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목
- 번역/창작 [반짝임] [SS] 이별을 위한 전주곡 (下)
- 글쓴이
- Saku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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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2-28 08:4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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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시간은 자신의 예상보다 더 빨리 찾아왔다. 리코의 말로는, 대학 주변에서 꽤 좋은 방에 싸게 들어갈 기회를 얻었기에 예상했던 것보다 더 일찍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아쉽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헤어질 사람이라면, 지금 떠나든 며칠 뒤에 떠나든 별다른 상관이 없다고 느꼈다. 너무나도 명확하지 않은 관계라서 그렇게 생각하는 걸지도 몰랐다. 바다를 앞에 둔 버스 정류장에서, 나는 편지가 분홍색 끈으로 함께 묶여 있는 CD를 받았다. 공기는 벌써 조금 따뜻했지만, 조금의 바람도 불지 않아서 꽤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할 말은 그 두 개로 대신할게.”
“충분할까?”
“만약 충분하지 않으면, 역에서 나를 붙잡아도 좋아.”
그러고는 살짝 웃어 보았다. 그다지 좋은 경우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녀든 나든, 이상하게도 자연스럽게 웃을 수 있었다. 곡은 어떤 곡이고, 편지에는 무슨 말이 적혀 있을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것을 기대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은 이상한 행복감에 젖어들었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현재의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녀를 역으로 가는 버스에 태워 보내고 바로 집으로 와서 CD를 재생시킬 준비를 했다. 평소에는 CD를 들을 일이 전혀 없으니까, 잘 쓰지 않는 물품들을 보관해 두는 곳을 뒤적여서 가까스로 먼지에 휩싸인 플레이어를 찾아냈다. 휴지로 구석구석 깨끗하게 먼지를 털어냈다. 적당히 털어내도 재생에는 별로 상관이 없겠지만, 그녀 외에는 오직 자신만이 들을 수 있는 곡을 듣는다고 생각하자 일종의 경건한 마음으로 준비를 하게 되었다. CD를 꺼내려다가, 투명한 케이스 위에 검정 매직으로 써있는 글씨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약간의 멋이 들어간 글씨체로 ‘Prelude for farewell’ 이라고 적혀 있었다. Farewell이 이별을 의미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Prelude라는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좀처럼 알 수 없었다. 그녀가 기르던 강아지의 이름이 같은 단어였다는 것이 기억났다. 아마도 자신이 모르는 어떠한 음악 용어일 것이라고 막연히 추측하였다.
CD룸을 열어 조심스럽게 CD를 끼워 넣었다. 버튼을 누르자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뚜껑이 닫히며 CD는 재생될 준비가 되었다. 재생 버튼을 누르자 CD가 잠깐 회전하더니, 곧이어 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저번에 들었던 것과 꽤 비슷하다는 느낌이다. 차분하게 다가오는 곡조면서도, 상냥한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구체적으로 어떻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대략적으로 그러한 분위기를 풍겨왔다.
음악에 귀를 기울이면서, 하얀 편지 봉투를 조심스럽게 꺼내들었다. 자신의 손은 언제부터인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봉투를 벗겨내고, 2번 접힌 편지지만을 손에 들었다. 이제 이걸 펼쳐서 읽으면 끝이 난다. 언제부터인가 음악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좋은 곡이라고만 인식할 뿐이다.
끝? 무엇이 끝이 난다는 걸까. 자신의 고민이? 자신과 그녀의 인연이? 분명히 생각해 보면, 이것을 읽는다고 해서 아무것도 끝나지는 않는다. 이것은 이제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느꼈다. 우리의 머나먼 여행은, 분명 자신이 이 편지를 읽기 시작한 순간부터 시작될 것이다. 그 여행의 내용이 어떻고, 그 끝이 어떨지는 지금으로써는 상상할 수 없다. 그렇지만 자신은 이 여행에 참가하는 것에는 이미 아무런 망설임이 존재하지 않았고, 그것은 그녀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편지를 천천히 펼쳤다. 마치 물에 젖은 종이라도 되는 듯한 조심스러운 동작이다. 전체의 3분의 2 정도 되는 분량까지 글이 적혀 있었다.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읽는 데는 그다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 번 더 다시 읽었다. 이번에는 좀 더 천천히, 문장 하나하나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려고 노력하였기에 처음 읽었을 때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편지의 내용은 그다지 복잡하거나 자신에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을 품고 있지는 않았다. 적당히 요약하자면, 금방 헤어져서 괴로워질 바에야 차라리 시작하지도 않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었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이 편지를 쓸 때가 되어서야 자신과 무언가를 함께 시작하고 싶다는 감정이 들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미안한 말이지만 나 와타나베 요우 또한 자신에게 비슷한 감정을 품어 주었으면 기쁠 것이라고 그녀는 분명히 표현하고 있었다. 마지막 문장은 아무 때나 와타나베 요우가 가능한 때에 자신에게 찾아와도 좋다는 평범한 마무리였다. 바로 밑에는 주소로 보이는 것이 적혀 있었다.
그다지 슬프거나, 아니면 화가 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뒤쪽의 말은 기쁘기도 했다. 자신의 기준으로는 하지 않았을 선택이었지만, 그녀의 기준대로라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만날 수 없는 것도 아니었다. 마음만 먹으면 1년에 몇 번 정도는 찾아가는 것이 가능했다. 그런데도 어째서 이렇게 마음이 답답한 걸까. 무언가 토해내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내뱉어야 할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지금이라면 아직 늦지 않았다.
다음 버스를 기다리기에는 너무 늦는다. 아마도 누군가의 차를 얻어 타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현관으로 뛰어 내려가면서 치카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전화가 받아졌다.
“요우쨩?”
“너네 언니한테 부탁해서, 누마즈 역까지 태워달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 그쪽으로 가고 있어.”
“으, 응. 지금 바로 말해볼게.”
자전거를 타고 바로 치카의 집으로 향했다. 자전거를 타고 있으니까 분명히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따스하지만, 어딘가 조금 찬 기운이 밑에 깔려있다. 꽤나 급하게 밟았기 때문인지 생각보다 금방 도착했다. 어느샌가 땀이 맺히기 시작해서, 겉에 걸친 청자켓을 벗고 싶어졌다.
치카네 앞에 도착하자 도로 쪽으로 접어드려는 시마씨의 차가 보였다. 자전거를 길가에 적당히 세워 두고 바로 차에 탑승했다. 차에는 의외랄 것도 없이 치카 또한 타 있었다. 아마도 확인하고 싶은 거겠지. 차는 자신이 타자마자 급하게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택시가 아니니까 목적지를 말할 필요도 없었기에, 차 안은 말 그대로 차 소리만 들리는 상태였다. 몇 분간 이어지는 침묵을 깬 것은 치카였다.
“둘만의 일이니까 대답하지 않아도 되지만, 마음이 내키면 대답해줘. 리코쨩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 거야?”
“그건 대답해 줄 수 없어. 미안.”
대답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대답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대답해 줄 수 없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그녀에게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자신조차 알 수 없었다. 다만 그것이 자신과 그녀가 마주 보았을 때 터져버린 댐처럼 끝없이 흘러나오리라는 것은 확실했다. 그러나 그 물속에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는, 댐이 터지기 전까진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이다.
“청춘인가, 부럽네.”
앞에서 운전하던 시마가 흘러가듯이 말했다. 아무도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쪽도 굳이 따지자면 청춘이라고 부를 만한 나이가 아니냐고 되물으려다가 그만두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녀 또한 성인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이곳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도 치카와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하고 막연하게 추측할 뿐이었다. 자신의 진로에 비하면 상당히 안정적이고 편안한 길이라고 느꼈다. 그렇지만 이러한 선택에 우열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성향과 가치관의 차이니까.
역 앞에 내리자마자 바로 역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시간이 없다. 그녀라면 아마 지금 오고 있는 전철을 탈 것이다. 이미 타고 가버렸을 가능성도 분명 존재하였지만, 작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적당히 가까운 역으로의 표를 끊고 전차가 오는 곳으로 향했다. 전차의 소리가 분명하게 들려온다. 지금 당장일지도 모른다.
실내와는 다른, 바깥의 따스한 공기를 자신의 피부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말 그대로 그곳에는 따스한 공기만이 애처롭게 남아 있었다. 전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점점 희미해져만 가는 끝없는 전철의 소리만이 흩날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내린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아마도 최소 한 명쯤은 탄 사람이 있었으리라. 남아있는 것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자신과 따스한 공기뿐이어서 마치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듯한, 그러한 감각이 존재하였다.
자신은 이곳의 정적을 어떠한 소리로도 깨버리면 안 된다고 느끼는지, 의식적으로 숨을 고르게 하고 있었다. 자그마한 나무 벤치에 주저앉았다. 앉아 있으니까 호흡이 금세 차분해졌다. 차분해지고 나니 어느새 이곳에는 침묵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침묵이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아서 나도 침묵으로 답하였다. 침묵에 어떠한 소리로써 답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어떠한 표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아주 조금도 들지 않았다. 따스한 공기도, 이 텅 비어버린 장소도, 완전한 침묵도, 자신에게서 무언가를 생각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만들어왔다.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나는 끝내 떠올릴 수 없었다. 단지 어떠한 감정만이 언어를 잃은 채 그곳에서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 슬프거나, 허무하거나, 그런 종류의 감정은 아니었다. 단지 그것은 끈적하게 이 장소에 달라붙어 있어서, 몇 주 뒤 자신이 다시 이 장소를 찾아야 했을 때에도 자신을 마주해 주었다. 이곳에 묶여 있는 존재를 떠나보내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그 해답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전철 위에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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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지 긴 글은 아닌데 뒷부분이 짤려서 한번 나눠서 올림
쓰면서 솔직히 좀 더 길게 끌고갈 수도 있다고는 생각했는데, 대회 기간 안에 올리려다 보니까 조금 급하게 마무리 지은 감이 있긴 하네
다음 글은 니지 장편으로 돌아올게
ㅇㅇ | 선개추 후감상 223.38 | 2021.02.28 08:45: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