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목
- 번역/창작 단편SS) 아이쨩의 이야기
- 글쓴이
-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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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19 20:05:36
- 222.120
생각해보면, 나는 인생을 참 쉽게 살아온 것 같다.
공부를 하고, 운동을 하고, 친구를 사귀고...
세상 모든 일에는 대부분 요령이라 할 만한 것들이 있고, 나는 운 좋게도 그런 요령들을 빨리 익히는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아이쨩, 이번 시험도 상위권이네!’ ‘역시 대단해~’
‘미야시타! 다음 시합 때 같이 좀 뛰어줄 수 있을까?’
‘아이쨩! 내일 생일파티 같이 가자!’ ‘아이쨩!’
‘아이쨩!’ ‘미야시타!’ ‘아이쨩!’ ‘아이쨩!’ “아이씨”
“...아이씨?”
“어... 어?”
생각에 빠져있던 중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눈 앞에 안경을 쓴 땋은머리의 소녀가 서 있었다.
“별일이네요, 아이씨가 멍하니 있다니”
“미안, 셋... 아니, 저기... 나낫치?”
유키 세츠나의 진짜 정체는 일단 비밀이라, 나는 급히 말을 바꾸었다.
“굳이 억지로 별명 붙여주지 않으셔도...”
“아아 그래그래, 그러니까... 무슨 얘기였지?”
“진로적성 조사지 말인데요, 아이씨 것만 없어서...”
“아 그거, 아직 작성중인데... 나중에 내가 직접 내도 될까?”
“네, 그럼 학생회쪽에 직접...”
나카가와 나나는 그렇게 말을 끝내고 가볍게 목례를 하며 돌아섰다.
...저 예의바르고 얌전해 보이는 학생이, 무대에서는 어떻게 그렇게 폭발적인 에너지를 내는걸까.
————————
“하나 둘 셋 넷, 다시 돌아서, 둘 둘 셋 넷!”
연습실에 활기찬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부활동 시간은 끝났고 멤버들도 다들 돌아갔지만 나는 남아서 조금 더 연습하기로 한 것이다.
“거기까지! 수고했어 아이쨩!”
“우와아 힘들어~”
새로 바꾼 안무를 간신히 소화하고 그대로 연습실 바닥에 누워버렸다.
체력은 어느정도 자신이 있었는데, 역시 이정도까지 하면 지쳐버리는구나.
“자, 여기 물하고 수건”
“땡큐!”
“그런데, 정말 괜찮겠어? 이제와서 갑자기 안무를 바꾸겠다니...”
“으응, 괜찮아! 조금 하드하기는 해도 이쪽이 더 화려하고”
“그렇긴 하지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가는 우리의 매니저.
직접 무대에 서지는 않지만, 스쿨 아이돌에 대한 마음만큼은 우리들 중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테지.
저만큼이나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셋츠 정도려나.”
“어?”
“어... 아, 어?”
“세츠나쨩이 왜?”
“아, 그게...”
“?”
“...기왕 이렇게 된 김에 얘기 해버릴까. 저기, 셋츠 말인데”
셋츠는 내가 처음 스쿨 아이돌을 시작할 때부터 가장 눈에 띄었었다.
몸집은 자그마하면서도 무대를 폭발시킬듯한 박력, 그리고 열정 가득한 보컬.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고 빠져드는 것도 무리가 아닐테지.
그리고,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으응... 그건 세츠나쨩의 타고난 능력이라고 생각하는데”
“역시 그럴까...”
“하지만, 아이쨩도 충분히 화려하고 사람들 시선을 잡아끄는 뭔가가 있잖아?”
“아하하.. 그렇게 얘기해 줘서 고마워, 고맙긴한데...”
“아이쨩은 어떤 무대를 하고 싶은데?”
“...글쎄, 내 무대를 보는 사람들이 모두 즐거워하는 것?”
“그거라면 고민할 필요 없어! 다들 아이쨩 무대는 즐겁다고 얘기하고 있으니까!”
“응...”
나답지 않게 조금 풀죽은 목소리로 대답해버렸다.
저 말은 분명히 사실일거다. 나는 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고,
내 무대를 봐 주는 사람들도 모두 즐거워하는 것이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다.
셋츠의 무대에는 있고, 내 무대에는 없는 것이...
“...그보다, 유학 준비는 잘 돼가?”
“어? 아아... 그건 뭐, 짧게 갔다오는 거니까 준비랄 것도 없어서...”
“그래도 가서 열심히 하고 와야 우리가 더 좋은 무대를 만들 수 있게 도와줄거 아냐?”
“으응... 그, 그럼 당연하지!”
“그러니까 먼저 들어가봐. 옆에서 봐주지 않아도 되니까”
“아니, 그래도...”
“괜찮다니까, 내가 너무 오래 붙잡고 있으면 아유무쨩 한테도 눈치보인다구?”
“어... 아유무가 왜?”
“정말... 됐으니까 들어가 봐”
그 아이를 돌려보내고, 나는 다시 연습에 매진했다.
더 화려하게, 더 능숙하게, 내가 마음속에 그리는 그 무대를 만들기 위해서.
셋츠의 무대를 따라잡기 위해서, 내 모든 기술을 더 연마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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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츠나쨩!’ ‘카스미쨩!’
그렇게 올라선 무대는 뭐, 나쁘지는 않았다.
퍼포먼스든 뭐든, 내가 원하고 노력했던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뭔가가 부족했다.
나는 분명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무대를 만들었다.
그럼에도 셋츠나, 카스미의 무대와는 뭔가 달랐다.
문제가 뭘까? 내 능력이 여기까지인가? 내가 모르는 다른 무언가가 있는걸까?
생각해보면, 나는 인생을 참 쉽게 살아온 것 같다.
그렇게 뭐든지 쉽게 해내며 살아온 나에게, 이런 상황은 낯설다.
공부에는 요령이 있다. 운동에도 요령이 있다. 심지어 친구를 사귀는데도 요령은 있다.
하지만 스쿨 아이돌이라는 것,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무대를 만드는 것에 대한 요령은 아직 잘 모르겠다.
————————
그 아이가 단기유학을 간 동안, 우리 스쿨아이돌 동호회에는 꽤 여러가지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하지만 내 의문은 풀리지 않았고, 오히려 합동 연습에서 본 뮤즈, 아쿠아 선배들의 퍼포먼스 때문에 의문이 더 깊어졌다.
어떻게 해야 저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의문은 나 혼자만 갖고 있는게 아닌 듯 했다.
카린쨩도 마찬가지로, 성장에 굶주려 있었다.
나도 카린쨩도, 스쿨 아이돌로서 더 발전하고 싶지만 모두 한계에 부딪혔고, 이 한계를 깰 방법을 알지 못했다.
‘최고가 되려면 최고로 투자해야 돼’
‘시설, 음악, 트레이너까지 모두 최고니까, 여기로 오면 분명히 너희를 더 성장시켜 줄 수 있어’
...지금은 미움받더라도, 더 성장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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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꽁냥꽁냥하는거 쓸라그랬는데 설정 잡다보니 나도 모르게 시리어스로 빠져버림
결국 내용이 아이시점에서의 20장 직전 얘기가 됐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설정이면 시즌2 뼈대 자체는 완전 말아먹을 건 아니었다고 생각함
그 뼈대 위에다 공감능력 장애같은 대사랑 감시위원회같은 무리수 설정들을 막 끼얹어대서 그렇지
아이라는 캐릭터가 만능 인싸 이미지가 있지만 이렇게 속으로 고민하는 모습을 묘사하는 것도 인간적이라 좋은 것 같다
+ 만약 이 내용에 추가로 쓴다면 아이랑 세츠나의 차이는 결국 자신이 이 무대를 즐기는가 아닌가의 차이라고 쓸 듯
럽라에서 이전부터 계속 제시됐었던 주제이기도 하고
남들한테 보여주기 위한 무대랑 자기가 신나게 놀기 위한 무대는 다르니까
아유뿅다뿅 | 아이세츠인줄 알았더니 이걸 시즌2로 핸들을 확꺾네ㄷㄷ | 2021.05.19 20:08: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