.

저도 짝사랑을 해본 입장이니까, 더욱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시오리코「유우씨」

유우「...」

시오리코「유우씨」

유우「...아, 시오리코쨩이구나」

시오리코「잠깐 시간 좀 내 주시겠어요?」

저는 대답을 듣기도 전에, 유우씨의 손을 붙잡고 부실 바깥으로 이끌었습니다.

저에게 아유무씨의 손을 이렇게 잡을 수 있는 용기가 있었더라면.

그랬다면 다른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을까요?

...아뇨, 저는 결국 아유무씨를 웃게 만들지는 못하겠죠.

그분을 웃게 만들 수 있는 건...

시오리코「유우씨, 정신 차리세요」

유우「...」

시오리코「이대로 아유무씨를 빼앗겨도 상관 없다는 건가요?」

유우「...!」

드디어 이쪽을 보시는군요.

유우씨의 초록색 눈동자에 천천히 빛이 돌아옵니다.

시오리코「확실히 말해 두죠」

시오리코「저는 아유무씨를 좋아합니다」

시오리코「유우씨는 어떤데요?」

유우「나, 나는...」

유우「하지만...」

아유무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좋다.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군요.

정말, 저와 당신은 닮아 있어요.

그런데 왜 아유무씨는 당신만을 원하는 걸까요.

질투가 나서 견딜 수가 없어요.

시오리코「그날의 키스, 제가 멋대로 한 거예요」

시오리코「이제 희망이 좀 생기셨나요?」

유우「왜 나한테 그걸 말해주는 거야?」

시오리코「이건 선전포고예요」

시오리코「저는 일주일 뒤에 아유무씨에게 고백할 겁니다」

시오리코「당신이 아유무씨를 훨씬 오랫동안 봐 왔으니,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시오리코「뭐, 그런다고 해서 당신에게 고백할 용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유우「시오리코쨩은...」

유우「시오리코쨩은 정말로 나한테 아유무를 빼앗겨도 괜찮아?」

시오리코「사랑을 할 때는 자기 생각만 해 주세요」

유우「그러는 시오리코쨩이야말로...」

시오리코「아유무씨가 당신을 원한다고요!」

아, 더는 안 되겠습니다.

터져나오는 감정을 억누를 수 없습니다.

저는 언제부터 이렇게 격정적인 사람이 되어버린 걸까요.

사랑을 포기한다고 해서 바보가 원래대로 돌아오는 건 아닌 모양입니다.

시오리코「저도 아유무씨를 좋아해요! 유우씨한테 지지 않을 만큼! 아니, 그보다 더!」

시오리코「하지만 아유무씨가 원하는 건 제가 아니라 유우씨라고요!」

시오리코「저는 아유무씨를 행복하게 해 드릴 수 없다고요!」

시오리코「...그걸 제 입으로 말하게 만들지 마세요!」

유우「시오리코쨩...」

시오리코「빨리 가세요! 아유무씨한테 가라고요!」

유우「...미안해」

유우씨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등을 돌려 부실로 향했습니다.

그 미안하다는 말이 그 때의 아유무씨와 겹쳐 보여서.

이제 정말로 끝났다는 생각이 들어서.

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의 첫사랑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6

그 뒤로, 동호회의 일상은 이전처럼 돌아갔습니다.

유우씨와 사귀게 된 아유무씨는 언제나 웃고 있었고.

유우씨는 이전처럼 밝은 모습으로 동호회에 활기를 불어넣었습니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지나 3학년 선배들이 졸업하고.

또 다시 1년이 지나 이번에는 2학년이었던 분들이 졸업했습니다.

발렌타인데이도, 화이트데이도, 여름 축제도.

학교 축제도, 크리스마스도, 새해 첫 참배도.

유우씨의 생일도, 아유무씨의 생일도, 졸업식도.

세간에서 연인의 이벤트라고 부르는 것은 전부 그 둘의 것이었습니다.

그 사이에 제가 낄 자리는 없었습니다.

저는 그저 옆에서 아유무씨의 웃는 얼굴을 보며, 이걸로 된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유무씨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접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요.

벨소리「끝없는 길이라도 한 걸음 한 걸음~」

졸업식으로부터 4개월쯤 지난 어느 날,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휴대폰 화면에는 그 때 찍은 투샷.

적혀있는 이름은 우에하라 아유무.

투샷을 보니 떠오르는 건 저와 아유무씨의 아련한 추억.

멈춘 줄만 알았던 심장이 뛰기 시작합니다.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습니다.

아유무씨의 곁에는 유우씨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제 마음은 그렇게 반응해 버리고 맙니다.

저는 휴대폰을 들어 화면을 한참동안 바라보다, 부재중 신호가 가기 직전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시오리코「네, 미후네입니다」

아유무「시오리코쨩, 잘 지냈어?」

시오리코「학생회장을 내려놓으니 시간이 남아돌아 주체할 수가 없네요」

아유무「후훗, 이젠 농담도 할 줄 아네」

시오리코「덕분에요」

시오리코「무슨 일로 전화하신 건가요?」

아유무「...실은, 고맙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

아유무「어제 유우쨩이 전부 얘기해 줬어」

아유무「유우쨩에게 고백받을 때부터 왠지 그럴 것 같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시오리코「제가 잘못한 일에 책임을 진 것 뿐입니다」

시오리코「감사인사를 받으려고 한 게 아니예요」

아유무「응, 그래도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시오리코「미안하다는 말은 그 때 질리도록 들었어요」

아유무「원래는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많이 바빠서」

시오리코「기말고사 시즌인가요?」

아유무「결혼식 준비」

결혼식.

상사상애의 두 사람이 이어진다는 건 축복할 만한 일이죠.

최근에는 결혼식을 갈 일이 없었으니, 오랜만에 양복을 입게 되겠네요.

저는 그렇게, 마치 남의 일인 양 결혼식이라는 단어의 객관적인 인상을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그 결혼식의 주인공에 대해서는 눈을 감은 채로.

아유무「많이 고민했지만... 그래도 말하는 게 맞는 거 같아서」

시오리코「제가 저주라도 할까봐요?」

아유무「아, 아냐!」

시오리코「농담입니다」

아유무「시오리코쨩이 말하면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구...」

시오리코「그래서, 날짜는 언제 정도로 생각하고 계신가요?」

아유무「8월 둘째주 주말로 생각하고는 있어」

아유무「다음 주 정도면 확실히 결정될 거 같아」

시오리코「네, 나중에 청첩장 보내 주세요」

아유무「응! 그럼 그 때 보자」

시오리코「네, 축하드려요」

전화가 끊어지고, 저는 다시 휴대폰을 바라보았습니다.

화면에는 여전히 그 시절의 투샷이 떠올라 있습니다.

저는 앨범으로 들어가 그 사진을 찾았습니다.

정말 사진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라는 메시지가 팝업됩니다.

저는 한참을 망설인 뒤, 그대로 휴대폰의 화면을 끄고는 주머니에 집어넣었습니다.

사랑의 추억이라는 것은 사진을 지운다고 지워지는 게 아니니까요.

그 추억이 흉터가 되어 제 가슴에 언제까지나 남아있는다면, 그것을 보듬어 줄 사진 한 장 정도는 있어도 되지 않을까요.


7

정장이라는 건 언제 입어도 불편합니다.

그것이 불편한 자리일 경우에는 더더욱이요.

하객이 전부 아는 사람인지라, 오히려 더 불편한 감이 있습니다.

양가에 축의금을 내고, 미후네 시오리코라는 이름을 적습니다.

다 적을 때쯤 누군가가 등을 찌르기에 뒤돌아 보니, 동호회 분들이 계셨습니다.

엠마「시오리코쨩도 왔구나!」

시오리코「'도'라니요, 설마 제가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셨나요?」

엠마「그, 그건...」

아이「이야, 시옷티는 오늘도 날카롭네~」

카린「솔직히 좀 불안했어」

카나타「그래도 와 줘서 다행이야」

제가 아유무씨를 좋아했다는 건 동호회 내에서 공공연한 사실이 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곤란하네요.

괜히 배려를 받고 싶지는 않은데 말이죠.

오늘은 제가 위로받는 날이 아니라, 두 분이 축하받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카스미「우으으... 졸업한 지 1년도 안 돼서 결혼이라니」

시즈쿠「부러워?」

카스미「부럽기는! 그냥 체감이 안 된다고 할까...」

리나「얼마 전까지만 해도 같이 무대에 섰었는데」

카나타「그렇게 말하니까 두 사람이 멀리 가 버리는 것 같잖아~」

나나「결혼한다고 해서 유우씨나 아유무씨가 변하는 건 아니니까요」

시오리코「세츠나씨? 못 알아볼 뻔했네요」

나나「오늘은 나나로 왔어요」

정장을 입은 세츠나, 아니, 나나씨는 정말 다른 사람 같았습니다.

안경과 헤어스타일만으로 이렇게나 인상이 바뀌는군요.

붉은색 넥타이만이 그나마 지금의 그녀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세츠나씨의 요소였습니다.

카린「결혼식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있는 것 같네」

카스미「그럼 신부대기실로 가 보죠!」

리나「나는 시오리코쨩이랑 같이...」

시오리코「저도 가겠습니다」

시즈쿠「...정말 괜찮아?」

시오리코「괜찮지 않으면 결혼식장도 오지 않았겠죠」

제가 괜찮다고 말할 때는 항상 비슷한 느낌입니다.

사실은, 전혀 괜찮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어리광을 부린다고 뭐가 달라질까요.

저는 그렇게 자신을 죽이며 신부대기실로 향했습니다.

아유무「다들 와줬구나!」

아이「우와, 진짜 예쁘다!」

엠마「역시 웨딩드레스는 동경하게 되지~」

카린「개인적으로는 유우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부끄러워하는 모습도 보고 싶었는데」

아유무「웨딩사진 찍을 때는 한 번 입었으니까, 나중에 앨범으로 보세요!」

나나「유우씨의 드레스, 인가요」

카스미「제 결혼식 때는 이것보다도 귀여운 드레스를 입을 테니까 각오하세요!」

리나「카스미쨩이 양복을 입을지도 모르지」

카스미「도대체 왜!」

아유무「카스미쨩이라면 어떤 옷이라도 귀여울 거야」

카나타「이러니까 2년 전으로 돌아간 거 같네~」

아이「2년 전이라~ 먼 옛날 얘긴 것만 같아」

시즈쿠「저희는 아직 졸업도 못했지만요」

카린「어라, 그럼 피로연 때 술도 못 마시는 거네」

엠마「카린쨩은 마실 생각 하지 마~」

시오리코「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나나「2년 전 얘기를 하려면 역시 그 분이 빠지면 안 되는데요」

유우「나 불렀어?」

나나「유, 유우씨? 그... 양복 잘 어울리시네요!」

아유무「정말, 신부대기실에 맘대로 들어오지 말라고 했잖아!」

유우「그치만 나도 신부인걸」

카나타「생각해보니까 그렇네」

신부대기실에 퍼지는 웃음꽃.

정말로 그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습니다.

바보같은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떠들던 그 시절.

그 행복한 시간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저는 다르게 행동했을까요.

웨딩드레스를 입은 아유무씨를 보며,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신부대기실에서 나와서 결혼식장 테이블에 나나씨와 앉은 뒤로도, 그 의문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유무씨가 저렇게나 웃고 있는데.

그걸로 충분한 거 아니었던가요.

제가 이런 생각을 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결혼식은 클라이맥스를 향해 갑니다.

주례「타카사키 유우씨는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주례「아니, 흰 머리가 될 때까지 우에하라 아유무씨를 사랑하겠습니까?」

유우「네!」

나나「유우씨, 정말 멋지네요」

시오리코「그러게요」

나나「아, 눈물이...」

나나씨는 그렇게 말하며 안경을 벗고 눈을 문질렀습니다.

하지만 나나씨의 손으로도 전부 닦아내지 못한 눈물이 테이블에 떨어졌습니다.

저는 양복 앞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나나씨에게 건내려다 멈칫했습니다.

그 우는 모습이 과거의 저와 너무나도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울고 있는 것은 나나씨가 아닌, 세츠나씨였습니다.

그 눈물은 감동의 눈물이 아닌, 슬픔의 눈물이었습니다.

머릿속에 2년 전 세츠나씨의 모습이 스쳐지나갑니다.

세츠나「주말에 시간 되시면 요리를 가르쳐 주시지 않을래요?」

세츠나「유우씨가 먹여주세요! 아~앙! 자, 빨리요!」

그 때는 저 자신에게만 신경쓰느라 전혀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명백합니다.

세츠나씨, 유우씨를 좋아하고 계셨던 거군요.

저는 아유무씨를 위해서 세츠나씨를 상처입히고 만 걸까요.

저 자신만 상처입고 끝나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니, 도대체 얼마나 오만한 건가요.

주례「우에하라 아유무씨는 검은 머리가 하얗게 될 때까지 타카사키 유우씨를 사랑하겠습니까?」

아유무「...네」

주례「그럼 두 분, 키스해 주십시오」

유우씨와 아유무씨가 키스합니다.

아유무씨, 행복해 보이네요.

저랑 키스할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요.

저는 세츠나씨의 어깨에 손을 올려, 얼굴을 맞대고 조용히 울었습니다.

저희의 울음소리가 박수와 축복의 환호성에 묻히기를.

행복으로 가득한 결혼식장 안에서, 이 테이블만이 슬픔에 차 있었습니다.


8

세츠나「시오리코씨!!! 오늘은 저희 집에서 자고 가시죠!!!」

시오리코「나나씨, 취하셨어요」

세츠나「누가 나나예요! 저는 세츠나! 유키 세츠나예요!」

피로연이 끝난 뒤, 저는 세츠나씨와 맨션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술에 거나하게 취한 세츠나씨가 저와 떨어지려 하지 않아서, 일단 제가 집까지 바래다주기로 했지만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저에게 매달리는 세츠나씨를 끌고 겨우겨우 맨션 정문까지 걸어갑니다.

시오리코「세츠나씨, 맨션 비밀번호 뭐예요?」

세츠나「말하면 같이 들어가 주실 거예요?」

시오리코「자꾸 그러시면 그냥 경비실 호출 누를 거예요」

세츠나「...0808이요」

시오리코「누가 비밀번호를 자기 생일로 해 놓나요...」

비밀번호를 누르고, 세츠나씨를 부축해서 열린 문으로 들어갑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세츠나씨는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세츠나씨의 숨결에서 알코올이 느껴져서 저까지 취해 버릴 것만 같습니다.

어질어질한 기분을 느끼며, 다시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어, 세츠나씨를 방까지 데려갑니다.

세츠나씨를 침대에 반쯤 던지다시피 내려놓고, 저는 몸을 일으켜 나갈 채비를 합니다.

시오리코「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세츠나「오늘은 같이 있어 줘요!」

세츠나「실연한 사람들끼리 부둥켜안자고요!」

시오리코「패배감은 혼자서 느껴 주세요」

세츠나「하지만... 유우씨... 정말 좋아했는데...」

세츠나「우와아아아앙!」

시오리코「아, 정말!」

시오리코「같이 있어 드리면 되잖아요!」

세츠나「훌쩍, 시오리코씨도 울어도 된다구요?」

시오리코「운다고 바뀌는 건 없으니까요」

세츠나「아까 결혼식장에서는 우셨으면서」

시오리코「남 말할 처지인가요」

세츠나「참아보려고 했는데, 역시 안 되더라고요」

세츠나「일부러 유우씨를 좋아한 세츠나가 아닌, 나나로 갔는데도요」

시오리코「...죄송해요」

세츠나「왜 시오리코씨가 사과하시는 건가요?」

제가 유우씨를 부추겼어요, 라고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언젠가는 제대로 말씀드려야겠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오늘은 세츠나씨에게 너무 가혹한 날이니까요.

저는 여기서 세츠나씨에게 더 큰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니, 저는 그냥 변명거리를 찾으며 도망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입을 다물고 있자, 세츠나씨는 침대에서 몸을 벌떡 일으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세츠나「저도 죄송해요」

세츠나「시오리코씨도 힘드실 텐데」

시오리코「...힘들긴 하네요」

시오리코「좋아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입을 맞추고 있는 걸 본다는 건」

유우씨도 저와 아유무씨의 키스를 볼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요.

저의 독단으로 도대체 몇 명이나 상처입혔는지 모르겠습니다.

죄책감에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세츠나「저는요, 그걸 보면서 부러웠어요」

세츠나「유우씨와 입을 맞추는 아유무씨가 얼마나 행복해 보였는지...」

세츠나「도대체 어떤 느낌일까요?」

세츠나「...저희, 키스해볼래요?」

시오리코「많이 취하셨네요」

세츠나「취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도 있다구요?」

세츠나「패배자들끼리 서로의 상처를 핥아 준다고 생각하자구요」

숙인 고개를 들어 세츠나씨를 바라보자, 세츠나씨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세츠나씨의 눈은 그 언제보다도 밝았습니다.

술기운에 아무렇게나 던지는 말이 아닌 건 확실했습니다.

세츠나씨는 정말 저 같은 걸로 괜찮은 걸까요.

이걸로 세츠나씨의 상처가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된다면 좋겠네요.

저는 속죄하는 마음으로 눈을 감으며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눈을 감고 있어도 세츠나씨의 숨결이 가까워지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곧이어 입술에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지고, 쓴맛이 혀를 휘감았습니다.

과연 술이 쓴 걸까요, 아니면 키스가 쓴 걸까요.

쓴맛 뒤에 찾아오는 건 짠맛.

누구의 눈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저희 둘 다였을 겁니다.

저희는 그렇게 한참동안 숨이 막힐 정도로 키스한 뒤, 얼굴을 떼어놓고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시오리코「...이제 만족하셨나요」

세츠나「첫 키스 치고는 잘하시던걸요」

시오리코「처음 아니예요」

세츠나「...전 처음이었어요」

시오리코「어떠셨어요, 첫 키스는」

세츠나「키스란 건, 이렇게나 쓴 거였군요」

시오리코「네, 정말 그 말대로예요」

모두가 키스는 달콤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건 분명 거짓말일 거예요.

이렇게나 쓰디쓰고 아픈걸요.

키스란 건, 왜 이렇게나 쓴 걸까요.




갤에서 추천받은 주제 2개를 섞어서 써봄
최근에 글을 쓰면 거의 주인공이 고통받다가 구원받는 내용으로 흘러가길래
이번엔 일부러 끝까지 어둡게 써봤다

시오 뽀무 세츠 유우의 4인구도
사랑하는 사람의 결혼식
술에 취한 주역
전체적으로 옛날에 쓴 시오뽀무 SS의 배드엔딩 느낌으로 썼음
근데 사람들 생각하는 게 다 똑같은지 최근 번역 올라오는 SS랑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

항상 말하지만 나는 시오리코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번에 나온 신곡 카나리아도 갓곡이고
하지만 시오리코가 애절한 사랑에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
다음에는 추천받은 거 거의 개그소재니 가볍게 돌아올 듯
여기까지 읽어줘서 고맙다
ㅇㅇ 새드라니 새벽에 각잡고 읽어야지 - dc App 2021.05.31 09:27:04
시오뽀무 부랄찢고 울부짖었다... 2021.05.31 09:31:24
시오뽀무 2021.05.31 09:31:37
yoha 이번건 꽤 기네 2021.05.31 09:37:36
theguest 딥다크 너무 좋아 2021.05.31 09:39:41
유주인 이런거만 보면 속에서 뭔가 올라오는 느낌이야 2021.05.31 09:41:10
42다김 너무 좋다.... 몰입감 엄청나네 2021.05.31 09:4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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