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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번역/창작 [물갤SS] 그녀를 만나기 전, 패널 뒤의 세상은 - 1 -
글쓴이
다이마루다이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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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글 주소
https://gall.dcinside.com/sunshine/4003052
  • 2021-04-12 10:57:09
 


잠에서 깨어남과 동시에 빗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몸을 덮고 있는 푹신한 이불을 살짝 치우고, 침대 밖으로 발을 내밀어 바닥을 디뎠다. 매끈하지만 차가운 방바닥의 촉감이 찌릿하게 몸을 타고 흘렀다. 입을 삐죽 내밀며 다시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갈까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젓고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온몸에선 관절이 뚜둑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뭐 어때. 침대 옆에 굴러다니는 실내용 슬리퍼를 신고 이불을 대충 정리한 뒤 방 밖으로 나갔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조용한 거실이 나를 맞이했다. 잠옷소매를 걷지 않은 채 탁자 위로 손을 뻗어 옷 위로 리모콘을 잡아 TV를 켰다. 아침뉴스는 어제 트위터를 들썩였던 레인보우 브릿지 위에 뜬 쌍무지개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오전 8시 13분. 일기예보가 나오려면 아직 시간이 좀 남았으니 씻고 나올 시간은 충분하겠지. 샤워실로 가 샤워기를 살짝 틀어 물 온도를 적당히 조절하며 슬리퍼를 벗어던졌다. 약간 차가운가? 어차피 잠도 깨야하니 이대로 씻어야지. '쏴아아아' 샤워기를 세게 틀어두고 거치대에 꽂아 벽면으로 고개를 돌려놓았다. 하얗게 거품이 일던 물이 벽에 닿자마자 투명하게 흘러내렸다. 옷을 벗은 후 머리에 물이 쏟아지도록 샤워기의 방향을 다시 틀고, 살짝 눈을 감으며 쏟아지는 물줄기에 몸을 맡겼다.


'대부분 지역 흐린 가운데,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지금 비구름이 중부와 남부 내륙을 지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이 지역에서는 시간당 10mm 안팎의 다소 세찬 비가 내리고 있는 모습이 관측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전히 전국적으로 약 23도 안팎의 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낮기온도 30도에 약간 못미칠 정도로 여전히 덥겠습니다... 모레 오후에는... '


샤워를 끝마치는데에는 몇 분 걸리지 않았다. 대강 몸을 닦은 후 밖으로 나오니 TV에서 한창 일기예보가 나오고 있었다. 여전히 날씨는 덥구나. 속옷만 걸친 채 머리를 수건으로 열심히 닦으며 TV를 뒤로 하고 화장대로 향했다. 오른쪽의 수납장을 열어 드라이기를 꺼낸 다음, 플러그를 쥐었다. 손을 휘적휘적하며 머리를 말리던 중에 우렁찬 드라이기 소리를 뚫고 휴대폰 알람이 귀를 파고들었다. 슬슬 나갈 시간인가? 어느 새 뜨거워진 드라이기를 끄고 머리를 만져보았다. 축축하지는 않지만 약간은 서늘한 기가 돌았다. 이정도면 됐지 뭐. 고개를 살짝 휘저어 머리를 털어내며 침대로 가 충전기에 꽂혀있던 휴대폰의 알람을 껐다.


곧바로 발걸음을 옮겨 옷장 문을 열었다. 잘 다려진 교복과 함께 짙은 하늘색 가디건이 옆에 걸려있었다. 어느덧 초가을에 들어섰지만, 아직 늦여름의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날씨는 긴팔옷을 꺼내 입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더욱이 오늘같이 비가 내리는 날에 아무 생각 없이 긴팔옷을 꺼내 입었다간 학교에 도착하기도 전에 소매가 다 젖어버리고 말리라. 추위를 많이 타 가을이 시작될 즈음엔 항상 가디건을 꺼내 입던 나였지만, 이번만큼은 그냥 넘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와하하하 아니 그건 아니잖아요~' 현관 문 앞에서 구두를 다 신고 문고리에 손을 올려 살짝 밀어낸 순간, 미처 끄지 못한 TV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들고 있던 우산을 현관문에 걸쳐두고,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스마트홈 앱을 켜 TV를 껐다. '삐빅' TV에서 흘러나온 비프음과 함께 적막감이 엄습했다. 도망치듯 열어놓았던 현관문을 밀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 다녀오겠습니다."


작은 소리를 내며 닫힌 문에서는 아무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이, 창 밖에는 비가 잔뜩 내리고 있었다. 어릴 때 부터 비 오는 날이 좋았다. 창 밖으로 살짝 손을 내밀어 빗방울을 손으로 받아냈다. 시원한 빗방울이 손바닥을 두드렸다. 웬만해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학교로 가는 편이지만, 비가 오는 날에는 약간 일찍 나서는 것을 감수하더라도 걸어가는 것을 선호했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 그렇게 했던 걸까. 띵동, 어느 샌가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1층 버튼을 누르고 벽에 기댔다. 멍하니 층수를 나타내는 패널을 바라보다 문득 옛날 생각이 들었다.


난 어릴 때부터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서툴렀다. 마음을 전하기 어려웠던 만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만, 내 감정을 전달하지 못한 채 반쪽짜리 공감만으로 구성된 인간관계는 쉬이 무너지곤 했다. 부모님은 이런 나를 걱정하셨지만, 걱정의 말과 표정에서 짧게 스쳐지나가는 짜증은 미처 숨기지 못했다. 아니, 다른 사람의 감정을 눈치채기 위해 내가 너무 노력한 탓에 일어난 사고라고 표현하는 쪽이 옳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부터 나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세상에는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이 정말 많이 있었다. 공작(工作), 학습, 독서 등등. 그 중에서 가장 나를 강하게 사로잡은 것은 컴퓨터 속 세상이었다. 0과 1의 세계에서는 누구든 쉽게 이모지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나타낼 수 있었다. 조그만 모니터 뒤에 숨어 있을 때의 나는 세상 누구보다 자유로웠고, 정보의 바다에는 외톨이를 위한 수많은 물고기들이 끝없이 헤엄치고 있었다. 부모님은 그런 나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3D 프린터, 최신형 데스크톱과 각종 소프트웨어 등등. 자녀에게 투자하는 것을 아끼지 않는 성향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들은 그렇게 문제를 하나 해결했다고 믿고싶으셨던 것 같다.


고등학교에 올라가기 직전 즈음의 어느 날, 부모님이 업무차 함께 장기출장을 가시게 되었다. 출장이 결정되고 난 뒤, 부모님은 걱정스러운 말투로 내게 물었다. '가끔 집에 오긴 하겠지만, 아마 오래 있다 가지는 못할거야.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지?'. 익숙한 표정, 익숙한 말투, 그리고 어김없이 짧게 스쳐지나가는 감정. 의문문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긍정을 강요하는 듯한 그 말투에 여느 때와 같은 무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 응. 잘 지낼 수 있어."


쿠르릉.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새어나온 그 날의 거짓말을 천둥소리가 따뜻하게 덮어주었다.


~~~~~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건물 현관 앞에 서서 잠시 가방을 열었다. 가방에 손을 넣어 잠깐 뒤적거리자 조그만 에어팟 케이스가 손에 잡혔다. 케이스를 꺼내어 에어팟을 꺼내고 하나씩 꺼내 귀에 꽂았다. 어제 집에 돌아오는 길에 듣던 노래가 흘러나왔다. 강렬한 전자음이 귀를 휘감았다. 그제서야 느껴지는 안도감에 숨을 크게 쉬며 가방을 닫고 우산을 집어들었다. 손잡이에 달린 버튼을 누르자 커다란 우산이 활짝 펴졌다. 좋아. 우산을 하늘로 치켜들고 살짝 젖은 보도블럭을 디뎠다. 음악소리로 가득한 귀에 찰박,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비내음이 가득한 거리를 걷다보니 주변에 등교하는 아이들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평소같았으면 삼삼오오 모여서 어제 방영한 화제의 드라마 이야기, 인기 아이돌의 새 앨범 이야기를 했을 법한 아이들도 빗방울은 이기지 못하는 듯 이어폰을 꽂고선 바닥을 바라보며 걷고 있었다. 물론 개중 일부는 우산을 겹치듯이 쓰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걷고 있긴 했지만, 들고 있는 우산이 서로의 옷을 조금씩 적시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학교 가서 이야기하자는 듯한 제스쳐를 취하며 다시 간격을 벌리곤 했다.


학교에 반쯤 왔을까. 잠시 약해지는 척 하던 빗줄기가 다시 거세졌다. 세차게 우산을 두들기는 빗방울에 비스듬히 우산을 걸쳐쓰던 아이들도 최대한 비를 피하기 위해 우산을 고쳐쓰기 시작했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를 뚫고 들어오는 빗소리에 잠시 에어팟을 꺼내 주머니에 넣었다. 툭. 투두둑. 툭툭. 노랫소리가 사라지자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고요함과 함께 빗소리만이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우산 아래에 생긴 조그만 방 안에 홀로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깜짝 놀라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았지만, 여기저기 펼쳐진 우산은 서로의 얼굴을 가리고, 빗방울이 우산을 두들기는 소리는 모두의 귀를 덮고 있었다. 아 그렇구나. 비 오는 날에는 모두 나처럼 외톨이가 되는구나. 덜컥 찾아온 깨달음과 함께 마음이 안타까움과 안도감 사이에서 줄타기를 시작했다. 그리고선 이내 한쪽으로 고꾸라져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조금은 나쁜 마음일지도 모르겠지만,


역시 나는 비 오는 날이 아직도 좋다.


~~~~~

니지애니 6화, 리나가 아이를 만나기 전의 이야기를 상상해서 적어보았서 깨어남과 동시에 빗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몸을 덮고 있는 푹신한 이불을 살짝 치우고, 침대 밖으로 발을 내밀어 바닥을 디뎠다. 매끈하지만 차가운 방바닥의 촉감이 찌릿하게 몸을 타고 흘렀다. 입을 삐죽 내밀며 다시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갈까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젓고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온몸에선 관절이 뚜둑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뭐 어때. 침대 옆에 굴러다니는 실내용 슬리퍼를 신고 이불을 대충 정리한 뒤 방 밖으로 나갔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조용한 거실이 나를 맞이했다. 잠옷소매를 걷지 않은 채 탁자 위로 손을 뻗어 옷 위로 리모콘을 잡아 TV를 켰다. 아침뉴스는 어제 트위터를 들썩였던 레인보우 브릿지 위에 뜬 쌍무지개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오전 8시 13분. 일기예보가 나오려면 아직 시간이 좀 남았으니 씻고 나올 시간은 충분하겠지. 샤워실로 가 샤워기를 살짝 틀어 물 온도를 적당히 조절하며 슬리퍼를 벗어던졌다. 약간 차가운가? 어차피 잠도 깨야하니 이대로 씻어야지. '쏴아아아' 샤워기를 세게 틀어두고 거치대에 꽂아 벽면으로 고개를 돌려놓았다. 하얗게 거품이 일던 물이 벽에 닿자마자 투명하게 흘러내렸다. 옷을 벗은 후 머리에 물이 쏟아지도록 샤워기의 방향을 다시 틀고, 살짝 눈을 감으며 쏟아지는 물줄기에 몸을 맡겼다.

'대부분 지역 흐린 가운데,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지금 비구름이 중부와 남부 내륙을 지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이 지역에서는 시간당 10mm 안팎의 다소 세찬 비가 내리고 있는 모습이 관측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전히 전국적으로 약 23도 안팎의 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낮기온도 30도에 약간 못미칠 정도로 여전히 덥겠습니다... 모레 오후에는... '

샤워를 끝마치는데에는 몇 분 걸리지 않았다. 대강 몸을 닦은 후 밖으로 나오니 TV에서 한창 일기예보가 나오고 있었다. 여전히 날씨는 덥구나. 속옷만 걸친 채 머리를 수건으로 열심히 닦으며 TV를 뒤로 하고 화장대로 향했다. 오른쪽의 수납장을 열어 드라이기를 꺼낸 다음, 플러그를 쥐었다. 손을 휘적휘적하며 머리를 말리던 중에 우렁찬 드라이기 소리를 뚫고 휴대폰 알람이 귀를 파고들었다. 슬슬 나갈 시간인가? 어느 새 뜨거워진 드라이기를 끄고 머리를 만져보았다. 축축하지는 않지만 약간은 서늘한 기가 돌았다. 이정도면 됐지 뭐. 고개를 살짝 휘저어 머리를 털어내며 침대로 가 충전기에 꽂혀있던 휴대폰의 알람을 껐다.

곧바로 발걸음을 옮겨 옷장 문을 열었다. 잘 다려진 교복과 함께 짙은 하늘색 가디건이 옆에 걸려있었다. 어느덧 초가을에 들어섰지만, 아직 늦여름의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날씨는 긴팔옷을 꺼내 입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더욱이 오늘같이 비가 내리는 날에 아무 생각 없이 긴팔옷을 꺼내 입었다간 학교에 도착하기도 전에 소매가 다 젖어버리고 말리라. 추위를 많이 타 가을이 시작될 즈음엔 항상 가디건을 꺼내 입던 나였지만, 이번만큼은 그냥 넘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와하하하 아니 그건 아니잖아요~' 현관 문 앞에서 구두를 다 신고 문고리에 손을 올려 살짝 밀어낸 순간, 미처 끄지 못한 TV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들고 있던 우산을 현관문에 걸쳐두고,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스마트홈 앱을 켜 TV를 껐다. '삐빅' TV에서 흘러나온 비프음과 함께 적막감이 엄습했다. 도망치듯 열어놓았던 현관문을 밀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 다녀오겠습니다."

작은 소리를 내며 닫힌 문에서는 아무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이, 창 밖에는 비가 잔뜩 내리고 있었다. 어릴 때 부터 비 오는 날이 좋았다. 창 밖으로 살짝 손을 내밀어 빗방울을 손으로 받아냈다. 시원한 빗방울이 손바닥을 두드렸다. 웬만해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학교로 가는 편이지만, 비가 오는 날에는 약간 일찍 나서는 것을 감수하더라도 걸어가는 것을 선호했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 그렇게 했던 걸까. 띵동, 어느 샌가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1층 버튼을 누르고 벽에 기댔다. 멍하니 층수를 나타내는 패널을 바라보다 문득 옛날 생각이 들었다.

난 어릴 때부터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서툴렀다. 마음을 전하기 어려웠던 만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만, 내 감정을 전달하지 못한 채 반쪽짜리 공감만으로 구성된 인간관계는 쉬이 무너지곤 했다. 부모님은 이런 나를 걱정하셨지만, 걱정의 말과 표정에서 짧게 스쳐지나가는 짜증은 미처 숨기지 못했다. 아니, 다른 사람의 감정을 눈치채기 위해 내가 너무 노력한 탓에 일어난 사고라고 표현하는 쪽이 옳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부터 나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세상에는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이 정말 많이 있었다. 공작(工作), 학습, 독서 등등. 그 중에서 가장 나를 강하게 사로잡은 것은 컴퓨터 속 세상이었다. 0과 1의 세계에서는 누구든 쉽게 이모지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나타낼 수 있었다. 조그만 모니터 뒤에 숨어 있을 때의 나는 세상 누구보다 자유로웠고, 정보의 바다에는 외톨이를 위한 수많은 물고기들이 끝없이 헤엄치고 있었다. 부모님은 그런 나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3D 프린터, 최신형 데스크톱과 각종 소프트웨어 등등. 자녀에게 투자하는 것을 아끼지 않는 성향이었던 걸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들은 그렇게 문제를 하나 해결했다고 믿고싶으셨던 것 같다.

고등학교에 올라가기 직전 즈음의 어느 날, 부모님이 업무차 함께 장기출장을 가시게 되었다. 출장이 결정되고 난 뒤, 부모님은 걱정스러운 말투로 내게 물었다. '가끔 집에 오긴 하겠지만, 아마 오래 있다 가지는 못할거야.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지?'. 익숙한 표정, 익숙한 말투, 그리고 어김없이 짧게 스쳐지나가는 감정. 의문문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긍정을 강요하는 듯한 그 말투에 여느 때와 같은 무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 응. 잘 지낼 수 있어."

쿠르릉.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새어나온 그 날의 거짓말을 천둥소리가 따뜻하게 덮어주었다.

~~~~~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건물 현관 앞에 서서 잠시 가방을 열었다. 가방에 손을 넣어 잠깐 뒤적거리자 조그만 에어팟 케이스가 손에 잡혔다. 케이스를 꺼내어 에어팟을 꺼내고 하나씩 꺼내 귀에 꽂았다. 어제 집에 돌아오는 길에 듣던 노래가 흘러나왔다. 강렬한 전자음이 귀를 휘감았다. 그제서야 느껴지는 안도감에 숨을 크게 쉬며 가방을 닫고 우산을 집어들었다. 손잡이에 달린 버튼을 누르자 커다란 우산이 활짝 펴졌다. 좋아. 우산을 하늘로 치켜들고 살짝 젖은 보도블럭을 디뎠다. 음악소리로 가득한 귀에 찰박,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비내음이 가득한 거리를 걷다보니 주변에 등교하는 아이들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평소같았으면 삼삼오오 모여서 어제 방영한 화제의 드라마 이야기, 인기 아이돌의 새 앨범 이야기를 했을 법한 아이들도 빗방울은 이기지 못하는 듯 이어폰을 꽂고선 바닥을 바라보며 걷고 있었다. 물론 개중 일부는 우산을 겹치듯이 쓰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걷고 있긴 했지만, 들고 있는 우산이 서로의 옷을 조금씩 적시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학교 가서 이야기하자는 듯한 제스쳐를 취하며 다시 간격을 벌리곤 했다.

학교에 반쯤 왔을까. 잠시 약해지는 척 하던 빗줄기가 다시 거세졌다. 세차게 우산을 두들기는 빗방울에 비스듬히 우산을 걸쳐쓰던 아이들도 최대한 비를 피하기 위해 우산을 고쳐쓰기 시작했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를 뚫고 들어오는 빗소리에 잠시 에어팟을 꺼내 주머니에 넣었다. 툭. 투두둑. 툭툭. 노랫소리가 사라지자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고요함과 함께 빗소리만이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우산 아래에 생긴 조그만 방 안에 홀로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깜짝 놀라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았지만, 여기저기 펼쳐진 우산은 서로의 얼굴을 가리고, 빗방울이 우산을 두들기는 소리는 모두의 귀를 덮고 있었다. 아 그렇구나. 비 오는 날에는 모두 나처럼 외톨이가 되는구나. 덜컥 찾아온 깨달음과 함께 마음이 안타까움과 안도감 사이에서 줄타기를 시작했다. 그리고선 이내 한쪽으로 고꾸라져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조금은 나쁜 마음일지도 모르겠지만,

역시 나는 비 오는 날이 아직도 좋다.


~~~~~

니지애니 6화에서 리나가 아이를 만나기 전의 이야기를 상상해서 적어봄.
꾸준히 써보고는 싶은데 잘 될지 모르겠다.
읽어줘서 고마워!


Sakulight 필력 괜찮은데.. 사건들을 넣어서 좀 더 길게 써도 재밌을 것 같아 2021.04.12 11:02:28
니코냥 느낌 괜찮으니 분량 늘려보는 것도 좋을 듯 2021.04.12 11:07:18
ㅇㅇ 2021.04.12 11: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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