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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번역/창작 물갤글] saigo // 01
글쓴이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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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gall.dcinside.com/sunshine/3870888
  • 2021-01-29 08:2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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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던하게 더운 여름의 날이었다. 언제나 매 여름은 항상 새롭고 불쾌한 더위를 가져다주는구나, 하고 생각을 하게 되는 그런 날. 17살의 나이는 객관적으로 봐서는 그렇게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그동안 살아온 세월 중에서 매 여름이 찾아올 때마다 ‘작년보다 덥네.’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면은 신기한 일이기는 했다. 과학적으로 접근하면 지구 온난화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니, 여러 근거 있는 자료들이 나오겠지만 적어도 국제교류학과에 재학 중인 오사카 시즈쿠는 그런 자료들을 알 리가 만무하다. 


  상록수가 우겨져 있고, 매미들이 쉬지 않고 지저귀는 학교의 길을 걷다 보면 부실동이 나오고 그 부실동을 걷다 보면 니지가사키 스쿨 아이돌 동호회가 나온다. 이것은 분명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을 이야기였을 거고 시즈쿠에게 있어서는 지금까지도 간직하고 있는, 있어야하는, 있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다. 시즈쿠가 15살의 여름이었던 시절에는 어느 곳보다 찬란했다고 단언할 수 있었을 이 장소는, 지금 17살의 시즈쿠에겐 「찬란하다」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그저 어디에나 있을 법한 동호회 부실에 불과했다. 청소를 대충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손이 모자라서 먼지가 조금은 쌓인 수납장들부터, 원래는 9개가 넘게 배치되어 있던 머그컵들도 어느덧 4개 정도만 남아있었고 예전엔 다 담아낼 수 없을 만큼 많은 꿈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던 칠판은 이제는 그저 출석부에 지나지 않았다.


  시즈쿠의 행동은 여느 때와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제는 절대로 많다고 하지 못할 예산들을 이용해서 사둔 믹스 커피를 타서 마신다든지, 피곤한 날에는 다 같이 쉬고는 했던 소파에서 담요를 덮고 잠을 청한다던지, 지금처럼 문고본을 꺼내서 자신만의 낙원에 빠지는 것도 분명 메트로놈과 같은 시즈쿠의 행동 패턴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랑 비교해도 크게는 달라지지 않았구나.‘라고 시즈쿠는 속으로 생각할 뿐이었다. 수험생이 되었다 해도, 시즈쿠에게 소설과 연극의 많은 이야기들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것들이었다. 많은 이야기들을 좋아하는 건 분명히 유치원 때부터 쭉 이어져왔고 시즈쿠가 조금은 무뎌진 몸을 힘들게 움직이며 겨울의 눈꽃을 바라볼 즈음에도 쭉 이어질 시즈쿠를 이루는 거대한 요소 중 하나이다.


  문고본의 페이지가 100쪽을 겨우 넘기려고 할 즈음에 부실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입인가, 라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바깥에서 “시즈코, 있어?”라고 말하는 소리에 시즈쿠는 바깥에 있는 상대가 신입과는 거리가 멀고도 먼 오히려 이 스쿨아이돌 동호회에 뼈를 묻은 사람이 아닌가 싶은 나카스 카스미라는 것을 알아챘다. 카스미는 이제는 사람이 얼마 있지도 않은 동호회임에도 고등학교 1학년 시절처럼 동호회의 문을 두드리는 버릇이 아직 남아있었다. 분명 시즈쿠의 과거에도 분명 있었던 버릇이지만 노크를 해도 들려오지 않는 목소리를 실감하고 어느덧 놔두고 온 버릇이었다.




  “있어.”


  “있구나~.”




  다르게 보면 생존신고와 다름없는 이런 대화들은 15살의 시즈쿠에게는 없었던 행동패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행동패턴이었다. 처음에는 “굳이 일일이 확인할 필요가 있어?”라고 카스미에게 물었지만, 언젠가 카스미에게 약간은 진지한 어투로 “노크를 해서 목소리가 들리면 안심이 된달까…….”라는 대답을 들은 이후로는 번거롭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런 생존신고에 계속 어울려주고 있었다. 여동생이 있다면 이런 기분인걸까, 하고 시즈쿠는 응석을 부리는 카스미를 보며 항상 생각했다.


  카스미의 생활패턴도 시즈쿠와 마찬가지로 거의 똑같은 편이었다. 언제나처럼 시즈쿠의 근처 자리에 앉고 콧페빵을 물면서 스마트폰을 보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같은 sns에서 재미있거나 시즈쿠가 좋아하는 귀여운 강아지 사진을 보면 문고본을 읽거나 하는 시즈쿠에게 보여주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행동의 반복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시즈코 쪽도 진로 상담 같은 거 했어?”


  “응? 아직은 하지 않았는데?”


  “……헤에.”


  “그런데 그건 왜?”


  “그냥, 카스밍네 반도 오늘 진로 상담 했는데, 시즈코 쪽도 했나 싶어서.”




  그러고는 카스미는 다시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딱 단순한 의문의 단계에서 그친 주제였지만 시즈쿠를 문고본의 세계에서 잠시 현실의 세계로 돌아오게 하기엔 충분한 주제였다. 이곳에 있는 자신과 카스미 둘 다 올해에 수험을 치르고 대학에 입학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잊을만하면 어떻게든 기억하게 된다. 올해가 지나면 분명 이 동호회에서 믹스 커피를 타먹는 일도, 문고본을 읽으면서 쉬는 일도, 카스미의 생존 신고를 듣는 일도 없겠지. 먹먹하다면 먹먹할 감정이 시즈쿠를 감쌌다.




  “있잖아, 카스미 양은 진학할 대학, 정했어?”


  “카스밍은 일단은 집이랑 가까운 쪽으로. 뭐, 사실 성적이 원하는 대학을 골라서 갈 수 있을 만큼이 아니기는 하지만.”


  “그래도, 예전에 동호회가 공부 때문에 곤란했었을 때 이후로는 꾸준히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 해도, 딱 ‘안하지는 않았다‘ 수준이니까 말이야~. 시즈코는 역시 가마쿠라 쪽?”


  “응? 어째서?”


  “가마쿠라에서 오다이바까지 등교하는 거 힘들지 않아? 카스밍이었으면 힘들어서 무리였을 텐데. 자그마치 한 시간이라고?”


  “그래도 괜찮은데? 내가 좋아서 니지가사키 학원에 진학했기도 하고. 전철도 한 30분정도 타고 가면 카스미 양도 같이 타주는걸?”


  “확실히, 귀여운 카스밍이랑 함께 가면 힘이 날 수 밖에 없지!”




  라고 말하면서 카스미가 기분 좋다는 듯이 웃자 시즈쿠도 “귀엽다고는 아직 말하지 않았는걸?”하고 웃을 뿐이었다. 그러고는 심통이 들었다는 듯이 볼을 부풀리는 카스미의 머리를 적당히 쓰다듬어주는 언제나처럼의 일상을 시즈쿠는 구가하고 있었다. 사실 시즈쿠에게 있어서 졸업이라는 건 가깝지만 먼 일이었기에, 가끔 이렇게 카스미나 다른 주변 사람들이 현실을 각인시켜 줄때만 잠시 고민하지 결국은 문고본 속의 이야기보단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였다. 이것도 그저 그런 헤프닝으로 넘기며 시즈코는 다시 문고본을 들여다보았다.


  미래의 일 같은 건 바깥에 있는 나무들의 잎이 조금은 물들어갈 때쯤 생각해보자. 동호회 부실에서 둘은 그렇게 생각하며 각자의 일상을 만끽했다.






  Ⅹ  Ⅹ  Ⅹ






  “아, 시오코~”


  “……아. 카스미 씨, 시즈쿠 씨.”




  여름의 해가 조금은 기울기 시작해서 집으로 돌아가려는 시즈쿠와 카스미에게 낯익은 얼굴이 보여왔다. 미후네 시오리코. 분명히 과거에 시즈쿠와 카스미와 함께 같은 동호회에서 같이 꿈을 나눴던 소중한 친구이며 동료였었다. 아니, 지금도 분명 시오리코는 시즈쿠와 카스미의 친구이자 동료일 것이다. 단지 ‘조금’ 바빠서 동호회에 얼굴을 자주 비추지 못할 뿐이지. 1학년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학생회장 직을 맡아왔던 근면성실한 시오리코가 수험생의 신분으로 지금의 시즈쿠와 카스미처럼 동호회에서 적당히 시간을 보낸다는 건 제대로 상상이 가지 않았다. 


  카스미가 아는 척을 하자 시오리코도 졸린 눈을 부비면서 시즈쿠와 카스미를 응시했다. 시즈쿠는 눈에 조금 껴있는 다크서클과 그러면서도 손에서 놓지 않는 책들을 보면서 시오리코의 근면성실함을 다시금 실감했다. 수험이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어도 시오리코만큼 노력하는 것은 힘들지 않을까. 시즈코는 아주 조금의 경외를 담아 “공부, 열심히 하고 있나보네?”라고 말했다.




  “아니요, 오늘은 공부보단 아주 조금, 학교를 쭉 둘러봤습니다.”


  “학교를?”


  “그나마 여유로운 지금이 아니면, 앞으로 살면서 이 학교를 쭉 둘러볼 일이 없을 거 같단 생각이 들어서요.”




  라고 말하면서 부끄러운 듯이 웃는 시오리코의 말에 카스미는 몰라도 시즈쿠는 다시 현실을 조금 실감했다.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의 신분으로 살면서 현실을 실감하는 일이야 종종 있지만, 그래도 같은 동호회 사람들에게 하루에 두 번이나 당할 줄은 몰랐기에 아주 조금 더 씁쓸하게 느껴졌다. 자신만 아직 앞으로 다가올 ‘마지막’이라는 거에 제대로 대비하고 있지 않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올 즈음 카스미는 그런 시오리코의 말에 순수한 의문을 가지고 물음을 표했다.




  “에엥, 그러면 동호회도 한 번 들려보지! 그도 그럴게 시오코, 리나코도 물론 그렇지만 리나코보다 더 가끔씩 얼굴을 비추잖아. 그마저도 같이 하교하는 일은 최근 들어서 전혀 없었고.”


  “사실 오늘, 들려볼까 했는데 역시 무리인 거 같더라고요.”


  “‘무리‘라면?”


  “시즈쿠 씨랑, 카스미 씨랑은 다르게 저 자신이 수험이 끝나기 전에 동호회에 기대버리면 뭔가 나약해질 거 같아서……. 아, 시즈쿠 씨와 카스미 씨를 모욕하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냥, 그냥 저 자신과의 약속이라고 할까요. 서운함을 느끼셨다면, 죄송합니다.”


  “아냐아냐아냐아냐, 그렇게 몰아세우려고 한 말이 아니야! 실제로 작년에 유우 선배랑 아유무 선배도, 세츠나 선배, 아이 선배 모두 수험 바로 직전 시즌엔 자주 못 들리시긴 했고……. 딱히, 그런 걸로 시오코를 탓하거나 하지는 않아……!”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수험이 끝나고나서라도 얼굴을 비춰주면 나는 그걸로 좋으니까……. 마지막으로 리나코랑 시오코랑 시즈코랑 함께 동호회에서 커피만 마실 수 있으면, 난 그걸로 괜찮은걸.”


  “……확실히, 기억해두겠습니다.”




  시오리코는 카스미가 말한 소망 정도는 반드시 기억해서 들어줄 수 있다는 듯이 말했다. 실제로 시오리코도 수험이 끝나면, 동호회에서 시즈쿠와 카스미, 그리고 리나와 함께 있고 싶었기 때문에. 근면성실한 시오리코에게 남은 아주 조금의 소망이었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일치했고, 거짓 하나 담지 않은 채 말할 수 있었다.


  단호하게 약속하듯이 말하는 시오리코를 보면서 시즈쿠는 분명 시오리코라면 이런 약속은 반드시 지킬 거라는 확신이 들어왔다. 그것은 분명 카스미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카스미도 그런 시오리코를 보면서 “응, 믿고 있는걸.”이라고 말하면서 웃어보였다. 오랜만에 만난 짧은 만남은 시오리코의 ‘일’로 인해 같이 하교를 하지는 못하고 그저 평소처럼 카스미는 시즈쿠와, 시즈쿠도 카스미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을 탈 뿐이었다.


  덜컹거리면서 익숙한 풍경들이 시즈쿠의 눈에 지나쳐갔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많은 역들, 그리고 앞으로 볼 일이 없을 거 같은 많은 사람들, 전철의 문이 열릴 때마다 풍겨오는 역마다의 냄새들, 평소였으면 별다른 생각이 없이 넘어갈 풍경이 어째서인지 조금은 의미있게 보이는 건 시오리코가 말한 ‘마지막’ 때문인 건가? 시즈쿠는 옆에서 휴대폰을 쳐다보면서 키득거리는 카스미를 흘끔 쳐다봤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가듯이 자신도 카스미에겐 스쳐지나가는 사람이 되는 걸까? 아니면 자신이 카스미를 스쳐지나간 많은 사람 중 한명으로 치부하게 되어버리는 건가? 그럼 언젠가는 이렇게 전철을 타고 카스미와 함께 하교를 하는 시간도, 부실에서 문고본을 읽다가 카스미가 생존신고를 해주는 일이 ‘마지막’이 되어버리면 그건 정말로―――.




  “시즈코, 이거 봐.”


  “―으, 으응?”


  “이거, 멍멍이 정말 귀엽지 않아? 뭔가, 지난번에 시즈코네 집에 갔을 때 봤던 오필리아? 걔 생각난다. 그 애도 이 멍멍이처럼 몸집이 커도 애교 많았었는데~”


  “으응, 그렇네……. 오필리아랑 약간 비슷한 거 같아.”


  “그래, 오필리아! 수험이 끝난다면 시즈코네 집에 다시 한 번 들려보고 싶네. 집도 넓고, 완전 부자에 아가씨라는 느낌. 이렇게 생각하니 시즈코 엄청 치트키인 캐릭터같아.”




  그렇게 말하면서 혼자서 재미있다는 듯이 꺄르르거리는 카스미의 얼굴을 보며 시즈쿠는 갑작스럽게 닥쳐온 고뇌를 겨우 떨쳐버릴 수 있었다. 정확히는 ‘수험이 끝나고.’라는 미래지향적인 말 때문이었을까. 지금 이 순간이 끝나도, 수험이 끝나도, 졸업을 한다고 해도 자신과 카스미가 멀어질 일은 없지 않을까하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주 약간은 희망적인 미래가 스쳐지나갔기에 시즈쿠는 카스미가 보여준 사실은 오필리아랑 전혀 닮지 않은 개의 사진을 보며 웃음 지을 수 있었다.




  “꼭, ‘수험이 끝나고’가 아니라도 괜찮은걸.”


  “아니, 그건 카스밍이 싫어~. 시즈코 평소에 엄청 착실한데, 카스밍이 놀러가면 카스밍한테 신경 써준다고 번거로울 거 아니야.”


  “딱히……. 번거롭지는 않은데?”


  “그래도 싫어! 카스밍은 수험 전에 시즈코도, 리나코도, 시오코도 누구의 발목도 안 잡고 카스밍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할 거니까.”




  발목을 붙잡는다. 사실 전혀 그런 게 아닐 텐데, 시즈쿠는 카스미와의 시간에서 ‘발목을 붙잡힌다’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카스미의 말에 쉽게 공감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완고한 카스미를 설득하는 것도 힘들겠다고 판단해 “고마워.”라고 말하면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Ⅹ  Ⅹ  Ⅹ 






  “방학도 얼마 남지 않았네.”




  언제나처럼 동호회 부실에서, 오늘은 수행평가가 남아있었기에 과제를 마저 풀고 있는 시즈쿠에게 카스미가 혼잣말하듯이 말했다. 분명히 이 숙제는 반과 상관없이 3학년이면 모두 나가는 숙제일텐데, 하고 생각하면서 시즈쿠가 카스미에게 확인차 물었다.




  “방학도 좋지만, 카스미 양 수행평가 다 했어?”


  “그거는 시즈코 거를 배낄 생각이었지……라고 하려고 했지만, 집에 가서 하려고. 집에서는 할 것도 없기도 하고.”

  “예전에도 비슷하게 말했던 거 같은데, 집에서 제대로 하고 있는 거지?”


  “당연하지! 너무 신뢰하지 않는 거 아니야!? 동호회니까 이렇게 편하게 있는 거지, 집에선 공부도 하는걸!”


  “에, 정말? 진짜로?”


  “……자주는 아니지만요. 이익, 그래도 수행평가 같은 건 항상 꼬박꼬박 해오거든! 선생님들도, 1학년 때랑 많이 달라졌다면서 말씀하시는걸!”


  “그거, 칭찬이 아니지 않을까 사실은?”




  흥, 이라고 말하면서 다시 휴대폰을 쳐다보는 카스미를 보며 시즈쿠는 피식 웃었다.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시즈쿠도 카스미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성실해진다는 생각을 하긴 했었다. 동호회에 와서 시즈쿠가 생각해도 과제가 많다 싶은 날이면 시즈쿠와 함께 공부를 하기도 했었고. 카스미가 휴대폰으로 대학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는 것도 일주일에 한 번 꼴로는 보이기도 했었다. 1학년 첫 기말고사 때 22점을 맞아서 시즈쿠가 놀려댔던 거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라고 불러도 할 말이 없을 발전이기는 하다. 실제로, 테스트의 결과를 항상 서로 공유하지는 않았지만 비교적 최근에 봤었을 때는 시즈쿠조차 ‘컨닝한 거 아니야?’라고 동요할만큼 성적이 평범한 수준으로, 평가하자면 막 탑급 대학은 무리라도 적당한 대학정도는 골라서 갈 수 있을 수준으로 올라갔었다.




  “축제도 조만간이네, 아아~ 가고 싶어라……. 작년까지는 그래도 유우 선배랑 세츠나 선배가 죽이 그런 방향으론 잘 맞아서 갔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두 사람 다 수험생이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놀 때는 확실히 놀긴 했었지.”


  “실제로 두 사람 다, 괜찮은 대학교로 갔지 않았던가?”


  “2학년 선배 라인들은 4명 다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으니까. 그-나마 못하는 편이었던 게 유우 선배였는데, 그마저도 아유무 선배가 챙기다보니 말이 그나마지 상중하로 따지면 상이었기도 하고……. 사실, 카스밍이 유일한 ‘바보’라인인건가? 슬퍼라~. 그나마 카린 선배가 있어서 다행이었지 1학년 때는.”


  “카린 선배, 분명 들으시면 화낼 거야?”


  “뭐 괜찮잖아~ 지금은 없는걸.”




  그것도 그렇지, 시즈쿠는 납득했다. 자신도 카스미도, 가끔 선배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도 막 뒤에서 남을 헐뜯는다던가 그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 이 정도의 대화정도는 장본인이 들어도 그냥 적당히 카스미의 머리를 주먹으로 눌리면서 넘어가지 않을까. 시즈쿠는 일어나지도 않은 그런 상황을 생각하면서 살짝 웃으며 말했다.




  “확실히, 카스미 양 1학년 때 22점은 좀 심하긴 했지. 22점이다 냥냥? 귀여웠잖아.”


  “시즈코 항상 그걸로 놀리네……. 그래도 그 이후로는 공부 열심히해서 22점이랑은 안녕! 이거든요? 그리고 22점 하나도 귀엽지 않고.”


  “그때의 카스미 양이 신선하게 놀릴 재미가 있었긴 했는데.”


  “카스밍을 그런 식으로 취급하지 말아줄래!?”


  “왜, 그런 카스미 양도 귀여운걸.”


  “맨날 자기 편할 때만 귀엽다는 말로 넘어가려고 하고……. 카스밍이 착하니까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줄게!”




  말로는 삐친 척을 해도 귀엽다는 말에는 수비가 극도로 허물어지는 카스미라는 걸 시즈쿠는 알고 있었다. 3년 동안 봐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왔지만 시즈쿠는 딱히 입밖으로 낼 이유가 없었기에 말로는 하지 않았다. 시즈쿠는 과제가 거의 다 끝나가는 것을 대충 느꼈기에 남은 건 집에 가서 해도 되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노트를 가방에 넣으며 카스미에게 말했다.




  “그래도, 축제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응?”


  “아무리 수험생이 바빠도, 축제정도는 즐겨도 상관없다고 생각해. 나는 말이지.”


  “갑자기 무슨 소리……. 아.”




  얘 대체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람, 하고 카스미는 생각하다가 이내 시즈쿠의 말뜻을 이해했고 자신이 조금 전에 축제 이야기를 꺼냈다는 것도 기억해냈다. 방학과 축제 그냥 의식의 흐름 알고리즘이 이끄는 대로 말한 것뿐이기에 카스미의 기억 속에는 오래 남지 않을 내용이었다.


  시즈쿠와 알게 된 지 어느덧 3년이 다되어가기에 시즈쿠의 저런 말뜻이 뭔지 이해하는 것 정도야 카스미에게 있어서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정말? 이라고 순진하게 물어볼 뻔했지만 불과, 십분도 지나지 않은 과거에 시즈쿠가 자신을 놀려댔기에 자신도 시즈쿠를 놀려야지, 하는 마음에 카스미는 입을 열었다.




  “그거, 시즈코가 카스밍한테 데이트 신청하는 거 맞지?”


  “맞아.”


  “아이 참, 카스밍이 아무리 귀여워도 그렇게 속이 보이는 수법으로 꼬시……. 응?”


  “카스미 양, 같이 축제가자.”




  부정하지 않고 웃으면서 말하는 시즈쿠의 말에 카스미는 자신이 직접 제 무덤을 팠음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즈쿠의 대답을 듣자말자 자신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다는 것을 바로 느낄 만큼 몸의 온도가 아주 조금, 아니 사실은 좀 많이 올라가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시즈쿠의 단호한 대답도 물론이지만, 그것보다 카스미를 더욱 동요시키게 만든 요인은 바로 시즈쿠는 애써 자신이 부끄러움을 잘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은 시즈쿠의 머리카락 사이에 있는 귀가 분명 평소보다 약간은 벌게져 있는 걸 카스미에겐 보였기에 더욱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람?’하고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랑은 가기 싫어?”


  “싫……지는 않은데…….”


  “그럼, 같이 가주는 거다? 시간은 나중에 카스미 양이 원하는 시간대로 괜찮으니까.”




  라고 말하는 시즈쿠의 모습에, 카스미는 시즈쿠의 말을 긍정할 수밖에 없었다. 저런 표정을 짓고 말하는 시즈쿠의 말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지 않을까. 카스미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예전부터, 정말 예전부터 가끔씩 시즈쿠는 카스미를 깜짝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2학년 때 수학여행을 갔을 즈음엔 밤에 다 같이 야식을 먹자면서 치킨을 시켜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배달 어플을 사용하는 방법을 전혀 몰라서 혼자 끙끙 앓다가 갑자기 울먹이면서 도와달라고 한다던가, 한 번은 함께 시내에 나갔었는데 걸렁걸렁한 남정네 놈들이 헌팅을 하자 무슨 의도인지 몰라서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던가, 성실하며 실속 있어보여도 실제로는 가마쿠라에 유명한 가문 독녀인 응석받이 아가씨 티를 벗어내지 못해서 보이는 순수함은 카스미를 당황시키게 하는데 충분한 것들이었다.


  물론 지금의 상황이 그런 순수함에 의해서 카스미를 당황시켰냐하면 전혀 아니다. 오히려 시즈쿠의 소악마적인 면모가 카스미를 당황시키고 놀라게 한 것이었지. 순수함과는 분명 거리가 멀다. 카스미는 시즈쿠를 바라보며 정말 능글맞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카스미 양, 대답은?”


  “좋아, 좋다고! 괜찮아! 시간 같은 건 내가 정할 테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능글맞게 쳐다보는 건 그만해줘…….”




  카스미에게 확답을 들은 시즈쿠는 웃으면서 “고마워.”라고 말했다. 동호회 바깥의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것보다 아주 조금 더 큰 심장소리를 카스미는 듣고 있었다. 시즈쿠가 저런 말을 하고, 저런 표정을 짓는데 두근거리지 않는다는 건 다른 누구라고 해도 힘든 일 아닐까? 카스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신의 두근거림을 합리화시켰다.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이라고 생각하면 아주 조금 마음이 편해진다는 것을 카스미는 그동안의 경험상 알고 있었다.


  카스미가 시즈쿠와 함께 여름 축제를 갔던 적은 매년 마다 항상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언제나 동호회 사람들과 함께 갔었던 거지, 지금처럼 단 둘이서 축제를 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언젠가 살면서 한 번쯤은, 대학을 다니다가 너무 지쳐서라던가, 회사 생활을 하면서 너무 힘들 때, 잠시 옛날 회상을 하면서 단 둘이 축제를 보러가지 않을까――하는 망상은 카스미도 몇 번은 했었지만 적어도 수험이 있는 고등학교 3학년 때 함께 축제를 보러간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카스미도 사실은 말로만 가고 싶다고 했었지, 방학 동안에는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은 공부를 해보자는 다짐 아닌 다짐을 하고 있었기도 했고. 그렇기에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축제는 자신과 연이 없을 행사라고 생각했기도 했다.


  하지만 고맙다며 저렇게 웃고 있는 시즈쿠를 보며, 카스미가 “그냥 푸념삼아 했던 말이었어.”라고 말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애써 귀여운 자신에게 데이트 권유를 한 시즈쿠가 차이는 건 수험 기간에 있어서 가장 최악의 상황이니까, 수험생은 멘탈관리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니까, 그렇기에 시즈쿠의 멘탈을 배려하기 위해서 함께 가야하는 어쩔 수 없는 일인 거야. 이렇게 생각하면서 카스미는 얼굴을 붉혔다.






  Ⅹ  Ⅹ  Ⅹ







  “오사카 양은 대학교를 어디 쪽을 쓰려고 생각하고 있니?”


  “아…. 죄송합니다. 아직 확실하게 정해지 못했어요.”


  “괜찮아, 아직 그 정도 고민을 할 시간은 넉넉하니. 그래도, 슬슬 생각은 해봐야한다?”




  여름방학이 정말로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 시즈쿠는 수업시간 도중에 불려가서 담임선생님과 함께 진로 상담을 하고 있었다. 물론 진로 상담의 내용은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모든 학생이 하는 일이기도 하니 담임의 입장에서도 굳이 깊게는 파고 들려고 하지 않으려 하고, 서로 묻고 묻는 거에만 답하는 그런 형식적인 일이니. 분명 상담을 하고 있는 시즈쿠도, 담임도 그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전공은……. 음? 사범대 쪽으로 생각하고 있니? 의외네, 오사카 양.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만 해도 연극부였지 않나?”


  “아하하……. 그냥, 지내다보니 꿈이 조금 바뀌어버렸어요.”


  “으음, 뭐 그런 경우도 있지. 대학은 몰라도 전공은 거의 이쪽으로 정해둔 모양이네? 지망 대학은 백지인데 전공은 한두 번 빼면 다 기입되어있고.”




  담임의 말대로 분명 시즈쿠는 연극을 해오던 사람이었다. 스쿨 아이돌 활등을 할 때에는 자기소개 영상에 많은 사람들이 알아줄 대배우가 꿈이라는,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약간을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기도 했었다. 사실은 고등학교 2학년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런 꿈을 줄곧 꾸고는 있었지만, 달콤한 꿈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정말 말 그대로의 천재가 연극부에 들어왔던 것이다. 주역 경쟁은 자신이 있었던 시즈쿠의 자존심에 금이 가게 하는 정도가 아닌 그냥 박살을 내버릴 정도의 천재. 사실 시즈쿠도 아주 조금은 알고 있었다. 자신은 그냥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저 조금 더 노력하고 열정적인 범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그럼에도 노력을 거듭하다보면 자신같은 범재도 천재에 범접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고, 1학년 때에 주역 경쟁을 해오면서 그것이 꿈이 아니라 확신이 되려고 할 즈음에, ‘자신은 천재의 범접할 수 없는 그냥 세상에 차고 넘치는 범재‘라는 사실을 강제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분명 분했어야했는데, 분하지가 않았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분함을 느끼지도 못하게 할 정도의 격의 차이였기에, 시즈쿠는 그냥 연극부를 나갔다. 굳이 나가지 않고 취미로라도 해도 괜찮지 않냐는 부원들의 만류에도 시즈쿠는 연극부를 탈퇴하는 길을 선택했다.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취미로 하는 거니까 굳이 그런 걸로 포기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아?‘라는 말들이, 그리고 그런 말들을 들으며 그런 현실에 만족하며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도 역겨웠기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가끔씩 들려오는 소식으로는 커다란 대회에 나가서 학교 이름으로 수상도 하고 그랬다고 하지만, 지금의 시즈쿠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이야기이다. 


  그 이후의 진로를 사범대로 정한 것도 사실은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 주변에서 시즈쿠에게 공부 같은 것을 물어볼 때면 ‘오사카 양은 잘 가르쳐주네.’ 같은 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있었기에, 의외로 교사에 소실이 있는 게 아닐까하는 가볍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정한 것이었다. 그동안 열심히 공부를 했기에 성적도 모자라지 않았고, 정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해도 사범대 졸업장 하나면 적당한 곳에 취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안일하지만 현실적인 생각이 시즈쿠의 1지망을 사범대로 정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 이후에도 큰 의미 없는 말들을 주고받으면서 이제 이대로면 이번 학기 상담도 이정도로 끝이구나 싶었을 때, 담임이 아무렇지도 않게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생각해보니, 나카스 양은 도쿄 쪽으로 간다고 했었지.

ㅇㅇ 3줄 요약좀 223.62 2021.01.29 08:29:22
ㅇㅇ 시즈카스 수험침 61.78 2021.01.29 08:2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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