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들어온 1학년, 무엇이든 진심으로 하는 성실한 아이. 동시에 나와는 접점이 거의 없는 아이. 시오리코가 나를 찾아왔다. 그것도 모든 연습이 끝난 뒤, 1대1로. 30초쯤 불편한 눈싸움을한다. 서로 눈을 마주치곤 있지만, 전혀 짐작가는게 없다.
"으음... 우리 귀여운 후배가 무슨일일까?"
정말 짐작가는게 없어 그렇게 물어보자. 그제서야 시오리코는 등뒤에 숨기고있던 노트를 꺼내며 입을 연다.
"연극 연기의 지도를 부탁드립니다."
자세히 보자, 노트의 표지엔 큼지막한 히라가나로(동글동글한 글씨로보아 아마 시즈쿠의 글씨같다.) '대본'이라고 써있다.
"어라? 그런거면 시즈쿠한테 부탁하는게 낫지 않아?"
"제가 맡을 배역은 쿨한 느낌의, 여자에게도 고백받는 왕자님 배역이니까요."
여학교에서 은근히 있을법한 이미지다.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을리가 없지만, 시즈쿠는 이상한 부분에서 갑작스레 엉뚱해질때가 있으니까. 그 망상의 일종일까?
"카린씨와 정확히 겹쳐요."
...에이. 난 고백같은건 받은적 없다. 엠마가 전해준 팬레터같은건 많이 받기도 했지만, 진심으로 여자에게 반하는 여자가 있을리가 없잖아.
"실제로 저희 반 몇명도 러브레터를 보낸 모양이고."
...맹점이다. 팬레터들 사이에 그런게 섞여있었나...? 아니, 팬레터는 전부 확인하는 편인데...
"그런고로 카린씨가 시범을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난 전혀 그런사람이 아니지만, 아무래도 주변사람들은 나를 그런 이미지로 보는 모양이다. 최대한 후배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최대한 미소를 자아낸다.
"뭐어, 그런거면 상관 없겠지?"
살포시 눈을 돌려 시오리코에게 건내받은 대본을 보자... 상상도 못한 내용이 가득했다.
'에? 응?여자애들끼리 이런걸? 거기에 키...키...키스?!?! 시즈쿠 무서운아이...'
충격적인 대본 내용과는 정 반대로. 표정은 여유로운척을 계속한다.
"응 응... 이런내용이구나? 음..."
전혀 모르겠어... 그래도 대본에 쓰인 그대로 해봐야겠어.
"잠깐 실례할게."
시오리코의 어깨를 거칠게 잡고 구석에 몰아넣은 뒤. 벽을 짚는다. 그리곤 시오리코의 입술로 내 입술을 천천히 가져다댄다. 귀여운 후배가 떨리는게 느껴진다. 말 그대로 눈동자, 어깨, 입술. 모든부분이 떨리고있어. 시오리코는 살짝 거부감을 느끼는듯 눈을 질끈 감았다. 역시 이런건 부담스럽겠지. 그것도 학교 선배한테말야. 서로의 얼굴이 한 10cm정도 남았을때, 난 시오리코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를 하고 시오리코에게서 멀어졌다.
"어느정도 도움이 되었을까?"
시오리코는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듯. 얼굴을 붉히면서 서있다. 역시 대본과 현실은 조금 차이가 있는거겠지. 하면서 나도 조금 두근거렸는걸? 그래도 평소와는 다르게 흐트러진 시오리코는 볼만하다.
자그마하게 미소를 짓고 있자. 시오리코는 입술을 꽉 깨물며 중얼거렸다.
"......겁해요."
"응?"
"저도 한번 실습해봐야겠네요."
시오리코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내가 당하는쪽이 되는걸까... 조금 당황스럽지만, 모델 촬영을 하다보면 살짝의 스킨십이 있는 촬영도 있으니까. 괜찮을거야.
천천히 다가오는 시오리코의 모습이 조금은 무서워서 나도모르게 그런 변명을 되내었다.
영겁과같은 시간이 흘러, 드디어 그녀가 내 어깨를 손에 잡았다. 거칠게 벽으로 밀쳐진건 같지만. 그 이후는 전혀 달랐다.
그녀는 벽이 아니라 내 뒷목을 자그마한 손으로 부여잡았다. 귀신과도 같은 박력에 난 연기라는걸 알았지만, 조금씩 무서워졌다. 천천히 다가오는 시오리코의 얼굴.
안돼, 이런짓. 정말 키스하는거야?
눈을 질끔 감고, 조그마하게 내 마지막 의사를 표시했다
"입술은...안돼..."
몇초가 지났는지 가늠조차 가지 않는다. 그녀의 입술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입술이 아닌.... 쇄골에 닿았다.
익숙하지 않은곳에서 느껴지는 익숙하지 않은 숨결. 나도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버렸다.
시오리코는 그런 나를 보며 미묘한 웃음인지, 우쭐함인지를 표시하며, 이렇게 말했다.
"과연... 이렇게인가요.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카린씨. 말씀하신대로, 입술이 아니였으니 괜찮았겠죠. 그럼"
그녀는 이렇게 말하자마자, 가볍게 등을 돌려 정문을 향해 총총 뛰어갔다.
나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의 숨길이 있던... 내 점을 어루만졌다.
아. 이제 알겠어. 아까 전 네가 하려던말.
"진짜... 비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